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6화 (16/444)

제16화.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2)

내가 휘주로 가면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하자, 사부님께서는 처음엔 의아해하셨다.

- 휘주? 하북의 본가에서도 쫓겨났다던 녀석이 강남에 어찌 연고가 있느냐?

그에, 나는 은하연의 상행단에 동행했던 일들을 축약해서 전해드렸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곧바로 의문을 표해오셨다.

- 휘상의 후계자로 유력한 아해의 목숨을 네 녀석이 구해 주었다고?

“예.”

- 네가 말하는 휘상이 내가 아는 그 휘상이 맞느냐? 내가 아는 휘상은 천하 이대 상인이라 불리며 장강 이남의 돈줄을 꽉 움켜쥐고 있던 작자들을 말하느니라.

“백여 년이 지나서 그 구성원이야 당연히 바뀌었습니다만, 위상은 사부님 시절의 그 휘상과 아마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 ‘그 휘상’의 유력한 후계자를 네놈이 ‘산적’에게서 구해줬다고? 예끼! 이놈아! 허풍을 쳐도 좀 성의 있게 쳐야지!!

…저렇게 축약을 해놓으니 좀 허풍같이 들리기는 하겠는데?

그에, 나는 설명을 해드리고자 입을 열었다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그런 양산형 산적은 아니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그쪽 집안 사정도 한몫했고요.”

- 됐다. 됐어.

“…말씀하시는 투가 전혀 안 되신 것 같습니다만?”

- 그쯤 하면 됐느니라, 내 이미 너를 제자로 들이겠다 스승님께 고하였으니 무를 리가 없거늘 어찌 그런 과장을 하여 스스로를 치켜세우려 하느냐?! 어디 휘주에서 좌판을 깐 장사치라도 하나 아는 모양인데 뭐 그래도 돈을 만지는 작자들일 테니 식객에게 비바람을 피할 지붕과 따수운 식사 정도는 대접해 주겠지, 그러니 허풍은 그쯤 하거라.

…그냥 꾹 다물기로 생각을 바꿨다.

백 년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계셨어서 그런지 고정 관념이 그냥 어마어마하시네.

일단 휘주에 가서 봅시다. 가서 그때 어떤 말을 하시는지 제가 지켜볼 겁니다, 사부님.

그렇게 생각을 바꾼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기기 시작한 걸음으로 산 좀 넘고 물 좀 건너 어느새 당도한 휘주.

백 년간 규모가 족히 네 배는 켜진 것 같다는 휘주의 모습에 감탄하는 사부님을 무시하고.

“이리 오너라!!!!”

나는 그 휘주에서도 가장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고래등 같은 장원을 찾아가 신새벽부터 당당하게 문을 두드렸다.

“뉘슈?”

그러자, 두드린 문에 달린 쪽문으로 종놈 하나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는데.

“이게 뭔지 알겠소?”

녀석에게 은하연에게 받았던 보은패를 내밀고.

“?!”

“혹. 모르겠다면 창휘당에 가서 은정길 표두나 당주전에 내보이면 될 것이오. 손님이 찾아왔다고 좀 전해 줄 수 있겠소?!”

“압니다요! 압니다요!! 다만 제가 백금테가 둘린 보은패는 처음 봐서 잠시 넋이 나갔습니다요!! 이러실 게 아니라 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뫼시겠습니다요!”

“보은패를 가지고 왔다 하나 내 어찌 은휘상단의 문턱을 함부로 넘겠소, 외람되지만 여기 있을 테니 은 표두를 좀 불러와 주시오.”

그 보은패를 받아든 종놈이 제가 연 문도 채 닫지 않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자.

비로소 허리춤의 사부님으로부터 고정 관념이 깨어지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어…?

그에, 나는 사부님을 검에 집어 넣는 바람에 내 쪽이 살짝 말리게 된 사제 관계를 이 기회에 바로잡고자 죽는소리를 시작했다.

“어…? 소리가 잘도 나오십니다 사부님….”

- …아니 그게 말이다.

“…제자가 그~렇게. 진짜라고 했는데도, 제자를 믿지 못하시고 허풍이니 뭐니 하셨으면서?!”

- …아니 내 너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니라… 그 나는 이미 너를 인정하고 제자로 삼았으니, 혹여 내 앞에서 부끄러워할 일은 없노라 뭐 그런 취지에서 한 이야기였지.

“제자는 사부님의 말씀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만들자 하셔도 그러려니 하고 따를 마음이 있는데! 사부님께서 제자를 믿지를 못하시고 틈만 나면 사기꾼 취급을 하시니… 어휴 서러워서 못 살겠네! 서러워서 못 살겠어! 파천검문의 앞날이 어둡습니다 어두워!”

- 우리 사문의 앞날이 어둡기는 왜 어둡느냐?! 그리고 메주는 원래 콩으로 쑨다 이놈아!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더니?! 왜 언성은 높아지십니까?”

- 네놈이 내 내심을 몰라주고 사부가 제자를 못 믿는다 어쩐다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나 원 참.”

- 근데 제자야. 이 와중에 내가 뭐 하나만 물어도 되겠느냐?

“하문하십시오.”

- 그 보은패라는 것 말이다. 고작 식객을 청하는 것에 써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이더냐? 그 패를 들고 간 녀석의 반응에다 휘상의 우두머리 격이라는 이 상단의 입지를 고려하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오.

이 와중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셨습니까?

하긴 그러셔야 제 사부님답죠.

나는 씨익 웃으며 사부님의 하문에 답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곧 다시 돌려받게 될 테니까요.”

- 돌려받는다고?

은하연과의 인연이 엄밀히 말하면 구명지은이라는 것과 원작에 나온 은하연의 성정, 그리고 지금 은하연이 처해 있을 상황을 고려한다면?

‘고작 식객을 청하시는 일에 보은패를 받을 순 없다며 되돌려 주겠지.’

그 과정에서 은하연 안에서의 내 평가는 더 올라갈 것이다.

사부님 말마따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은패를 소박하게 사용하려는 모습으로 비칠 테니.

그때였다.

그런 내심을 사부님께 전달해 드리려는 이때.

종놈에게 들려 보낸 보은패가 돌아왔다.

“…하아. 엉 공자께섴… 흐하…어어쩐 일로호… 핰. 휘주까지…?”

내 예상보다 조금 많이 급한 모습으로.

“…어. 단도직입적으로 어쩐 일로 휘주에 왔는지를 말하자면, 창휘당에서 식객 신세를 좀 지고자 왔소만….”

“글헌 일로호… 보흔패를 받흘 수는 없흐니… 익헌 다시 공자께섴 가직호 있허 주세효.”

“…거, 숨은 좀 돌리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소? 그리고 신은 어쩌고 버선 차림인 거요?”

그에 은하연을 향해 내가 잠시 숨을 좀 돌릴 것을 권하는데.

이 와중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던지셨다.

- 제자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어.

그렇긴 한데.

이건 제 계획보다 좀 많이 급해 보이는데요 사부님…?

* * *

내 말에 황급히 자신의 차림을 되돌아본 은하연은 얼굴을 크게 붉혔다.

“당주님! 반가우신 건 알겠는데, 신은 신고 나가셔얒… 아, 언 소협! 그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금세 그런 은하연을 뒤쫓아온 은 표두에게 신을 받아 신더니.

“이, 이런 꼴을 보여 송구합니다. 별채에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주시겠어요?”

“그리하리다.”

“으, 은 표두는 언 공자를 부족함 없이 잘 모시고 있어 주시고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온 길을 다급하게 되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이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 환대받는 것은 좋긴 하고, 네 예상대로 일은 돌아가는 것 같기는 한데, 저 아해가 휘상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아이라고…? 좀 모자라 보이는데…?

그러게요?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부님의 말에 나도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은하연이 버선발로 나와?’

어느 정도 반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후계자 경쟁 상황이 내 생각보다 많이 어렵나?’

음.

그렇게 되면 수지타산이 안 맞을 가능성이 조금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너무 빡센 청을 해오면 딱 잘라 거절하면 될 테니까.’

하연 코인을 타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큰 개입엔 큰 반동이 따르는 법.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파천검문의 무학을 익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생각들은 모두 기우였다.

나는 은하연을 기다리며 은 표두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은 소저가 나를 좀 과하게 반기는 것 같던데, 눈도 퀭해 보이고? 근래 은휘상단의 후계자 경쟁에서 은 소저의 상황이 많이 어렵소? 아니면 뭐 급히 검수가 필요한 큰일이 닥쳤다거나? 아, 이런 질문은 실례인가?”

“괜찮습니다. 딱히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니까요. 천하에서 돈을 한 푼이라도 쥐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은휘상단의 후계자 이야기를 하는걸요.”

은 표두는 그런 내 질문에 성심껏 답을 해주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하연이 처한 상황 자체는 그리 불리하지만은 않았다.

‘은하연의 세력을 엄청 보수적으로 잡아도 백중세는 되겠는데?’

거기에 당장에 큰일이 닥친 것도 아니었다.

종합하면 창휘당 자체는 무리 없이 돌아가나, 은하연이 정신적 육체적 피로로 좀 몰려 있다 정도인가?

“한데, 나를 이렇게 반긴단 말이오? 딱히 내가 필요하거나 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음, 제가 감히 상전이신 당주님의 속내를 추측해 보자면 그 북록에서 소협께 호통을 들었던 순간이 좋으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아니. 제가 좀 말을 이상하게 해서 당주님께서 괴벽을 가지신 것처럼 말이 됐는데, 그런 게 아니라,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굳이 뭐라고 말하려 하지 말고 그냥 다음에 하려던 말을 하면 될 것 같소.”

“아. 예. 그런 괴벽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저래 봬도 그 상단 내에서 당주님은 항상 결정하고 이끄시는 자리에 계시다 보니 누군가에게 그렇게 직설적으로 의견을 들을 일이 없으셨거든요. 아버님이신 강남상왕께서도 일을 맡기고 결과를 확인만 하시지 질책도 칭찬도 안 해 주시는 분이고. 다른 어른들도 모두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시고 계시니까요.”

“은 표두는 뭘 하고?”

“오 그렇게요. 방금 저를 질책하셨는데, 저는 상전에게 그런 말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간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애초에 당주님의 결정을 판단하고 자시고 할 머리도 그릇도 안 되지만요.”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밥줄 틀어쥐고 있는 사람에게 직언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

아무튼.

그런 은 표두의 말은 몸단장과 의복을 새로 하고 돌아온 은하연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요약하면 식객이 되고자 찾아왔다는 말씀이 그러니까 완전히 제 사람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은 아니고,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이 있기 전까지 수련을 하실 수 있는 비동과 입관 준비를 저희 창휘당에서 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신 거네요?”

“그렇소. 어려운 부탁이오?”

“아뇨. 아뇨. 전혀 어려운 부탁이 아니에요. 소속 호위 무사나 표사들의 수련을 위해 만들어 놓은 비동도 차고 넘치거니와 식객들을 위한 사랑채도 충분합니다.”

그야 당연하겠지.

“아, 물론 언공자를 그런 사랑채와 비동에 모시겠다는 것은 아니고. 혈족에게만 개방되는 비동과 독채를 마련해드릴 생각입니다.”

은휘상단쯤 되는 곳에 식객을 위한 방이나 비동이 부족하려고.

“내가 어렵겠냐 물은 것은 꼭 소저의 사람이 되겠다는 약조를 해야 하느냐요. 그렇다면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아. 그것도 아닙니다. 본디 조용한 곳에서 수련을 하겠다 하신 걸로 아는데, 수련할 장소로 저희 창휘당을 떠올려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다만….”

“다만?”

“…그. 한 번씩 제가 공자를 찾아 무언가를 여쭈면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언? 상인들의 일에 나는 문외한인데? 그리고 소저의 사람도 아닌 내가 그대에게 무슨 조언을 한단 말이오?”

“상인들의 일에 문외한이시고, 제 사람도 아니시기에 해 주실 수 있는 조언도 있으실 거예요. 북록채 때처럼요.”

뭐,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최고급 숙식이 제공되는 수련 환경을 마련해주는 대신 한 번씩 자신의 말벗이 되어달라는 이야긴데 이걸 안 받으면 정신 나간 거지.

그건 백 년 전의 상식으로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보태셨다.

- 이게 고민을 할 문제더냐?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느냐?! 어서 제안을 수락하지 않고?!

에이 사부님.

세상만사가 밀고 당기기라는데 제안이 좋다고 덥썩 물면 너무 속이 보이는 것 같잖습니까?

제자가 알아서 할 테니 좀 잠자코 계십시오.

그렇게 사부님을 잠잠케 한 나는 고민하는 척을 계속했다.

“흐음.”

한데 이게 은하연에겐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진 것일까?

내가 고민하는 척을 끝내고 수락을 하려는 찰나, 은하연의 입이 먼저 열렸다.

“…무, 물론. 애초에 공자께선 보은패를 가지고 오셨고. 제가 그걸 돌려 드렸으니 제 제안이 경우에는 맞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도의 요금을 드릴까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뭐?

요금?

그러니까 친구비까지 내겠다고?

“되오.”

안 될 이유가 무엇이오?

친구비까지 내신다는데.

안 되긴 왜 안 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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