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0화 (10/444)

제10화. 우리의 기연을 찾아서 (3)

십여 구의 썩다 만 송장들이 내 부탁에 따라 분업화를 하여 땅을 판다.

그어!!

앞줄의 송장들은 질은 흙을 열심히 파 내려갔고 뒷줄의 송장들은 거기서 나온 흙을 옮겨낸다.

그어어어!!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파 내려가는 송장들.

심약한 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심장 마비에 걸릴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나는 근처에 있는 나뭇등걸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세계에선 숱한 던전 탐사 & 레이드로 지친 현대 헌터들 사이에선 불이나 물을 보고 멍하게 있는 불멍이니 물멍이니 하는 것이 유행했었는데, 개인적으론 좀-멍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음.

근데 피부에 흐르고 있는 저 정체 모를 액체도 땀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

뭐, 아무튼.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쳐서 내 입이 저절로 열렸다.

“슬슬 위철진이 잠들어 있는 무덤의 입구가 보일 때가 됐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정보의 기반은 원작 소설이니 위치가 틀렸을 리는 절대 없고.

송장들이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 지 벌써 시간이 제법 되어, 태호 빈민가의 쓰레기장 한편엔 슬슬 참호로 써도 좋을 법한 깊이의 고랑이 생기려는 참이니.

슬슬 위철진의 무덤의 입구나 천장이 발견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어?! 그어어어!!!

아니나 다를까.

가장 앞 열에서 흙을 파내고 있던 썩다 만 송장 중 한 명이 삐뚤린 턱을 덜컥이며 자기주장을 해왔다.

“예?! 손에 뭐가 걸리는 거 같다고요?”

그어!!

그 주장에 몸을 벌떡 일으킨 나는 곧바로 작업 전선의 일선으로 나가보았다.

“오. 맞는데?! 제대로들 찾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원작에서도 읽은 바 있고, 퇴기촌의 노파에게서도 들은 바 있는 귀가 딱딱 들어맞는 모전(模塼)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단박에 입구를 찾은 거 같습니다?”

벽돌 모양으로 잘라놓은 돌들이 冂 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와중에, 가운데 부분만 토사로 메워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입구를 막아 두었던 석판이 소실된 와중에 세월이 흐르며 토사들이 그 구멍을 메우는 바람에 저 모양이 된 것인데, 원작에서도 딱 저렇게 묘사가 돼 있었다.

“…근데 오래된 고분이라 그런가 입구가 많이 부실해 보이는데 무너지진 않겠지?”

뭔 백 년도 안 된 무덤에 고분은 고분이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는데.

이 무덤이 작중에선 통칭 위철진의 무덤이라 불리지만, 사실 무덤 자체가 만들어진 시기는 위철진의 시대에서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먼 옛날 중원이 남조니 북조니 하며 나뉘어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어떤 황족의 무덤이라는 설정이니까.’

그 무덤에서 어린 위철진과 절름발이 두타승이었던 그의 스승이 터를 잡아 살았고.

곤륜논검이라는 사건에서 당시 정파의 하늘이라 떠받들리던 고수들의 합공으로 양패구상을 당한 직후,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직감한 위철진은 다시 이곳을 찾아 홀로 숨을 거둔다.

뭐, 아무튼.

찾기는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눈앞의 토사만 좀 파낸 뒤, 고분 깊숙한 곳에 있을 묘실에서 위철진의 유해와 유산만 마주하면 끝.

“단내가 난다. 단내가 나.”

이 냄새를 못 맡으니, 춘앵은 이곳의 공기가 역하게 느껴지는 거지.

나는 씨익 웃으며 다시금 나뭇등걸로 돌아와 비스듬히 걸터앉은 뒤.

“자. 자. 안쪽은 튼튼하다고 알고 있는데, 입구 쪽은 좀 부실해 보이네요. 지금부터는 앞 열의 분들은 좀 조심스럽게 파주시고, 뒤 열의 분들은 근처에서 돌맹이를 좀 주워 와 주세요. 축대를 쌓아서 보강을 좀 해야겠습니다.”

손뼉을 짝짝 쳐 송장들을 독려했다.

* * *

찾아낸 입구의 양옆을 송장들이 주워온 돌멩이와 진흙으로 보강을 하며, 입구를 막고 있는 토사를 파내는 데엔 한 시간, 여기 식으로는 반 시진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고분의 입구를 막고 있던 토사를 모두 걷어내고 나니.

사람 서넛이 나란히 지나도 될 법한 제법 넓직한 통로가 드러났다.

“자, 그럼 가보실까?”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송장들을 앞세워 그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우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이 고분의 안쪽에 꿀이 있단 소문을~

한데 내가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채 한 소절을 지나기 전에 통로의 한편에서 철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녹이 슬을 대로 슨 철창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푹!

푸푹!

황족이니 왕족이니 하는 지체쯤 되는 분들의 무덤쯤 되면 으레 설치되는 기관이 발동한 것이다.

‘…어우. 이건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 아니 파상풍 각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인 정현과 언용명이 뭣도 모르고 이 무덤에 진입했다가 식겁을 한번 하고는 정무학관에서 배운 기관진식 수업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묘실 안으로 나아간다.

아직 정무학관에 발을 들여보지 못한 나인지라, 녀석들처럼 무덤의 형태와 석재들의 마감 면을 보고 기관의 설비를 파악하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끄엌?!

창날이 꽂힌 대상은 어차피 내가 아니라 앞서 걷던 송장 중 한 명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지금 송장들을 부리는 방식은 압도적인 암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로 언데드들을 완전한 종복으로 삼았던 전생과 달리, 구천을 떠도는 근처의 사혼들에게 한을 풀어주겠다 회유하여 부려 먹는 방식이었고.

끄어!!

끄어어어어!!!!

“뭐라고요? 아플까 봐 무섭다고요?”

송장들 또한 비교적 죽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양반들이 대부분이라, 약간의 불만들이 터져 나오긴 했다.

“참 내. 살다 살다 언데드가 아플까 봐 무섭다는 소리를 다 들어보네! 그거 그냥 기분 탓이에요! 저기 창에 꿰이신 선생님?”

꿔?

“아프진 않죠?”

…끄어. 끄어어어.

“거봐요. 아프지는 않으시다잖아요. 좀 놀라셨을 뿐이지.”

끄어어 끄으어어!!

끄어어 끄어!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라고요? 약속이 다르다고요? 삐뚤린 턱들도 뚫린 입이라고 잘도 주장들을 하십니다들?”

왕년에 사령왕이다 일인군단 불리던 내가 땅속에서 썩어가던 양반들이랑 이렇게 연봉 협상 테이블 비슷한 것을 차리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뭐라고들 할까?

‘뭔, 사령왕이라는 양반이 시체들 비위를 맞춰주고 있냐고 그러려나?’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사실 저치들을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종복으로 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랬다간 알량한 내력이 금세 바닥나겠지.’

흑마법의 효율이 좋지 않은 세계고, 몸이 머금고 있는 내력 또한 대단치 못하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런 식으로 내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저 주장들을 쉽게 잠재울 방법도 있고.’

한국에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곱다는 옛말이 있는데, 내 부름에 몸을 일으킨 사혼(死魂)들 전원이 때깔이 곱지 못한 양반들이었다.

‘못 먹고 못 입어 돌아가신 양반들.’

하여, 저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못 입고 못 먹어 본 것들.’

짊어 멘 등짐에 들어 있는 은자가 충만하고 안쪽의 묘실 안에 진입하면 얻을 수 있는 기연은 억만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것인데, 약간의 지출쯤 더 못할 것도 없었다.

“원래 차려 드리기로 했던 제사상에, 당과랑 소고기 추가하고, 함께 불살라 드리기로 한 무명은 비단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끄어어어 끄어 끄어어?

“…뭐요? 쓰는 김에 좀만 더 쓰라고? 이 양반들이 오냐오냐해드리니깐 욕심이 끝이 없네?! 아, 관둬! 관둬!! 더 이상은 나도 안 돼! 싫으면 관두세요들! 구천을 떠도는 분들이 당신들밖에 없을까?!”

협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자신들의 처지와 내 제안을 잠시 고민해본 송장들은 언제 불만을 표했냐는 듯 묵묵히 앞서서 모전 석굴을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의 뒤를 가만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 나는 고분 안에 설치된 기관들을 견학하며 쉬이 피할 수 있었다.

피슝! 피슝!

피슝!!!

끄엃!!

“독침?”

무슨 독이길래 피부가 녹지?

저런 건 유통 기한도 없나?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쯤 약효가 다 날아갔어야 하는 거 아냐?

화르륵!!

화르르륵!!!

끄으어어어어!!!

“얼씨구 화염 방사를 하는 것도 있어?”

있을 건 다 있네 진짜.

“어지간한 테마파크로는 비비지도 못하겠다.”

그렇게 하나둘 줄어가는 송장들이 생전에 믿던 종교에 맞추어, 관세음보살님과 태상노군을 번갈아 중얼거리며 석굴을 걸어 나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길었던 석굴이 끝나고 탁 트인 석실이 나를 맞았는데.

빛 바랜 사방신이 사면에 그려진 그 석실의 중앙엔 백골이 되어서도 꼿꼿이 가부좌를 튼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위철진이 있었다.

“찾았다.”

* * *

원작에선 주인공인 정현과 언용명이 이 묘실에 이르렀을 때 곧바로 진법이 발동된다.

앞에 설치되어 있던 기관들이 본디 황족의 릉이었던 고분에 기본적으로 붙어 있던 기본 옵션이라면.

진법은 위철진이 직접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제법 지독한 진법이었지.’

그 진법은 안에 들어온 사람의 기억을 헤집어 가장 고통스러울 기억을 매개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환상을 보여주는 진법이었는데.

언용명의 경우는 형인 언용운, 그러니까 지금 시점으론 나를 제 손으로 죽이는 순간이 펼쳐졌고.

정현은 지금까지 연을 쌓아온 주변 인물들이 타락하거나 마인이 되어 제 손으로 베어야 하는 환상을 보게 된다.

진식을 깨는 방법은 따지고 보면 단순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눈앞의 환상을 베고 또 베다 보면 어느 순간 진식 자체가 깨지게 되어 있는 것이었으니까.

‘근데 마음이라는 게 다스리기가 쉽지가 않지.’

하여, 유정권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닌 언용명은 환상임을 인지하고서도 마음이 흔들려서 환상 속에 계속 잡혀 있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인 정현은 아니라고 생각되면 제 사문의 사조, 사숙, 사형들의 앞도 단호하게 막아서는 인물인지라, 진식을 깨부수고 위철진의 잔존 사념과 접촉한다.

‘그리고 무공의 진일보를 이룬다.’

음.

뭐라 그러면서 가르쳐 줬더라?

‘위선자들의 후예인 것은 거슬리나, 따지고 보면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니 한 수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다.’라고 그랬던가?

뭐, 아무튼.

이곳에는 그런 진식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작중의 인물들과는 달리 진식의 환상 속으로 곧바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하기는.”

대저 진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정신과 오감에 간섭하여 환상을 겪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내 영혼엔 정신 공격에 대한 면역이 새겨져 있었다.

하여 나는 곧바로 진식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고, 그 대신 진식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였다.

그런고로 내겐 선택지가 있었다.

‘막말로 그저 도굴이 목적이었으면 여기 이 대마환단만 챙겨서 그냥 고분을 나가도 되는 거지.’

오랜 헌터 생활의 경험에 의하면, 문이 보이는 이상 단순히 진식 안으로 드나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위철진의 잔존 사념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내겐 그렇게 되지 않을 계획이 있었다.

‘원작의 묘사된 바에 의하면 나랑 성격이 은근 비슷했어.’

하여 그 양반이 생의 마지막 순간 무엇을 원했을지가 대충 짐작이 갔고, 어떤 말을 하면 그 양반의 구미를 당길 수 있을지 각이 보였다.

‘대마환단이라 부르는 마교의 영약의 원류 되는 영단 한 알로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 판 발품의 삯으로 만족이 되지 않지.’

그걸로 만족할 거였으면 굳이 여기를 택하지도 않았다.

아, 물론 고작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마환단이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의 태청단, 화산의 자소단에 버금가는 진귀한 영약이긴 했다.

하지만, 빙의자인 내가 다른 영단을 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데다, 지금의 내겐 그런 영단 자체가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근데 이 약 한 알 하나 딸랑 들고 나가서 뭐 할 건데?’

무공 한 자락 모르는데.

심지어 대마환단을 온전히 내력으로 녹여낼 재간도 당장 없다.

하여, 나는 진식의 문을 스스로 열어젖혔다.

한 자루 검으로 천하 무림을 벌벌 떨게 했던 검마를 스승으로 삼기 위해.

“검마 선생님! 계십니까아?! 거 나랑 일 하나 합시다!!!!”

그로 말미암아 위철진의 무공 전체를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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