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버르장머리의 상태가?! (2)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운을 최대한 갈무리해내 자신을 따르라는 사부님의 말씀.
말만 보면 추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참 내. 이래서 천재 중 모두가 가르치는 것까지 잘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이게 안 돼?
이 정도는 다들 그냥 하는 거 아냐?
이래들 버리니까.
‘개념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셔야지. 어휴 앞뒤 썽둥 자르고 바로 심화 문제로 넘어가자고 하시네.’
제자로 받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범재였다면 아마 오늘 중으로 파천검문의 문이 닫혔으리라.
하지만 나는 저 단순한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전생에 산전수전 모두 겪으며 정신적인 부분은 트일 대로 트인 나였고.
게다가 내력과 운용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기운을 운용하는 방법인 암륜과 마나를 다뤄본 나였다.
하여, 나는 기운을 갈무리해 내라는 사부님의 추상적인 말을 곧바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다.
‘가자!’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나는 전(前)용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한 줌의 내력을 숱한 실로 가락가락 뽑아내 날뛰고 있는 만박보심단의 기운을 향해 거대한 그물을 던진다는 느낌으로 던졌다.
‘지금!’
그리하여 그 내력의 그물이 단전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기운들에 오롯이 덧씌워졌을 때.
‘가랏!’
쥐어짜듯 그물을 당겨 만박 보심단의 내력을 내가 원하는 지점, 그러니까 사부님의 혼이 서 계신 쪽으로 유도했다.
‘!’
물론, 이 과정에는 극통이 동반되었다.
용암을 삼킨 듯한 극양의 뜨거움이 연신 단전을 지지는 듯했고, 견딜 만하다 싶다는 생각이 찰나라도 들라치면 금방이라도 오장육부를 얼려 터트릴 것 같은 극음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사부님을 몸에 받으려고 했던 순간이 일종의 예방 접종이 되어주었던 것일까?
‘그때 느꼈던 당혹감과 무거움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야.’
다만, 꼴은 좀 사나웠다.
“그그그긐.”
악다물 대로 악다문 이 사이로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느니까.
뭐, 꼴이 좀 우스우면 뭐 어떠랴?
볼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이때.
사람으로 쳐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유일한 관중인 사부님께서 혀를 차며 한마디를 던져오셨다.
- 미친놈.
아니 사부님.
제자는 쌩 식겁을 하고 있는데, 응원을 해주셔도 모자랄 판에 미친놈이라뇨?!
- 이놈아! 내가 최대한 기운을 갈무리하라고 했지 언제 그렇게 오롯이 다 싸잡으라고 했느냐?! 숨구멍이 없는 솥에 계속 불을 때면 뚜껑이 터져 나가느니라!
“크흑…. 그 솥뚜껑이 절대 안 터지는 뚜껑이라면요?”
- 지금 네 녀석이 견디고 있는 극통은 이후로 시작될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니라.
“…그긐. 안 그래도… 슬슬 시원찮은 것 같아서 강도를 조금 올렸으면 했는데 시워언하고 좋겠는데요?”
-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이 시워언하기는 개뿔이?! 그러다 까무러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져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제자야. 용운아.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놓아줄 것은 놓아주거라, 만박보심단에 담긴 공력이 무려 육십 년이다. 놓아줄 것을 놓아주고 네 녀석의 몸속에 꼬인 혈들을 모두 풀어 끼어 있는 이끼들을 모두 털어내도 족히 삼십 년 공력은 남을 것이야.
사부님의 저런 반응.
충분히 이해는 간다.
첫 만남부터 욕심을 부리며 뻗대던 나였으니, 사부님이 보시기에는 이번에도 그런 과욕의 연장선으로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실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의 상식으론 충분히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고.’
이거, 항상 입으로는 이놈 저놈 하시면서 하나뿐인 제자가 탈이 날까 노심초사하시는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구만.
하지만 사부님의 나에 대해 빙산의 일각만큼도 모르신다.
아마 내 걸어온 나날들과 사정들을 모두 인지하신다면 사부님께서도 이 순간을 욕심이라 생각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역으로 낭비가 되는 상황이라고요!’
그러니 이 순간 사부님께 드릴 말은 처음 사부님을 마주하고 뻗대던 순간과 다를 수가 없다.
“…크흨! 처음 사부님을 뵈었을 때도 사부님께선 저더러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하셨죠. 그때 제가 어떤 말씀을 드렸었는지 기억. 하십니까?”
- …그건 ‘욕심만’ 많은 놈의 이야기라고 하였지, 그 말인즉, 이번에도 네놈은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 이 말이렷다?
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셔도, 내 성정을 대충은 아시겠지.
그러니 제자의 자기주장은 여기까지.
이제는 한 톨의 생각도 미쳐날뛰는 공력 통제하는 데 사용하여 사부님이 짚어 주시는 길을 따르는 데 써야 한다.
나는 온정신을 집중해 만박보심단의 공력을 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벼림이 끝이 나, 육십 년 내공을 혈도를 향해 쏘아 보낼 준비가 끝이 났을 때.
- 오냐. 그렇다면 어디 한번 감당해 보거라! 오늘 파천검문이 문을 닫든 아니면 천하의 독종을 보든 둘 중 하나는 이루어지겠지!
사부님의 혼이 한마디 말을 던지시곤 혈도를 짚어 나가시기 시작했다.
* * *
내력을 운기하여 체내의 길을 한 바퀴 돌려내는 것을 주천이라 한다.
타는 맥에 따라 일반적으로 소주천과 대주천으로 나뉘는데, 뭐 그런 분류가 당장에 중요한 건 아니고.
- 멍청히 따르기만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지금 따르는 이 길을 뼈와 혼에 새겨넣어야 하느니라.
처음 주천과 이후 이어진 몇 번의 주천에서는 사부님의 음성이 또렷이 들렸다.
- 꼬여 있던 혈맥들이 거의 다 풀려 가는구나,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파도가 네 안에서 돌기 시작할 것이니, 나와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당황지 말고 그 파도가 고요해질 때까지 파천신공을 운용하거라.
그러나 어느 순간 사부님의 말씀처럼 사부님의 음성이 또렷이 들리지 않는 순간이 왔다.
내가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머릿속에서 폭풍이 일면서 끊임없이 천둥을 쳐대니 사부님의 음성을 잡아내기가 어려웠고.
그러는 와중에 오장육부와 사지 오체가 번갈아 가며 화탕지옥과 한빙지옥을 오가니 더더욱 신경 쓰기가 어려웠다.
이때부터는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고될지언정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파천의 심결을 뼈와 혼에 새긴 수준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내 정신은 예상대로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하여, 나는 혼자서도 계속하여 파천의 심결대로 내력을 운용하여 주천을 이어 나갔는데, 어느 순간 머릿속의 폭풍과 번갈아들던 극양의 열기와 극음의 한기가 우뚝 멎었다.
“!”
그렇게 만박보심단의 기운을 오롯이 소화해낸 나는 마침내 아껴왔던 숨을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아.”
기분으론 족히 몇 년은 묵었다 내쉬는 듯한 기분이 드는 큰 숨의 청량감을 느끼기도 잠시.
회한 속에 들어 계신 사부님이 웅- 웅- 말을 걸어오셨다.
- 저, 정신이 드느냐?
“들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정신은 멀쩡했으니까요.”
- 그런 것치고는 중간부터는 내 말이 닿지 않는 듯하던데?
“예. 그건 그랬습니다. 머릿속에서 뭐가 계속 꽈강거리는 탓에.”
- 하여, 몸은 어떠하냐?! 욕심을 부린 만큼 만박보심단은 소화를 해냈더냐?!
몸?
그러고 보니 몸이 깃털같이 가벼웠다.
‘이게… 나…?’
그럼 지금까지 알던 것은…?
언용운의 몸에 빙의된 뒤 지금까지 쭈욱 나는 이 몸뚱어리가 나름 무골이라 생각해 왔는데, 그건 사실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 있는 상태였다는 게 지금 확인됐다.
‘가볍다.’
굽어 있던 뼈마디가 새로 맞춰진 것인지 앉은 자세에서 보이는 시선의 위치도 올라간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전 안에 똘똘 뭉친 내력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 즉시 소매 속의 전낭 중 잔돈을 넣어두는 것을 끄집어내 철전을 하나 꺼낸 뒤 손가락만으로 우그려 보았다.
우깆-
아니나 다를까 철전이 성분값을 못하고 여름철의 엿가락처럼 구겨졌다.
본디 쥐꼬리만 하던 단전 속 내력이 크게 늘었다.
즉시 전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만 삼십 년 공력이었고, 남은 삼십 년 공력도 날아간 것이 거의 없이 체내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
‘이건 앞으로 서서히 내 것으로 녹여가면 되겠지.’
나는 씨익 웃으며 사부님의 질문에 답했다.
“몸은 새털 같습니다. 만박보심단의 기운은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든 것은 삼십 년 정도지만, 갈무리를 해놓은 것까지 치면 몇 방울 빼고는 크게 손실이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캬하하하!! 생전에 제자 삼아달라던 놈 중에 눈에 차는 놈이 한 놈도 없더니만, 너를 만나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 객기를 기어이 부려내고야 말았구나! 네놈의 독종기에 이 사부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느니라!!
“그러게 제자를 믿으시라니깐.”
- 오냐! 오냐! 내 오늘은 네가 나를 향해 무슨 투정을 부려도 이해를 해줄 것이니라!
“참 내, 그렇게 좋으십니까?”
- 험험! 내가 뭘 그리 좋아했다고 그러느냐! 아니 근데 천하의 독종인 정신력에 뼛골 또한 훌륭한 놈이 그동안은 뭘 하고 자빠졌었길래 몸이 그 모양 그 꼴이 되도록 썩혔단 말이냐?
아.
사부님께서 너무 좋아하시길래 좀 놀려드리려 했는데, 영 좋지 않은 질문을 던져오신다.
나는 은근 슬쩍 말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에이, 과거가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죠.”
- 그야 그렇긴 하다만.
“그런 의미에서 처음 사부님께서 꼬인 속을 정리하고 나면 족히 사흘은 정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사문의 영단이 제자의 체질이었나 본지, 지금 당장도 할 수 있을 성싶은데요?”
- 그래 보이는구나. 체질에 맞았을 수도 있고 만박보심단의 기운의 전체를 소화해 낸 덕일 수도 있겠지.
“예. 몸 상태가 눈을 뜬 이래 가장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죠 사부님? 제자는 달릴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아니, 너는 아직 다음 단계를 달릴 준비가 되지 않았느니라.
“예? 내력을 돌리는 경로도 익혔고, 만박보심단도 소화했고, 몸 상태도 최상인데요?”
- 네놈에게서 참아주기 힘든 냄새가 나느니라.
그 말에 무복을 내려다보니 본디 하얗기 그지없었던 무복이 시궁창에라도 담근 듯 거무죽죽했다.
“?!”
아무래도, 만박보심단의 공력을 소화하고 엉망이 된 속을 고르는 동안 체내에서 노폐물이 밀려 나와 무복에 베인 모양이었다.
- 코를 싸쥘 손이 없으니 참아주기가 힘이 드는구나, 잠시 처소를 다녀오자꾸나. 거기서 네놈은 우선 목간을 하거라, 아 그 시비에게 목간 물을 부탁할 때 술도 한 병 좋은 놈으로 꼭 청하도록 하고.
“…아주 맛이 들리셨네요.”
- ?
“…잡수시려는 거 아닙니까?”
- 이놈아 내 너를 제자로 받았다 하나 이제야 무학을 전수한 것 아니냐?! 네게는 조사님이 되는 만박두타 스승님께 너와 내가 한잔 올려야지! 이놈이 누구를 술꾼으로 아는구나?!
“아니 어제 그 향만 맡고도 무슨 무슨 술이다 일장 연설을 하시길래…. ”
- 갈!!!
“아 갑니다 가요!”
그때였다.
그렇게 사부님과 티격태격하며 비동의 문을 하나 그리고 둘까지 열은 이때.
은 표두가 지키고 서 있을 문 밖에서 소란 소리가 들려온 것은.
“비켜.”
“못 들어가십니다.”
“내 집에서 내가 들어가지 못할 곳이 있다고?”
“단주님과 창휘당주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성휘당주님이라도 허락 없이 들어가실 수는 없지요.”
“…하, 아버님과 누님의 이름을 내세우시겠다? 정길 형님. 내가 형님 형님 해드리니까 진짜 본인이 형님 같으신가 봐? 야 은정길. 당신 줄을 잘 서는 게 좋아, 누님의 천하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아? 조만간이야 조만간. 그 조만간이 오면 당신은 끈 떨어진 연이라고, 내가 같은 은씨라고 해서 당신같은 방계 사람을 봐주고 그럴 것 같아?”
음.
창휘당주면 은하연인데, 그런 은하연을 더러 누님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밖에서 염병을 떨고 있는 놈은 보아하니 은하연의 동생 같은데.’
그렇다면 끈 떨어진 연이 될 녀석은 너 아닐까,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