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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5화 (5/444)

제5화. 망나니가 너무 잘남! (1)

요금이 올랐다는 내 말에 은 표두는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이 드냐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은하연의 반응은 달랐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객원 표사가 자신의 값어치를 흥정할 때죠. 오히려 더 믿음이 가네요. 좋습니다. 보수는 기존의 하루에 은자 한 냥을 드리기로 한 것을 파하고, 금자로 지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거 본인과 본인 사람들의 목숨값을 너무 싸게 잡는 거 아니요?”

“비상한 시기라 하나 이런 것은 선례가 남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이 상황을 타개하여 상주부의 분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언 공자께는 제 나름의 성의를 따로 표하고,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것에 한하여 공자님의 부탁을 들어 드리도록 하지요. 이 정도면 괜찮으실까요?”

“나야 괜찮긴 한데, 그런 조건은 함부로 걸면 안 될 텐데? 내가 무슨 부탁을 할 줄 알고?”

“맞습니다. 당주님 재고를!”

“공자님께서 무슨 부탁을 해오시든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단 낫겠죠.”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은하연이 은 표두를 향해 제 의견에 따라 주세요 하며 명을 내리더니, 이제는 주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미숙함과 안일함으로 금번 상행이 난국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그녀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에 사죄드리며 저 은하연과 은휘상단의 이름을 걸고 이번 상행의 보수를 은자에서 금자로 바꿔 지급하겠다는 약조를 드림과 동시에, 혹여나 발생할 사상자는 본인과 가족의 평생을 책임져 드리겠다는 약조도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마저 없는 것보단 돈이라도 있는 게 낫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은하연의 한마디에 조금 뒤숭숭했던 상행단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다.

‘이제야 좀 내가 알던 은하연답네.’

* * *

바뀐 작전에 따라 쟁자수들과 표사들의 재배치한 은 표두가 방천덕 처치조에 합류할 채 표사를 데리고 돌아와 입을 열었다.

“방어조의 배치는 다 끝났습니다.”

은 표두의 말에,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제법 단단해 보이는 진에 감탄했다.

‘성이 은씨라서 혈연으로 꽂힌 쌩 낙하산일 줄 알았는데, 무위가 일류급으로 표두치곤 허접해서 그렇지. 어느 정도 능력은 있는 양반이었네.’

은하연이 탄 마차를 중심에 두고 표마차와 다른 마차들을 쓰러뜨려 찌그러진 원진 형태의 차벽을 만든 다음.

표사 전력을 둘로 나눠 잔뼈가 굵은 쪽은 은하연이 타고 있는 마차에, 경험은 부족해도 근골이 싱싱한 쪽은 차벽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전투에 비교적 덜 익숙한 쟁자수와 가복들을 배치해 놓았다.

‘저래 놓으면 잔뼈 굵은 쪽에서 자연히 지휘도 하고, 싸움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앞에서 젊은 표사들이 버티는 동안 푹푹 검을 찔러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거기다 은하연이 걸어놓은 생명 보험 버프도 있으니.

산적들 상대로 저 정도면 어느 정도는 버텨주리라.

아무튼 준비는 끝났다.

나는 방천덕이 서 있는 곳과 정면으로 마주한 쓰러진 마차에 올랐다.

스르렁-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 회한을 뽑았다.

그렇게 내가 검을 뽑아 들자, 방천덕 처치조에 포함된 은 표두와 채 표사도 나를 따라 마차 위에 올라 검을 뽑았다.

스렁-

스르렁-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차벽 안의 사람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챙! 챙! 챙! 챙! 챙!

그 모습이 마치, 바늘을 바짝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검을 뽑아 들자.

저편에서 산적 두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3D 프린터로 출력한 것처럼 생겨 먹은 사내가 걸어 나와, 박도를 치켜들며 일갈했다.

“내 그냥 들이칠 수도 있었지만, 숙고할 시간을 드린 이유는 양자 간에 피를 흘릴 일이 없게 하자는 뜻이었는데. 장강 이남에 영민하다 이름이 자자한 강남상왕의 따님께서는 기어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들겠다는 것인가?!”

북록채의 채주.

철피야차 방천덕이었다.

뭐, 피를 흘릴 일이 없게 하자느니 개소리를 씨부리고 있지만, 그 속뜻은 이쪽의 기세가 매서워 보이니 제 부하가 상할까 신경 쓰이는 거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가진 전력이 약해지면 바로 옆 동네에서 인수합병 시도가 들어오는 게 저쪽 업계니까.

물론, 검기를 쓸 줄 아는 고수 반열에 든 무사가 유사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은하연의 상행단이다.

‘방천덕 본인이 쥐고 있는 박도를 들고 들이치면 이쪽은 그야말로 탱크를 만난 알보병 신세가 되겠지.’

하지만 산적계에 그런 리더형 채주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놈들은 애초에 저쪽 업계로 들어가질 않거나, 들어갔다 하더라도 채주가 되기도 전에 다 뒤지고 없지.’

아무튼.

일갈을 받았으면 돌려 드리는 게 인지상정.

나는 목청을 높여 방천덕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지랄 소리를 들은 방천덕이 눈을 부라리는 정도가 심해진다.

“뭣이?!”

겪어온 바에 의하면 저런 사람은 보통 성격이 조금 급하고 속이 좁더라.

그렇다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방천덕의 부아에 부채질을 해 드려야겠지?

“숙고할 시간을 주긴 개뿔이, 이쪽에서 창휘당주가 제발로 걸어 나올 분위기니까 날로 먹으려고 그러고 지켜만 보고 있었던 거 아닌가? 막상 이쪽에서 싸우기로 한 것 같으니까 후달리쇼?!”

“후, 후달려?”

“예로부터 혓바닥이 길어지면 후달리는 거라 했거든. 아, 이건 진시황릉 벽화에도 나와 있는 정보요.”

오.

전생에 내가 즐겨 쓰던 화법을 무림 버전으로 바꿔 시전해 봤는데.

방천덕의 얼굴이 점차 붉으락푸르락해진다.

그런 방천덕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딱 보아하니 천자문도 하늘천 땅지 즈음에서 어렵다고 책을 덮은 면상이신데, 권주니 벌주니, 거 종이에다 써보라고 하면 쓸 줄은 알고 문자를 읊는 거요?”

“…뭐, 뭐라?!”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큽.”

“으하하하!”

“크흡.”

“푸하하하!”

방천덕의 얼굴은 수확기를 놓친 홍시처럼 시뻘게졌다.

“방금 웃은 놈 누구야앜!”

내지른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날 정도로.

저 양반 저거 화났네, 화났어.

“그리고! 네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귄지 모르겠지만 어린놈이 방사하기가 이를 데가 없구낰!!”

“방자. 방자. 방사는 아무렇게나 싸지르는 게 방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마디를 더 뱉자, 마침내 방천덕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이! 이이이!!! 뭣들 하느냐! 들이쳐서 마차 속에 틀어박힌 창휘당주 은하연을 생포해 와라! 겸사겸사 저놈도 살려서 오거라! 내 직접 가죽을 벗긴 뒤, 가죽이 벗겨지고 나서도 과연 저 주둥이가 나불대는지 볼 것이다! 두 연놈을 빼면 모조리 도륙을 내도 상관없다! 쳐라!!”

어떤 대체 역사 소설에서 배운 병법이 이르기를 적이 원치 않은 시간에 원치 않는 방식으로 싸움을 시작하라 했던 것 같은데, 그 기준에 의거하면 이것만으로도 소정의 성과다.

“갑자기요? 애들 몇 명 산채에 뭐 가지러 갔는데요?!”

“그냥 압박만 하면 창휘당준가 뭔가 하는 년이 알아서 나올 거라면서요?”

“지금요? 쟤들 기세 지금 한창 매서운데요?”

북록채의 산적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긴 했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지며 살짝 풀어진 상태였는데, 열이 뻗친 방천덕이 갑자기 공격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재다가 내 칼에 먼저 죽고 싶지 않으면 지랄들 하지 말라고 치라면 쳐!!”

“가요! 가면 되잖습니까요?! 지금 갑니다요!!”

뛰어 들어오는 산적들의 꼬라지가 일사불란보다는 일사문란에 가까워졌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방어진이 최소한 반 숨은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아챈 은 표두와 채 표사가 동시에 나를 향해 혀를 내두른다.

“…격장지계? 검기는 몰라도… 입담은 최소 화경이십니다?”

“채덕규라 하외다. 대화 나누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초면에 이런 질문 해도 될는지 모르겠소만, 혹시 개방 출신이시오이까? 입의 걸함이 범인의 것이 아닌데….”

…근데 이거 칭찬 맞아?

아무튼 이러고 있을 새가 없다.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 넥서스가 터지기 전에 방천덕의 멱을 따야 한다.

“우리도 갑시다.”

내 목소리를 신호로 은 표두와 채 표사가 각각의 신법을 일으키며 달려 나간다.

이어서 방어진의 후미에서 우렁찬 함성과 단말마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컥!!”

“끄악!!!”

원래의 언용운이라면 벌벌 떨었겠지만, 나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고, 또 내렸던 몸.

내 신경은 그런데 할애되지 않았다.

* * *

방천덕은 지금의 나에겐 솔직히 버거운 상대였다.

‘각자 목검과 목도를 들고 순수하게 비무를 한다면 백 판 중에 아흔아홉 판은 내가 지지 않을까?’

그나마 근력은 원주인이 망나니라 단련을 안 해놔서 그렇지 근골 자체는 무골이라 언가에서 죽치던 기간 동안 가병들의 훈련을 따라붙은 것만으로도 제법 올라왔다.

하지만 한두 달 바짝 끌어올린 몸으로 평생 산적질을 하며 칼밥을 먹어온 방천덕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

거기다 나는 중원식 무공이니 심법이니 하는 것도 원주인 놈의 기억이 없는 관계로 모른다.

‘그래서 배우러 초대 천마의 무덤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이런 사태를 만나 버린 거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검 자체를 쓸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원거리 공격으로 꿀 빨다가 눈먼 칼에 맞아 죽은 선배 흑마법사 헌터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서양식 검술의 검로와 나이프 파이트 정도는 익혔다.

‘음. 삼재검법이 세로베기, 찌르기, 가로베기로 이루어졌다던데, 그거 세 개는 기똥차게 할 줄 아니까. 그러고 보면 삼재검법은 할 줄 아는 건가?’

이 말을 은 표두가 들었다면, ‘뭐요 삼재검법의 달인?’ 소리를 하며 아무리 은하연의 명이라도 결단코 내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겠지.

‘삼재검법이란 게 이름은 그럴싸해 보여도 저잣거리에서 닷 푼이면 배운다는 무림 국룰 삼류 검법이니까.’

하지만 해볼 만하다.

이건 목검을 들고 순수하게 무를 나누는 비무가 아니라, 진검을 들고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고.

“크하하하. 개 세 마리가 제 주인은 안 지키고 뛰어오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두 명은 고작 일류 나부랭이고, 한 명은 신법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허망한 놈들이 아닌가?! 푸하하하!”

방천덕은 내 의도대로 방심하고 있으며.

내겐 방천덕이 절대로 생각지 못할 수까지 있으니까.

그때였다.

내가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공격조 중 가장 늦게 방천덕의 지척에 도착한 이때.

“이딴 얕은 수가!”

“컥!”

“통할 성들 싶더냐?!”

“큭!”

먼저 방천덕에게 짓쳐 들어가 합을 나누고 있었던 은 표두와 채 표사가 방천덕이 내지른 도에 실린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각각 좌우로 튕겨 나갔다.

“크하하하! 개뼉다귀 놈!! 부하 놈들이 살려오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 들어왔구나!”

그리고 이제 놈의 살기가 나를 향해오고 있었다.

“죽어라!!!”

쌔애애액!!!

천년고목도 찍어 넘길 듯 내리쳐오는 강력한 일도!

하지만 여기까지도 계획한 바.

나는 달려오는 중에 상단전의 내력을 실처럼 뽑아 미리 만든 저주 진을 방천덕의 발밑에 깔았다.

[삭월(朔月)의 저주]

대상자의 시야와 청력을 극도로 좁혀버리는 저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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