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64화 (364/384)

“뭐, 자랑하고 싶은 마음 이해해요. 잘 만들긴 했네. 그런데, 그건 겉모습일 뿐이잖아요? 저 ‘폐하’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던가요? 세상 모든 기술을 보자마자 이해해버리던가요? 아니면, 당신을 향해 약간의 경외와…질투의 시선을 보내던가요?”

황금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안다. 그라서 더욱 잘 안다.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바깥의 엘릭이 가짜라는 걸.

나는 아픈 부분을 후벼 파며 말했다.

“뭐, 몸만 필요하다면 저걸로도 충분하겠지만. 당신은 저걸 폐하라고 부를 수 있나요?”

“알아! 안다고! 아무리 만들어보아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쯤은!”

황금경이 벌떡 일어났다. 목에 달린 칼이 덜컥 흔들리고, 철구가 데굴데굴 구른다. 운신하기도 벅찰 것 같은 구속 속에서도 황금경은 목청 높여 변명했다.

“그래도, 달라요! 내가 인간을 만들지 못하는 건,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야. 나, 나는 단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야.”

“당신 스스로 고백했네요. 다른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요.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인간의 죄를 어떻게 알아. 당신은 죄가 무엇인지도 몰라요.”

애초에 죄를 청할 자격 따윈 누구에게도 없다. 하물며 황금경의 경우에는 본보기조차 되지 않는다. 누구도 비슷한 짓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풀이로 보복당할 수는 있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고.

황금경이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처량하게 황금 종을 다시 노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시선조차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 모르겠단 말입니다. 황금을 만들면 환호했습니다. 모두가 저를 영웅이라고 떠받들었습니다. 황금을 받은 이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감사를 표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되었는지.”

“인간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그 미지의 행동이 자기 책임이라는 심보도 참 고약하네요. 모르는 물건을 제멋대로 평가하는 자칭 전문가를 보는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자기 탓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제 죄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비극을 제가 초래했다 했습니다! 하물며 폐하께서도…!”

거기서 북받친 듯 말을 잠깐 멈춘 황금경은 이내 울분을 토하며 외쳤다.

“아무것도 없던 저를 가르쳐주시고 지원해주신 엘릭 폐하께서도! 그분마저도 저에게 죽음을 명하셨습니다! 제가 죽을 죄를 저질렀기에, 죽음으로 갚는 게 당연하기에!”

그렇게 믿고 싶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늘처럼 떠받들던 엘릭 왕을 의심해야 하니까.

다만, 그게 아니다. 죄는 훗날 평가하며 붙은 이름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조금 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이유로 이루어진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죠. 그녀는 단순히 모든 책임을 지고 죽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황금경은 멍청하지 않다. 간혹 똑똑한 사람이 더 잘 속아 넘어간다곤 하지만, 그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내가 읽은 기억과 감정 전부 이 심상공간에서 읽은 것.

엘릭이 왜 자기를 저버렸는지, 금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멸망했는지. 황금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뼈저릴 정도로.

고개를 숙인 황금경에게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그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했으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말을.

“금국은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다른 곳보다 더 추악하죠. 장인과 기술의 나라. 장사로 돈을 버는 나라. 누구보다도 잇속이 밝고, 이기적이며, 긍지를 팔아 돈으로 바꿔 먹는 이들이 가득해. 각자가 제 이윤만 추구하다 나라가 망할 위기가 닥쳐오니까 당신을 악마로 몰아 사냥했지. 당신은 정말 그딴 나라를 다시 만들고자 했나요?”

대답이 없었다. 상관없다. 그의 낙원을 부수는 데는 내가 말만 해도 충분하니까.

“아니겠죠. 당신이 만든 낙원을 봐도 알겠네요. 호문쿨루스가 군말 하나 없이 알아서 일하고, 그나마 당신이랑 말이 통하는 연금술사들만 곁에 둔 황금궁. 강철의 왕은 당신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로 칭찬해주고, 세상 만물은 당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를 취하죠.”

금국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주변 모든 물건을 ‘연금’하며 돌아다녔다. 마을, 도구, 심지어 논밭까지. 목가적인 농촌 풍경, 번성한 도시, 웅장한 성곽. 그가 원하는 이상적인 광경이 눈앞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이상은 비현실이다. 이상이라고 여겼던 광경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황금경의 그 모순을 짚었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금국은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면, 바깥세상 따윈 외면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갖다 붙여서 만든 이 황금궁은 금국과는 1할도 닮지 않았으니까.”

내가 하는 말은 곧 그의 내면의 소리다. 어떤 인간도 자기 자신에게는 저항할 수 없다. 육신도 없이 사념만이 남은 황금경을 억지로 일깨우고 자극한다.

“억지는 그만 부리죠. 당신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어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도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작품인 ‘황금경’은 의미 없는 바람만 품고 몇백 년 동안 헛되이 땅을 배회하고 있는 거예요. 승냥이들이 뜯어먹는 와중에도 미련하게 다음 먹잇감을 연금하면서.”

황금경. 금국을 재건하는 마신의 유품이자, 금국을 기억하는 최초의 연금술사의 유작.

그러나 황금경은 금국을 재건하지 못했다. 이룰 수 없는 소원을 위해서 주변 모든 것을 연금하며 다니지만, 그가 만든 금국의 흔적은 승냥이의 먹이가 되어 뜯어먹힐 뿐.

황금경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황금경을 없앨 거다.

황금경이 나를 방해해서도 아니고, 군국과 전쟁을 일으킬 거라서도 아니다. 황금경은 미망이다. 그게 존재하는 한 황금경의 바람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

그의 마련을 전부 털어내어, 황금경을 없애고 그를 내 안에 담겠다.

“당신의 바람을 원해요. 영원히 이 환상을 되풀이하는 게 당신 소원이라면 이게 나름의 답이겠지만, 당신 소원은 이게 아니잖아요? 황금경은 왜 존재하는 거죠? 어째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찍은 마침표가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고 영원히 늘어지는 거죠?”

꼭 황금경뿐만이 아니지. 죽어간 모든 이들. 천국과 지옥을 마음속으로 꿈꾸며 세상에서 떠난 이들의 미망. 그 모든 미망은, 모두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없는 천국을 대신해, 나는 납골당이 되었다. 이제 황금경이 이 안에 들어갈 차례.

“무엇이 황금경을 굴레에 얽매고 있는 거죠? 당신의 진짜 바람은 무엇이죠?”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더라도 제 힘으로 바람을 이룰 수 있으니까.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둔 이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곧 세상에서 사라질 자기 바람을 남기기 위해서 회한을 내뱉는다.

그럴진대 이미 죽은 이들은.

“…아름다운 금국을 만들 겁니다.”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나는 찬찬히 되물었다.

“금국은 당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죽인 추잡한 나라인데도요?”

“그런 나라이나, 저는 그곳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던 엘릭은 가장 힘든 순간 당신을 배신했는데요?”

“그런 분이나, 저는 그분을 사모했습니다.”

말을 할수록 그의 마음이 명료해진다.

나라를 좋아했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고향이라는 향수 때문에.

엘릭을 사랑했다.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외모와 능력을 동경했기 때문에.

죄니 책임이니. 온갖 이유를 붙여서 자기 죽음을 정당화했으나, 사실 화풀이에 본보기로 죽은 것이다. 진정 악의를 묻는다면 황금경이 아니라 혼란 와중에도 제 잇속을 챙긴 수천 명을 죽여야 했다. 차마 나라를 떠나지 못한 황금경과는 달리, 그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나라를 저버렸으니.

그럴 수 없기에 황금경을 죽였다.

와중에도 황금경은 나라와 왕을 사랑했다.

온갖 이유를 붙이고 포장하고 꾸며도, 결국 인간의 마음으로 귀결된다. 거기에는 구구절절한 사정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 나라를 굳이 다시 만들 이유가 있나요? 꼴을 보아하니, 당신 말고 다른 누군가가 연금술을 찾아냈다면 알아서 망했을 텐데.”

의무감도 없을 텐데, 황금경은 아주 손쉽게 이유를 찾았다.

추악한 나라에 무책임한 왕이었으나 황금경은 그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 속에서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했다.

달칵. 그의 발을 구속하던 족쇄가 풀렸다. 황금경을 옭아매고 있던 죄악감이 사라진 탓이다. 황금경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확인하듯 물었다.

“당신이 살았던 금국과는 달라지는데도요?”

“물건을 고치면 으레 처음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망가진 곳은 되돌리고, 나쁜 부분은 고칠 겁니다. 그걸 위한 연금술이고, 그걸 위한 황금경입니다.”

덜컥. 팔을 묶던 사슬이 가닥가닥 끊어진다. 황금경은 자유를 되찾은 팔을 뻗어 황금의 종을 손으로 쥐었다. 딸랑, 하고 맑은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그렇지만, 가능할까요? 황금경이 만드는 금국에는 유지력이 없어요.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관리해줄 인간이 없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질 거예요. 관리자가 있다고 해도 승냥이들이 다 뜯어먹을 거고요. 금방 사라지는 나라를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번에는 대답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았다. 자기 마음을 다잡은 그를 막을 건 없었으니까.

“…유지력이 없다면, 그조차도 ‘만들’ 겁니다.”

만든다고?

쿵. 그의 목을 옥죄던 칼이 갈라져 땅으로 떨어졌다. 이제 그 무엇도 그를 얽매지 않는다. 완벽하게 자유를 찾은 황금경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는 선언했다.

“호문쿨루스가 완벽하지 못하다면, 더 완벽해지게 개선하면 됩니다. 승냥이들이 금국을 부순다면, 부수지 못하도록 배제하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두 목표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일거양득이지요.”

어라라. 잠깐만.

결론이 묘하게 이상한데.

“-내가 만든 금국의 그 무엇도 해치지 못하도록, 그들을 수집하여… 호문쿨루스의 재료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더 오래 움직이며, 이 나라를 이끌어갈 호문쿨루스로.”

어쩌면 나, 괴물을 풀어버린 걸지도 몰라.

지금까지 황금경이 만든 물건은 무서울 정도로 정교하고 실용적이었으나, 인간만은 어딘가 부족했다. 아마 황금경 말마따나 그가 인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을 만드는 데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족쇄와 굴레를 내던진 지금. 그 어떤 것도 황금경을 막을 순 없다.

끙. 이거 어쩌지.

“죽은 자들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어요. 당연히 소원도 이룰 수 없죠. 그토록 소중한 소망을 품에 안은 채 손쉽게 죽어버리는 이들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나 황금경은 약간 다르다. 그는 바람을 나에게 떠안기고 죽지 않았다. 대신, 죽기 전에도 그의 바람을 이룰 무언가를 만들었다.

이곳에 남은 사념은 진짜 그의 바람이다. 누구에게 매이지도, 명령받지도 않은 순수한 그의 소망. 그렇다면 나 역시 이를 긍정해야겠지.

“당신은 죽어서도 소망을 이룰 무언가를 남겼네요. 일단 응원할게요.”

사실, 응원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말이지.

나는 마술사. 그의 숨겨진 바람을 꺼낼 수는 있어도, 역풍으로 그 바람을 잠재울 수는 없다. 마술은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부 가능한 일을 속여서 대단한 것처럼 꾸미는 일뿐이니까.

만일 내가 방해할 것 같다면 즉각 죽여버리겠지. 황금경은 모든 굴레를 벗어던졌으니까. 힘이 없는 나는 마음을 돌이킬 수도 없어.

“…저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나. 당신 역시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군요.”

다행스럽게도, 그가 적의를 가질 대상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적의보단 경의를 내보이며, 황금경은 종을 들고는 나를 지나쳐 방 밖으로 향했다.

“지금껏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겠습니다.”

세상이 일렁거렸다. 이야기가 끝나니 나의 존재 자체가 배격되는 감각이 느껴진다. 몸이 어디론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해보세요. 해보기 전엔 모르니까.”

이후 세상이 어두워지고, 나는 그의 심상 속에서 추방당했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손안에서 울린다.

종소리는 예로부터 사람을 잠에서 깨우는 데 쓰이곤 했다. 황금경의 유품도 마찬가지라, 청명한 소리가 그의 심상 아래 잠겨있던 나를 현실로 잡아끌었다. 깊게 잠겨있던 의식이 부상한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황금경의 종을 흔든 그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심상에서의 시간은 아무리 오래 지나도 현실에선 찰나에 불과하다. 안에서 황금경과 한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종 빨리 치기 게임이라도 한 것처럼 보일 거다.

내 의식이야 어쨌든 육신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을 받아들이느라 잠시 멈춰 있었다. 너무 많이 읽었나. 빨리 정신을 좀 차려야겠는데.

“데모!”

그때였다. 엘릭이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나를 밀어젖혔다. 마음이 읽히지 않아 대처하지도 못한 나는 거칠게 나동그라졌다. 등과 허리에 묵직한 고통이 느껴진다.

역시, 고통이란 살아있다는 증거. 아프니까 이제 좀 정신이 드네. 그다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네놈, 데모에게 무슨 짓을…!”

분노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엘릭이 우뚝 멈췄다. 눈을 부릅뜬 채, 덜덜 떨리는 고개를 돌려 황금경을 바라본다. 경악과 두려움, 그리고 미지의 공포를 담은 채. 엘릭은 황금경의 이름을 불렀다.

“데…모?”

왕의 부름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황금경은 보다 명확한 의지를 갖고 움직였다. 작은 소년이 한 걸음 내딛자 마치 거인이 땅을 고르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길이 있기에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다. 그가 가는 곳에 길이 생긴다. 이미 있는 세상을 따르는 대신, 자르고 고쳐서 자기가 원한 세상을 만드는 그는 진정 마신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촤라라라락. 황금경의 앞으로 세상이 개변한다. 그가 한 발을 떼자, 흙이 잘게 다져져 평탄해지고, 바위는 네모나게 잘려서 그 위를 뒤덮는다. 한순간의 창조는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만 같다.대로를 만든 황금경은 당당하게 앞서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호문쿨루스 병사들과 그의 병기 역시 행군하기 시작했다. 황금궁을 총괄했던 황금회주 엘릭 역시도.

마신 데모의 유품, 황금경. 그건 금국 재건을 소망한 마신이 죽기 직전에 만들어진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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