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9화 (9/444)

제9화. 우리의 기연을 찾아서 (2)

‘기녀의 어머니를 찾을 뾰족한 수가 있냐라.’

애초에 인연을 맺은 기녀가 가상의 인물이니, 사실 그 기녀의 어머니 되시는 분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찾아야 할 노파는 분명히 있지.’

원작에선 위철진의 무덤을 찾는 과정이 꽤나 길게 이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철진의 시대와 지금의 간극이 무려 백 년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열 배의 시간이면 뭐 말할 것도 없지.’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태호의 범람, 관가의 정책, 지역을 주름잡는 이들의 이해관계 등등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태호의 빈민가는 그 위치와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왔다.

자연히 그 빈민가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퇴기촌도 위치가 옮겨 갔다가 왔다가를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백여 년 전의 퇴기촌과 지금의 퇴기촌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원작의 주인공 세대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 발에 땀이 나도록 뛴다.

제갈가의 소무후는 진사(進士), 그러니까 과거 시험의 최종 합격자를 직‧방계 가문에서 꾸준히 배출해온 제갈가의 후기지수답게 관가의 맥을 이용해 태호 인근의 고지도(古地圖)들을 구해 실마리를 풀고자 하고.

천금매소 은하연은 위철진이 잠든 곳으로 추정되거니와, 혹여 잘못 짚었더라도 명승지로 이름 높은 태호 일대이기에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하더니.

일대의 땅들을 모두 사들여서라도 다 파 뒤집어 보겠다며 이 지방의 거간꾼들을 휘상의 이름으로 은밀히 불러 모은다.

그리고 주인공 되시는 ‘무림학관의 천재’ 정현은 퇴기촌에서 탐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하지만 그러다 천하에서 가장 천대받는 이들의 생활상을 목격하고 본래의 목적을 제쳐두고 그들의 피를 빠는 흑도 방파의 퇴치와 구휼에 시간과 돈을 쓰게 된다.

‘솔직히 말해 실시간으로 그 에피소드를 읽어나갈 때는 주인공의 방법이 가장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

하지만 협행의 대가가 늦지 않게 찾아온다.

『”그러고 보니 내 어렸을 적에 마을이 모조리 쓸려나갈 정도로 토사가 덮친 적이 있었지, 그때 움막 자리들을 새로 정하는데, 우리 큰언니가 쩌어기 저쪽에다 터를 잡았어. 땅 밑에 짜 맞춘 것 같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모전(模塼)으로 된 지반이 있었거든. 지금 생각하니, 소협이 찾는 곳이 그곳이 아닌가 싶수.”』

결과적으로 노파가 말한 ‘저기 저쪽’의 아래에 정말로 위철진의 무덤이 있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으로 위철진의 무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철진의 잔존 사념과 접촉해 무공의 진일보를 이루고, 마환단의 원류가 되는 정체불명의 영단을 손에 넣는다.

‘그렇다면 나는 원작에서 제갈가의 소무후나 은하연이 겪은 시행착오 없이, 처음부터 주인공 정현이 밟은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으면 된다.’

물론, 결은 좀 다를 것이다.

‘무림학관의 검술천재’의 주인공 정현은 ‘선’ 그 자체.

옳은 일이라 생각되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고,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 앞을 꼿꼿이 막아서는 대나무 같은 녀석이다.

‘제삿밥 없는 제사는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정현 같은 인물은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지.’

아. 나는 이미 죽었다 깨어났나?

거봐라 안 됐잖아.

뭐, 아무튼.

순수한 의도로 퇴기촌 사람들을 도왔던 주인공 녀석이다.

노파들에게 앵속을 뿌리고 다니다 보면 정신이 돌아온 노파 중 한 명이 위철진의 무덤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하는 나는 그 결이 좀 많이 다르다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내 쪽은 위선이지.’

하지만 위선이라 하여 나쁠 게 있나?

원래라면 주인공 세대가 이곳을 찾는 시점은 이 년하고도 육 개월 정도 뒤.

그 기간이 한참 앞으로 당겨지니 노파들은 괴질이 주는 통증을 잊을 수 있는 약재를 훨씬 빨리 얻을 수 있어서 좋고.

‘나는 강해져서 좋고.’

꿩 먹고 알 먹고인 데다, 원작이 뒤틀림으로 인해 발생할 나비 효과의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원작에서 위철진의 잔존 사념이 주인공인 정현과 접촉했을 때, 분명히 혼자서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벽이지만 조금 도와주겠다 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미리 좀 주워 먹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생각은 여기까지.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건 딱 퇴기촌에 모셔다 드리는 것까지예요. 누가 누구고 어디에 살고 이런 건 저도 잘 모르거든요. 기명(妓名)이라도 아셔야 할 텐데요?”

제 일인 듯 미간을 좁히며 질문을 던져오는 춘앵을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기명도 모르고 인상착의도 알지 못하오. 그러니 사실 내가 찾고 있는 노파 한 명을 콕 찝을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다고 봐야지.”

원작을 몇 번이나 정주행한 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퇴기촌의 움막마다 도로명 주소가 따박따박 붙은 것도 아니고, 백성들이 지문 등록들을 꼬박꼬박하는 시대도 아니니, 사람 하나를 콕 찝어 낼 수는 아무리 나라도 없다.

“…예? 그럼 어떻게 앵속을 전해 주시려고요?”

“내가 찾는 노파가 여기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오. 그리고 내겐 충분한 앵속과 시간이 있지.”

근데 굳이 콕 찝어 낼 필요가 있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천녀의 머리로는 이해가 잘….”

“굳이 한 명을 딱 찾아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요. 퇴기촌에 적을 두고 있는 모두에게 앵속을 한 줌씩은 다 나눠줄 거라는 이야기고. 그럼 그중에 내가 찾는 노파가 무조건 있지 않겠소?”

그냥 모두에게 앵속을 뿌려서 모든 경우의 수를 충족시키면 되잖아?

“아! 그런 방법이…! 가 아니고… 예에?! 그럼 금액이 엄청났을 텐데요?”

뭐, 저건 춘앵이 퇴기촌 아래 초대 천마와의 기연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다.

아마 위철진의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다면 억만금을 싸 들고 달려올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을까?

‘물론 그 줄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칼부림이 나겠지만.’

그치만 춘앵에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말해줄 이유는 없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릴 말을 금세 떠올려 내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청난 금액이라는 게 상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건 춘앵 당신도 잘 알 텐데?”

춘앵은 명승지로 이름 높은 태호의 기녀니 돈을 물 쓰듯이 쓰는 풍류공자를 익히 봤을 것이다.

‘물론 내 경우엔 이 돈의 출처가 내 쌈지가 아니라 은하연의 쌈지에서 나온 것이라 좀 더 쿨하게 플랙스를 시전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

예상대로 내 말을 들은 춘앵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내 예상이 완벽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그야 그렇긴 하죠. 다만 제가 보아 온 사람들은 자신의 보신이나 향락을 위해 금은을 뿌렸는데, 오롯이 남을 위해 베푸시는 공자님을 뵈오니 감회가 남달라서요.”

“감회가 남다를 것까지야….”

“있죠! 정파 무림인이라는 족속들 얼굴만 번듯하게 까고 다니지, 실상은 그저 젠체하는 강도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자님 같은 분도 있었네요. 말로만 듣던 협객이실까요?”

“…협객은 무슨.”

그렇게 열린 춘앵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협객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로 이어졌으니까.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질 것은 예상치 못해서, 그 바람에 낯이 상당히 간지러워져 버렸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쁠 것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은하연이라면 반드시 내 뒤를 쫓아 보겠지.’

원작에 나온 그녀의 성정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정무학관에 들어갈 준비를 하겠다던 사람이 왜 태호의 퇴기촌을 찾았는지 파들어 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위철진의 ㅇ이라도 세상에 나오면 진짜 개판이 되겠지.’

하지만 협객이니 협행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내 행보에 붙어 있다면?

은하연 입장에선 내가 그녀를 도운 것도 일종의 협행으로 비칠 테니, 깊이 파고들지 않고 ‘언용운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구나’하고 겉을 핥는 수준에서 그치겠지.

그런 생각을 토대로 나는 굳이 춘앵의 오해를 정정해 주지는 않은 채, 잠시 동안 낯이 뜨거워지는 칭송을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낯 뜨거운 예찬을 들으며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점점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스산하고 비루해지고.

고래등 같던 기루와 휘황찬란한 등롱을 달고 호수를 누비던 유람선들이 수를 놓아 흥청거리던 태호변의 풍경과는 정반대가 되어 가더니.

어지간한 비위로는 절로 코를 싸쥘 수밖에 없는 비릿하고도 시큼한 썩은 물 내가 가득하고, 토지는 찰박찰박 기분 나쁘게 가죽신의 밑창에 들러붙어 오는 곳에 이르러, 춘앵의 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여기가 태호의 퇴기촌이에요.”

“그렇구려.”

“무덤덤하시네요?”

“그럼 뭐 헛구역질이라도 할 줄 알았소?”

“약간은요?”

이래 봬도 내가 썩어가는 시체들과 한평생을 살아봤던 사람인데 이 정도쯤이야.

그런 생각하에 나는 그저 피식 웃어 보였고, 춘앵은 그런 내게 허리를 접어 인사를 건네왔다.

“아무튼 천녀의 안내는 여기까지로 할게요. 아울러 이곳 출신으로서 대협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를 올립니다.”

“감사 할 것 없소.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니. 대협은 무슨.”

“저도 저 좋자고 하는 감사 인사니 받아주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참 나 원.”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번 목례를 보내온 춘앵은 내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온 길을 잰걸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홀로 남게 된 나는 짊어 멘 등짐에서 앵속이 든 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태풍까지 갈 것도 없이 어지간한 강풍이나 폭우만 와도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움막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 * *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애초에 시대가 찾은 손님을 박대하지 않는 게 미덕인 시대였고.

명색이 사령왕인지라 시체 썩는 냄새에도 숱하게 맡아온 나였기에, 물썩은 냄새나 스산한 풍경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였다.

하여, 나는 퇴기촌의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갑자기 퇴기촌을 찾은 멀끔한 외지인을 조금은 경계할지라도, 자신들을 천대하는 기색이 없으니 오히려 호기심이 동해 말이라도 들어보자는 분위기가 되었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이용해 퇴기촌의 주민들에게 각각 앵속 한 줌을 내어 드리며 ‘예전에 퇴기촌이 모조리 쓸려나갈 정도의 토사가 덮친 적이 있지 않느냐?’하고 물었다.

그러고 나면 나름의 답들이 돌아왔다.

“…미안허이. 나는 모르는 일이야.”

자기는 여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는 말을 하는 노파가 제일 많았다.

“아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 다들 집터를 새로 정했다고 하던데….”

“그랬지, 휩쓸려 내려간 세간 찾느라 한눈 좀 판 사이 좋은 자리는 눈치 빠른 인간들이 다 채가서 도랑 옆에 집터를 잡았는데, 비가 내릴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내가 물은 사건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는 갖고 있지 않은 노파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고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줄여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찾던 답을 가지고 있는 노파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랬지! 그때 토사가 무지막지하게 덮쳐서 난리가 나서 움막 자리들을 새로 정했지. 우리 집이 제일 좋은 자리를 잡았었어, 큰언니가 터를 잡았는데, 땅 밑에 짜 맞춘 것 같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모전(模塼)으로 된 지반이 있었거든.”

“거기가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 * *

노파가 알려준 위치를 찾아와 보니, 빈민가의 사람들이 일종의 쓰레기장으로 쓰는 듯한 장소가 나왔다.

“…지금은 아무도 안 산다더니. 이런 이유였나?”

아니 근데 원작에선 쓰레기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원작의 인물들이 이곳을 찾는 건 두 해쯤 뒤니 그사이 무슨 사정이 생기나 보지.”

아무튼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일차적으로 위철진이 자신의 무덤으로 삼은 굴방은 땅 아래 있으니, 찾으려면 문자 그대로 삽질을 좀 해야 할 텐데.

지금이나 미래나 쓰레기장은 님비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라, 찾는 사람이 드무니 야밤에 삽질 좀 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었고.

“어디 보자, 태호가 있는 곳을 등지고, 좌측에는 도랑이 우측에는 머리 잃은 돌부처가 있다 그랬으니까. 음, 이 근처인가 본데?”

결정적으로 고대의 쓰레기장이란 게, 무연고 사체가 아무렇게나 묻히는 곳인지라….

“일어나라!!”

나를 도와 땅을 파줄 수 있는 종속이 되어 주실 수 있는 고인들이 제법 많이 잠들어 계시다고나 할까?

그어!

그어어어!!!

“거, 제군들?”

그으?

그어어?

“일이 끝나면 위령제는 확실하게 지내드릴 테니, 땅 파는 것 좀 도웁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