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41화 (341/384)

실낱처럼 이어지는 생각을 읽고 외친 그 순간. 회귀자의 시야 가득 수십 개의 폭탄이 날아왔다. 다행히 내가 경고하기도 전에 회귀자는 반사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천반경이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고, 뱀처럼 솟아오른 천앵이 폭발의 중심을 정확하게 갈랐다.

방어에는 성공했으나, 회귀자는 이어 보인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연기가 걷히고, 하늘에 떠오른 로우켓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용매부대의 것보다 수십 배는 큰 날개를 매달고 있었는데, 양산형 날개와는 달리 소형 추진기가 깃털처럼 무수히 박혀 있었다. 꽁지깃에는 커다란 추진기가 새빨간 불꽃을 토해내며 그의 몸을 띄우고, 발톱엔 로켓을 쏘아내는 발사대가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열폭회주의 저거너트, 용매다. 그가 타고 있던 커다란 사륜차는 저거너트가 변신하기 전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는 불꽃을 토해내는 날개를 넓게 펼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회귀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야? 살아있어?”

“흥! 이 내가 그까짓 공격에 죽을 줄 알았나!”

‘위험했다! 반탄 장갑이 없었다면 죽을 뻔했군…!’

반탄 장갑이라. 생각을 읽어보니 자기 몸을 지향성 폭탄으로 둘러싸고, 충격을 받으면 폭발해서 반발력으로 밀어내는 일종의 갑옷이었다. 반탄기공이랑 비슷한 원리다.

차이점이 있다면 쓴다고 의식하지 않더라도 작동한다는 것. 덕분에 독심술로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기다 폭발의 충격 때문에 잠깐 기절해버린 터라 진짜 죽은 줄 알았지.

나름 회주라고 자기 목숨을 지킬 수단은 갖고 있었네.

“흥! 한 수를 숨기고 있었군!”

“아니, 딱히 안 숨겼는데.”

“하지만, 이젠 방심하지 않는다! 내 온힘을 다해 죽여주마!”

외침과 함께 용매의 발톱이 펼쳐졌다. 그의 아래로 무수한 폭탄이 떨어졌다.

폭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로우켓은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며 회귀자를 향해 온갖 폭탄을 내던졌다. 회귀자는 빠른 속도로 달려서 피했으나 로우켓은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아, 진짜! 성가시게!”

회귀자는 지잔으로 지반을 내리쳤다. 부서진 땅이 튀어오르고, 회귀자는 떠오른 바윗덩이를 계단 삼아 딛고 뛰어올랐다. 천앵을 뒤로 향한 회귀자는 폭풍으로 자기 몸을 밀어내며 로우켓을 향해 쏘아지듯 돌진했다.

그야말로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회귀자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 느려 터져서는!”

그렇지만 아무리 해봤자 추진기로 날아다니는 로우켓보다는 느리다. 회귀자가 세차게 뛰어올랐을 때 이미 로우켓은 크게 선회하여 멀어지고 있었다.

용매의 속도는 화살보다 빠르면 빨랐지 뒤쳐지지는 않았다. 따라잡기에는 너무 멀다. 회귀자는 추격을 포기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대신 멀어지는 그를 향해 천앵을 휘둘렀다.

“칫! 천검기, 단공!”

“어림없다!”

천앵을 휘둘렀지만 그에 반발하듯 폭발이 일어났다. 회귀자는 튕겨 나오는 천앵을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보호막?”

“흥! 용매의 폭풍이다. 네 멍청한 머리로는 설명해줘도 모르겠지!”

용매의 폭풍은 무슨. 철가루잖아. 쓰고 남은 철가루를 허공에 흩뿌리는 용매의 기능이다.

바람에 흩날릴 정도로 작은 작은 철가루일 뿐이나, 로우켓의 능력에 의해 그건 작은 폭탄이 된다. 뭔가에 닿으면 폭발하게 설계된 작은 철가루는 회귀자의 공격으로부터 로우켓을 지켰다.

로우켓은 날개를 더욱 넓게 펼치며 소리쳤다.

“바람의 칼날? 제법 귀중한 물건을 들고 있구나! 하지만 그래봐야 나에게 미치지는 못한다!”

“저게…! 도망치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전략적인 거다!”

닿지 못할 고도까지 날아오른 로우켓은 다시 폭탄을 쏟아냈다. 천앵을 휘두른 터라 회귀자는 피하지 못했다. 대신 반탄기공으로 전신을 둘러쌌다.

콰과광. 거대한 폭발이 뒤이었다. 흙먼지가 자욱이 퍼졌다. 로우켓은 그 광경을 보고 만족스럽게 외쳤다.

“하하! 해치웠군!”

“뭐? 이까짓 폭발로?”

다만, 역시 폭탄은 그리 좋은 무기가 아니었다. 온갖 영약을 먹고 힘을 키운 회귀자의 기력은 가공할 수준. 옷에 검댕이가 좀 묻었지만, 순수하게 반탄기공으로 모든 폭발을 견뎌내고는 지잔을 어깨에 걸쳤다.

“날아다니는 것밖에 없으면서 날파리처럼 왱왱거리긴! 같잖은 능력으로 잘난 체하지 마!”

“같잖은 능력?! 땅 위에서 빌빌거리는 주제에 입만 살았군!!”

로우켓은 더더욱 높이 솟구치며 외쳤다.

“다들 너처럼 나를 비웃었지! 하지만 결국 이기는 건! 최후에 서 있는 건, 바로 나다!!”

이어지는 전투는 요란했지만 조금 지겨웠다.

회귀자는 바위를 던지거나 바람의 칼날로 로우켓을 공격했다. 그러나 로우켓이 너무 빨라서 대부분은 맞히지 못했고, 그나마 맞출 수 있는 공격 수단은 그의 반탄 장갑에 막혔다. 혹여나 날개를 맞춘다고 하더라도 저거너트는 어지간한 공격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격 수단이 마땅치 않은 회귀자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건 로우켓도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폭탄은 회귀자의 반탄기공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더 강력한 폭탄을 만드는 수밖에 없으나, 공중에서 요격당하자 오히려 로우켓이 휘말려버렸다. 그렇다고 감히 접근할 수는 없었으니. 로우켓은 최대한 기력을 갉아먹는 쪽으로 작전을 바꾸었다.

‘쓸데없이 빨라! 칫, 총사였으면 영점잡이로 잡았을 텐데. 아니, 천앵에 벼락만 깃들였어도 아무것도 아닌데! 뾰족한 수가 없나?’

‘제길. 바위를 던지고 바람을 쏘아내면서도 반탄기공을 계속 유지해? 기력이 남아도나?’

서로 마땅한 수단이 없이 시간만 흐르는 지금. 이 균형을 깰 수 있는 건….

티르도 하늘을 나는 로우켓 상대로는 별로. 힐데는 지금 등장할 타이밍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네.

끙, 고유마도를 여기서 훔치고 싶진 않은데…. 남들이 알면 내 정체를 의심할 거 아니야.

“아지야.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멍? 뭘?”

뭐, 내가 뭘 하는지 개가 알겠냐만 말이지.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폭발한 뒤 흩날리는 철가루가 무겁게 손에 달라 붙어왔다.

막시밀리앵의 고유마도는 톱니바퀴를 돌리는 힘. 톱니바퀴는 왼쪽 오른쪽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그의 반대로 움직여 고유마도를 무력화했다. 나와 상성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로우켓의 고유마도는 금속에 폭발하는 성질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내가 고유마도를 훔친다고 하더라도 그의 폭발을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준비 중인 폭발을 먼저 일으킬 수는 있지. 그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나는 로우켓의 마음을 읽었다.

신체의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열등감의 덩어리였다. 다행인 점은 그의 장애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며, 불행인 점은 덕분에 싸움을 끊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앞에서 기형을 언급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달려들어 때려눕혔다.

열 살이 되자마자 클라우디아에서 쫓겨난 로우켓은 승냥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선천적인 기형은 승냥이 생활에 더 큰 장애가 되었다. 탈것이 조그만 돌부리를 지나기라도 하면, 그 자그만 충격도 로우켓의 척추를 거세게 두들기는 것 같았다.

로우켓은 분노했다. 바퀴에 걸린 돌부리에, 그의 몸에, 그리고 이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그의 무력함에 전부.

계속, 계속 분노하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이 될 만남이 나타났다.

마도연방의 부유성.

황금경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저거너트이자, 마왕이 기거하는 천공의 성. 성의 보수를 위해 징발된 그는 하늘을 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태어났다.

하늘을 나는 건 빠르고 상쾌했다. 무엇보다,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척추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부유성에서 거주하기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고작 승냥이에 불과한 그가 마도연방의 중추인 부유성에 거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단, 그는 그 과정에서 어떤 마법사의 조언을 듣게 되었다.

‘부유성은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옛날 옛적에 떠오른 땅이 아직 떨어지지 않는 것뿐이니.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절대 여기 머물 수 없다.’

그게 말 그대로의 진실인지, 아니면 무언가 숨겨진 뜻이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그 마법사의 말은 로우켓을 움직였으니까.

지상으로 돌아간 로우켓은 대포를 만들었다. 귀중한 강철을 누군가에게 초고속으로 선물해주는 대포는 열국에서 가장 멍청한 무기로 손꼽히지만, 꿈을 꾸던 로우켓은 틈날 때마다 멍청해졌다.

떨어지기 직전까지 하늘을 날았던 포탄을 보며 로우켓은 자기만의 심상을 구축했다.

만일, 폭발이 계속 일어난다면. 자기 몸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솟아오르면.

그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 떨어지기 전에 허공에서 불타 사라질 테니까.

고유마도, 불꽃놀이.

다 읽었다. 심상을 얻은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아앙. 로우켓의 한쪽 날개가 폭발했다.

저거너트는 황금경이 회주에게 내리는 특별한 물건. 오직 회주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도구다. 애초에 설계부터 회주의 능력을 전제로 두고 만들어져 적합한 자가 사용한다면 무한한 기능을 발휘한다.

그래도 인간의 도구라면, 인간의 왕인 나도.

주먹을 쥐었다. 로우켓의 한쪽 날개가 일제히 폭발했다. 외부에서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 폭발이 자기 몸체를 뒤틀고 구조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렸다. 한순간 폭풍이 일어날 정도이니, 지근거리에서 폭발에 휩싸인 로우켓이 받은 충격은 심각했다.

“크아악…!”

“지금이다!”

때마침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회귀자에게, 로우켓이 균형을 잃은 지금이 최적의 기회. 회귀자는 지잔 위로 천앵을 길게 쓸어올렸다.

철과 철끼리 마찰하면 불꽃이 일지만, 땅과 하늘이 마찰하면 벼락이 친다. 정전기라 부르기엔 좀 험악한 기운을 흩뿌리며 회귀자가 소리쳤다.

“천지검곤, 역뢰!”

땅에서 시작된 벼락이 하늘로 솟았다. 하늘로 되돌아가려던 번개는 허공에서 잠시 머물 곳을 발견했다. 흩날리는 철조각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전신에 강철을 주렁주렁 매단 가엾은 인간이었다. 그는 커다란 충격에 비틀거리고 있었으나 미물의 사소한 사정은 벼락의 알 바가 아니었다.

벼락이 강철을 따라 수천 갈래로 퍼졌다. 무수한 지류(支流)로 나뉘어진 벼락이 로우켓을 뒤덮었다. 벼락의 급류에 휘말린 로우켓은 전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크게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그러나 쓰러뜨리기엔 모자라다. 벼락도 요령을 피우는 법이라, 편한 길이 있으면 고된 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전류 대부분이 저거너트를 타고 올라간 덕에 로우켓의 육신에는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했다.

어쨌든 승부는 났다. 폭발에 이어 전격에 당한 로우켓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로드 로우켓! 괜찮으십니까!”

로우켓의 부하로 보이는 이가 급히 날아왔다. 싸움이 너무 길었던 탓에 이미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었다. 감히 끼어들지 못했던 로우켓의 부하들이 접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로드 로우켓! 이쪽으로!”

날개를 펼친 이가 떨어지는 로우켓을 아래쪽에서 받아냈다. 저거너트의 무게에 밀려서 떨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정신을 차린 로우켓이 추진기를 다시 가동한 덕에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로우켓을 부축한 그녀는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으윽…. 1익. 용매 부대를….”

‘부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모두 불러와…! 와서 저것들을 죽여!”

로우켓이 왈칵 화를 내자 '부하'가 난색을 표했다.

“그,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겁먹은 거냐?! 너희 목숨은 내가 쥐고 있다는 걸 잊었나? 명령이다, 당장 공격해…! 아니면 너희들의 추진기를 다 터뜨려 버릴 테니까…!”

“‘제’ 말은, 그러니까.”

“뭐!”

뜸을 들이는 ‘부하’를 향해, 로우켓이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

무언가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 로우켓의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너무 은밀하고 예리해서, 칼날이 몸을 헤집기 전까지 로우켓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그가 입을 떡 벌리며 소리 없이 경악을 내지를 때. ‘부하’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면,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편에 있거든요~. 어떻게 죽은 사람을 불러오겠어요?”

어느새 그 얼굴은 힐데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로우켓이 눈을 부릅떴다.

직후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로우켓이 몸 전반에 폭발을 일으켜 힐데를 떨쳐냈다. 힐데가 기공의 고수여도 발 디딜 곳이 없다면 반작용을 해소할 수가 없다. 둘은 허공에서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로우켓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 땅으로 떨어졌다. 쾅, 하고 땅과 충돌한 그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망토를 젖혔다. 칼날이 잠깐 머물렀다가 떠난 자리에는 새빨간 피가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커헉…! 쿨럭.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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