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65화 (365/384)

그게 황금궁 안에서 인형놀이를 즐기며 오순도순 살고 있던 게 이상한 거다. 진작 이랬어도 이상하지 않다. 황금경의 바람은 언제나 똑같았으니까.

다만, 죄의식에 찌든 황금경은 파괴를 수반하는 창조에 머뭇거림이 있었다. 그래서 헛된 창조만 반복하면서 열국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의 자신을 자각하고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 그것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

부서지고 부스러진다. 재료로 변한 물건은 이윽고 새로운 형태를 갖고 이 땅에 임한다. 금국의 일부로.

황금경은 진정한 창조를 위해, 확실한 파괴를 일으키며 나아갔다.

우리를 둘러싼 군단이 물러났다. 아니, 군단이 물러갔다고 해야 할까. 황금궁 자체가 움직이며 마치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본 힐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되돌렸다. 그녀는 이후 발랄한 태도로 나의 곁까지 다가왔다.

“역시 아버님! ‘저’, 믿고 있었다고요!”

‘어머나? 이걸 성공해요? 화만 잔뜩 북돋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속마음이랑 말이랑 완전히 다르잖아.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나는 몸을 일으키며 대꾸했다.

“믿고 있었다고요? 정말요?”

“물론이죠. ‘제’가 안 믿으면 누가 아버님을 믿어요? 아버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건 ‘저’인데!”

“당신이 뭘 알아.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요.”

“핥짝. 발랐어요!”

“침을 발랐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뜻이잖아요.”

“아앗! 들켰다!”

힐데는 나를 100% 믿고 있지 않았다. 내 힘을 의심한다기보단 이 계획이 어그러졌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따라와서 계획에 협력한 걸 보면 제정신 아니긴 해. 도박사의 마인드를 가진 건지, 아니면 그냥 연기에 너무 몰입한 건지.

어쨌든 힐데 말마따나 임무는 성공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이끌고 올 부작용 때문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이 좀 필요하겠는데.

다른 누구보다….

“…어떻게 되었어? 황금경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거야?”

페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기는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는걸.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일단 빠르게 설명하고 넘어가자. 이해하기 쉽게 열거해줄까.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어요.”

힐데가 연극 톤으로 내 말을 받았다.

“왜일까, 갑자기 무서워지는 걸요~. 도대체 아버님이 보기에도 ‘나쁜’ 소식이라면, 내일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하나요?”

“아니요. 세상이 멸망하진 않아요.”

“…?”

‘무슨 소리일까요? 설마 다른 게 멸망한다는 뜻? 에이, 설마요!’

잘 이해했는데. 왜 이건 반응 안 해주지? 더 시간이 끌렸다간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될 수도 있기에 다소 빠르게 말했다.

“일단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릴게요.”

“선택권은 없는 건가요~. ‘저’는 나쁜 소식부터 듣고 싶었는데~.”

“됐고. 제가 황금경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끝에, 군국과의 전쟁은 안 일어날 것 같아요!”

어라, 왜 이리 반응이 싸늘하지? 분명 좋은 소식일 텐데 생각보다 반응이 작다. 내가 전한 소식에 힐데는 내키지 않는 투로 칭얼거렸다.

“‘저’에게 있어선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닌데요~? 차라리 전쟁하고 말지. 황금경만 치워두면 열국 따윈 별거 아닌데~.”

“…나쁜 소식은?”

페루가 힐데의 말을 끊으며 나를 재촉했다.

끙. 좋은 소식으로 충격을 줄이려고 했는데 실패했나. 이제부터는 태도가 중요하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아주 유감스럽다는 티를 내며 나쁜 소식을 전했다.

“황금경은 열국을 없애려고 해요.”

뭐 하나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담백한 사실이었다. 기름기 없이 너무 담백했던 탓일까. 페루도 힐데도 금방 이해하지 못하고는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

비교적 일찍 정신을 차린 힐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이건 ‘제’겐 좋은 소식인데?”

누군가에게 좋은 소식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비보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여기서 인생의 진리를 하나 배워간다.

페루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되물었다.

“…어?”

‘…무, 슨? 뭘 했길래? 황금경께서 그럴 이유가.’

“간략하게 설명해드릴게요. 페루, 황금의 종은 황금경의 유품이에요. 저는 유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시험을 치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유품이 답지 않게 시험을 안 치르고 자꾸 금국을 재건하겠다 그러지 뭐예요? 그래서 이틀이면 승냥이들에게 다 뜯어먹혀서 형체도 안 남는 이딴 것도 나라냐고 비난했죠. 그랬더니 글쎄.”

정확히는 황금경이 내 시험을 치른 거지만 어쨌든. 대충 비슷하니까 이대로 넘기자. 나는 입에 침을 바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없어질 금국에 영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승냥이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지 뭐예요!”

“…거짓, 말. 그럴 리.”

“저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네요. 확인해보세요. 아마 시간은 많이 없을 거예요. 왜냐면 황금경은 지금 승냥이의 둥지를 불태우기 위해 움직였으니까요.”

마지막 순간, 황금경은 어딘가를 떠올렸다. 나는 현실로 튕겨나가기 전 그 위치를 읽었다.

열국이 반쯤 유목국가 된 것은 전부 황금경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열국인들은 창조를 위한 파괴를 일삼는 그를 피하면서도 그가 남긴 부산물을 주워 먹어야 한다. 따라서 누구도 거주지를 만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오직 한 곳. 산기슭에 위치한 한 마을만은 황금경의 발길이 닿지 않고, 따라서 열국 유일한 정주도시가 되었다.

가장 위대한 회주, 우레회주의 지배를 받으며, 어린아이들에게 연금술을 가르치고 황금경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온전한 음식을 제공하는 도시.

“클라우디아. 열국에서 유일한 정주의 땅이자,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

지금껏 금국의 재건을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던 황금경은 태도를 바꾸었다.

사는 사람 없이 남겨진 ‘금국’은 승냥이의 먹이가 된다. 그렇다면, 승냥이를 다 죽여 금국을 지킬 호문쿨루스로 쓰면 일석이조 아닌가. 그런 결론과 함께, 승냥이를 잡아서 파수견으로 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유품인 황금경은 이성적이며 방법론적인 수단으로 승냥이를 죽이려고 들 것이며, 가장 간단한 방법을 간과할 리 없다. 도덕? 그건 살아있는 자의 것이지. 이미 끔찍하게 죽은 황금경에겐 알 바 아니겠지.

“황금경은 그곳부터 부수고, 거기 사는 모두를 호문쿨루스로 만들 거예요. 영원토록 금국을 지키는 호문쿨루스로!”

하물며 황금경이 새로 만들 호문쿨루스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인간에게 크게 실망했던 황금경은, 내가 굴레를 풀기 전까지 인간만은 진심으로 ‘설계’하지 않았으니까! 과연 진심을 다한 황금경은 인간을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지. 어디까지가 인간일지.

인간의 왕으로서도 궁금하지만, 그 전에 페루는 손을 뻗어 내 멱살을 잡아끌었다. 허리가 절로 굽혀진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페루는 근래 본 것 중 가장 커다란 감정을 품고서 나를 죽일 듯이 맹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힐데가 페루를 막으려고 했으나 내가 눈짓으로 저지했다. 인간의 마음은 팔팔 끓는 냄비와 같아서, 이럴 때는 한 번 김을 빼줘야 저쪽도 빨리 진정하는 법이다.

어쩔 수 없잖아.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뭐, 나는 군국이 망했다고 소문이 퍼지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지만 말이야.

나는 바싹 마른 입술로 말했다.

“저도 이런 결과를 바라진 않았어요. 이렇게 될 줄도 몰랐고요. 하지만….”

저 멀리 사라지는 황금궁을 바라보며, 최대한 애석한 표정으로 말을 골랐다.

“황금경이 이 결과를 바랐네요. 그는 열국의 지배자가 아니라, 금국의 재건자였으니까요. 그에겐 열국도 멸망시켜야 할 나라 중 하나였어요. 실제로 멸망시킬 힘과 의지가 있다는 것도 문제죠. 뭐, 그 또한 황금경의 위엄이겠지만.”

내가 뭘 하든, 황금경에게 어떤 행동을 강제할 수 없다. 이는 황금경 본인의 의지.

그걸 깨달은 페루가 이를 까득 물며 내 멱살을 뿌리쳤다. 힘이 초인적이진 않아서 나는 손쉽게 균형을 잡았다. 원망스레 나를 노려본 페루는 등을 돌리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너희를, 돕는 게 아니었어.”

“도와요? 뭔가 오해가 있네요, 페루.”

내가 다른 건 다 인정해도 그건 좀 억울한데.

“저는 우리 목적을 이루기 위해 페루를 데려온 게 아니에요. 도움이 꽤 되긴 했지만, 페루가 없었어도 비슷한 결과가 이루어졌을 거예요.”

페루의 저거너트, 황금함은 쾌적한 여행을 보장했다. 그건 분명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그뿐이다.

황금함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아득바득 황금궁을 찾아냈을 것이고, 황금경와 만났을 것이며, 지금과 비슷하게 폭주했을 거다. 시간이 더 걸리냐, 덜 걸리냐의 문제지 거기까지는 정해졌다. 회귀자와 나는 그럴 의지를 갖고 있었고 방해물은 대단찮았으니까.

오히려 바뀌는 건.

“제가 페루와 함께 온 건, 오히려 페루를 돕기 위해서예요.”

“…나를, 돕는다고?”

페루가 없었어도 지금까지 벌어진 이 여정은 똑같이 일어난다.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러나 이 이후부터는 다르다.

“당신이 없었다면 그대로 열국은 멸망했어요. 제 말을 들은 황금경은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그러나, 하필 지금 여기에는 당신이 있죠. 모든 연금술을 무력하고 무용하게 만드는, 잔녹의 힘을 가진 회주가.”

잔녹회주 페루의 고유마도는 연금술의 천적. 그녀의 힘은 연금술을 봉쇄하는 건 물론, 그 기반이 되는 힘마저도 부정한다. 그녀는 호문쿨루스조차 없다.

그렇기에 페루는 황금경의 대척점에 있다.

열국인은 황금경을 필요로 하지만 곁에 있을 순 없다. 황금경은 필요없는 모든 것을 재료로 필요한 것을 만들며, 그렇기에 타인은 그의 세상에 필요치 않으니. 황금경과 ‘대화가 통하는’ 회주급이 아니면 접근조차 불허한다.

그에 비해, 열국인은 페루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고유마도로 그녀는 도리어 다른 사람이 필요하기에 해치지 않는다. 곁에 두어도 안전하며, 여차할 때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한 힘이 성격을 만드는 것일까. 그런 성격이기에 힘을 얻은 것일까. 그 인과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페루. 당신은 언제나 자기 능력을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어했죠? 하지만 잔녹의 힘은 연금 가치를 없애버리죠. 애초에 당신의 바람은 이룰 수 없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연금가치’인 한.”

만일,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모든 이를 없애려고 한다면.

그때가 페루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다만, 세상을 재는 저울은 양팔저울이 아니에요. 연금가치만이 눈금으로 있지 않아. 황금경이 부수려는 ‘열국’은, 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지만 당신에겐 가치 있을 테니까요. 어떻게든 막아야죠?”

“…너.”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 당신이 태어난 나라를 지키고, 존경하는 황금경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저지할 기회에요.”

잔녹회주의 고유마도. 심상의 구현이나, 원하는 능력이 아니다. 잔녹의 힘은 열국에서 음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는다.

그녀는 열국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적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녀의 보살핌을 받으면 부유해지진 않을지언정 약탈당할 위험도 없다. 공격해보았자 잃을 것밖에 없으니까.

페루는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이 될 기회를 바랐다.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다. 페루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건, 바라지 않았어.”

진심이네. 하긴, 바람을 이룰 기회가 딱 좋은 타이밍에만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결핍이 극에 이룬 순간에만 나타나겠지.

바라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기회를 포기할 수 있어도 놓치는 건 용납 못해. 나는 손가락을 뻗었다. 저 멀리, 어느새 보이지 않는 황금경의 등을 가리키며 페루에게 종용했다.

“가세요. 당신의 바람을 이루러.”

더 시간이 없다. 혹여나 황금경을 놓칠까 봐, 페루는 주먹을 꼭 쥔 채 달려갔다.

전쟁을 대비해 세워진 천막도 사라졌다. 병사들도 물러났다. 이제 남은 건 황금경의 왕도가 시작되는 길.

“에휴, 힘들다.”

나는 조금 전까지 심상 세계에서 시달리고 왔다고.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살짝 지친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 털썩 주저앉은 나에게 힐데가 다가왔다. 힐데는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는 내게 물었다.

“아버님, 혹시 페루를 데려온 게 이걸 위해서였나요?”

‘처음부터 황금경의 안티테제로 페루를 선택한 건가요? 둘의 갈등으로 열국의 이야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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