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0화 (30/444)

제30화. 강남신협 (2)

강남신협이 이곳에 있냐며 객잔의 문을 열어젖힌 날파리 녀석.

얼굴은 방립으로 감추고 몸은 검은 장포로 감춰, 육안으로 보기에는 분명 수상해 보이는 그 녀석은 주위를 한번 쓱- 살피더니 곧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런데 이때.

객잔의 주인장이 그 날파리의 걸음을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저, 손님. 무슨 사연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백도 무림의 요람이라 불리는 단강구입니다요.”

그런 주인장의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주인 영감. 간 한번 크구나.

‘그럴 만하죠.’

- 그럴 만하다고? 저 시커먼 녀석이 문을 열며 내보였던 기도는 분명 절정고수 반열에는 확실히 들어 있는 자였다. 나 때만 해도 제 놈들 기분 나쁘다고 객잔을 풍비박산 내는 놈들을 밥 먹듯이 볼 수 있었는데, 근 백 년 사이 강호의 풍토가 바뀐 것이냐?

‘고작 백 년 사이 강호의 풍토가 바뀔 리야 있겠습니까. 점소이 계열의 직군은 여전히 강호에서 피해야 할 직업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당당하게 들어갈 겁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천하의 객잔, 여각, 반점 중 어딘가는 와장창 부서지고 있을 테니까.

- 흠. 그럼 그럴 만하다던 방금의 네 녀석의 말과 앞뒤가 안 맞지 않느냐?

‘그건 주인장의 말대로 여기가 단강구이니까요.’

백도 무림의 요람 단강구.

본래도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세력권이라 소림이 있는 숭산 인근과 무림맹이 위치한 낙양과 더불어 백도 무림의 성지 취급을 받는 동네였던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정무학관이 들어서고 당시 무림맹주가 후기지수를 보호하고자 이곳에서 물의를 일으킨 자는 죄질을 막론하고 무림맹주의 이름으로 단죄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며 법제화까지 되었다.

‘그 말인즉.’

여기서 잘못 설치면 진짜 한순간에 무림 공적이 된다는 말씀.

하여, 나는 저 날파리 놈도 ‘나중에 보자.’ 같은 소리를 남기고 적당히 물러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때.

시커먼 날파리 녀석의 장포가 살짝 걷힌다 싶더니.

“!”

“쉿. 주둥이는 함부로 놀리지 말게.”

호기롭게 나섰던 주인장이 놀란 토끼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렇게 막아서던 주인장을 물러나게 만든 날파리 녀석은 다시금 내 쪽으로 다가와 본디 하성이 녀석의 자리였던 곳에 앉았다.

놈이 문을 열어젖힐 때와 다르게 비교적 얌전히 착석을 마치자.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적막이 흘렀던 객잔이 다시금 왁자해지기 시작했다.

“근데 방금 들어온 저 친구 강남신협을 찾아왔다 하지 않았나? 왜 저리 가서 앉는 거지?”

“이 사람아 저 자리가 강남신협께서 앉아 있던 원래 자리가 아닌가! 한창 이야기 중이셨으니 기다리겠다 뭐 그런 거겠지!”

“아! 그렇지 참?! 그래서 대협 그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요?!”

“…어.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황충을 자처하는 백호장군이라는 놈과 마초를 자처하는 금호장군이라는 녀석이 명산객잔의 지척까지 다가온 대목까지 말씀하셨습니다요.”

“아. 그랬지 참…? 험험. 그럼 다시 그때의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한 놈은 이만한 박도를 휘두르며 달려오고, 다른 한 놈은 날이 시퍼런 극으로 찔러 들어오는 상황이었소 참 위험한 순간이었지,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죽이 끓고 있는 솥 옆에 서 계시던 누님을 향해 말했소.”

“뭐라고 하셨습니까요?”

“누님. 내 죽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캬아아!”

“강남신협! 강남신협!!”

그런 가운데 나는 갑자기 합석을 하게 된 시커먼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번지수 잘못 찾은 것 같소만? 보시다시피 강남신협은 저쪽이오.”

그런 내 음성에 날파리 녀석도 입을 열었다.

“맞게 찾아왔을 것이오.”

“내 이름은 은하성이 아니오.”

“알고 있소.”

“알고 있는 사람이 왜 내 앞에 앉아 계시는 거요? 어둠의 자식 같은 시커먼 행색으로. 밥맛 떨어지게.”

“…바, 밥맛? 크흠. 나는 소형제의 말대로 강남신협을 찾아왔소. 그리고 강호의 일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일이 잦기에 드물게도 위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일이 있음도 알고 있지, 소형제가 강남신협이란 위명의 숨은 주인이잖소?”

* * *

“시치미를 떼봐야 소용없소. 나는 이 객잔에 들어설 때 의도적으로 살기를 내뿜었소. 강남상왕의 용혈은 반응이 좀 느렸소. 내가 구화채주였던 완삼석이라는 자를 아는데, 그 아래 있던 수하 정도면 모를까 완삼석을 해치울 수 있는 실력이 아니오. 반면 소형제는 가장 먼저 반응했지.”

그렇게 운을 뗀 검은 장포 차림의 날파리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단순히 검에 손을 가져가는 게 빨랐던 것에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일순 객잔 안의 대기가 모조리 소형제에게 빨려드는 듯했소. 그 찰나에 소형제가 보였던 움직임은 나름 생사의 갈림길을 숱하게 넘어봤다 자부하는 나도 일순 숨이 막히게끔 만들었지. 이 객잔 안에 나를 제외하고 완삼석의 목을 벨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소형제뿐이요. 그런 의미에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거절하겠소.”

“……?”

“거절한다고.”

“…듣지도 않고 거절을 한다는 거요? 아니 내가 누군 줄 알고? 또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야 뻔하지 뭐.

“무림맹에서 나온 거 아니오?”

“그, 그걸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쪽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오.”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은 백도 무림의 성지 중 하나다.

사고 칠 곳이 천하에 널렸는데 굳이 여기에 와서 까불어 댈 흑도인은 없다.

‘마인이나 모종의 사유로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자들이라면 몰라도.’

하지만 지금은 마인들이 대놓고 설치고 다니는 시점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도인이라는 건데, 정무학관의 문과 시험이 진행 중이고, 무과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저런 짓을 하고 돌아다닐 문파나 세가도 없다.

‘제자나 혈육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할지를 고민하고 챙기느라 바쁘지.’

하지만 무림맹은 여력이 있다.

물밑에선 마교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천하 무림이 태평한 시기였으니까.

하여, 원작에서도 매번 이 시기에 여력이 있는 무림맹에서 질서 유지를 위한 인력을 추려 단강구로 파견하는 것으로 나왔다.

“뭐, 복장이나 말투나 흑도처럼 보이려고 신경을 쓰신 것 같은데, 복장은 너무 전형적이었고 말투는 좀 많이 어색했소. ‘주둥이는 함부로 놀리지 말게’가 뭐요? 욕설도 밋밋하고 은근한 배려가 묻어나잖소? 나름 노력은 한 것 같소만, 진짜 흑도 놈이었으면 같은 문장도 아가리로 시작해서 하쇼로 끝맺었을 거요.”

“…….”

그러니, 이 어색한 날파리가 무림맹에서 나온 사람이라 생각하면 특유의 어색함과 응시생이라고 보기에는 묘하게 정련돼 있었던 기도, 순순히 비켜선 주인장,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

“일신에 지닌 무위뿐 아니라 눈썰미 또한 보통이 아니시구려. 제안과 동시에 신분패를 내보이려 했는데, 이거 보기 좋게 들켰소.”

“유심히 보고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오?”

“나는 보름 전부터 이곳에 있었소. 그러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군소 방파 출신 젊은 후기지수들을 같은 방식으로 찾았지, 근데 소형제처럼 유심히 보고 곰곰이 생각한 사람이 없더이다. 아무튼 사과드리겠소. 본인은 무림맹주 직속 타격대의 제일각주를 맡고 있는 명태성이라 하오. 이제야 신분을 밝히는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방립을 벗고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해오는 명태성.

그가 범한 무례는 딱 이 정도의 사과면 용서가 되는 정도였기에 나도 포권을 돌려주었다.

“언용운이오. 뭐. 사과도 하셨는데, 너무 딱 잘라 거절하면 정이 없으니 하시려던 제안은 한번 들어보겠소.”

“소형제의 배려에 감사하오.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하려던 제안을 말해보자면 무림맹에 들어오시라는 거요.”

내 이럴 줄 알았지.

- 그럴 줄 알았다고?

‘예. 그러니까 거절했죠.’

- 무림맹이라는 이름으로 보건대 정도 무림의 말코와 땡중 그리고 세가의 녀석들이 힘을 합친 조직 같은데. 그쯤 되면 천하의 인재들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것 아니더냐?

‘맨 처음에는 그랬을 겁니다. 근데 요즘은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부님.’

좀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백도 무림은 지난 정마대전 이후 제법 긴 평화기를 누렸다.

그렇게 평화가 오래 이어지다 보면 본디 무림맹처럼 비상시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굵어지며 힘이 빠지기 마련.

‘정무학관의 검술천재’ 속에선 주인공의 세대에 그게 유독 심했던 시기로 묘사되고, 그로 인해 무림맹이 이래저래 인재 수급난을 겪는 것으로 나온다.

‘세가나 명문대파보다 봉급도 박하고, 취급도 안 좋고, 그러면서 담당하는 범위는 전국구라 근무지 이동이 잦아서 어지간한 높은 사람 아니면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거나 번 돈을 투자하기도 쉽지 않고.’

그런 풍토 아래 후기지수들이 대우가 훨씬 좋은 세가나 본산 쪽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제안은 감사하나 거절하겠소.”

“…소형제.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시오. 강남신협에 대해 알아보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훑어 사실 소형제가 가문에서 쫓겨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온 참이라오. 소형제는 아마 정무학관에 입학해서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조금 초점이 안 맞긴 하는데.

“그렇다고 칠 테니 계속해 보시오.”

“그게 만만하지가 않을 거요. 정무학관의 교훈(校訓)중에 하나가 ‘정도를 걷기로 결심한 자에게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정도 무림의 동량으로 키워낸다.’라 되어 있으니까. 근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소.”

거기까지 말한 명태성은 내 앞에 놓인 술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이 좀 컬컬한데 한잔 얻어 마셔도 되겠소.”

“그러십시다.”

“크허. 감사하오. 여튼 정무학관 안에서 급이 나뉘고 패가 나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교수들도 그렇소. 아닌 분도 계시긴 하지만 대체로 팔들이 안으로 굽는 분들이 많고 애초에 성적도 명문대파나 세가의 정명한 혈통이 아니라면 여러모로 불리하고 위축이 될 수 있는 환경이지, 한마디로 개판이오.”

“조언은 감사한데, 결국 내 인생이오만 각주께서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계시는 것이오?”

“소형제가 아까워서 그렇소. 그런 환경에서 좌절하고 검을 꺾는 자나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자들을 나는 제법 많이 보았거든.”

생생함의 정도가 단순히 본 게 아니라 본인 이야기도 좀 섞인 것 같은데?

“하여 제안하는 것이오. 소형제의 뜻이 악명을 씻고 본연의 권리를 되찾는 복권에 있다면 무림맹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래 대원급의 맹원을 받으러 온 것이었지만, 소형제가 뜻을 돌려 입맹하겠다 해준다면 내 부각주 자리를 약조하겠소.”

뭐, 명태성의 애끓는 마음은 잘 들었다.

그의 말도 사실 일리는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마교가 기지개를 켜고 나올 테니 무림맹의 입김도 그때를 기점으로 강해지긴 할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의 전망은 썩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맹보다는 정무학관에 뜯어먹을 게 훨씬 많지.’

게다가 원작을 읽었던 나였기에 정무학관의 풍토는 익히 알고 있어서 계획한 바가 있었으니 두렵지 않았고.

이 세계를 살아가려면 주인공 세대와의 인맥은 필수인데 무림맹에 들어가서 일로 만나는 것보다는 이름부터 푸근한 동기가 좋을 거고.

‘그 안에서 경쟁도 하고 벌도 갈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무엇보다도 정무학관에 붙어 있는 게 원작의 시점을 확인하기에도 좋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각주가 뭐냐 부각주가.’

명태성의 지위가 각주이니 나름 저 양반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힘을 써본 거였겠지만.

내가 어?

명색이 검마의 하나뿐인 제자고!

전생이 사령왕인데!!

에이이이잉!

하여, 내 대답은 이번에도 거절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거절을 하면 명태성이 거머리처럼 들러붙을 것 같았기에, 그럴싸한 말을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대주의 제안과 염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만, 정무학관이 그리 개판이라면 나는 더더욱 그곳으로 가고 싶소.”

“……!”

“때문에 내 생각은 이번에도 같소. 그 제안은 거절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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