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5화 (25/444)

제25화. 학관 가는 길 (1)

은휘상단의 한편에 마련된 호단요람.

“구보 중에 노래한다. 노래는 멋진 휘상인.”

“머헛진. 휘상인.”

“목소리가 작다. 짊어진 행낭들에 납덩이를 하나씩 더 넣어야 목소리가 커지려나?!”

“멋찐!!! 휘상인!!!!”

“노래 시작. 하낫. 둘. 셋. 넷. 멋있는!”

“멋있는! 휘상인! 많고 많지만!!”

그곳에서 붉은 모자를 쓴 용운의 인솔하에 두 명의 용혈과 나머지 신입 표사들이 피땀 눈물을 흘리며 연화봉을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 어언 보름여가 지났다.

보름.

천하가 넓다 하나 보름이면 발 없는 말들이 천리를 오가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시각.

수많은 소식이 장강을 넘고 황하를 건넜으며 대파산맥을 넘어 천하 사방으로 오갔다.

그런 소식 중에는 당연히 언용운의 행적에 관한 것도 들어 있었다.

하나 세상 사람들은 오대세가 자리에서 밀려난 언가의 망나니에게 그리 큰 관심은 두고 있지 않았다.

물론, 처음 언가의 장남이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다들 입방아를 찧어대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 대부분의 감상은 ‘그만한 세가에서도 그런 개망나니가 나왔구만?!’이거나 ‘그래도 자식을 파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언가의 가주도 비정한 위인이었군?’ 정도로 가벼웠고, 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는 천하인지라 다른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며 그나마도 쉬이 잊혔다.

그랬기에 지금에 와서는 언용운의 행정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드물게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그중에 필두는 단연 하북 땅의 진주에 자리 잡은 언가였다.

“하이고. 날이 점점 찹찹해지는데 큰 공자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려나. 끼니는 챙기고 다니시는지 원.”

“숙수(熟手)님도 참, 뭐 그런 걱정을 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좋기만 한데요?! 언윤각에 용운 공자님이 계실 적엔 음식이든 그릇이든 사람이든 아무튼 간에 뭐든 들어갔다 하면 깨지거나 엎어져서 나오지 않았습니까요?”

“너나 다른 하인들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만, 어릴 때부터 봐온 내 입장에선 또 마음이 그렇지가 않느니라. 그리고 사람이 궁지에 몰리다 보면 종종 그리되곤 하는 법이다. 쯧쯧. 어린 시절에는 총명하시기 그지없으셨거늘 어쩌다 그런 숭악한 것에 손을 대셔서는….”

물론, 그러한 관심 중 대부분은 그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드물고도 드물게 언용운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어머님! 기다리시던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요, 용명아?”

다름 아닌 언용운의 동생인 언용명과 어머니 되시는 이화 부인이었다.

“예! 어머님! 소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내 따로 기별을 할 터이니 우선은 처소로 돌아가 있지 않겠느냐 용명아?”

“하오나 형님의 소식이옵고 화급을 다투는 감이 좀 있어….”

벌커덕-

“누구의 소식이라고?!”

“아, 아버님께서도 계셨습니까?”

이 순간 언용명은 아차했다.

어렵게 구한 형님의 소식을 어머니께 전해 드리겠다는 급한 마음에 아비인 언정웅의 동향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한데 용명이 네 입에서 나온 소리가 퍽 해괴하더구나? 누구의 소식을 가져왔다고?”

“…….”

세가에서 가주의 명은 절대적이다.

하여, 언용운이 쫓겨난 그날부로 언용운에 관한 이야기는 진주언가에서 암묵적인 금기가 되었다.

그 금기를 파헤치는 것은 가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형님의 소식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였구나.”

물론 이화 부인이나 언용명 본인에게 불똥이 튀어 봐야 얼마나 튀겠냐만, 문제는 아랫사람들이었다.

그저 웃전에서 시켰기에 행했을 뿐인 아랫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가 있었다.

언용명은 침음을 삼켰다.

“소, 송구합니다.”

“…하나, 그 소식을 구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을 테지?”

“……?”

“품도 지불했을 거고?”

“…어.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언정웅의 마음에도 언용운을 향한 일말의 그리움과 걱정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용명은 조금 전의 걱정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아버님께서도 형님의 소식을 들으시렵니까?”

“…흠흠. 이렇게 트인 자리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나, 일단 안으로 들어오너라.”

* * *

“그래 네 우형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다더냐?”

“휘상에 몸을 의탁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렇게 운을 뗀 언용명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소식을 하나둘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은 금릉이셨습니다. 그곳에서 휘상과 객원 표사로 연을 맺으셨던 모양입니다.”

언용명은 언용운에게 지도를 마련해주며 언용운이 애초에 강남으로 길을 잡았음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 평소 언용운에게 고마워하고 있던 은하연이 언용운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복권이 되길 바라는 생각에 알고 있던 정보를 보태어 하북으로 보냈다.

덕분에 언용명은 언용운이 한 일들을 세세하게는 알지 못해도 굵직한 것들은 대략 파악을 한 상황이었다.

“다음은 태호. 그곳에서 빈민가의 퇴기들에게 약재와 은전을 나눠주셨다 합니다.”

“쫓겨난 녀석이 잠깐 사이 어디서 그런 은이 났다는 게냐?!”

“…….”

“…부인께서 주신 모양이구려.”

“…송구합니다 상공.”

“탓하는 게 아니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데 부인 입장에선 당연히 마음이 쓰였을 것이오. 애초에 부인에게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든 내 불찰이니 그런 표정 짓지 마시오.”

“…상공.”

“다만 이 어처구니없는 녀석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오. 하북에서 빌릴 수 있는 은은 다 빌려서 노름을 하던 녀석이 장강을 넘어서는 군자가 됐다니….”

그렇게 언정웅이 이해할 수 없는 언용운의 행적에 턱을 싸쥔 이때.

언용명이 입을 열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아버님.”

“무엇이?”

“형님이 가문에서 내쫓기는 데 일조한 일들. 사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음을 아버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돈과 비급을 따간 이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정작 돈과 물건은 증발하듯 사라졌습니다. 형님께서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홀로 짊어지고 천하를 배회하고 계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면 언가가 형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

“형님을 불러올리셔서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하여, 오해가 있다면 형님의 복권도 고려하셔야합….”

하나 언용명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언정웅이 손바닥을 내 보이며 그만하라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오나 아버님!”

“네가 한 이야기에 답이 그대로 있다. 만에 하나 네 말대로 무언가가 더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날 가주로서 용운이 녀석에게 더 할 말이 없느냐 물었다. 그때 네 우형의 대답이 어떠하였느냐?”

“…하실 말씀이 없다. 하셨지요.”

“가주의 이름으로 묻는 물음이 가볍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언가의 정윤으로 살아온 게 몇 년인데 네 형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 답하였다. 하면 가문의 비전을 노름으로 날려 먹었다는 결과만 남게 되는 것이고. 내 말에 틀림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니 형을 향한 걱정은 그쯤 하고. 네 앞가림이나 하거라. 몇 개월 뒤면 새해니 정무학관의 입관이 코앞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구파일방과 다른 세가들의 배려 덕에 입관 시험의 첫 번째 관문은 치르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만큼 시기의 눈초리도 있을 것이다. 남은 관문에서 남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내야 할 것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느냐?”

“…예. 아버님.”

“하면, 이만 네 처소로 돌아가 보거라.”

“예.”

그렇게 언용명이 본인의 처소로 돌아가고 나자, 언정웅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쪽을 향해 뚫린 창 쪽으로 향했다.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라. 용운아. 이놈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뭘 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냐?”

* * *

날이 모여 주가 되고 주가 모여 달이 되었으며, 그달이 두 개가 모이자 년이 가득 차며 새해가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새해.

은휘상단은 신입 표사들의 수료식을 단행했다.

“열중쉬엇!”

척- 척- 척척척-

“차렷!”

척- 척- 척척척-

“상단주님께 경례!”

“충!”

대표로 나선 은하연의 앙칼진 구령에 마치 한 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올빼미들의 모습.

그 모습에 강남상왕 은세평마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맡기긴 했지만, 정말 대단하군. 거짓말 좀 보태서 금군 저리 가라야. 이게 정말 고작 두 달 만에 조련된 친구들이 맞나?”

“그사이 달의 개념이 바뀐 게 아니라면요?”

“자네의 당돌함엔 역시 근거가 있었음을 오늘도 확인하는군. 자네가 이 은세평이의 휘하에 남겠다 하면 당장에 만금을 치를 마음도 조금은 있는데. 어떤가? 그래도 예정대로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을 치르기 위해 호북으로 갈 텐가?”

“예. 제 뜻은 확고합니다.”

“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연이와 하성이도 이번에 시험을 치르기로 했네, 자네야 합격은 맡아놓은 것이고. 혹, 내 미흡한 자식들도 합격을 하게 되어 동기생이 된다면 한 번씩 들여다봐 주시게.”

“맨입으로요?”

“명색이 강남의 상왕 소리를 듣는 자가 그럴 리가 있겠나. 자 여기 섭섭지 않게 넣었네. 가는 길에 여비하게.”

“묵직한 게 확실히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때였다.

그렇게 은세평에게 받은 전낭의 묵직함을 가늠해보고 있는 이때.

허리춤의 사부님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 흐으으으음.

사부님?

왜 갑자기 그럼 탐탁지 않으신 소리를 내고 그러십니까?

만박보심단의 잔여 내력도 담천약수 덕에 무리 없이 모두 소화를 해냈고.

사부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낮이고 밤이고 굴러서 파천십검의 근간이 되는 보법도 완벽히 익혔고.

이렇게 두둑하게 여비도 챙겼는데요?

- 흥. 내, 정무학관인가 뭔가에 들어가겠다는 네 녀석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다.

‘그게 왜 이해가 아니 되시죠?’

- 그렇지 않느냐! 학관이라 함은 곧 사승 관계가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것인데, 이미 파천검문에 든 네 녀석이 학관에 입관하고자 한다 하니, 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아니 이곳에 와서 비동을 빌릴 때나 상왕과 협상할 때 꾸준히 정무학관 입관 이야기는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지금 이러신다고요?’

- 그때만 해도 둘러댈 말이 없어 적당히 붙인 구실인 줄 알았지. 진심인 줄은 몰랐느니라.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

무슨 생각이긴요.

‘당연히 꿀을 빨 생각이죠.’

- 꿀?

원작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들의 대부분이 정무학관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야기가 원작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그 틈바구니에서 발생하는 이익들을 누리려면 무조건 정무학관으로 가야 한다.

물론, 사부님께 원작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빼더라도 충분히 사부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사부님 시절만 해도 말코도사들이 영약이니 보검이니 비급이니 하는 것들 꽁꽁 숨겨 놓고 자기들끼리만 해 처먹지 않았습니까?’

- 그랬지.

‘저 정무학관이라는 녀석이 세워진 이후로는 그리 못 합니다.’

- 그 호랑말코 놈들이 그런 걸 풀 놈들이 아닌데?

‘명목상으로는 풀었습니다. 제 놈들이 주관하는 시험과 과제를 통해 매긴 성적 기준으로 그런 것들을 지급하기로 하고 정무학관을 세웠고. 그 덕에 별처럼 많은 동량이 모여 ‘말은 초원으로 무인은 정무학관으로’라는 말로 대표되는 지금의 정무학관의 지위를 얻은 것이거든요.’

- 흥. 그래 봐야 위선이지, 결국은 그 말코 놈들의 전인이나 그 밑으로 기어들어 가기로 한 녀석들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더냐?!

‘보통은 그렇죠. 근데 사부님의 제자가 어디 보통입니까?’

- …보통은 아니지. 거의 사기꾼 아니더냐?

‘…?’

- …파천의 무학 또한 당연히 보통이 아니고…. 가만있자, 이거 제 새끼들 주려고 꽁쳐 놓은 영약과 재보들을 눈물을 머금으며 토해내는 말코 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가야 하는 겁니다.

거기다 사부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이유도 한 가지 있었다.

‘검마 위철진이 본인의 시대에 왜 무림 공적이 되었는가?’

답은 기존의 정파인들이 세워놓은 울타리 밖의 강자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그들이 내민 손을 뿌리쳤기 때문에.

검 한 자루로 천하를 긴장시킨 사부님의 길.

‘대단하시긴 했어.’

하지만 밟으셨던 길을 그대로 밟을 생각은 없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패면 된다.

그럼 적대 행위가 아니라 참교육이나 대련이 될 테니까.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나만의 길을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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