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67화 (367/384)

아무리 울부짖어도 구할 방법이 없다. 설사 한 명쯤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어떤 승냥이가 자기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들을 구하려고 할까.

간신히 도시에서 벗어나거나, 운 좋게도 밖에 있었던 승냥이들은 혹시나 있을 후폭풍에 휘말릴까 봐 더욱 거리를 벌렸다.

그때.

도시가 멈췄다.

동시에, 흐름을 거스르고 한 명이 도시로 달려간다. 아우레아를 올라탄 페루다. 그녀가 다가가니 접히던 도시가 무언가에 걸리듯 덜컥인다.

그녀의 능력은 생물에겐 크게 효과가 없다. 말처럼 강인한 기력을 가진 짐승이라면 특히. 콧김을 내뿜으며 달리는 아우레아 위에서 페루는 도시의 구조를 머리로 그렸다.

‘…도시의 반석이 강철로 바뀌었어. 동력은? 비틀린 철?’

철에는 복원력이 있다. 철근 양쪽을 붙잡고 꽈배기처럼 꼰다면 원래대로 돌아오려는 강력한 힘을 발한다.

황금경은 처음부터 ‘비틀린 철’을 연금하여, 도시를 움직일 동력으로 사용한 것이다.

잔녹회주 페루도 연금술의 경지에 이른 인물. 비록 만들진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황금경의 설계를 대강이나마 해석했다.

‘…그렇다면, 동력을.’

붕괴시킨다.

강철의 복원력도 그 구조가 무너진다면 사라진다. 페루의 힘으로 없는 걸 만들진 못해도, 이미 있는 걸 없앨 순 있다.

그래서 도리어 쓰지 않고 아껴두었으나, 지금이 써야 할 때. 페루가 심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금속으로 만든 물건은 녹여 다시 쓸 수 있다. 그렇게 재활용한 물건도 쓰다가 낡으면 연마하고 녹여서 새로운 물건으로 거듭난다. 연금술도 마찬가지다. 코스트만 된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쳐 쓴다.

페루는 가난한 승냥이 아래에서 태어났고, 하나의 물건을 수십 번 재활용하는 건 일상이었다. 페루의 보물이었던 양철 인형도 한때는 바큇살이었고, 한때는 쇠지렛대였으며, 그 이후로도 수십 번의 변형을 거쳤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바뀔 수 있을까?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이 그녀를 이끌었다. 페루는 소중한 인형을 대상으로 배운 연금술을 활용했다.

변형한다. 되돌린다. 재질을 바꾼다. 다시 양철로 만든다. 움직인다. 자세를 잡는다.

페루는 인형을 사랑했고, 연금술도 좋아했다. 하나를 갖고 다 자랄 때까지 애착을 품고 갖고 놀았다. 소중했기에 더욱 함께했다.

그러나 인형도, 연금술에도 끝은 있다. 몸 밖의 것으로 제 몸을 채우는 인간이 계속 늙어가듯, 자신을 바꾸는 마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인형은 어느 순간 끝나버렸다.

연금술에도 반응하지 않고, 몸체는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부스러진다. 불순물로 가득 찬 양철은 녹이 슨 것처럼 울긋불긋해졌다.

되돌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스러기를 주워 형체를 이루려고 해도.

그건 인형의 끝만 앞당길 뿐.

어느 순간, 인형은 완전히 끝났다.

끝. 언젠가, 모든 것은 끝난다. 연금술은 완벽하나 그걸 다루는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마법이 아무리 대단하고 경이로울지언정, 그걸 쓰는 인간에게 한계가 있는 한 연금술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고유마도는 연금의 끝없는 반복. 닫힌 세계에서 연달아 연금된 물건이 도달할 수 있는 종말. 연금술이 한 사물에게 주어진 여정이라면, 그녀의 능력은 종착역.

고유마도, 금의 종말.

.

..

...

쩌저적.

녹슨 쇠가 갈라진다. 비틀어지는 힘을 약해진 구조가 버티지 못한다. 자기 힘에 의해 붕괴되며 유리조각처럼 부서졌다.

도시의 악력이 약해졌다. 닫히던 조개가 힘이 다한 듯 풀린다. 쿠구궁. 접히던 도시가 다시 펼쳐진다. 황금경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려던 이들은 황금경의 반대쪽으로 떨어졌다. 보다 나은 추락으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목숨을 걸고 도시 바깥으로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벽도, 그걸 지탱하던 기둥도. 페루의 능력에 닿은 순간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길을 터주었다. 덕분에 승냥이들은 봇물 터지듯 빠져나왔다. 호문쿨루스도 추격하지 못한다. 그랬다간 페루의 힘에 휘말리기에.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종말의 기수가 단기필마로 황금경에게 향한다.

아무리 황금경이라도 그건 무시하지 못했는지, 잔녹으로 만들어낸 길 끝에서 황금경이 페루를 노려보았다.

황금경의 앞으로 부스러진 길이 생겨난다. 잔녹의 힘으로 길을 만든 페루는 박차를 가했다. 페루를 태운 아우레아가 미친 듯이 내달리는 가운데, 그녀는 흔들리는 와중 목소리를 짜내 외쳤다.

“…황금경이시여!”

페루는 그 순간까지도 황금경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 따지자면 왕의 그릇된 판단을 목숨 걸고 막으려는 충신의 태도에 가까웠다.

황금경은 연금술의 신. 열국이라는 체제를 만들어낸, 열국의 명실상부한 지배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모든 연금술사들의 근원이며 스승이며 신이다. 연금술을 부정하는 능력을 가진 페루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연금술을 너무 사랑했기에 한쪽 정점에 이른 페루는 남들보다도 황금경에 대한 충성심이 더 컸다.

페루는 황금경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 목높여 외쳤다.

“…다시 생각해주세요! 그들에겐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황금경에게는 닿지 않는다.

황금경은 페루를 인식했으나, 그건 순전히 페루의 능력이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금국을 만들려는 황금경에게 금국을 파괴하는 페루는 최우선 배제 대상. 목표를 페루로 바꾼 황금경은 고작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신과 같은 힘을 휘둘렀다.

도시를 향해 달려나가던 페루의 앞으로 거대한 구조물이 솟아오른다. 동그랗고 새카만 강철 구조물은 쓰임새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나조차도 저게 뭔지 알 수 없어서, 그저 경계하는 일밖에는 못한다. 황금경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으니.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짐승의 육감이 위기감을 고하고 있다.

저건 위험해.

페루도 마찬가지였는지 검은 구체를 향해 능력을 썼다. 잔녹의 기운이 바깥쪽부터 강철을 부식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이 닿는 순간, 그에 반응하듯 검은 표면이 폭발하듯 부풀었다.

“위험해!”

회귀자도 다급하게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검은 구체가 폭발했다. 열폭회주의 권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힘이다. 압력의 파동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퍼져나가며 그 안에 있던 것을 토해냈다. 구체 안에 들어있던 건 날카로운 강철 파편 수 백만 개. 하나하나가 각각의 궤적을 그리며 땅에 내리꽂힌다.

죽음이 퍼진다. 닿으면 피보라를 일으키는 강철의 비. 파편의 99.9%는 허무하게 땅만 두들기나, 나머지 0.1%만으로도 죽음의 숫자는 차고 넘친다. 페루가 능력을 써도 예리함을 조금 둔하게 만들 뿐 저 속도와 무게는 막지 못한다.

후두두둑. 거센 장마가 땅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 잔혹한 빗방울에 맞은 인간은 몸 한 군데가 터져나갔다. 도시에서 도망치려는 승냥이들은 머리 위에 쏟아지는 파편에 떼죽음을 당한다. 마신의 앞에서 평범한 목숨은 쓰레기처럼 사라진다.

끔찍한 비극이다. 더욱 끔찍한 점은, 그 수많은 죽음조차도 황금경에게는 부수적인 성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황금경이 강철의 비를 쏟아낸 건 페루 한 명을 죽이기 위함이니까.

강철의 비는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밀도로 페루의 머리 위에 쏟아진다. 마치 터진 물풍선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별다른 장비도, 기공도 없는 그녀에겐 막을 수단이라곤 없다. 겁 먹은 아우레아가 급히 앞발을 들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편이 페루를 죽이기 위해 덮친다. 그때.

“멍.”

아지가 바람처럼 뛰어들었다. 잔뜩 털을 곤두세운 아지는 면으로 쏟아지는 강철 파편을 전신으로 받아냈다.

분명 강철 파편은 인간을 죽이기엔 충분히 치명적이지만, 아지를 다치게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을 타고 있던 덕분에 땅바닥에 튕겨 나온 조각에도 안전할 수 있었다. 한순간, 찰나의 도움 덕에 죽음은 페루를 비껴 나갔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구한 페루가 아지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고마, 워.”

“…멍.”

그러나 아지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넋이 나간 듯 저 멀리 죽어나간 인간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인간을 좋아하는 개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광경이다.

페루의 말이 잠깐 멈춘 틈에, 뛰쳐나간 회귀자가 페루 앞에 내려앉으며 외쳤다.

“잔녹회주! 조심해! 더 온다!”

뒤이어 황금경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떨어진 파편이 새카맣게 변색되더니, 각각 부스러지며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 철 가루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잔녹의 힘은 구조를 망가뜨리긴 쉬우나 다시 뭉치기는 어렵다. 이 미세한 가루를 부스러뜨려도 걷히게 할 순 없다. 페루에게 까다로운 공격만 골라 하는 걸 보면, 황금경도 페루를 상당히 의식하는 모양이다.

“시야를 가릴 셈인가? 칫, 하필 철가루라서!”

칠색안도 금속 너머는 꿰뚫어볼 수 없다. 회귀자가 투덜거리는 동안, 땅바닥에서 진동을 느낀 내가 다급히 외쳤다.

“셰이 씨, 뭔가 와요!”

“알아! 지곤류, 맹타!”

철의 폭풍을 헤치고 커다란 철구가 다가온다. 곧장 반응한 회귀자가 지잔으로 쳐냈다. 깡, 하고 쇳소리가 들리며, 사람 크기만 한 철구가 야구공처럼 저 멀리로 날아간다.

그도 잠시, 지축이 흔들리며 굉음이 계속된다. 진동이 하나, 둘, 그리고 더 세지 못할 정도로 늘어난다.

“셰이 씨! 수백 개가 굴러오는데요?!”

“치잇, 황금경이 신변에 위협을 느꼈나 봐! 직접 배제하려고 드는지 수단 방법 안 가리네. 잠시 태세를 정비하자!”

황금궁에서 역할극 중이었던 황금경이라면 호문쿨루스를 부려서 공격하기만 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황금경은 회주들의 모든 연금술을 직접 휘두른다. 그 규모나 기능성은 다른 모든 회주를 합친 것보다도 크다. 그나마 페루 덕분에 상당수가 무용지물이 되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파편이나 철구보다 훨씬 무서운 게 날아왔을 거다.

…저번 회차에서 그걸 겪은 회귀자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그걸 당하고도 어떻게 살았던 건지. 여전히 알 수 없다니까.

회귀자는 페루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페루는 아우레아의 고삐를 잡고는 버텼다.

“…아직. 저기에 사람이.”

“진정해요, 페루. 도망칠 사람은 이미 다 도망쳤어요. 나머지는 늦었고요.”

아직까지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도망칠 능력이 없는 이들. 탈것이 없거나, 혹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로 방치된 승냥이들이다. 그들을 위해서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페루도 그걸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미련을 보였다.

마음은 숭고하나, 그걸로는 안 된다. 나는 차가운 현실을 들이밀었다.

“계획도 능력도 없이 황금궁에 머리를 들이박아도 괜찮아요. 그건 페루 자유니까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세요.”

소속감이나 충성심이라는 단어와는 안 어울리는 열국. 이 불완전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몇 사람 없고, 그중에서도 오직 페루만이 구할 능력과 의지를 같이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해, 페루가 죽으면 열국은 진정으로 끝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회귀자조차도 황금경을 막을 수 없을 테니.

“페루가 실패하면 클라우디아에서는 이보다 몇백 배는 큰 재앙이 일어날 거예요. 냉정하게 계산하세요.”

물건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목숨에도 값을 매길 수 있다. 열국인인 페루는 그런 셈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몇십 명의 목숨이 귀중할까.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수만 명의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클라우디아가 귀중할까.

볼 것도 없다. 후자다. 클라우디아가 열국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클라우디아를 잃으면 열국의 미래가 사라진다. 페루는 고개를 떨구며 기수를 돌렸다. 불안한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던 아우레아는 반갑게 주인의 뜻을 따랐다.

회귀자가 뒤를 봐주는 동안 티르가 어둠으로 우리를 감쌌다. 황금경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자 공격도 잦아들었다. 충분한 거리를 두자 황금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도시 청소에 몰두했다. 몇 분 지나기도 전에 도시에서 들려오는 생각이 전부 사라졌다.

애초에 얼마 없기도 했지만.

황금경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에야 몸을 추스를 여유가 생겼다. 페루와는 달리, 아지의 몸에 다 가려지지 못한 아우레아는 강철 파편에 곳곳이 찔린 채였다. 페루는 안장에서 내려 다친 아우레아를 쓰다듬었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훈련된 말은 파편에 찔렸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이 있진 않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상처는 상처. 전력질주는 불가능하겠지. 나는 아우레아를 요모조모 살피며 말했다.

“여기서 물러난다고 해도 황금경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의미는 없지만요. 말이 다쳤는데, 어쩌죠? 페루가 황금경에게 닿으려면 살아있는 탈것이 필요할 텐데….”

설마 아지를 타야 하나? 시도야 할 수 있지만, 개는 인간을 등에 태우진 않을 텐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페루가 중얼거렸다.

“…황금함.”

“네?”

페루는 저울 한쪽에 승냥이들의 목숨을, 다른 쪽에 클라우디아의 존망을 올려놓았다. 회주는 저울 눈을 속인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금술에 한정된 이야기. 페루는 가혹한 선택을 했고, 저울은 정직하게 기울어졌다.

그러나… 저울이 반대편으로 기울어졌다고, 보다 가벼운 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다. 선택한 페루는 버림받은 쪽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타인을 죽인 왕은 그들의 목숨을 토대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살찌워야 한다. 아무리 역겹고 끔찍할지라도.

그게 왕의 책임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오직 신뿐이다. 황금경처럼, 이미 죽은 이에게는 어떤 책임도 지게 할 수 없으니까.

페루는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녀의 선택으로 죽어간 이들을 위해서 황금경을 막을 가능성을 찾아냈다.

물론, 가능성만 있지 완벽하진 않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찾아낸 페루는 굳은 각오를 갖고 나에게 요구했다.

“…황금함이 있다면. 황금경께 닿을 수 있어. 도와줘.”

나라를 위해, 자신과 함께 죽어달라고.

물론 나는 죽어줄 생각 없다. 나는 일개 짐승이고, 그러길 바랐던 건 모든 인간이다. 어떤 멍청한 짐승이 제 발로 사지에 들어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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