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47화 (347/384)

하지만 다르다. 지금까지 힐데의 변신은 본인도 놀랄 만큼 완벽했지만, 이번 변신은 누가 오더라도 손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솜씨는 뛰어나지만 누가 보더라도 회귀자와는 이질적이었다.

“뭐야? 변신? 그런 것치고….”

'셰이'가 되다 만 힐데는 포옥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혀 안 닮았죠? 네에~. 실패에요. 당신 캐릭터 해석이 너무 어려워서, 이렇게 되다 말았지 뭐예요~. 몰입이 안 되니까 연기도 신통찮구.”

회귀자는 힐데가 자기로 변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분 좋아보였다. 자기가 오롯하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눈앞에 자기 얼굴이 있으면 냅다 공격할 법 한데도 태도가 유했다.

“흥. 당연하지. 세상 만사가 다 네 뜻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저'도 오늘 알았네요. 두손 두발 다 들었어요. 뭔가뭔가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네요~.”

모를 만하지. 회귀라는 전제 조건을 알지 못한 채 저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독심술을 가진 나조차도 온전히 이해 못했는데 뭐.

양손을 들어올린 힐데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냅다 내게 뛰어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아버님과 같이 자는 게 싫다면, ‘저’와 바꾸죠! ‘저’는 아버님과 함께 자도 아무런 문제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더 좋아!”

“하?”

“남녀가 한방에서 자도 괜찮냐고요? 괜찮아요. ‘저’는 지금 남자로 변장했으니까요! 같은 방뿐만 아니라, 같은 침대에서 자도 안전하단 말씀!”

아니. 그건 내 쪽에서 거절인데. 침대 좁게 쓰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왜 남자여야 해? 내가 안전하지 못하잖아. 이왕이면 여자 몸으로 해달라고.

회귀자는 힐데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자기 얼굴을 힐데가 나와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는 거부감을 느꼈다.

“됐어. 내 얼굴로 쟤에게 달라붙는 모습 볼 바에야 안 하고 말지.”

“어머? 질투하는 거예요?”

“질투는 뭔 질투! 기분이 나쁘다고! 너도 네 얼굴로 헛짓거리하고 돌아다니면 기분 나쁠 거 아니야!”

“딱히? ‘저’는 ‘제’ 얼굴로도 얼마든지 헛짓거리할 수 있는데요~? 어떤 헛짓거리를 할까나~?”

힐데는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창고로 향했다. 그때 힐데의 뒤편에서 어둠이 넘실거리더니, 느닷없이 뒤를 덮쳐 힐데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어라라? 티르칸쟈카?”

[어이 다 큰 아녀자가 성큼성큼 남정네방으로 들어간단 말이냐. 돌아오거라.]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진도를 늦추는 거라구요오오~.”

라고 말하며 힐데는 어둠 너머로 끌려갔다. 옆에서 사람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광경을 본 페루는 다시 한번 겁에 질려서 달아났다.

결국 회귀자와 나만 창고 앞에서 남게 되었다. 머리를 쓸어 넘긴 회귀자는 혀를 차며 손을 내저었다.

“됐어. 중간에 천을 칠 테니까 넘어오지 마.”

“왜 자꾸 자기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모르겠네. 오히려 비명을 질러야 할 쪽은 저거든요? 당신과는 달리 저는 공격성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무해한 인간이라고요!”

“딱히 너라서 경계하는 게 아니야. 상대가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같은 공간에 인기척이 있으면 잠이 잘 안 오거든.”

‘곁에 아무도 없다면 위험하지 않아. 나도, 상대도. 모두….’

회귀자는 널따란 천을 꺼내서 방 한가운데를 갈랐다. 가뜩이나 좁던 방이 더욱 숨 막히게 변했지만… 천 너머에서 한결 편한 기색이 읽혔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회귀자는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았다.

뭐, 치든가 말든가. 쳐 주면 오히려 내쪽이 더 편하지. 자칫 건드렸다가 목 날아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혹시나 천에 닿을까 조심스럽게 움직인 나는 간이 침대 위에 누우며 말했다.

“프라이버시는 확실하겠네요. 잘 자요, 셰이 씨.”

“…너도.”

대답은 한 박자 늦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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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국의 왕, 엘릭이 제자들에게 명령했다.

“금화 한 닢으로 이 방을 가득 채워보아라. 가장 지혜롭게 방을 채운 자가 나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을 얻을 것이다.”

너무 우려먹다 못해 사골까지 나온 진부한 물음이었고, 제자들은 각자 자기가 생각한 바를 펼쳐냈다. 소리, 빛, 향. 온갖 보이지 않는 것들로 방을 가득 채운 제자들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엘릭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엘릭의 시험에는 한 가지, 숨겨진 뜻이 더 있었으니.

“바다로 흘러간 물은 구름이 되어 다시 내리고, 망가진 도구는 녹여 다시 강철로 만들어진다. 모름지기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소모하는 것보다 다시 채우는 법을 고려해야 하는 법. 그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앞선 질문은 유명했으나, 제자들은 그 뒷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었다.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해 엘릭이 명령했다.

“채운 것을 다시 금으로 바꿔오거라.”

제자들은 다급히 남은 물건을 챙겨서 금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쓴 물건은 가치를 잃기 마련. 온전한 금화 한 닢으로 되돌려 온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황금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와. 별일도 있네. 내가 꿈을 꾸다니.

평범한 사람들은 꿈 앞에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가면서까지 그 무질서한 환상이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꽤 많은 경우 꿈은 단순히 개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는 동안은 인간의 의식이 가장 약해질 때고, 신경을 타고 흐르는 신호가 약해질 때 그 사이로 파고드는 잡음이 바로 꿈이다. 이것저것 덧칠한 바람에 알아보기 힘들지만, 그 한가운데에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근원이 뿌리박혀 있다.

뭐, 대부분의 경우 그걸 찾지 못하니까 개꿈이 되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른데.

내가 자는 동안 뇌리에 파고든 기억. 방을 채우라고?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멍! 멍멍!”

“일어나! 일어나!”

귓가에 개 짖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사색을 방해하는 소리에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을 썼다. 개꿈이 개보다 낫네. 최소한 개꿈은 내 잠을 깨우지는 않으니까.

“아지야.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봐.”

당연히 말로 멈출 리가 없다. 아지는 침대를 탁탁 두드리며 외쳤다.

“일어나! 아침이야!”

“게으름뱅이!”

“게으름뱅이가 아니야. 나는 인간을 지배하려는 가혹한 아침을 향해 거룩한 투쟁을 하고 있는 거야.”

“게으름뱅이!”

“부지런해야지!”

닭의 왕도 아니면서 아침은 꼬박꼬박 깨우네. 쳇. 오랜만에 숙면을 좀 취하려고 했더니. 짐승들이 인간보다 더하다니까.

그래, 일어난다, 일어나. 그 꿈에 대한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나저나 내가 무슨 꿈을 꾸었던가. 분명 개꿈이었던 것 같은데.

“끄응. 그나저나 너는 왜 돌림노래를 하고 있냐?”

라고 말하며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아지 머리 두 개가 나란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케르베로스다!”

“멍! 나, 아지야!”

“케르…? 먹을 거야?”

“케르베로스는 아니네. 머리가 두 개니까! 쌍두견?”

“나, 머리 하나야!”

“바보!”

“머리 두 개 된 강아지에게 바보란 말 듣기 싫거든!”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람. 눈을 떠보니 아지가 복제되어있다. 어디서 유기견의 왕이 들어왔나. 곤란하네. 한 마리도 벅찬데 두 마리라니.

반사적으로 독심술을 쓰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맞아. 상대는 개의 왕. 내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아지가 겉으로 드러낸 것뿐이다. 어차피 해봐야 소용없을….

‘저 놀란 표정 봐. 진귀하네요~.’

읽히잖아? 무슨 일이지? 어디 갇혀서 뭐 잘못 먹고 인간이 되기라도 했나? 아니면 내 독심술이 각성했나?

‘평소에는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버님도 자는 동안에는 상당히 무방비해 보이네요~. 인간의 왕이 모든 힘을 잃었다고 하지만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 하나도 없을까요? 더 관찰할 필요성은 있네요!’

뭐야. ‘아지’는 힐데였잖아.

쳇. 또 내게도 성장기가 찾아왔나 했네. 하긴 인간이 개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읽지 않아도 알 수는 있지만.

어디 한 번만 시도해볼까.

‘깨워! 멍! 깨워! 멍!’

끄으응. 역시 안 읽히네.

지금 아지가 나를 깨우려고 한다는 건 독심술이 없어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내 독심술로 읽을 수 있는 건 아지의 기분이나 행동이 전부다. 그마저도 혼란스러워서 읽을 의미가 없다.

일단 나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자게 두는 게 친절인데 말이야.

“뭐야? 뭔데 이리 소란스러… 어?”

짜증스럽게 커튼을 걷은 회귀자는 복제된 아지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양손을 턱받이로 삼아 아지 얼굴을 받치며 말했다.

“짜잔. 아지베로스입니다.”

“머리가 두 개잖아!”

그게 중요하냐? 사소한 건 무시하라고, 좀.

“멍멍! 거기 서라!”

“멍멍멍!”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아지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아지’를 보고도 별달리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지’가 부산스럽게 뛰어다니자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면서 덩달아 뛰었다. 둘은 가구를 넘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 술래잡기를 해나갔다.

“아지가 둘이라 그런가, 제곱으로 부산스럽네요.”

“하나는 아지가 아니잖아. 아지인 척하는 영궤지.”

회귀자는 아지와 ‘아지’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개 귀를 쓰고 꼬리까지 단 다음 개처럼 뛰어논다고? 악취미도 정도가 있지….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지금 그 말 그대로 아지에게 적용되는 말인데요. 개 귀와 꼬리를 달고 개처럼 행동하는 건 아지 그 자체잖아요.”

“무슨 소리야? 아지는 개의 왕이잖아! 개의 왕이 개처럼 행동하는 게 어때서!”

“이상하다. 셰이 씨는 아지를 인간처럼 대우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아지랑 놀아주니까 너무 막 대한다고 난리 치고. 먹다 남은 밥 주려니까 투덜거리고. 그랬으면서 개 귀와 꼬리를 달고 개처럼 행동하는 건 자연스럽다고요? 모순되잖아요.”

솔직히 인간이 개처럼 구는 것보다, 개를 인간처럼 대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본다. 개를 인간처럼 대할 거라면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하던가. 일도 안 하고 쓸데도 없으면서 온갖 대접이란 대접까지 다 받으면 그게 애완동물이냐? 상전이지?

“개의 왕은 개를 대표하는 존재잖아. 개가 할 짓을 하는 게 당연하지!”

“그러면 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취했을 뿐 본질은 순수한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인정….”

거기까지 말한 회귀자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는 다시 외쳤다.

“…안 해! 그렇다고 진짜 개한테 하듯이 할 순 없잖아!”

“참나. 고집은.”

회귀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아지는 장난을 그만두고 고개를 갸웃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지’도 따라서 슬그머니 다가왔다.

쯧. 알아맞히기 전까지 변신을 풀지 않을 생각인가. 이 사람도 참 악취미이긴 해. 바로 골라내면 의심스러울 테니, 꼬리를 드러내도록 해볼까.

“아지야.”

“멍!”

“멍!”

아지와 ‘아지’는 나란히 대답했다. 저번에도 확인한 내용이지만, 목소리로도 구분할 수는 없다. 개 짖는 톤도 이렇게 똑같이 따라할 수 있을 줄은.

“아지야. 너는 너랑 똑같이 생긴 존재가 눈앞에 있는데 별 생각 안 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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