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화 (3/444)

제3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

부자간의 연을 끊어내는 큰절을 마치자.

“오늘 중으로 언가를 떠나거라.”

언정웅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가주전을 떠났다.

그리고 그런 언정웅을 따라 가주전을 나가려다 멈칫하고 걸음을 멈춘 감 총관이 나를 불렀다.

“큰 도련님.”

그간 지켜보니 묵직한 양반 같던데 뭔 말을 하려고 이러나?

“지난 두 달간 큰 도련님께서는 주색을 멀리하시고 스스로 체력 단련을 하시거나 솔선하여 가병들의 훈련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멀찍이서 뵈었었습니다.”

“그러셨군.”

근데 그 이야기는 왜?

“그 모습을 지켜본 가문의 다른 어른들은 대형 사고를 쳤으니 제 발을 저린 것이다, 혹은 보여주기식으로 저런다고 말씀들을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셨소?”

“예. 일천한 내력과 둔중한 몸으로 비언대의 훈련을 어떻게든 완주해 내셨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을 조금만 빨리 뵈었다면….”

음.

내가 또 할 때는 열심히 하기는 했지.

뭔 일을 하든 체력은 국력이라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니까.

‘권사를 길러내는 가문이다 보니, 기초 체력을 기르는 커리큘럼(?)이 잘돼 있어서 이 악물고 하는 보람이 있더라고.’

원주인이 주독에 오래 빠뜨려 놓은 몸뚱이라 체력이 타는 쓰레기 비스름했는데, 언가의 가병들이 구르는 코스를 두 달간 바짝 쫓았더니, 비육지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던 군살이 떨어져 나가고 제법 움직일 만한 몸뚱이가 됐다.

아무튼 어머니 말고도 한 명쯤은 색안경을 벗고 봐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어차피 쫓겨나기로 마음먹었고, 마음먹은 대로 되었는데.

그런 내 생각이 감천수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감천수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예. 이제사 돌이킬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집채로 끌러 내게 내밀었다.

“중원은, 강호는. 언가라 하면 그래도 한 수를 접어주는 하북과는 다를 겁니다. 날붙이가 필요한 상황을 맞닥뜨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오.

이게 웬 떡….

아니 검이냐?!

‘이러면 의미가 있지!’

두 달 동안 완전히 헛짓거리 한 건 아니었구만?!

헌터로 구르며 쓰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무기 꽤나 만져봤던 나다.

딱 보면 잡검인지 명검인지 감이 온다.

감 총관이 건넨 검을 받아서 스리슬쩍 스렁- 뽑아보니.

검면엔 잿빛이 감돌고 검날은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하야며, 검신 전체에 구름문이 있는 게, 딱 봐도 양질의 한철을 도검장이 죽어라고 접어 때려 만든 좋은 검이다.

어디 보자.

새겨진 검명(劍名)은 회한(悔恨).

‘뉘우치고 한탄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처한 상황이랑 비슷….

“…다만 검을 뽑기 전에 꼭 삼세번은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거 괜히 줬나 하는 눈으로 보지 마시오 감 총관….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차.

그것도 뽑다 말았으니 생각 없이 뽑은 걸로 치면 안 되지, 인간적으로 이 정도면 쩜오로 쳐야지.

“…파문당한 신분으로 강호 생활을 하는 것. 절대로 녹록지 않을 겁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나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인 감천수는 먼저 나간 언정웅의 뒤를 바쁘게 쫓았다.

그런 감천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가풍인가?’

언정웅도 그렇고 감천수도 그렇고.

‘아주 너그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모질지도 못하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울어져 가는 가세를 떠받치려면 마냥 너그러울 수 없었을 것이고.

멸족의 위기를 간신히 넘어낸 가문이기에 손이 귀한 집안이라 마냥 모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언용운이 같은 망나니와 언용명이 같은 교본에 실어도 좋을 협객형 젊은이가 같이 나온 거겠지.’

언용운은 모짐에 튕겨 나가고 너그러움에 기대 응석을 부리며 자란 거고.

언용명이 같은 경우는 모짐을 연마제 삼아 스스로를 단련하고 너그러움은 본을 받은 거겠지.

뭐.

아무튼.

나는 기왕지사 언가의 가풍을 이해하게 된 거.

이 가풍의 영향을 받은 자 중에, 아직 가주전에 남아 있는 언가의 차남에게 한 가지를 더 뜯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용명아. 아. 이제 나는 호적에서 파였으니 도련님이라고 해야 하나?”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

그러기 위해 훗날 유정권(有情拳)이라는 별호가 생길 정도로 정이 많은 녀석의 마음에 측은함을 미리 달아놓고.

“그래? 그럼 지도 하나만 구해주라. 아버님 어머님이나 어른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다음에 스리슬쩍 본론을 말한다.

“지도요?”

“어. 전도(全圖)까지는 필요 없고. 여기 진주에서부터 남직예까지만 나와 있으면 된다.”

“…외가가 있는 산서가 아니라 남쪽으로 길을 잡으시려고요?”

물론, 녀석의 정이 선을 넘으려 하면?

“그냥 나를 아직 형이라 생각한다면 그것까지만 딱 구해주면 고맙겠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이제 언가의 사람이 아니니 거기서 더 마음을 쓰려고 하지는 말고. 언가의 후계자는 언가의 식솔들을 챙기는 것만 해도 바쁜 자리 아니냐.”

은근슬쩍 녀석의 마음에 그어져 있는 모질음의 선을 건드려 본다.

“…알겠습니다.”

참 쉽죠?

* * *

나는 마지막으로 용사비등한 필체로 쓰인 진주언가의 현판이 달린 대문께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 길을 나섰다.

“…이거 쫓겨나는 게 아니라 거의 격려 속에 강호행을 나서는 느낌인데.”

가주인 언정웅의 명이 지엄하니, 잘 가라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오른 허리춤엔 왕삼이 녀석이 건네준 육포가.

왼 허리춤엔 감 총관에게 받은 검이.

거기다 짊어 멘 봇짐 속에 어머니가 찔러넣어 놓은 은원보와 은자가 있었고, 가슴팍엔 용명이 녀석이 구해다 준 지도가 있었다.

“어지간한 대파의 후기지수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강호행을 시작하는 놈 없지 않나?”

아니지.

대파라면 더더욱 없지.

내 무협 짬밥에 비추어보면 도가에서는 표주(漂周), 불가에서는 두타행(頭陀行)이니 뭐니 하면서 후기지수들을 강호행에 내보낼 땐 빈손으로 출발시키더라.

뭐.

아무튼.

그렇게 ‘족보에서 파인 자’ 칭호를 획득한 나는 우선 용명이 녀석에게 받은 지도를 꺼내 펼쳐 들었다.

“용명이 짜식, 잠시만 기다려 달라더니, 기특한 짓을 해놨네.”

시대가 시대다 보니 지도라 해봐야 현대식 축척이나 산의 험준함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등고선 같은 것은 없는, 그저 ^ 이렇게 삐쭉 솟은 것은 산이요. ~ 이렇게 흘려 그린 것은 강이었다.

하지만, 묵빛이 좀 바랜 조악한 지도 위에 묵빛이 진한 세필로 적힌 정보들이 있었다.

그 세필들은 산적들이 똬리를 튼 산채가 확인된 산과 수적들이 똬리를 튼 수로채가 확인된 강가와 규모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가족이라는 거 나쁘지는 않네.”

호적에서 따끈따끈하게 파인 참이긴 하지만.

아무튼 가는 거다.

젖과 꿀이 흐르는 초대 천마의 무덤을 향해서!

* * *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길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된다고.

왕년에 사령왕 소리까지 들어본 나였지만, 중고 신인도 초심자로 쳐주는 모양인지.

언가가 있는 하북의 진주 땅에서 황하를 건너고, 장강까지 넘어 목표했던 상주부의 북단에 이른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그 흔한 시비도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 더 흔한 바가지도 안 썼다.

‘음. 순순히 행운으로 취급하기는 좀 그런가?’

용명이 녀석이 준 지도가 우선적으로 큰 보탬이 되었고, 어머니가 찔러준 은자들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눈치코치가 열일을 했다.

‘고아원 생활이랑 헌터 생활하면서 그쪽으로는 도가 텄지.’

내 사정을 아는 사람이 이 소리를 들으면 고아원은 그렇다 쳐도, SSS급 헌터였던 양반이 눈치는 뭔 놈의 무슨 눈치냐고 되물을 텐데.

‘난 처음부터 SSS급 헌터였던 건 아니었으니까.’

막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F급이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최초 각성 등급 판정에서 나는 C급을 받았었다.

‘B급 A급들 눈치 살벌하게 봐가며 이중 던전이니 막타니 열심히 쳐가면서 올라간 거지.’

그렇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실랑이는 솔직히 말해 식은 죽 먹기였다.

배를 타야 하거나 어디서 묵어야 할 때 한발쯤 물러나 다른 사람들이 실랑이하고 있는 것을 슥- 보고 있다 보면 대충 ‘아. 여기 물가는 이 정도구만?’하고 머릿속에서 견적이 뜨던 걸 뭐.

‘거기다 흑마법도 쏠쏠하게 써먹었고.’

암흑 동화라고.

사출계 마법으로 어둠을 몸에 스미게 하는 마법인데, 야밤에 홀로 산을 넘을 때 쓰니 딱이었다.

사출계 흑마법이 대개 그렇듯, 연비가 좀 안 좋고 기감이 좋은 사람을 속일 수는 없는 마법이긴 했다.

하지만 산적들의 인재 풀 사정이 망보는 놈들에게 그런 초고급 인력을 배치할 만큼 좋지 않았기에, 나는 녹림을 케이크처럼 쉽게 먹었… 아니 피해왔다.

그런데 초대 천마의 무덤이 잠들어 있는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가는 이때.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를 하나 맞닥뜨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초심자의 행운 어쩌고로 시작하는 그 문장의 끝이 아마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였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딱 내 이야기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언 소협?”

“아, 뭐.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머릿수만 채워주면 된다는 말로 모집해놓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 심히 송구합니다만, 혹시 모르니 유사시를 대비해 주십시오.”

“예. 뭐. 저는 걱정 마시고 일 보세요.”

“예. 그럼.”

“옙.”

“쟁자수들은 뭣들 하느냐?! 수레를 가로로 틀어 벽을 세워라! 산채에 이야기를 나누러 간 채 표사가 늦는 것을 보니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쟁자수들까지 모두 병장기를 챙겨라!!”

멀어져가는 은 표두를 바라보며, 나는 어쩌다 은휘상단의 상행에 참여하게 됐는지를 한번 되새겨 보았다.

* * *

내 최종 목적지인 초대 천마의 무덤이 잠들어 있는 곳은 남직예성 중에서도 상주부 태호 부근.

용명이 녀석이 준 지도에 따르면 남직예성에서도 남쪽 끄트머리 즈음에 위치한 태호까지 가려면, 현지인들은 금릉이라 부르는 남경을 지나는 길이 가장 편할 것 같아서 그쪽으로 길을 잡았었다.

[은휘상단 객원 표사 모집.]

- 가족 같은 상행단

- 목적지 : 상주부 상주(경유지 진강부)

- 모집 대상 : 중형 표국 이상에서 오 년 이상 표사 경력을 쌓은 것이 증명 가능한 자.

강호행 중인 명문대파의 용봉.

- 모집 인원 : 一人

그런데 금릉에 도착하자마자 개꿀 알바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은휘상단?!’

저번에 말했던가?

내 외가가 중원 이대 상인 집단 중 하나인 산서상인의 우두머리 격인 태원상단이라고?

이 소설의 설정상 은휘상단은 그 중원 이대 상인이라는 내 외가의 다른 편에 서 있는 거상 집단인 휘주상인들의 우두머리 격 상단이었다.

‘원작 소설 속에서 은휘상단의 인물중 하나가 비중 있게 등장해서 잘 알지.’

무림에서 기피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상단의 호위를 자처하는 일이라지만.

남직예성 안에서 은휘상단의 호위를 한다는 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똥개도 제집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남직예성 상계의 패자이자 장강 이남 상권을 주름잡는 은휘상단을 어느 미친놈이 건드린단 말인가?

‘위험 요소가 0에 지극히 수렴하는 거지.’

거기다 최종 목적지가 나랑 똑같다.

진강부를 경유한다고 돼 있는데, 면적이 이쪽이 훨씬 넓긴 하지만, 대충 대한민국 서울의 행정 구역에 빗대보자면.

금릉이 중구고 진강부가 성동구다. 상주부는 광진구고.

‘그냥 가는 길이야.’

그런데 일당도 엄청나게 세다!

어머니가 찔러주신 은원보들이면 당분간 생활고 걱정은 안 해도 되긴 하지만, 상주부에 도착하면 돈을 좀 써야 할 용처도 있고.

다 떠나서 돈이란 게 본디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이런 개꿀을 어떻게 안 빨고 버텨!’

이건 못 참지!

물론, 엄밀히 따지면 언가에서 쫓겨난 나는 은휘상단의 모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림이 무슨 큐알 코드 띡! 찍으면 ‘언가 놈이긴 하지만 개망나니라 족보에서 파였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필연적으로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안전하게 먹고 튀는 게 가능한 시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호위는 제대로 할 생각이었으니까. 먹튀는 아니긴 하지만.’

갑자기 비어버린 인원을 때우고자 모집한 객원 표사의 출신을 상행이 끝나고 추후에 조사해볼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에 나는 남직예에 없을 텐데 뭐.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본 결과 이건 무조건 고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콱 물었지.’

생각을 마친 나는 은휘상단 금릉 분타의 문가에 붙은 방을 북 찢어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번에 합격했다.

“합격.”

애초에 뽑히려 들어갔지만, 너무 쉽게 합격해서 오히려 내 쪽에서 되물었다.

“아니 사람을 이렇게 뽑아도 되는 건가? 거 무공 한 자락이라도 보여달라 해야 하는 거 아니오?”

“하하. 누가 남직예성에서 우리 은휘상단을 건든단 말입니까?”

“그렇긴 하지.”

“상단 내 상행 수칙상 호위의 머릿수를 채워야 해서 급히 모집한 건데, 모집 대상의 기준이 빡빡해서 출발 시간이 다 돼가도록 모집이 안 되던 차였습니다.”

“그랬소?”

“예. 근데 소협께서는 기준에 딱 들어맞으신 것 같으니 더 볼 것도 없지요. 섭섭하시면 무공 한 자락 보여 주시겠습니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봐 드리겠습니다.”

“참 내. 됐소.”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언용운이 자식이 하는 짓이 망나니였어서 그렇지.

눈매와 골격은 언정웅을 닮아 강인해 보이고, 나머지는 이화 부인의 고운 외모를 닮아 외관은 그야말로 멀끔했거든.

외모부터가 ‘나 무가에서 자란 귀공자요.’ 하는 놈이, 허리춤에 찬 검은 딱 봐도 칼집부터 잡검과는 격이 다른 명검.

거기다 내민 신분패엔 한때 오대세가로 꼽혔고, 가세가 좀 기울긴 했어도 여전히 이름 높은 진주언가의 언 자가 박혀 있으니, 은휘상단의 기준에 딱 들어맞은 모양이다.

뭐.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은휘상단에 객원 표사로 합류했고, 출발한 상행은 내 예상대로 아무 일 없이 진강부를 경유해 쭉쭉 나아가 상주부의 북단께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서 웬 산적 놈들이 길을 쳐 막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이 좀 이상했다.

산적이라는 놈들이 털어먹을 것만 있으면 긴머리 곱게 묶고 박도를 휘두르며 빨주노초파남보 뛰어드는 놈들 같은 인식이 있다.

하지만 사실 산적 놈들은 그 누구보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녀석들이었다.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놈들로 기생충처럼 상행단이나 표행단에게 통행세나 뜯어가는 놈들이니까.’

그런 산적 놈들의 습속을 고려하면 대형 상단의 깃발이 펄럭이는 상행단은 그냥 거르던지, 설령 좀 뻗대다가도 소정의 통행세만 받고 빠져야 정상.

‘은휘상단쯤 되는 상단이 돈 몇 푼 아끼려고 할 리도 없고.’

그런데 맞닥뜨린 북록채의 산적들은 태도가 좀 많이 이상했다.

‘병장기를 들고 포위를 해?’

평범한 대형 상단도 아니고 무려 은휘상단의 깃발과 그 상행을 책임지는 자회사(?)인 은휘표국의 깃발이 맨 앞에서 나부끼고 있는 상행단을?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을 많이 넘은 행위였다.

근데 북록채의 산적 놈들은 그것으로 모자라 상행의 주인인 창휘당주인가 뭔가 하는 여자를 넘기라고 협박까지 하고 있네?

‘이 새끼들이 뭘 잘못 집어먹고 대가리가 회까닥 돈 건가?’

그래서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은 표두가 멀어져 간 방향에서 들려온 작은 소란에 나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당주님! 마차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저들이 이 은하연을 원한다면서요? 제가 가서 담판을 지어 보이겠어요. 이 방법 외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있나요?”

“…그건.”

“없죠? 그렇다면 나를 막지 마세요. 은 표두.”

뭐?

이 은하연…?

은휘상단의 은하연?

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네가 창휘당주였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