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화 (2/444)

제2화. 언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2)

지금도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하필이면 언용운의 몸뚱어리를 차지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더욱 심했다.

‘말 그대로 쥐뿔도 없는 빙의를 한 줄 알았으니까.’

나는 삐각거리는 뼈 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때를 회상해 보았다.

‘빡이 치는 건 둘째고, 처음에는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었지.’

악마들이 군주들의 군주라 부르며 두려워 떠받들던 녀석을 골로 보낸 나다.

‘뭐, 내 쪽엔 나 외에도 내 배후성이었던 악몽의 군주 녀석과 우리 길드원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추린 S급 이상의 헌터 전력을 쏟아부어서 간신히 동귀어진을 성공시킨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정도의 격을 쌓은 내 영혼을 동의도 없이 어딘가로 처박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소원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해서 여지를 받아낸 녀석은 악몽의 군주 그 녀석뿐.

‘그럼 녀석이 마지막에 지껄였던 말처럼 정말로 내게 우정 같은 감정을 느껴서 내가 아쉬워하던 걸 들어줬다는 결론인데….’

하지만 악몽의 군주 놈이 제 관을 벗고 주인 잃은 황제의 관을 썼다 할지라도, 내 소원은 오직 포상의 방식으로만 제공해야 했다.

‘악몽의 군주 놈이 처음 내게 접근한 이유가 특수한 내 영혼이 탐이 나서였지.’

상대의 격이 높더라도 굴하지 않는다, 뭐다 한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주절주절 길었던 녀석의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영혼 자체에 정신 공격에 대한 면역이 있다고 그랬지.’

반골의 혼이라나 뭐라나.

그런 내 영혼에다, 악몽의 군주 녀석에게 애초에 어떠한 계약 연장도 거부하겠다고 단단히 못을 박아 뒀다.

그러니, 혹여 내가 녀석에게 개입할 여지를 줬다 하더라도, 놈의 개입은 오로지 포상의 형태로만 이루어져야 했다.

“근데 언용운이 몸에 꼴아 박힌 게 어떻게 포상이냐고.”

언용명이면 또 몰라.

따라서 처음에는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 많은 업계에 각종 매니악한 포상들이 있다지만….’

개망나니 언용운이 놈의 몸에 들어온 게 도대체 어느 업계에서 포상이 될 수 있나?

말이 통하는 거 말고는 이 몸의 원주인의 기억이 이식된다든지 하는 편의도 없는데?

‘물론, 이건 내 영혼의 특수성 때문일 테지만.’

하지만 그 생각은 몸이 조금 회복되고 나서 혹시나 해서 써본 흑마법이 성공하며 바뀌었다.

“좌향좌.”

삐각!

“우향우.”

삐가악!!

흑마법과 사령술의 연료를 담당해주던 악마가 없어서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이게 됐다.

오리뼈로 펼치고 있는 해골지배술뿐만 아니라, 사출계 마법과 저주까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작동 원리만 좀 달라.”

본래 내가 사용하던 흑마법이 내 심장에 고이는 ‘암륜’이라 불리는 일종의 사령술사들의 마나를 매개로 악마 놈의 마기를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선 순수하게 내 내력이 사용되고 있어.’

내력이 끌려 나오는 장소도 가슴께, 여기 말로 중단전이 아니라 머리 쪽.

‘여기 식으로는 상단전?’

소설 속에서 모산파나 진주언가의 강시술과 법술들은 상단전을 사용해서, 모산파와 진주언가 강시종의 심법은 독특하다는 묘사가 있었었는데 이런 느낌이었군?

이 느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흑마법을 사용할 때면 늘 느껴지던 특유의 생명력이 갈려 나가는 꺼림칙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쩐지 악몽의 군주 녀석에게 아무리 이리콤을 외쳐도 응답이 없다 싶더니만.’

심연에 있을 악마 놈이 나를 지켜보고 있거나 내게 금제 같은 것을 걸었다면 나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있었던 전생과 달리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녀석과는 계약이 완료되며 완전히 연결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비로소 내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이러면 포상이 맞지.’

대가 없는 흑마법이라니?

그 무슨 책임 없는 쾌락?

‘이러면 이론상 그야말로 무한대로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긴데?’

무한으로 즐겨요 명륜진ㅅ….

‘물론 당장 그렇게는 못 하겠지.’

내력을 연료로 사용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그 내력이란 게 부족하니까.

이 몸의 원주인 놈이 단전에 모아놓았던 내력은 딱 메추리알 수준.

그마저도 상단전과 하단전으로 반타작을 하고 나니.

그야말로 쥐뿔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내력이야 늘리면 되는 거지.’

나는 이 소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말인즉.

얼마든지 기연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

‘물론, 나비 효과를 생각하면 원작의 스토리에 피해가 가지 않는 적정선을 유지하긴 해야 하겠지.’

하지만 ‘무림학관의 검술천재’가 초장편 소설인 데다 뒤로 갈수록 작가가 앞의 설정을 잊어버린 게 많아서, 나비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내가 빼먹을 수 있는 기연들이 상당히 많았다.

“흐흐흐.”

그때였다.

그렇게 내가 흑마법으로 얼룩진 행복한 미래와 밝은 내일을 그려보며 웃음 짓고 있는 이때.

“도련님!”

시종인 왕삼이 놈이 문밖에서 나를 불렀다.

“가,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요!!”

올 게 왔군.

나는 즉시 손을 휘저어 뼈 오리를 무너뜨린 뒤, 적당히 식은 차로 우글우글 입을 헹구고 방을 나섰다.

* * *

내가 머물던 언윤각(彦胤閣)과 가주인 언정웅이 머무는 가주전은 지척이었다.

하여 디딘 걸음은 금세 가주전에 닿았다.

그런데 당도한 가주전의 앞마당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고우시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화 부인.

그러니까 내 어머니 되시는 분이었다.

“용운아!”

불안한 걸음으로 앞마당을 맴돌고 있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잰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

이런 걸 걱정이라고 하는 거겠지?

어려서는 고아라 걱정을 해줄 이가 없어서, 나중에는 강해져서 한 번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전생에 받아보지 못한 유형의 감정이라 기분이 묘하다.

그 묘한 감정을 내가 곱씹어 보는 사이, 이화 부인의 음성이 계속 이어진다.

“지금쯤이면 네 아버님의 화도 조금 누그러지셨을 것이다. 상공께서 네가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동안 몇 번이고 네 거소를 찾으시지 않았더냐?”

뭐, 언정웅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내 거소를 찾긴 했다.

‘하지만 이화 부인이 상상하는 그런 희망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나를 찾은 언정웅의 행동은 늘 똑같았다.

싸늘한 눈빛을 보내오며 가문의 비전을 걸고 도박을 벌인 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내라 종용하였을 뿐이었으니까.

“용운이 너도 자리를 털고 나서는 전과 다르게 수련도 하고, 공부도 하였고. 가주전에 들어가서도 앞으로도 계속 그리하겠다 그리 고하거라. 대저 아비와 자식 간의 불화는 눈이 녹듯 한순간에 풀리기도 하느니라.”

글쎄요…?

제 생각엔 오늘 가주전에선 아마 나를 쫓아낸다는 결정이 떨어질 것 같은데요?

‘원전의 흐름대로 언용운이 흑화하려면 이쯤에서 쫓겨나야지 시간적 아귀가 들어맞아.’

하지만, 이화 부인은 모든 신호를 긍정적으로만 본 듯하다.

‘음. 아닌가?’

다시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이화 부인이 진심으로 언정웅이 보인 신호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저리 불안해하고 있지 않겠지?

‘후.’

차라리 경멸의 눈빛을 보내오는 언정웅 쪽이 편한 것 같다.

이화 부인이라는 존재는 묘하게 어색하고 속을 간질이는 구석이 있다.

뭐,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단속을 해놓지 않으면 내 향후 계획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저래 보여도 언용운과 언용명 두 형제의 어미가 되는 이화 부인의 친정은 중원 이대 상인 집단이라 불리는 세력 중 하나인 산서상인을 이끄는 태원상단이니까.

‘괜히 도와주신답시고 무지성 지원을 해주시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원전의 흐름이 꼬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손을 부여잡고 있는 이화 부인의 손을 가볍게 두드려 드리며 조금은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음… 어머니?

“응. 그래 용운아.”

음.

전생 현생 통틀어 난생처음 어머니 소리를 하니 진짜 멋쩍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흠흠….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뭐, 그래도 많이 읽어 온 소설인데다, 두 달쯤 살아보니 예스러운 말투를 사용해 내 뜻을 전달하는 것은 딱히 어색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가주전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지금부터는 소자가 오롯이 스스로 감내할 것입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아무래도 내 뜻이 잘 전해진 모양인지.

“!”

내 말에 담긴 앞으론 홀로 서고자 하니, 치맛바람은 거두어 달라는 뜻을 이해한 듯한 이화 부인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요, 용운아.”

그 이채에 서린 감정은 약간의 대견함 그리고 과연 그래도 괜찮을까를 생각하는 듯한 우려.

‘하기야, 평범하게 자란 자식이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해도 물가 애를 내놓는 것도 걱정이 될 판국에….’

평생을 개망나니 새끼로 살아온 놈이, 저 혼자 뭔가를 해보겠다 하면?

어미 된 입장에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화 부인의 사정이고.’

그런 사정으로 내 앞으로의 계획에 변수가 끼어서는 곤란하지.

나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진즉에 그리해야 했습니다.”

이화 부인 입장에서는 모질게 들릴지도 모르는 말.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그에 조금은 벙벙한 표정이 된 이화 부인.

나는 그녀에게 잡힌 손을 조심스레 뺀 뒤 가주전으로 향했다.

* * *

내 예상대로 가주전의 분위기는 사뭇 냉랭했다.

세가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는 총관 감천수.

동복동생이자 ‘무림학관의 검술천재’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언용명.

두 사람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시립해 있는 가운데.

진주언가의 가주이자 이 몸의 아버지인 언정웅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게서 비급을 앗아간 녀석들의 용모파기가 정말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

이 질문만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언정웅 입장에서는 뭐라도 단서가 있어야 조사에 착수할 테니까.’

하지만 빙의되기 전의 기억이 전혀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음.

사실 누구한테 잃은 것인지는 몰라도, 언가의 강시 비전이 어디로 굴러들어 갔는지는 원작을 읽었기에 알긴 안다.

‘마교.’

정확히는 천마신교의 호교법왕중 하나인 역천괴마(逆天怪魔) 구천서.

머지않은 미래에 끝도 없는 강시 군단을 이끌고 중원 침공의 선봉에 서는 노마두.

‘하지만 이 사실을 언정웅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아닌 원래의 언용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듬더듬 제 놈이 도박판에서 패를 나눈 상대의 용모파기에 대해 늘어놨을 것이다. 눈은 어떻더라 어디에 점이 있더라.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겠지.’

정파 무림이 일차 정마대전의 승리에 취해 썩어가고 있는 동안, 마교는 어느덧 교세를 거진다 회복했다는 게 ‘무림학관의 검술천재’ 속 설정이니까.

‘천마신교가 어디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녹록한 놈들이 아니다.

핵심 조직원이 언가의 비급을 빼돌리는 데 직접 가담했다면?

‘얼굴을 바꾸는 역용술이나 인피면구를 사용했을 것이고.’

노름꾼을 고용했다면?

‘벌써 살인멸구를 끝내고 뼈까지 녹여버리는 화골산을 뿌렸을걸?’

그렇다면 여기선 원전과 비슷한 결과가 나오도록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맞다.

‘괜히 마교의 ㅁ 소리를 꺼냈다가, 벌집이 쑤셔지면?’

내가 알고 있는 원전의 흐름이 뒤틀리겠지.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사용할 이점을 하나 잃게 된다.

‘애초에 기우는 가세를 막기에 바쁜 작금의 언가의 형편으론 마교를 감당해 낼 수도 없고.’

바보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

나를 위해서도.

어쨌거나 혈육이 된 언가를 위해서도 이 건은 모르쇠로 끝내는 게 답이다.

뭐, 아무튼.

그렇게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하.”

언정웅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하더니, 어느 순간 무언가를 결심한 듯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용운은 듣거라.”

“예. 아버님.”

“그래. 나는 네 아비다. 하지만 그에 앞서 언가의 가주다. 소학에서 이르기를 부생아신 모육오신(父生我身 母育吾身)이라 했다. 무슨 뜻인지 아느냐?”

언정웅은 매일 술판이나 노름판이나 벌이고 기녀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던 녀석이 알 리가 있겠냐는 투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무협지를 더욱더 즐기고자 한문 공부까지 했던 나였기에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 나를 낳으셨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네. 라는 말입니다.”

“…흥. 향락에 아주 절여진 줄 알았더니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구나. 아무튼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내겐 용운이 너를 그리 낳은 책임이 있고, 네 어미는 너를 그리 기른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음?

“그러니 네 단전을 폐하진 않으마. 네가 하북에서 벌인 일들도 내가 감당할 것이다.”

어?

“떠나거라. 네 이름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 곳까지 떠나거라, 그리 닿게 된 곳에서 자그마한 무관이라도 열던지. 내 그것까지 막지는 않으마.”

휴.

깜짝이야.

용서해 주겠다는 줄 알았네.

그렇게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공식적으로 진주언가의 호적에서 파이게 되었다.

내가 누구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이때.

가주전에 모인 다른 세 사람의 얼굴은 아주 죽상이 되었다.

그래도 쌓은 정이 있는지 감 총관이라는 양반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언용명도 미우나 고우나 형님이라고 언정웅을 향해 한 번만 더 재고해 달라 청했다.

그런 언용명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있지만, 언정웅도 이마를 짚는 걸 보니, 망종이라도 자식을 제 손으로 내치려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은 모양.

뭐.

세 사람이 그러든가 말던가.

나는 침착하게 공수를 하고 언정웅을 향해 절을 올렸다.

원래의 언용운이었다면, 집을 나가라는 소리에 질질 짜며 바짓가랑이를 잡든 못 나간다 어쩐다 염병을 떨었겠지.

하지만 나는 의연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입꼬리가 씰룩이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는 다 계획이 있으니까.’

꿀단지 같은 기연이 기다리고 있을 포인트 중에서도 가장 개꿀인 곳을 딱 정해 놨으니까.

‘초대 천마의 무덤.’

넌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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