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1화 (31/444)

제31화. 첫 번째 관문 (1)

정무학관의 무과 시험이 개시되는 당일.

끼거걱-!

정무학관의 정문에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문중 정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에서 검은 머리칼 틈틈이 회백색의 새치가 보이는 초로인이 걸어 나와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본인은 정무학관 입관처의 장을 맡고 있는 임태옥이라 하외다. 정무학관의 무과 시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신원 확인과 최초의 관문에 입장하기 위한 등급 부여를 시작하고자 하니, 응시생 여러분들은 질서정연하게 대기해 주시고. 응시생들을 응원하고자 이 자리를 찾아준 분들은 좌우로 그어져 있는 선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를 바라겠소이다.”

그리고 그 입이 닫히자, 동시에 쇠 북이 울렸는데.

징~~~

그 소리를 신호로 남은 네 개의 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갑(甲), 을(乙), 병(丙), 정(丁)이 큼지막하게 쓰인 네 개의 현수막이 팔작지붕에서부터 촤르륵 펼쳐져 내려와 문 위를 장식했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문으로 청(靑), 홍(紅), 묵(墨), 금(金) 각기 다른 색의 무복과 영웅건을 갖춘 청년들이 책걸상과 함께 걸어 나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징~~~

다시 한번 쇠 북이 울리며 입관처장 임태옥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소이다, 응시생 여러분들은 마련된 창구로 질서 정연하게 다가서서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치고 등급을 부여받아 내 뒤로 보이는 관문으로 입장하면 되겠소이다.”

그렇게 정무학관 무과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때.

마련된 창구 수에 맞춰 사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기 시작한 응시생들을 바라보며 한 사내가 입맛을 다셨으니.

“쩝.”

다름 아닌 무림맹주 직속 타격대의 일각주를 맡고 있는 명태성이었다.

그렇게 명태성이 입맛을 다시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사내가 흑색 장포를 휘날리며 날 듯이 다가와 명태성의 곁에 다가섰다.

“총 열 명이 입학 의사를 거두고 입맹 의사를 확정 지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부각주.”

윗사람의 치하였지만 부각주라 지칭된 사내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십이각까지 신입이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열 명이면 당초 예상했던 여덟 명보다 두 명이나 많은데도 그리 기뻐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럴 리가 있겠나. 기뻐하고 있네. 대주님도 좋아하실 거고 맹주님도 흐뭇해하실 만한 성과일세. 자네도 수고가 많았네.”

하나 부각주가 보기엔 명태성의 표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제가 각주님을 모신 것만 몇 년인데요. 혹시 어제 만나러 가셨던 강남신협 그 친구 때문이십니까?”

“하긴, 자네를 속일 수야 없지. 맞네, 그 친구 때문일세.”

“그 정도로 아쉬우십니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지부를 찾아 도움을 받으라고 신분패까지 주시고 오셨다면서요? 각주님이 이렇게까지 하는 후기지수는 처음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인재들을 시험하는 방식이 단편적이긴 하니 비약이 좀 있다 치고 듣게.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기도는 남궁가의 장남과 견줄 만했고 눈썰미와 침착함은 제갈가의 소무후에 비할 만했다 하면 믿겠나?”

그런 명태성의 말에 부각주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남신협이라는 별호의 진짜 주인이 은하성이 아니라 언용운이라면 서류상으로는 천하의 개망나니에 별 볼 일 없는 사내가 분명한데 그럴리가… 흠. 하지만 각주님의 사람 보는 눈은 대체로 맞아떨어지는 편이시니…. 그래도 쉽지 않네요. 남궁가의 장남과 제갈가의 소무후와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약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두 사람은 차세대 용봉의 선두가 유력하다 강호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각주의 되물음에 명태성은 자신의 눈으로 본 언용운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다 그냥 말을 삼켰다.

‘떠벌리면 소형제가 가슴에 품은 뜻에 해가 될지도 모른다.’

부각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명태성의 시험은 정말이지 단편적이었으니, 당장의 무위는 남궁가의 장남이, 지력은 제갈가의 옥엽이 뛰어날 수도 있으리라.

하나, 언용운의 경우는 그릇의 크기가 열거된 두 사람보다 큰 느낌이었다.

‘소형제가 정말로 뼛속부터 망나니인 구제불능이라면 확인된 협행들을 할 이유도 정무학관에 응시할 이유가 없다.’

하여, 한때의 치기 어린 실수였고 지위의 복권을 기대하고 있나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면 가슴에 품은 뜻이 있어서 망나니를 자처했다는 결론이었다.

‘그만한 자질에 장남이기까지 하면 가만히 있어도 진주언가의 가주 자리가 돌아왔을 텐데 망나니를 자처해 가족에게 비난당하고 내쫓기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길을 택한다고?!’

나름 산전수전에 혈전까지 겪어봤다 자부하는 명태성이었지만 언용운이 가슴속에 품은 뜻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며 철저하게 뒤에서 돕는 게 무림의 선배로서의 도리겠지.’

그런 생각으로 일단 부각주 앞에서는 말을 삼킨 명태성이었지만.

아쉬움과 우려는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정무학관이 개판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이 가야 한다 했었지.’

그가 보기에 언용운은 지금의 정무학관이 품기에는 너무 큰 인재여서, 정무학관이 뒤집어지던지 백도 무림이 큰 동량을 잃던지 사달이 날 것 같았다.

하여, 그의 입에선 결국 한마디 말이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품의를 올려서 맹주님께 따로 보고를 드려야겠군. 정무학관의 신입 기수의 입학식에는 늘 참석하고 계시니, 그때 한번 소형제를 봐달라고 해야겠어.”

* * *

시험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리고.

나와 하성이는 네 개의 창구 중 한 곳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응시생은 구름과 같은데, 그 응시생을 확인하는 창구는 네 개뿐이고, 미래와 달리 컴퓨터와 같은 신속한 전산 처리 도구도 없으니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의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이것 또한 시험이니까.’

딱 보기에는 창구에서 신원 확인을 거쳐 등급을 부여받고 최초의 관문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시험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빈번히 일어나는 새치기에 뭔 놈의 시험이 응시생이 이렇게 많은데 담당자가 중늙은이 하나뿐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함정이다.

징이 울리는 순간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좌우로 그어진 선 밖으로 물러난 사람들 사이에도 눈이 있고, 그 선 너머에 세워져 있는 객잔들에도 눈이 있다.

그렇게 사방에 숨어 있는 눈들이 응시생들의 인내심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성정을 보는 것이다.

“하루 종일 하겠군! 하루 종일 하겠어! 아니지 하루 종일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하겠어!! 이럴 거면 서류는 좀 미리미리 받아놔도 되는 거 아닌가?!”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열불을 내는 놈은 감점 혹은 탈락을 당하는 것이다.

“내가 왜 탈락해야 하는 건데에에에!”

새치기를 해대던 놈은 그렇게 빨리 앞으로 앞으로 가려 하더니만 정작 창구에 도착해서는 빠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뭐, 그런 꼴들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아주 심심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내 경우엔 은가에서 달고 온 시끄러운 혹도 하나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예?! 어제 찾아왔던 그 시커먼 까마귀 같던 자식… 이 아니고 분께서 무림맹주님의 직속 타격대의 각주셨습니까?! 그것도 일각주요?!!”

“그래. 근데 이 자식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들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기차가 뭡니까?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참, 그래서 그분이 형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무림맹에 들어오라더라.”

“무, 무림맹이요? 그래서 어떻게 답하셨는데요?!”

“어떻게는 뭔 어떻게야. 거절했지. 지금 너랑 줄 서 있는 거 보면 모르냐?”

“아하…가 아니고. 근데 그분은 강남신협을 찾아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남신협이면 난데 그 양반은 왜 형님한테 가서 그걸 물었지…?”

“…하성아.”

“…예?”

“너는 될 수 있으면 말하지 마라. 듣는 사람 속 터지니까.”

뭐, 그러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하여, 묵색 무복을 입은 창구 담당자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기에 앞에 가서 서니 물음이 이어졌는데.

“이름.”

“언용운입니다.”

“음? 언가? 진주언가? 방계?”

처음에는 눈에 띄게 하대를 하는가 싶더니.

“음, 일단 진주언가에 직계였긴 한데….”

“아. 직계십니까? 언가의 직계면 특별 입학 대상자셨을 텐데요? 특별 입학자는 일이 관문이 면제입니다. 날을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언가의 직계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담당자가 예의를 갖추고 책걸상 옆에 마련된 책자 중 세가(世家)라 적힌 것을 꺼내 뒤적였다.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날은 맞게 왔습니다. 출신 가문이 진주언가인 것도 맞고, 직계인 것도 맞고요. 근데 가문에서 쫓겨난 몸입니다.”

“…그게 뭔…? 아, 그러고 보니 언가의 명부 밑에 조그맣게 언용운이라는 특이 사항이 써 있긴 하네요? …음. 파문? 에이씨. 놀랬잖아. 가문에서 쫓겨났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그거부터 말을 해야지 짜증나게!”

내게 짜증을 내며, 앞에는 정(丁) 자가 뒤에는 배번이 적힌 백색 무복과 내 이름이 적힌 수험표를 거의 던지다시피 내줬다.

일부러 성질을 돋우는 시험일까 했는데, 옆 창구들을 보니 평범하게 무복과 수험표 지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냥 이 새끼의 싸가지가 밥 말아 먹은 것이었다.

- 저, 저놈 저거 싸가지 좀 보게?! 어제 그 명태성인가 동태성인가 하는 녀석의 말이 딱 맞구나! 개판이로다!!!

그런 창구 담당자의 태도에 가장 먼저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역정을 내셨고.

바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하성이 녀석도 열불을 냈다.

“거, 태도가 좀 심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용운 형님이 정급 무사로 시험을 봐야 한다고?! 우리 형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하성아.

마음은 고마운데, 아니다 안 고맙다.

지금 시험 중이다, 그러니까 제발 좀 닥쳐.

‘그리고 사부님도 좀 진정하십시오.’

- 진정하게 생겼느냐?! 이는 파천검문이 무시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육신만 멀쩡했어도 관문 전체를 쓸어버렸을 것이야!! 너는 화도 안 나느냐?!

‘파천검문이 무시당한 게 아니라 제가 무시당한 겁니다. 언용운 이름 석 자와 쫓겨났다는 이야기만 했으니까요.’

- 네가 무시당하는 게 곧 파천검문이 무시당하는 것이다 욘석아!

‘참 내. 맨날 이놈 저놈 하시는 분이 누구신데요. 그리고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어요.’

- 나랑 저놈이랑 같느냐?! 에이이잉!!!

‘당연히 다르시죠. 제 말은 이럴 때만 화를 내시지 말고 평소에 따듯한 말을 해주시라 이거죠.’

- 흥이다 이놈아! 아니 근데 저런 미친놈이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다고?!

정확히는 가문에서 쫓겨난 신분이기에 정급 무사로 일 관문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했고.

원서 접수 절차에서 저런 싸가지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데.

‘묵색 무복이면 향란관의 재학생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니 주인공의 입학 시험 에피소드 때 딱 저런 인물이 있긴 있었다.

입관 시험 절차에서 급을 나눠 응시생을 상대하다가 주인공인 정현에게 개쪽을 다 팔고, 그에 앙심을 품고 두고두고 정현을 괴롭히다가 훗날 오지게 처맞는?

- …아무튼 제자야 너는 다 생각이 있고 그래서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괜찮지가 않구나, 네 녀석의 곧은 성정은 안다만 언젠가 한 대는 쥐어박아야 속이 시원….

‘아, 물론 저도 말이 괜찮다는 거지 그냥 넘어가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부님.’

- 음.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그렇게 사부님을 달랜 나는 피식 웃으며 눈앞의 묵색 무복의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혹시 선배님의 성함이 조철성 아니십니까?”

“…날 아나?”

“조금은요?”

흐흐.

“???”

일단 시험 중이기도 하고.

쪽은 이따 주인공이 알아서 팔아줄 테니 일단 넘어갑니다.

신경을 그 친구 쪽으로 좀 쏟고 계시다 처맞으실 땐 저도 같이 보시는 걸로?

니 딱 봐나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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