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0화 (20/444)

제20화. 역사적으로도 그게 약이었죠? (2)

내가 우둑우둑 주먹을 풀며 한 수가 아니라 삼십에서 사십 수쯤을 친히 알려 주겠다는 말을 전하자.

가장 먼저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내게 우려를 겸한 질문을 던져오셨다.

- 한데, 제자야. 저 은하성인가 뭔가 하는 잡놈의 기골을 보아하니, 능히 기를 다뤄 내는 이른바 고수 반열에는 확실히 들어간 녀석으로 보이는데, 괜찮겠느냐?

참 내, 사부님 이 제자를 아직도 못 믿으시는 겁니까?

슬슬 서운해지려고 하는데요?

- 이놈아. 내 걱정은 네놈이 생각하는 그런 유형의 걱정이 아니니라.

‘그럼요?’

- 네가 저 개망나니 놈을 아주 잡을까 봐 그런다. 돌아가는 판국을 보니 저놈을 아주 잡아 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아, 걱정하시는 쪽이 그쪽이셨습니까?

아주 잡아 버린다는 말씀은 그 저승으로 보내 버리는 상황을 말씀하시는 거고요?

- 그렇느니라! 네 녀석도 감은 올 텐데? 내가 일러준 파천신공의 위력이?

알죠.

아주 잘 알죠.

만박보심단이 제아무리 천하의 영단이라 할지라도, 파천의 심결이 만들어내는 패도적인 기운이 없었다면 꼬여 있던 내 속을 바로잡지 못했으리라.

무당파의 무공의 근본이 태극에서 기인한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이라면.

우리 문파의 것은 역천 그러니까 거스르는 힘에서 기인한 사량파천근(四量破千斤)이랄까?

한 줌의 내력으로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부님의 우려대로 단전에 자리 잡은 내력을 뿜어내 심결대로 뿜어내기만 해도 아직 호신강기를 몸에 두르지 못하는 눈앞의 은하성 같은 녀석은 몸통에 구멍이 뚫릴 터,

그러니 사부님의 우려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우려는 그야말로 노파심이셨다.

‘저 정도야 삼재검법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 ???

전생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에 비하면 모래주머니를 덕지덕지 단 것았던 몸 상태로, 줄줄 새는 똥연비의 유사 검기를 사용해 녹림칠십이채의 두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방천덕을 베었던 나였다.

‘그것도 이 동네 기준으론 저잣거리에서 닷 푼이면 살 수 있는 삼재검법에 해당하는 검초로 해냈지.’

물론, 그때 약간의 편법을 쓰긴 했지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때와 일종의 환골탈태를 거친 지금의 몸 상태가 또 천지 차이였다.

거기에 지금도 여차하면 그런 ‘편법’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상대의 질이 크게 하락했다.

‘겉보기엔 영약에 삼시 세 끼에 좋은 것만 먹고 자란 은하성 쪽의 근골과 내력이 방천덕의 그것을 웃도는 것으로 보이지만.’

살겁깨나 겪어본 듯했던 방천덕에 비하면 눈앞의 은하성은 인간성의 가벼움만큼이나 뿜어져 나오는 예기 자체도 무뎠다.

하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저런 화초 같은 도련님은 한 트럭 아니 달구지로 몰려와도,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일신의 실력과 늘어난 내력만으로 적절한 강약 조절로 참교육을 선사 할 수 있으리라.

뭐, 아무튼.

내가 그렇게 사부님의 노파심을 상대하며 참교육을 진행하기에 앞서 하루 종일 가부좌를 틀고 있느라 뻣뻣해진 몸을 부산히도 푸는 사이.

안 그래도 삐딱했던 은하성의 눈썹이 점점 더 삐뚜름해져 가더니 어느 순간 녀석의 입이 열렸다.

“하. 뭐 하는 새끼지 이거?”

그런 은하성의 음성 속엔 감히 내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는 광오함과 알아서 기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속에 숨은 뜻을 진즉에 알아챘지만, 은하성의 속을 긁기 위해 짐짓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혹시 붕어냐? 네가 네 입으로 조금 전에 백금테를 두른 보은패의 주인이 나냐고 물었잖아? 내가 아마 그럴 거라고 답해줬고. 그새 그걸 까잡숴? 제 누나는 총기 있기로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더니 동생 쪽은 영 썩박이구만?”

“써, 썩박?”

“박이 썩었다고. 띨띨한 친구들한테 이따금씩 쓰는 말이야, 아 참고로 박은 네 머리다?”

“하. 하하하하!”

내 도발에 은하성은 잠시 동안 미친 듯이 웃었다.

하여, 나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

그러자, 은하성은 뚝 하고 웃음을 그치더니 이를 감가 동시에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뭐 하는 물건이지 이거? 천지를 분간 못 하는 밥 말아 먹은 눈치도 그렇고, 행색도 그렇고, 그 손을 푸는 꼬라지와 못 배워 먹은 말본새도 그렇고 천박하기가 딱 거지 같긴 한데. 허리춤에 매듭이 없는 걸로 봐서는 개방 쪽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엥?

천지를 분간 어쩌고 하는 대목부터 눈치를 밥 말아 먹었다는 대목까지는 자기소개 아냐?

그렇게 이죽거림으로 운을 뗀 은하성은 천천히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제 놈의 뒤틀린 기준으로 재단하기 시작했다.

“아. 알겠다. 그 기생오라비 같은 면상을 보아하니, 남의 집 안채라도 함부로 넘나들다 시궁창으로 숨어 나오시기라도 한 모양이군?”

개소리도 저런 개소리가 없어서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하겠기에, 나는 그냥 생각을 포기한 채 ‘그래. 네 재단질의 끝이 어떻게 나나, 거 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팔짱을 끼고 가만히 경청을 했는데.

나를 향한 은하성의 재단은 이내 곧 끝이 났다.

“누님도 고고한 척하시더니만 별 같잖은 놈에게 홀렸네. 내, 누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은가의 명예를 위해 오늘 네놈에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격언을 일깨워주마.”

대충 예상은 했지만, 녀석은 나를 업신여겨도 되는 사람의 범주 안에 넣은 모양이었다.

뭐, 사람을 삼류 양아치 취급하는 놈의 재단 과정에 심사가 뒤틀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놈이 내린 결론 자체는 환영하는 바였다.

‘깔끔하게 요약하면 은하성이나 나나 서로를 줘패도 되는 대상으로 인식한 거지 뭐.’

나는 씨익 웃으며 은하성의 말을 받았다.

“망상하는 수준 하고는. 뭐, 상상력은 제법 뛰어난 것 같은데, 너야말로 오르지 못할 강남상왕 자리는 그만 쳐다보고. 통속 소설을 써보는 게 어때?”

“뭐?”

“아니다. 그냥 쓰지 마라. 생각해보니 상상력이 뛰어나긴 한데 그 수준이 저급해서, 죽간에 들어가는 대나무나 종이에 들어가는 닥나무에게 미안해질 듯하네.”

같은 호고무원(好高骛远) 그러니까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말란 말을 인용했지만, 은하성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데 반해, 내 경우엔 은하성의 상황을 아주 적절하게 비꼬며 녀석이 내게 쏟아낸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기까지 했다.

스렁!

지금껏 제 앞에서 설설기거나 아부를 하는 인종만 상대했을 은휘상단의 도련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득달같이 짓쳐 들었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도 그런 소리를 내 앞에서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일순 뿜어져 나오는 예기.

저래 봬도 일류의 벽은 확실히 깨부쉈다는 녀석인지라 한쪽 팔이 따끔따끔거려 왔지만, 내 속에선 경악이나 당황이 아닌 쯧쯧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대체 어디를 공격하겠다는 저런 소리는 왜 하는 건지.’

미숙하다 미숙해.

여튼, 그런 은하성의 미숙함 덕분에 찰나의 시간을 벌게 된 나는 은정길 표두를 향해 시선을 날렸다.

‘쟤가 먼저 검 뽑았습니다? 은 표두가 증인이에요?’

제법 다급한 와중이긴 하지만.

이런 건 확실히 해놔야지.

* * *

참교육이 끝난 뒤를 생각해서 앞으로 시작될 교육의 현장은 정당방위였음을 확고히 해 두는 데 찰나를 소비하자.

쌔애애애액!!!

그사이 코앞까지 닥친 은하성이 우수에 쥔 검을 내 왼팔을 향해 힘껏 내리그어 왔다.

하지만 진즉부터 왼팔이 따끔거려 왔기에 놈의 검로는 예상한 바여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여, 서슬 퍼런 날붙이가 시시각각 내리그어져 오는 이 순간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사부님 실례 좀 하겠습니다.’

물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여기까지.

사부님께 실례를 고한 나는 슬쩍 몸을 뒤로 틈과 동시에 왼 허리에 채워져 있는 회한의 검병을 움켜쥔 뒤 내력을 불어넣으며 힘껏 발검했다.

캉!!!!

그것만으로도 나는 은하성의 일검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런 내 움직임에 지척에 있는 두 사람이 놀랬는데.

“?!”

하나는 당연히 시정잡배 수준으로 나를 얕잡아 보고 있던 은하성이었고.

- 권법을 연마하던 집안에서 난 녀석이 올케 검식조차 제대로 익히지 않고 삼재검법이면 충분하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상대가 검을 뽑은 상황에서 여유를 부리길래 대체 뭘 어떻게 하려나 두고 봤더니, 참으로 효율적인 움직임이로구나!

다른 하나는 제자의 손에 들린 꼴이 되신 사부님이셨다.

- 그렇지! 상대에게 지척을 내주면 위험해지긴 하지만 자연히 상대가 내지를 수 있는 검로의 각도 제한되는 법! 이제 보니 방술과 주둥이로 약발을 먹이는 솜씨 외에도 싸우는 법까지 아는 녀석이로고?! 네 손에서 펼쳐질 파천의 검이 더욱더 기대가 되는구나!

…근데 사이에 이상한 게 낀 거 같은데, 칭찬 맞습니까 사부님?

뭐, 아무튼.

사부님의 말마따나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보법이나 검초를 몰랐다.

하여, 은하성이 작정하고 거리를 벌리면 조금 피곤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었다.

‘지금의 이 한 합으로 은하성도 나를 경계하게 됐을 것이니, 같은 방식으로 녀석을 끌어들이는 법은 통하지 않을 거고?’

그런고로 더 이상 허비할 찰나는 없었다.

나는 사부님의 음성을 한 귀로 흘린 뒤, 손에 쥔 회한에 내력을 좀 더 불어넣었다.

절로 맞대어진 형상이 된 두 자루의 검.

갑자기 진해지기 시작한 내게서 전해지는 내력.

“하! 어디서 굴러먹었는진 몰라도 한 수가 있긴 했네.”

은하성은 내가 내력 싸움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는지, 제 놈도 검에 내력을 진하게 불어넣어 오며 짐짓 여유를 부렸다.

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영약이고 영단이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제 어미가 챙겨 먹였을 테니 나이에 비해 내력은 출중한 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노린 점 이었다.

‘도련님들은 늘 저렇게 상대가 자기 편한 방식으로 싸워줄 거라고 생각한다니깐.’

이 순간.

나는 쯧쯧하고 혀를 참과 동시에 가볍게 파천의 심결을 운용해 검에 밀어 넣던 내력의 기세를 일순 흉폭하게 만들었다.

“?!”

그리고 갑자기 흉포해진 내 검기에 은하성이 당황하는 찰나.

나는 바쁘게 한 발을 옮겨 은하성의 왼발을 지긋이 눌러 밟았다.

“뭐, 뭘 하자는 거냐?!”

“합을 나누는 도중에 그런 질문을 해오는 것 자체가 좀 우습지만, 애초에 내가 삼사십 수쯤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말해줄게. 사실 내가 뽈뽈거리면서 도망 다니는 상대에게는 아직 자신이 좀 없어.”

그런 내 말에, 은하성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급히 발을 빼려 했다.

“뭣?”

하지만, 내가 작정을 하고 파천의 내력을 담아 누르고 있는 것을 제 놈이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못 빼겠지?

그럼 맞아야지.

멍충 멍충.

나는 지체 없이 녀석의 면상을 향해 박치기를 내질렀다.

빠아아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박치기가 만들어낸 반작용의 여파로 고개 전체가 뒤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사부님을 휘릭 돌려 땅에 꼽고 녀석의 양 옷깃을 휘어잡은 뒤.

다시 한번 박치기를 내질렀다.

빠각!!!!!

그에 은하성의 코가 피를 뿜었다.

“악! 아악!! 내 코!! 코가앜!!!!”

화초처럼 살아온 도련님답게 고통에 대한 내성이 없는지, 이 순간 은하성은 쥐고 있던 검마져 손에서 놓아버리고 코를 싸쥐며 악다구니를 질러댔다.

나는 그런 은하성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쓰흡. 손 내려. 손 내려. 하성아. 잘못 맞으면 더 아프다?”

이 정도에서 끝을 낼 거면 이 몸 어르신은 아예 시작도 안 했지.

아직 보충 수업 빡빡하게 남았다잉?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어금니는 꽉 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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