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7화 (27/444)

제27화. 학관 가는 길 (3)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맹신을 하는 것은 아니고.

예컨대 밭일을 하는 사람은 피부가 타고, 힘든 일을 많이 겪는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그런 찡그린 표정들이 습(習)이 되어 얼굴에 길고 굵은 주름을 남게 만들고 그게 결국 상(相)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완삼석의 관상은 먼저 염라대왕님께 압박 면접을 치르러 간 놈의 의제인 방천덕의 관상과 제법 흡사했다.

어지간한 다림질로는 펴질 것 같지 않은 구겨진 이맛살과 도깨비 같은 눈썹.

끼리끼리 논다더니 역시나 형님 쪽도 성격이 조금 급하고 속이 좁아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딱 한 가지가 달랐으니, 완삼석은 제 동생 놈보다 턱이 좀 각이 져 있었다.

“…놈!”

완삼석은 그 각진 턱으로 빠드득 이를 갈아 치미는 부아를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는데.

“주군!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그 즈음하여 완삼석을 둘러싼 흑도 무리의 인막(人幕)에 약간의 틈이 생기더니, 낙방서생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꾀죄죄한 몰골의 서생 하나가 그 틈에서 튀어나왔다.

“의제분이 졸(卒)하신 것에 가장 지분이 큰 자가 은정길이라고 천하에는 알려져 있습니다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놈 중에 저희 구화채에 귀의한 녀석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흉사가 일어난 자리에는 다른 두 명의 표사가 더 있었다 했습니다.”

“저놈이 그놈이란 말인가?”

“예. 의제분의 무위를 떠올려보면 아주 입만 산 놈은 아닐 겁니다. 은가의 두 용혈 중 아들 쪽은 초일류에서 고수 반열 정도라고 알려져 있고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군사의 말. 유념하지.”

그리고 제법 합리적인 추론으로 완삼석의 결단에 제동까지 걸었다.

‘저 서생 놈이 두뇌 역할을 하는 건가?’

완전히 주먹구구로 돌아가던 북록채에 비하면 이번에 몰려온 놈들은 나름의 체계가 있어 보였다.

‘저쪽에서 덤벼오는 쪽이 은하연을 지키기는 편한데, 북록채 때처럼은 안 될 것 같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딱 한 번만 더 저놈들의 속을 뒤집어 보자는 생각에, 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조금 더 뒤틀어 보이며 비웃음을 날렸다.

“풉.”

“…웃어?”

“아니,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염병들을 너무 야무지게들 하고 계시잖소. 거북이처럼 산에 숨어서 양민이나 등쳐먹고 사는 작자들이 주군이니 군사니. 큭큭. 혹시 오호대장군도 있는 거 아니오?”

“……!”

…어?

- …있나 본데?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고만고만한 와중에 완삼석의 좌우로 풍기는 기도가 산적치곤 예리한 놈들이 좌측에 둘 우측에 셋으로 갈려 있었다.

‘…딱 다섯이긴 하네요. 쥐고 있는 병장기들도….’

언월도, 사모, 극, 박도, 창으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이 떠오르고, 관우, 장비 놈은 수염마저 비슷하게 길렀다.

놈들의 그런 작태에 사부님께서도 울컥하셨는지 한 소리를 내셨다.

- 저런 개잡놈들을 보고 오호대장군이라니 관장마황조가 하늘에서 통곡들을 하시겠구나.

뭐, 아무튼.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졸(卒)을 했다고? 그거 대부(大夫) 벼슬 정도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붙이는 말 아니오? 방천덕이 같은 산적 두목 뒈졌을 때는 보통 ‘잘 뒈졌다.’는 말을 쓴다오.”

이번에는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완삼석의 이마에 굵은 핏줄들이 눈에 띄게 불거져 나왔다.

“…노오옴!!”

그런데 이 순간.

낙방서생이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주군! 흥분하지 마십시오! 대업을 그르칩니다!”

“이런 모욕을 참으면 흑도의 사내가 아니니 군사는 더 이상 나를 말라! 흑호장군은 내 거월(巨鉞)을 이리 내라!”

“저 뒤에 있는 은가의 용혈들만 생각하십시오! 저 두 연놈만 손에 넣으면 휘상이 주군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럼 주군께서 녹림왕이라 불릴 날이 성큼 다가올 것이고요!”

“…녹림왕!”

“예. 휘상이라는 거룡의 머리통을 움켜쥘 수 있는 여의주를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그리고 어차피 저 입만 산 놈이 지껄이는 말이 퍼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실어 나를 ‘산 사람’은 이 허름한 객잔과 함께 사라질 테니까요.”

“…군사의 말. 확실히 일리가 있군. 그대는 역시 나의 장자방이야! 하하하!!!”

…대업이니 장자방이니 아주 염병들을 하고 있네.

* * *

보아하니 이번에 몰려온 녀석들은 북록채의 산적들처럼 제 놈들의 수장을 홀로 두고 깡그리 짓쳐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뭐, 그럼 이쪽에서 들어가면 되는 거긴 한데….’

그렇게 내가 놈들을 향해 뛰어들면 은하연의 안전이 좀 불안해질 수가 있었다.

북록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마차와 짐수레 같은 엄폐물이 없었다.

거기다 당시엔 중과부적이나마 인원수가 비빌 만했지만 지금은 나를 제외한 전투 요원이라곤 은하성 달랑 한 명뿐.

“왜 그렇게 보십니까 형님?”

물론, 은하성의 경지가 문턱 하나만 넘어서면 고수 소리를 듣는 반열이니 산적들이 상대라면 제법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제 놈들끼리 오호대장군이니 어쩌니 하지만, 풍기는 기도로 봐서는 채주라는 완삼석과 짝퉁 관우와 장비 정도를 빼면 모두가 하성이 녀석의 경지를 밑도는 것 같네.’

그렇다면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이긴 했어도 사실 해볼 만은 했다.

뒷면은 객잔이 자연적으로 막아주고 있고, 놈들의 핵심 전력을 포함한 전면은 내가 맡을 테니, 하성이 녀석이 제 몫만 해준다면 은하연의 안위는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보기는!”

근데 하성이 녀석이 그 ‘제 몫’을 못 해줄 것 같은 게 문제였다.

“앜! 이 판국에 왜 저를 때리십니까?!”

“은휘상단을 꿀꺽하려고 했던 놈이 정작 상행은 한 번도 안 나가 본 게! 한심해서! 그렇게 본다! 이 자식아!!”

“앜!”

나도 검수로서의 실전 경험은 부족했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제 어미의 치마폭에 싸여 자란 하성이 녀석이야말로 실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녀석이었다.

“이 자식아! 이 자식아!!”

“앜! 아앜!!!”

전생의 기억을 되새겨보면 그런 경험 부족은 이런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곤 하였으니, 마냥 하성이 녀석을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여정 동안 은하연을 미끼로 삼는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한 나였다.

하여, 당연히 이런 상황에 사용할 비장의 수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쓰는 수밖에 없겠네.’

만드는 데 품도 많이 들고, 내력도 훅 빨리는 터라 아낄 수 있으면 아끼고 싶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별수가 없지.

나는 품 안에 고이 접어 두었던 비장의 수를 꺼내 은하연에게 건넸다.

그러자 은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부적인가요?”

“비슷하오.”

“…비슷하다면?”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괴황지를 바탕으로 삼고 닭피와 주사 그리고 수은을 안료로 삼아 술식을 그려 놨으니, 은하연의 눈에는 영락없이 부적으로 보였을 테지만, 엄밀히 따지면 부적은 아니었다.

일종의 마법 스크롤이라고나 할까?

물론 나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라 흑마법사였기에 괴황지 안에 담긴 것은 마법이 아니라 저주였다.

‘세월(歲月)의 저주.’

대상자들의 몸에 일시적인 노화를 걸어 느려지게 만드는 저주.

하지만 저주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 녀석을 쓸 때를 대비해 생각해둔 변명거리를 토해냈다.

“양민들이 미신처럼 쓰는 그런 부적은 아니고. 그 안에 일종의 진법의 묘리가 담겨 있소.”

“진법이요?”

그렇게 운을 뗀 나는 계속해 세월의 저주가 담긴 부적의 효력에 대해 은씨 남매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저주 술식을 부적을 타인이 발동하게 하려면 필요한 조치를 시작했다.

“찢으면 발동되는데, 범위 안으로 들어온 모든 대상자가 느려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오.”

“발동 거리랑 유지되는 시간은요?”

“나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본 건 처음이라 발동 거리가 그리 넓지는 않소, 시전자를 중심으로 이 장(약 6미터)정도? 유지되는 시간은 대충 반 다경(7분)정도?”

“그렇군요.”

“작전은 간단하오. 내가 저놈들 사이로 뛰어들면 소저가 부적을 찢어 진법을 발동시키고, 혹시나 내가 없는 틈을 노리는 녀석이 있다면….”

“하성이가 상대하는 거군요. 이해했어요.”

“그렇군. 근데 원래 나만 발동시킬 수 있는 진법이라, 소저가 발동시키려면 해야 할 조치가 좀 있으니, 은 소저는 이마를 좀 내주시오. 하성이 너도 이마 대고.”

뭐, 필요한 조치라 하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저주 술식이 한시적으로 은하연과 은하성을 내 종속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작업이었는데.

방법 자체는 내 피를 약간만 묻히면 되는 것이라 간단했다.

‘따끔하네.’

그러기 위해 나는 회한으로 중지에 피를 조금 냈다.

“불쾌해도 참으시오.”

“아, 안 불쾌해요…. 오히려.”

“오히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도 대.”

“대라시니 대긴 하는데요, 형님은 왜 항상 누님한테만 깍듯하고 저는 이렇게 막 대하십니까?”

두 사람 모두 내 제안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기에, 조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너는 맞을 짓을 하니까.”

아, 물론 은하성은 면상을 보고 있자니, 기껏 만들어 놓은 부적중 한 장이 날아간다는 생각에 일순 울화가 치밀어서 딱밤으로 조치했다.

딱!!

“아앜! 이거 보세요!! 저는 왜 딱밤입니까?! 아옼!! 이마에 구멍 난 것 같은데요?! 이거봐요 피 나잖슴까! 아, 이건 형님 핀가?!”

“…하성아.”

“ㅇ, 옙.”

“호들갑은 그쯤하고. 은 소저나 잘 지켜라.”

뭐, 아무리 하성이 녀석이라도 저주가 담긴 부적까지 줬는데, 이 정도로 멍석을 깔아줬으면 제 몫을 하겠지.

* * *

일말의 불안거리를 날려 버린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내가 부적을 은하연에게 건네고 있는 사이 산적들도 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음? 학익진인가?’

놈들은 군사라 불리는 낙방서생의 지휘 아래 조금씩 걸음을 벌리며 부채꼴의 형태를 펼치고 있었다.

‘오호대장군이라 부르는 놈 중 짝퉁 마초랑 황충을 좌우 날개로 보냈네?’

속셈이 보인다 보여.

혹시라도 내가 제 놈들의 예상보다 고수라면 완삼석을 비롯한 짭관우 장비 조운이 시간을 끌고 좌우에 가 있는 마초와 황충이 은하연을 사로잡으려는 거겠지,

‘발상은 좋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을 잘못 봤다.

“어지간하면 들어오기를 기다려 드리려고 했는데 보시다시피 이쪽은 밥때라, 당신들의 굼뜬 걸음을 더 기다려 드렸다간 죽이 타겠소. 이게 솥에 눌어붙으면 떼어내기가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 내 친히 들어가 드리려 하니 베기 좋게 목들 좀 빼놔 주시오.”

나는 씨익 웃으며 기수식을 취한 뒤, 파천심법을 운용하며 땅을 박찼다.

“쳐라! 은가의 계집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토막을 내도 좋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완삼석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신호 삼아 산적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나와 저쪽이 동시에 내달리니 눈 깜짝하는 사이 거리가 좁혀졌다.

‘지금!’

그 말인즉.

내 사정거리에 놈들이 들어왔다는 이야기.

나는 그간 뼈에 새길 정도로 몸에 익힌 파천십이보의 보법을 밟으며 파천검결의 제일초 파천선풍(破天漩風) 시전했다.

쌔애애애애액!!

하늘을 깨는 돌개바람이라는 이름과 달리 파천선풍의 검로는 기실 저잣거리에서 닷 푼이면 배운다는 삼재검법의 가로베기와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산적 주제에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짝퉁 관우가 호기롭게 앞으로 나설 정도.

“주둥이를 놀려 대길래 한가락 하는 놈인가 했더니, 고작 닷 푼짜리 삼재검법이었더냐?! 형제들은 물러나 있으….”

하나, 애석하게도 짝퉁 관우의 호기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라?”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로베기 같아도 역천의 묘리를 담은 파천신공과 그 위력을 배가시키는 파천십이보까지 더해진 초식인지라 시전하는 나조차도 가볍지가 않았는데.

산에 숨어 양민이나 도륙하던 산적 나부랭이가 이걸 우습게 보고 들어왔으니.

결과는 뭐.

촤륵-

일검에 반분이지.

“…커흑. 고, 고작 가로베기 따위에 내가.”

그래, 그렇게 알고 가라.

나는 상체가 하체가 분리된 짝퉁 관우에게로 다가간 뒤, 일말의 자비도 없이 목을 썽둥 잘랐다.

그리고 다른 산적들을 향해 던지며 입을 열었다.

“거, 관공이 목만 오셨는데. 혹 도원결의 같은 거 하신 형제분 계시오? 한날한시에 보내 드리려면 좀 바쁠 거 같으니 그분들부터 빨리빨리들 들어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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