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2화 (32/444)

제32화. 첫 번째 관문 (2)

그렇게 조철성의 면상과 인성을 머릿속에 새긴 나는 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잠시 하성이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에 하성이 녀석이 짭호대장군 중 두 명을 처리했다는 그날처럼 웃었다.

“…헤헤.”

…뭔데?

칭찬해 달라고?

- …그런 것 같은데?

뭘, 잘했다고?!

내가 그~렇게 모든 행동이 감점 요인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누누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를 해줬는데!!

‘경거망동을 한 놈이요?!’

하, 쟤를 진짜 어떡하지?!

- 그야 그렇다만 이번에는 좀 봐주거라. 네 일에 화를 낸 것이지 않더냐?! 내 구해봐서 아는데 저만한 시종감을 구하기가 쉽지가 않으니라.

‘흠. 그런가요?’

이 순간 나는 잠시 잠깐 근원적인 고민에 들어갔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하성은 원래 이 시기에 정무학관에 입학하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때.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 고럼고럼. 네가 저 녀석에게 준 거라고는 딱밤과 얼차려밖에 없는데 저리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 해도 충심은 있는 놈일 것이다. 눈치가 좀 없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 보이긴 하다만, 차차 나아지겠지.

안 나아질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사부님의 말씀에 일정 부분은 공감하는 바였다.

하성이 녀석은 수료라는 얄팍한 형식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거둔 녀석이기도 하고.

좀 투덜거리긴 했어도 단강구까지 오는 여정 내내 알아서 잡무를 맡아 해서 이래저래 편하기도 했다.

녀석 덕분에 가끔 웃기도 했고.

‘한번 웃을 때마다 속이 한 다섯 번씩 터져서 그렇지.’

뭐, 옆에 두고 보니 곁에 헛바람 넣는 사람만 없으면 큰일을 치를 녀석은 아니었고, 그건 나라는 존재가 있으면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긴 했다.

하여 내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성아.”

“예?”

“네가 나를 걱정할 급이냐?”

“…아, 아닙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 쓸데없이 내 걱정 하지 말고.”

“…넵.”

“아, 그리고. 접수 끝나고 관문 진입해서는 두 점짜리 난이도만 택해라.”

“……?”

“뭐라고?”

“두 점짜리만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형님.”

“그래. 절대로 잊지 말고.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약해. 그러니까 방금처럼 나 없을 때 아무한테나 깝치지도 말고.”

“옙!”

“그래. 나중에 보자.”

“예! 형님!!”

* * *

정무학관 무과의 입관 시험은 나흘 동안 총 다섯 관문의 시험을 치르고 각 관문에서 획득한 총점으로 합격자와 수석을 정한다.

일단 그 다섯 단계의 관문은 이러하다.

등급부여(等級附與)

무위(武威)

파훼(破毁)

경신(輕身)

조별 과제(組別課題)

매 기수마다 열거한 단계들에 시험관으로 선정된 교수들이 강조하는 주제가 더해지며 시험의 세부 내용이 바뀌어 왔다.

원작에 따르면 주인공 세대가 포함된 이번 기수를 관통하는 주제는 ‘응시생들은 과연 자신의 주제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였다.

하여, 이번 기수에는 최초의 등급부여 관문을 제외하고 남은 네 개의 관문마다 응시생들에게 선택지들이 주어지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를테면 저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네 개의 활이 바로 그 선택지였다.

五(5), 三(3), 二(2), 一(1)이라는 푯말이 꽂혀 있는 탁자 위에 놓인 네 개의 활.

저 중에 어느 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점수가 바뀌는 것이다.

“본인은 정급 무사 무위 시험의 감독관을 맡은 팽재혁이다. 이 관문은 마륭관이라 한다! 마륭이 누군지 아는 사람?! 음, 그래 거기 대머리!!”

“…흔히들 삼국지라 부르는 시대를 일통한 서진(西晉)의 명장(名將) 아닙니까?”

“쿠하하! 거 머리카락은 없으면서 그 안에 든 것은 제법 있구나! 맞다! 그 마륭(馬隆)은 독발수기능(禿髮樹機能)이라는 자가 자신의 나라를 위협해왔을 때 그를 상대하기 위해 정예 병력을 가려 뽑았는데, 그 방식이 바로 강궁(强弓)을 당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이 관문의 시험도 그와 같다. 음, 그래 거기 털보.”

“그와 같다시면 마륭의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식한 놈! 딱 보면 감이 안 오나?! 푯말에 적힌 숫자가 높을수록 활의 장력도 높고 얻어 갈 수 있는 점수도 높다. 다만 만작(滿酌)이 되지 않으면 그 순간 탈락이다! 어 그래 거기 화살코!”

“탈락이라면 영점 처리가 된다는 겁니까?!”

“아니, 현재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할 줄 아는 준비된 응시생을 뽑는 것이 이번 시험의 목적이다! 하여 시위를 완벽하게 당겨 내는 데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시험 자격을 박탈할 것이다. 물론 한번 선택하면 바꿀 수도 없다. 이렇게 간단한 시험도 이해를 못 하는 놈은 없겠지?!”

“예!”

“좋다! 그렇다면 시작이다!!”

그렇게 입관 시험의 본격적인 관문의 막이 올랐다.

배에 정(丁) 자가 새겨진 무복을 입은 응시생들은 하나씩 나와 팽재혁 앞에서 준비된 강궁들을 당겼다.

“두 점짜리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뭐, 용기는 좀 부족해 보이는 것같다만, 아무튼 당겨 보거라!”

“흐아아앗!!!”

“통과!!”

누군가는 안전하게 두 점짜리를 선택했고.

“고작 한 점짜리를 당기겠다는 거냐?! 관문의 개수 그리고 역대 합격자들의 평균 점수가 십 점이라는 것은 숙지하고 있겠지?!”

“옙!”

“뭐, 그렇다면야. 어디 당겨 보거라!”

“이야아아앗!!!”

“한 점짜리 당기면서 용을 써 재끼기는! 아무튼 통과다! 통과아아!!!”

딱 보기에도 비실비실해 보이는 누군가는 그보다 더 안전하게 한 점짜리를 택했으며.

“으흐흑! 이, 이 정도면 만작이 된 것 아닙니까?!”

“쿠하하! 택도 없다 이놈아!!”

“크흐으으윽! 서, 석 점짜리를 당기면 제대로 당겨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앞서 두 점이나 한 점짜리를 당긴 녀석들보다 제가 더 나은 인재 아닙니까?! 하, 한 번만 바꿀 기회를 주십시오!”

“네가 선택한 대력궁이다! 그 말을 할 시간에 더욱 강하게 당겨라!!”

“으아아아아!!!!”

“탈라악!”

어떤 이는 모험을 걸었다가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 내 차례를 기다리며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중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흐음.

‘뭡니까 사부님 그 흐음은?’

- 뭐 범인은 시위를 당기기도 힘든 강궁들인 것 같긴 한데. 그렇다손 치더라도 저걸로 무위를 판단한단 말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무위보다는 완력이라는 말이 적절할 성싶은데?

‘뭐, 그야 그렇죠?’

- 완력을 논해야 하는 급이라면 이류나 삼류 수준일 텐데, 백도 무림에 난다 긴다는 후기지수들을 가르친다는 곳에서 이런 것을 과제로 낸단 말이냐?

‘아, 그야 제가 정급 무사 시험장으로 왔으니까요. 삼 단계인 파훼, 사 단계인 경신은 같은 과제가 주어지지만. 이 단계인 무위는 처음 받은 등급에 따라 문제가 다릅니다. 아마 병급과 을급 무사들은 지금 수준에 맞는 선배나 교수들이랑 대련을 하고 있을 겁니다.’

- 호오 그래?

‘예. 그리고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의 목표는 원석을 찾는 것에 있으니까요. 왜 그런 응시생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 어떤?

‘일신에 무위는 형편없지만 경공은 끝내준다든지? 아니 그냥 하연 소저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사부님께서도 지닌 자질은 검을 잡아도 될 것 같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소저의 경우는 집이 유복하니 머리에도 든 게 많아서 문과를 쳤지만, 예컨대 밭이나 가는 초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요?’

- 흐음.

‘문과는 꿈도 못 꿀 것이고, 자질이 있어도 무공을 배우지 못했으니, 대련으로 점수를 매기면 점수를 따내지 못하거나 탈락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 그렇구나. 흠. 왜 천하의 후기지수들이 정무학관에 다 모인다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구나.

그때였다.

그렇게 사부님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그때.

감독관을 돕고 있는 색무복을 입은 조교 중 한 명이 내 차례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다음 차례입니다. 준비하세요.”

하여, 잠시 호흡을 고르고 시험대 앞으로 다가갔는데, 감독관인 팽재혁이 대뜸 눈을 부라리며 일갈을 시전했다.

“허! 용운이 네놈이 여기에 왜 있느냐?!”

- …제자야, 이자가 너를 아는 것 같구나? 으음. 하기야 팽재혁이면 하북팽가일 것이고 네 본가인 언가도 하북의 진주 땅에 있으니 아는 사이냐?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원작을 읽었기에 대충 예상이 갔다.

‘팽재혁. 하북팽가 가주의 동생이자, 정무학관의 도법 교수이며 작중 주요 인물인 팽소천과 팽소진의 친숙부.’

그러고 보니 원작의 언가의 가주와 팽가의 가주과 의형제 사이라 언용명도 막내 숙부 대접을 했었다.

설정을 떠올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재혁 숙부를 뵙습니다.”

“그 주둥이에서 숙부 소리가 잘도 나오는구나! 네놈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것이냐?!”

“보시다시피 입관 시험을 치르러 왔습니다.”

“허허. 쫓겨났다 하여 네놈이 벌인 일들이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니거늘 숙부 소리에 시험을 치러 왔다는 소리에 넉살도 좋구나?!”

원작의 팽재혁은 언용명에게 시종일관 호탕했고 호의적이었다.

그렇다면 저 깊은 빡침에서 우러나는 것 같은 악감정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前)용운이 이 자식이 팽가에도 뭔 짓으로 엮였나 보네.’

환장한다.

환장해.

하지만 환장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고, 팽재혁에게 기가 눌릴 생각도 없었다.

‘어쩌라고?!’

기억도 없는 일.

더 명확히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씨름을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어쩔 건데?!’

아무튼 전(前)용운이 녀석이 쌓아놓은 업보로 인해 가문에서 쫓겨났고, 내 능력껏 이래저래 사부님이나 은휘상단과의 연을 만들어냈지만, 이 또한 큰 틀에서 보면 구르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이렇게 정급 무복까지 차고 있지 않은가?!

첫 번째 관문에서 정급 무복을 받은 사람은 일 점을 감점을 당하고 시작한다.

‘나는 충분히 업보를 감당하고 있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여, 나는 팽재혁을 향해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시험. 보겠습니다.”

“…네놈! 그 태도는?!”

그런 내 모습에 팽재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잠시 입을 벌리고 서 있더니, 어느 순간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끙. 하! 그래 어디 해보거라! 무엇을 고르겠느냐? 보나 마나 한 점짜리 강궁을 고를 테지?! 수련은 등한시하고 도박과 주색잡기나 하던 녀석이….”

나는 그런 팽재혁의 음성을 신호 삼아 활들이 놓인 탁자 위로 다가갔다.

그리고 닷 점짜리 대력궁을 골랐다.

그러자, 팽재혁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나를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하. 하하하. 대력궁?! 그놈의 허세는 여전하구나! 아까도 말했듯이 골랐으니 끝이다! 보기 좋게 탈락하겠구나! 준비되는 대로 당겨 보거라!”

나는 그 비웃음을 신호 삼아 대력궁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파천신공을 운용하며 대력궁을 당겼다.

끼기기기긱-!

순식간에 있는 대로 잡아 늘여진 시위.

휠 대로 휜 활대.

이 정도면 만작(滿酌)이 아니라 극작(極酌)이다.

한데, 어째선지 통과라는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여, 나는 대력궁을 당기고 있는 상태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팽재혁을 바라보았다.

‘놀라서 치켜뜬 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물린 이.’

놀라서 그런 것인지 믿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지.

어쨌든 간에 말문이 막힌 것으로 보이는 팽재혁.

나는 그의 입에서 통과 소리를 기다리는 대신, 더욱 힘껏 시위를 당겼다.

끼걱끼기긱-!!!

빠직!!!!!

그렇게 활대 자체를 부러뜨려 버린 후에야 나는 팽재혁을 향해 확인을 구했다.

“통과.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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