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72화 (372/384)

“...이왕, 이면.”

허울뿐인 왕인 채로 고통받을 바엔, 차라리 그의 일부가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존재가 녹아들어간다. 마신이 그녀를 데려간다. 한때 모든 기술을 익힌 강철의 왕은, 존재 자체가 연금물질로 바뀌어... 황금경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잠깐 정신줄을 놓은 사이 또 이상한 기억이 꿈결처럼 스며든다.이 기억은 또 뭐야. 엘릭 왕? 그 몇백 년 전에 죽은 이의 사념이 아직도 남아있어?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다.황금회주 엘릭. 옛 금국의 왕의 모습을 한 채, 왕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그녀는 오랜 시간 황금궁의 가디언으로 군림해왔다. 헥토의 생각을 읽어보건대, 그는 헥토가 젊었을 적부터 그모습 그대로였던 모양이다.그녀는 황금경의 일부였지만 황금경이 조종하는 꼭두각시라고 하기엔 묘하게 자아가 강하고 독립적이었지. 심지어 독단적으로 헥토에게 명령을 내리고, 열국에서는 가장 원로인 그도 황금회주에게는 존대하며 굽신거렸으니.

매장되지 못한 시체 중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원형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세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무저갱 내부에 있던 썩지 못한 시체들이 그랬듯이, 엘릭 왕은 황금경의 권능 아래서 원형을 유지한 덕에 사념도 조금은 남았던 모양이다.왠지 묘하게 생동감이 있더라니. 황금경의 음습한 망상이 경지에 오른 게 아니었구나. 음해해서 미안, 황금경. 하긴 도시 디자인에 다양성조차 주지 못하는 네가 여자를 그리 잘 묘사할 리가 없는데.

어쩌면, 둘이 있었기에 황금경은 더 완전해진 것일지도 모르지.

뭐. 이것도 다 지난 일.납골당은 한 자리만 있으면 되겠지. 둘은 서로 같이 묻히길 바랐을 테니.

흔들거리는 무의식 속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인사하고는, 나를 잡아 끄는 현실로 되돌아갔다.

“멍, 멍, 멍.”

파파팍. 땅을 박박 긁는 소리가 났다. 시야 한구석. 칠흑 같은 어둠 틈으로 난 균열이 들썩인다. 뭔가 싶어서 실눈을 뜨고 보는데 균열이 확 커지더니 이윽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지는 잔해 틈에 웅크린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아우우! 반가워!”

“반갑기는 한데, 반가워는 여기서 쓸 말이 아니야.”

인간의 왕이 잔해에 깔려 죽을 뻔했다고. 어디 가서 왕이라고도 못해.투덜거린 나는 낑낑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조금 전, 황금궁은 거대한 요새의 모습을 한 채 황야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요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요새를 이루고 있던 정육면체 블록이 낱낱이 분해되어 수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아마 황금경이 무언가를 하면서 블록이 결합력을 잃고 무너진 듯하다. 나는 그 속에 파묻혔다가 아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한때 요새였으며 황금궁이었던 블록이 처량하게 데굴데굴 굴러간다. 화무십일홍이라더니, 황금경 앞에서는 단단한 벽돌조차도 꽃잎보다 무색하구나. 나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을 디디며 아지를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아지야. 용케 찾았구나.”

“멍! 쉬웠어! 나, 뼈다귀 숨겨두곤 하는걸!”

“숨겨봤자 의미 없잖아. 우리는 맨날 움직이니까.”

“미래를 위한 투자!”

“투자는 돌려받을 수 있을 때 해야지, 그건 그냥 땅에 내버리는 거야.”

“멍멍! 돌려받을 거야! 언젠가는!”

“…그 말을 왜 날 보면서 하냐?”

어떻게든 받아내겠다는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보는 게 좀 무섭다. 아니, 내가 떼먹을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능력에 한계는 있단 말이지. 약속을 잊진 않지만 못 들어주는 건 어쩔 수 없잖아.그때였다. 회귀자가 블록 위를 폴짝폴짝 뛰어 나에게 다가왔다.

후, 죽을 위기를 넘고 나니까 회귀자도 반갑네. 나는 손을 흔들며 회귀자에게 인사를….

“휴즈! 황금경은 어떻게 됐어?”

…하려다 말았다. 나는 팍 식은 얼굴로 대꾸했다.

“제 걱정부터 해주세요. 조금 전만 해도 저 아래 깔려있었단 말이에요.”

“누가 공격한 것도 아니고, 잔해가 좀 무너진 것뿐이잖아.”

“보통 사람은 그 무너지는 잔해에 깔리면 죽는다고요. 얼마나 무섭고 위험했는지 아세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너처럼 넘치는 기력을 품고 있지도, 엄청난 보물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산 게 기적이란 말이야.잔뜩 투덜거리고 있는데 회귀자는 콧방귀를 뀌며 눈동자 색을 바꾸었다. 꿰뚫어보는 녹안, 금속을 제외한 물질을 투시하는 칠색안이다.

“약한 소리 하지 마. 별로 위험하지도 않았잖아.”

회귀자는 조금 전 내가 빠져나온 균열을 지잔으로 들췄다. 그러자 블록 속에 파묻혀 있던, 나 하나 간신히 몸을 누울 공간과… 그걸 둘러싸고 있는 카드 구조물이 나타났다.

칫. 사기꾼. 저 사기 능력 때문에 엄살도 못 부리겠어. 회귀자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카드 구조물을 살폈다.

“무너지는 와중에도 은신처를 만들었으면서. 그보다 저건 뭐야? 강철 카드? 연금술이야?”

연금술이라고 할까. 설명하긴 곤란한데.

아무래도 기술보단 마신에 가깝지?

연금술은 이미 인간의 기술이다. 다른 모든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나도 연금화와 여분의 마력만 있다면 그걸로 원하는 물건을 연금할 수 있다. 내 카드 장비가 그렇게 만들어졌고.물론 같은 재료를 준다고 다 똑같은 결과를 내는 게 아니듯, 뛰어난 연금술사가 만드는 물건은 내 것보다 치밀하고 기능적이다. 마력은 힘, 내 비루한 마력으로는 대충 빚어 형태만 만드는 것도 벅차지만 연금술사는 거기에 별별 것을 덧붙일 수 있다.

집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내가 낑낑거리며 통나무를 쌓아 집을 만들 때, 연금술사는 통나무를 판자로 가공하여 집을 짓고는 여분으로 가구까지 마련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연금술사라도 없는 가치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재료가 흙뿐이라면 마력을 아무리 때려 넣어봐야 도자기보다도 잘 깨지는 저질 연금강을 만드는 게 전부다.회주는 그런 가치 없는 연금강조차도 유용하게 사용할 고유마도를 갖고 있기에 저울을 속인다고 일컫지만. 어디까지나 ‘속이는’ 거지 ‘창조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엘릭시르의 진정한 깨달음은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이 대지술을 활용하는 방법은 구덩이를 파고 땅을 고르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이아 에고의 진정한 깨달음은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대지에 대한 이해였다.

마찬가지로, 물질의 구조와 형태를 바꾸는 연금술이 기술로서는 더 완성되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쓰기 위해 가공한 기술.엘릭시르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모든 물질은 그 근원이 같다. 황금도, 강철도, 혹은 도저히 쓸 데 없어 보이는 거친 모래도.심지어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을 이루는 건 무엇도 특별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쌓느냐가 형태와 기능을 결정할 뿐.

황금경은 깨달은 것이다.

만물은 한없이 작은 블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내 스페이드 카드는 마신의 우상. 마신이 엿본 그 거대한 깨달음을 기리고, 위대한 진리와 접하는 매개체다. 마신 역시 인간이었음을 관측한다면 인간의 왕인 나도 그 힘을 쓸 수 있다. 종류를 불문하고 물질 그 자체를 다른 것으로 변환한다. 문제는….

“왜 하필 카드냐고!”

“뭐가?”

지금의 나는 평범하기에, 우상을 통해서 제한적인 힘밖에 불러오지 못한다. 내 스페이드 8이 가진 능력은 맞닿은 물질을 강철 카드로 바꾸는 힘이 전부. 재질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우상이랑 똑같은 모양의 스페이드 8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럴 수 있다. 나에게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줘봤자 지금의 나는 힘도 마력도 테크닉도 안 돼서 못 써먹으니까. 대지술을 쓴다고 해서 대종사가 되진 않고, 드루이즘을 익혔다고 네비다의 발치도 못 따라가듯. 연금술의 극의를 엿보았다고 황금경처럼 세상 만물을 연금할 수는 없을 테지.

그나마 가장 많이 만들었던 카드가 손에 잘 붙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카드일 이유는 없잖아! 좀 더 유용한 거 없냐고!

속으로 열불이 나지만, 그래도 있는 게 어디냐. 감사하면서 살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황금경이 구해준 것 같은데요.”

“황금경이 너를?”

“네. 페루가 황금경에게 닿는 데까진 성공했으니까요.”

황금궁은 무너졌다. 마지막 순간, 어떤 선택을 내린 황금경은 페루를 구하며 무언가를 했다. 생각을 읽지 못해서 뭘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 상황을 보건대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황금경은 죽었다.애초에 죽은 몸이니 그다지 좋은 설명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금국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대신….

딸랑.어디선가 들린 종소리. 그리고 머지 않은 장소에서 블록이 들썩거렸다.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서 건물을 만드는 것 같다. 산처럼 무너져내린 블록이 저절로 형태를 쌓아올리며 구조물을 만들었다. 마치 지하로 통하는 문처럼, 어둠 너머로 작은 계단이 엿보이는 그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페루였다.다친 곳은 여전하다. 군데군데 난 상처와 핏자국은 그녀가 어떤 모험을 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원래 안 좋던 안색마저도 더 나빠서, 자칫하면 당장 죽어버릴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페루의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황금 종. 그게 울릴 때마다 페루의 앞길에 블록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생겨난다. 마치 페루의 앞날을 축복하듯이.

황금경은 자신의 의지를 페루에게 맡긴 것이다. 유품답게 다른 의지 없이 힘만 남긴 채로. 황금경의 그 가공할 힘을 나라를 위해 쓰는 건 이제 페루가 될 것이다.

회귀자는 발판을 만들며 걸어오는 페루에게 말을 걸었다.

“잔녹회주. 계획은 성공한 모양이네?”

“…으.”

“상성이라고 해도 진짜 황금경을 막을 수 있을 줄이야. 덕분에 살았어. 이제 휴전 협정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거지?”

“…윽.”

하고 단말마를 남기며, 페루는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회귀자는 뜻밖의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잔녹회주?”

“셰이 씨. 제가 말했잖아요. 다 셰이 씨 같진 않아요. 저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요.”

“태연하게 말할 때가 아니야! 기운이 불안정해!”

“지금까지 셰이 씨가 제일 태연했거든요? 제가 말했죠. 우리 걱정부터 하라니까요?”

뭐, 딱히 페루가 잔해에 깔려서 다친 건 아니지만 말이지. 애초에 황금경이 우리를 죽일 의도를 갖고 무너뜨린 것도 아니라서 생각보다 위협적이지도 않았고.

페루가 골골거리는 건 아까 다쳤다가 수복된 탓이겠지. 호문쿨루스와는 달리, 페루는 살아있는 채로 고쳐졌으니까. 아직 새로운 몸이 잘 안 받나 보다.

그걸 모르는 회귀자는 블록 위를 성큼성큼 뛰어 페루에게 다가갔다. 그때, 한발 먼저 블록을 헤치고 힐데가 불쑥 나타났다. 힐데는 나보다도 더 많은 블록에 깔렸지만, 아무리 쏟아져도 육장성인 힐데를 다치게 하기에는 모자랐다. 자연스럽게 페루를 부축한 힐데는 태연하게 입가를 가리며 의뭉스럽게 말했다.

“어라라~. 페루, 혹시 죽나요? 고맙게 황금경을 소멸시키고도 힘이 다해 이대로 쓰러지나요? 그러면 이제 열국은 무주공산? 공짜? '내' 거?”

“거기 가만히 둬! 섣불리 손대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회귀자가 씩씩거리며 다가가자, 힐데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회귀자에게 떠맡기듯 페루를 내밀었다.

“뭔가요? 누가 들으면 ‘제’가 그녀를 사지로 내몬 줄 알겠어요~. 싸우게 다그친 쪽은 셰이잖아요?”

“잔녹회주도 동의했어! 덕분에 폭주하는 황금경도 멈췄고. 저게 가만히 있었으면 군국도 무사하지 못했을걸!”

“그래서 ‘저’도 고맙다고 했잖아요! 거기다, 보세요! 여기 이 황금 종, 아무리 봐도….”

힐데가 손을 페루 허리춤에 있는 황금의 종으로 손을 뻗을 때였다.순간적으로 날카로운 기세가 칼날처럼 둘을 가르고 지나갔다. 힐데가 멈칫 뒷걸음질 치며 양손을 살짝 들었다. 회귀자는 서슬 퍼런 기색으로 경고했다.

“손 떼. 네 게 아니야.”

살갗이 베일 것 같은 기세조차도 힐데는 태연히 받아 넘기며 대답했다.

“그러면요? 셰이 거? 욕심도 많으셔라. 황금경의 유품마저 가지시려고요?”

“필요하다면.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야. 일단 잔녹회주가 깨어나기 전까지 건드리지 마.”

‘간신히 진정된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 몰라. 일단 잔녹회주에게 쥐여주고 상황을 봐야겠어. 내가 가져도 문제 될 건 없지만, 잔녹회주는 비교적 말이 통할 것 같으니까…. 군국에 비하면야.’

대충대충 살아가는 회귀자지만 마신의 유품만큼은 취급이 엄격하다. 마신은 미래를 구할 힘이기도, 파괴할 재앙이기도 하니까 그러겠지.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필요하다면 갖겠다니,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힐데는 그 선택을 기억할 거야. 진짜 조심하라고.

“딱히 건드릴 생각은 없었는걸요~. 그보다, 잊진 않으셨죠? 휴전 협정 기한.”

“기한?”

“황금경을 막기만 했지, 아직 휴전이 확정된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이틀 안에 확답이 나오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처음 열국으로 향하면서 힐데는 일주일의 기간을 명시했다. 한 번 움직인 군단은 굴러가는 바퀴와 같아서, 어디로인가로 움직이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져버린다. 그들이 군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열국으로 진격할지는 여기서 난 결론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지금 휴전 협정을 해줄 주체가 없는데요? 아무리 열국이 연금술의 국가라고 한들, 자기네 수장마저 연금할 수는 없을 텐데요. 이걸 어쩌나~.”

그런데 황금경이 사라진 지금, 결정권자가 없다. 힐데가 그 점을 지적하며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염원하던 평화가 찾아오지 않아서 너무 기쁜 모습이었다.

열국은 가장 큰 신비인 황금경을 잃었다. 그게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최소한 열국이 약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거기다 황금경은 열국의 정신적, 경제적 지배자. 그가 사라졌다면 열국을 나라로 만드는 구심점이 사라진다. 힐데의 말대로 휴전 협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자국이든 타국이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잠깐.”

그때 페루가 반응했다. 회귀자의 곁에서 서서 몇 번 마른 기침을 토해낸 페루는 입가를 쓰윽 닦으며 힐데에게 말했다.

“…휴전, 하겠어.”

“페루가요? 어떤 자격으로?”

“…황금회주의 자격으로.”

힐데는 뜻밖의 말을 듣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황금회주는 황금궁의 가디언을 총괄하는 자. 애초에 황금경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우리는 처음부터 협상 대상을 황금궁의 가디언으로 정하고 왔었다. 실제로 엘릭은 황금경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던 만큼, 페루가 황금회주라면 자격은 충분하다.문제는 페루의 자격이었다.

“페루는 잔녹회주잖아요? 잔녹에서 황금으로? 뭔가 낭만적이네요~.”

힐데는 싱긋 웃은 뒤에 목소리를 낮추며 지적했다.

“다른 말로는 비현실적이고요. 믿을 수가 없는걸요? ‘우리’랑 같이 다녔던 페루가 왜 황금회주죠?”

“…그래도, 사실이야.”

“사실이라도요. 그걸 보증할 황금경이 사라졌는데요? 애초에 황금경이 없다면 황금회주가 무슨 의미….”

그때 딸랑, 하며 황금의 종이 페루의 말을 긍정하듯이 흔들렸다. 물론 종이 울린 것만으로는 증명이 되지 않으나, 마신의 유품이 단순히 종소리만 내지는 않았다.쿠우웅. 블록으로 된 잔해를 파헤치고 황금함이 솟아올랐다.

분명 황금궁에게 ‘먹혀’ 분해되었던 황금함이다. 선체가 연금재료로 바뀌어 황금궁의 일부가 되었기에 페루도 잔녹고로만 떼어서 황금궁 내부로 침투했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지금의 황금함은 먹히기 전 모습 그대로 뛰쳐나와, 위풍당당하게 땅 위에 섰다.

마치 황금함을 그대로 토해낸 듯한 모습에 힐데가 놀라서 물었다.

“어라라? 페루, 황금회주가 아니라 황금경이 되셨나요? 그랬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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