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화 (4/444)

제4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2)

환장하겠네.

은하연이 여기서 왜 나와?!

은하연.

그녀가 이 상행단에 포함되어 있다면, 북록채의 산적들의 머리가 회까닥 돈 게 이해가 되긴 한다.

천금매소(千金買笑) 은하연(殷夏蓮).

그녀의 웃음을 보려면 천금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그대로 굳은 별호를 보면 알 수 있듯.

천하 이대 상인 중 휘주상인의 필두인 은휘상단의 주인인 강남상왕의 딸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소단주 자리를 확정 짓는 엄청난 상재를 가진 인물이자, 강남제일미로 불릴 정도로 세계관에서 손꼽히는 미인이었다.

주렁주렁 붙은 수식어를 보면 나처럼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 이골이 난 사람은 벌써 감이 올 텐데.

그렇다.

그녀는 ‘무림학관 속 검술천재’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물주 같은 느낌?’

물주라는 말이 좀 싸구려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 왜 있잖은가?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 읽다 보면 큰 사건이 지나가고 나서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이거 언제 다 복구하나.’ 같은 소리가 튀어나오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도도한 표정으로 ‘제가 해결하죠.’ 하며 진정한 금력(金力)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는?

‘그렇다고 칠렐레팔렐레 마냥 퍼주는 호구는 또 아니고, 그러면서도 제 영향력을 꾸준히 늘려나가는?’

대표적인 스낵 컬쳐인 웹소설의 등장인물답지 않게, 제법 입체적인 구석이 있고 일러스트도 강남제일미라는 명성에 걸맞게 잘 뽑혀서 독자 인기 투표에서 늘 상위권에 위치했던 기억이 있다.

뭐,

아무튼.

아마 은하연의 존재를 아는 산적들이나 수적들에게 그녀는 걸어 다니는 로또 같은 것으로 비쳐 왔을 것이다.

‘사파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은하연을 납치해서 은휘상단을 압박하면 거금을 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씩은 해봤겠지.’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은휘상단의 영역인 남직예성에서 감히 그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성공 확률은 희박하고 짊어져야 할 부담은 너무 크니까.’

은하연쯤 되는 여자의 호위가 만만할 리가 있는가?

괜히 요행을 노려보려다 제 몸이나 부하들이 상한다면?

전자의 경우 믿었던 부하 놈들이 뒤통수에 병장기를 꽂아 넣으며 ‘이날만을 기다렸슈.’ 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 옆 동네 산채에서 적대적 M&A를 시도해 올 것이다.

‘녹림의 생리라는 게 그렇지 뭐.’

운 좋게 그런 것을 다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은휘상단이 막대한 금력으로 이를 악물고 보복을 해온다거나.

골수에도 금이 새겨져 있다는 평을 듣는 ‘강남상왕’, 그러니까 은하연의 아비가 그녀의 몸값 지불을 거절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은하연을 납치한다는 생각은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기억을 거슬러 보니, ‘무림학관의 검술천재’의 설정상 딱 한 번.

은휘상단의 후계 문제에서 기인한 연환계에 은하연이 걸리는 바람에 산적들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크게 줄어 은하연이 실제로 납치된 적이 있었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렇게 은하연에 대해 잘 아는 내가 은휘상단의 객원 표사에 참여하면서 왜 그녀를 못 떠올렸냐면….

‘내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네.’

그래서 뇌가 클리셰에 절여져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원작의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복원해보면 대충….

『강남 최고의 거상의 딸인 은하연은 그녀의 이복 남동생인 은하성을 후계자로 미는 숙부가 교묘하게 깔아 놓은 연환계에 걸려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벗어났지만, 그 일은 그녀에게 큼지막한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작중에서 웃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은하연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스쳐가는 문장.

클리셰에 절여진 내 뇌는 저 문장을 보고 막연히 ‘은하연은 어린 시절에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구만?’ 했다.

그렇게 잘못된 전제하에, 은하연이라면 어릴 때 크게 홍역을 치렀을 테니, 호위를 단단하게 할 것이라 막연히 예단했다.

“이렇게 허술하게 사람을 뽑는 상행에 은하연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지….”

하여, 상행단이 호송하는 마차 중 하나에 창휘당주라는 귀부인이 타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녀는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고 나올 때도 늘상 시커먼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지라.

그저 고향이 상주부인 강남상왕의 첩실이 아닐까 생각해 버렸다.

‘조졌네.’

아무튼.

저 시커먼 면사를 쓴 여자가 은하연이 맞고, 이 상황이 그녀가 납치되는 ‘그 설정’의 상황이라면?

나는 행동을 신중히 해야 했다.

나는 다시금 잘못된 추측을 하는 일을 없도록 하기 위해, 은 표두와 은하연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차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객원 표사로 상행에 합류했던 언 모라 하오. 상황이 급박하여 감히 상행주이신 창휘당주께 몇 가지를 여쭙고 싶은데. 우선 제가 호위하고 있던 마차에 타고 계시던 창휘당주께서 정녕 강남상왕의 따님이 맞소이까?”

그러자 곁에 섰던 은 표두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제지했다.

“소협은 객원 표사로 고용된 신분입니다. 무언가를 묻고 자시고 할 위치가 아니시….”

하지만 내 태도에서 어떤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나를 제지하는 은 표두를 오히려 창휘당주라 불리는 여인이 제지했다.

“이 판국에 더 숨길 필요 없어요, 은 표두.”

그리고 검은 면사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 제가 강남상왕의 딸 은하연입니다.”

젠장.

면사가 걷히며 입 코 눈 순으로 공개되는 외모에서 이미 ‘강남제일미 맞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 입으로도 맞단다.

하여 진짜 엿 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이때.

은하연이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몇 가지를 여쭙겠다 하셨는데, 그래서 다음 질문은요?”

“…혹. 이와 비슷한 일을 전에 겪은 적이 있습니까? 납치 혹은 감금을 당했다거나….”

“언 소협! 어찌 그런 참담한 소리를!”

거 은 표두는 좀 빠지시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런 사실 또한 없단다.

‘염병할.’

은하연 납치 사건의 한복판에 낑겼다.

제기랄 어쩐지 금릉에서부터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 * *

처음에는 스리슬쩍 내 한 몸 챙겨서 내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산적 나부랭이들한테 쫄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은하연은 납치를 당해 곤욕을 치를 뻔하다 ‘기지’로 탈출을 해야 원작의 설정이 유지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여 괜히 미래에서 날아온 나비인 내가 끼어 있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뭐, 은휘상단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기사멸조의 개망나니 꼬리표가 이미 붙어 있는데, 그거 하나 더 추가되는 거?

‘아무렇지도 않지.’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어봐.’

내가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뽑히지 못한 ‘어떤 객원 표사’가 그 ‘기지’의 원천이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가능성.

‘책에서 봤던 느낌이랑 눈앞의 은하연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본격적으로 ‘무림학관의 검술천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뒤.

그사이 은하연이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한 살의 나이가 미친 영향보단 아마도 납치 사태가 끼친 영향이 클 것이다.

‘원작 특유의 냉철한 성격의 연성이 현저히 덜 된 듯한 은하연에게 제 안위를 오롯이 맡겼다가, 만에 하나 그녀가 홀로 삼도천을 건너가 버리면?’

원작의 이야기가 크게 빠그러진다.

‘그래선 안 되지.’

당장 그녀가 전면에 나서는 굵은 스토리만 세 개나 머릿속에 스치는데.

‘자잘한 것은 셀 수도 없고.’

그러면 원전의 설정의 해석을 조금 다르게 해본다.

은하연은 납치를 당할 뻔했지만 ‘기지’로 탈출한다가 아니라.

은하연은 납치를 당할 뻔했지만, 어쨌든 사지 멀쩡히 살아남았다.

이렇게.

결은 좀 다르지만, 이렇게 해석을 해도 은하연이라는 인물이 원전에서 보였던 활약과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 같았다.

‘물론, 납치를 당하며 형성되었을 인격 형성 포인트를 전개가 달라진 만큼 내가 직접 주입하긴 해야겠지만.’

겸사겸사 작중의 인물 중 금력으로는 비빌 사람이 손에 꼽는 은하연에게 빚도 지워 둘 수 있다.

‘어차피 이 권 말미에서 리타이어 돼야 할 언용운이 살아 돌아다니는 이상 나비 효과는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어.’

그런 나비 효과를 대응하려면 일신의 무위와 금력을 갖춰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은하연은 금력 항목의 좋은 옵션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정도 개입은 작중의 메인 스토리 라인을 건드리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아무튼 그러려면 우선 주도권을 내 쪽으로 좀 가져와야 했다.

나는 뜻한 바를 이뤄내고자, 표정을 착 가라앉히고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핏 들었는데, 소저께서 북록채의 채주와 직접 담판을 지으시겠다고요?”

“예.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해볼 만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상담(商談)을 나눔에 있어서 설득하지 못한 이가 없거든요.”

“그건 상대가 같은 상인이었을 때라 그런 거 아닌가?”

내 음성에 은하연의 고운 아미가 살짝 일그러지고, 은 표두의 얼굴에 당혹이 들어찬다.

“……?”

“언 소협! 아가씨께 너무 무례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무례고 나발이고 북록채의 채주는 산적이오. 담판이다 어쩐다 하면서 저쪽으로 간다? 가는 즉시 사로잡힐 것이오. 표두님의 생각은 다르시오?”

“…그 점은 동의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장 해제를 요청하겠지. 그러고 나면 최소한 본보기로 몇 명쯤은 죽일 거고. 아예 다 죽일 수도 있고.”

“…송구스럽지만 이 말에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당주님.”

그런 내 말에 은 표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아미가 일그러진 은하연은 이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여세를 몰아 계속해 말을 이었다.

“보통의 산적들은 이렇게 뒤가 없는 짓을 하지 않소. 그 뒤를 봐주기로 한 자가 있지 않고서는.”

“…그 정도는 저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럼 하고 있으시던 생각 속의 사람이 혹 피를 나눈 혈족이오?”

“…….”

“뻔한 이야기군. 후계 문제?”

원작을 기반으로 한 내 되물음에 은하연이 조금 전보다 강하게 입술을 짓씹는다.

은 표두는 내 말을 들은 은하연이 적진에 담판을 지으러 가겠다는 주장을 멈출 것으로 보이자, 일단 지켜보겠다는 눈치.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럼 소저의 머릿속에 방금 떠오른 그 양반이 당신의 목숨값으로 얼마를 불러놨을 것 같소?”

“…아마 제가 얼마를 부르던 그 이상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해뒀을 것 같네요.”

“거 보시오. 돈이나 말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지 않소?”

“…저도 알고는 있었어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다. 알고 있다 하시는데. 그런 분이 산적한테 나 잡아 잡수쇼 하면서 얼굴을 들이민다는 거요?”

그렇게 두어 번 꼽을 섞어 다그치자, 옅은 한숨이 섞인 목소리가 돌아온다.

“…하아. 담판 이야기는 이 위기의 활로가 그 방법 외에는 딱히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냥.”

“그냥 뭐요?”

“…책임지고 싶었어요. 하필이면 제가 추진하고 있는 산동 분타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서 호위 무사를 보내야 할 일이 생기고. 응천부의 통판대인이 고작 상인의, 그것도 아버지도 아닌 제게 표두급 인사의 파견을 부탁하고.”

“이제 와 생각하니 좀 이상하오?”

“예. 차분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는데. 내 집 앞마당에서 무슨 일이야 있으랴 싶어, 호위 무사와 표두급 인사 파견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그런 식으로 처리한 일들과 몇 개의 모략이 겹쳐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연환계가 되어 버렸으니.”

“본인이 벌인 일이니 본인이 책임져야겠다 생각했다?”

“…네. 제가 상행단을 사지에 밀어 넣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

애가 좀 차분해졌다.

하지만 아직 뜸이 덜 들었다.

나는 계속해 뾰족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건 책임을 지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요. 그럼 물을게요. 당신에겐 북록채를 빠져나갈 수 있는 타개책이 있나요?”

“없지는 않소.”

“어떤?”

“다만 ‘기적적으로 모두가 생채기 하나 없이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같은 방식은 아니고.”

“…음. 이해했어요. 그럼 다시 물을게요. 언 공자께서는 최소한의 손실로 이 북록 고개를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계시는가요?”

옳지.

은하연이라면 이렇게 나와 줘야지.

뜸이 어느 정도는 들은 듯하다.

나는 턱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있소.”

“그 방법이 뭐죠?”

“철피야차의 멱을 따는 거요.”

* * *

내 작전은 심플했다.

우리 넥서스 터지기 전에 쟤네 넥서스 터트리기.

“북록채의 채주 철피야차 방천덕은 은 소저… 아니 당주님을.”

“그냥 은 소저라 부르셔도 괜찮아요.”

“뭐. 그럼. 방천덕은 은 소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소저의 혈육쪽이 흘려준 정보를 들었을 테니 이쪽의 전력이 형편없다고 알고 있을 거요. 자신감에 차 있겠지?”

“그렇겠죠? 바로 치지 않고 저를 내놓아라 어째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신감의 발호니까요?”

“그러니 이쪽에서 본인을 친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 할 거요. 실제로 은 표두님도 방천덕을 공격하기 보다는 은 소저를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진을 짜려고 하셨고.”

“…그야 저를 포함해서 우리 중에 검기를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방천덕을 상대하려면 검기가 필수입니다. 언 소협은 검기를 쓸 수 있습니까?”

음.

은 표두의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하니, 일단 얼버무린다.

“자, 기존에 은 표두님이 생각하셨던 방어진은 그대로 둡시다. 다만 산적들이 치고 들어올 때. 우리도 공격에 들어가는 거요. 여기 은 표두님과 쩌어기 채 표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방천덕을 치는 거요. 산적들이란 게 본디 그리 끈끈한 집단이 아니오. 대가리만 자르면?”

“기세는 물론이요. 동기까지 꺾이겠죠!”

“제대로 이해했군.”

“근데 언 공자와 은 표두, 채 표사면 저희 전력 중에 제일 강한 세 사람인데… 그렇게 셋이 빠지면 방어가 될까요…?”

“음. 잘 안 되겠지? 하지만 산적들이 소저에게 닿기 전에, 고기 방패들이 다 녹기 전에, 방천덕의 멱을 어떻게든 따내 보이겠소.”

“…고, 고기 방패.”

표현이 좀 거칠었는지 내 제안을 들은 은하연의 아미가 좁아진다.

그리고 이 와중에 반대쟁이 은 표두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고기 방패라는 표현이 좀 그래서 그렇지. 언 소협의 작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아까부터 제일 중요한 ‘어떻게’가 빠졌습니다. 저희 셋이 덤빈다고 방천덕에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놔.

“철피야차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닙니다. 피부가 단단해지는 외공을 익힌 방천덕의 피부는 검기를 사용할 줄 모르면 치명상을 입히기가 힘듭니다. 본인이 도기를 휘감을 줄 아는 고수 반열에 든 도객이기도 하고요, 하여, 그를 상대하는 최소 조건이 능히 검기를 다룰 수 있는가 입니다.”

이 걱정 많은 아저씨를 어떡하지?

“저나 채 표사는 아직 검기를 제대로 일으켜내지 못합니다. 언 소협은 검기를 쓸 수 있습니까? 쓰실 수 있으시다면 보여 주십시오. 그럼 이 은 모는 군말 없이 따르겠습니다.”

검기는 못 쓰지.

현재 내 몸에 자리한 내력은 이 세계관 기준으로 딱 일류무사 수준.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검기는 사용할 수 없다.

근데 내 경우엔 검에 흑마법을 감는 식으로 비슷한 것을 쓸 수 있다.

‘유사 검기라고 해야 하나?’

방천덕이 외공을 익혔다 어쩐다 하는데.

‘원작에 나오는 놈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산적질이나 하고 있는 놈이 금강불괴 수준은 아닐 거 아냐.’

그럼 해볼 만했다.

나는 저 ‘유사 검기’로 ‘마계 아르마딜로’라는 놈을 숱하게 까 잡숴봤거든.

‘근데, 지금은 보여줄 수가 없네.’

배후성이 제공하는 마기를 마음 놓고 끌어 쓰던 그때와 달리, 지금 내가 가진 밑천은 그 양이 간당간당하니까.

마음 같아선 나도 딱 오 분만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를 외치며 딱 보여주고 은 표두의 신뢰를 이끌어 내고 싶다.

‘근데 방천덕을 상대하고 혹시 모를 유사시를 대비하는 데 쓸 것도 없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일이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은하연을 살려서 내빼야 하니, 거기까지 생각하면 한 방울의 내력도 허투루 낭비할 수가 없다.

“쓸 수는 있소. 그런데 보여드릴 수는 없소. 그냥 한번 믿어 보시오. 어차피 다른 뾰족한 수도 없지 않소?”

그러니까 그냥 믿으세요.

믿으면 복이 옵니다.

“…하. 소협께서 대충 무슨 경지에 올라 계신지는 알겠는데. 그거 결국 마음먹은 대로 검기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경집니다. 정작 방천덕 앞에서 안 뽑혀 나오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하. 당주님 저는 이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대개 그렇듯 은 표두는 계속해 저항했다.

참 내.

원래는 은휘상단에서 면접 볼 때 무공 한 자락 보여달라 그러면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그때는 은 표두 당신이 안 본다며?

하지만.

은 표두의 저항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쯤 하여 은하연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비상한 시국엔 비상한 방법을 써야겠죠. 제 상인으로서의 감이 언 공자를 믿어 보자고 하네요. 은 표두는 채 표사와 함께 언 공자의 뜻에 따라주세요.”

그런 은하연을 향해 나는 씨익 웃어 주었다.

“그 결정. 후회하지 않으실 거요.”

“방금 그 말은 꼭 상인 같네요.”

“그렇구려. 이런 말을 하니까 나도 꼭 상인이 된 기분이 드는군. 그런 의미에서 소저께 드릴 말씀이 있소.”

“어떤?”

“방금부로 나를 부리시는 데 들어가는 요금이 좀 올랐소.”

“…예?”

거, 목숨값을 날로 잡수려고 하시면 안 되지.

지금부터는 할증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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