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8화 (38/444)

제38화. 하늘을 달리다 (3)

그러고 보니 우소릉의 말은 알려 줄 수 없다가 아니라 알려 주기 어렵다였다.

“흠. 일단 계속해봐. 네 말을 다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낫겠다.”

“…그, 제가 언 형께 경공의 요령을 알려드리면 마지막 관문에서 조에 넣어주시겠다 하셨잖아요?”

“그랬지.”

“예. 그러려면 제가 언 형께 경신술을 알려드렸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흠.”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루 이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가문의 경신술이 강호의 다른 신공절학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제가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거의 평생을 수련을 해와서 최근에야 봉오리가 맺혔다 수준에 든 거라서요.”

이쯤 하니 소릉이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니까 소릉이 네 말은 가르쳐 줄 수는 있는데, 고작 하루 이틀로는 내가 만족할 수준이 안 될 것이다. 뭐 그런 말이지?”

“예. 정확해요.”

“우선 확실히 해둘 게 있는데, 네가 가진 경신술은 강호의 어느 신공절학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지.

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던 원작의 우소릉의 행보와 어쨌거나 마인들이 기를 쓰고 천라지망을 펼치는데 아무튼 그걸 뚫어냈음을 생각하면 과장 좀 보태서 무림일절이란 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폄하하지 마.”

그런 내 말에, 우소릉은 감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때.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전해 오셨다.

- …내 제자지만 참.

‘참 뭐요. 분위기 좋은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 궁보계정 다섯 조각으로 그 경신술을 꿀꺽하려고 한 놈이 신공절학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니 어쩌니 말은 참 잘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꿀꺽이라뇨?!

제가 수석이 되는 각이 나와야 소릉이 녀석도 합격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데요.

소릉이도 좋고, 저도 좋고, 사부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사돈댁도 좋은 거라 이 말입니다.

뭐, 아무튼.

나는 사부님을 무시하고 계속해 말을 이었다.

“나도 애초에 하루 이틀에 대성하겠다는 생각으로 말한 게 아니야.”

“…아, 그러셨습니까?”

“그래. 근데 너 막 호수에 목봉 박아 놓고 달리고, 담벼락 위에서 질주하고, 절벽 오르고, 또 뭐 있냐?”

“…모래사장이랑 빽빽한 숲?”

“그래. 모래사장에서 뛰고 뭐 그런 거 다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거지?”

“…어. 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원래라면 저런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하는 게 맞다.

언제 어디서 경신술을 사용할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당장 경공의 요령이 필요한 이유는 입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그렇게까지는 필요가 없어. 알아보니까 이번 기수의 경신 관문은 무당산의 계곡에 걸어놓은 구름다리를 통과하는 거라더라.”

“아, 그런 풍문이 돌기는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나는 우소릉을 응시하며 생각을 해보라는 뜻으로 검지로 관자놀이를 건드리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래. 더 정확히는 배점에 따라 다리에 걸어놓은 나무판자의 두께가 얇아지는 방식이라 했어. 그러니까 네가 수련했을 때처럼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없어. 그런 건 합격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출제 범위를 정확하게 아는데 왜 미련하게 전 범위를 왜 훑냐?

“아! 그렇군요! 역시 언 형은 같은 풍문을 듣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시네요? 저보다 자세히 아시기도 하시고요?! 갑자기 눈이 뜨이는 느낌입니다!”

“그래. 그리고 경공에 일가견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산가지 놓고 한일(一) 자도 모르는 처참한 수준은 아냐.”

“처, 처참하다뇨?!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야. 아무튼, 너는 성의껏 알려 주면 된다. 자,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길까?”

“옙!!”

* * *

그렇게 학관생 식당을 나온 나는 우소릉을 데리고 기숙사 뒤편에 있는 뒷산의 초입으로 향했다.

“이 길로 쭉 달려 올라가면 중턱 즈음에 연무장으로 쓰라고 만들어 놓은 판석을 깔아 놓은 공터가 있어.”

“아, 그런가요?”

“그래. 거기로 가자. 가는 도중에 내가 나름대로 경공을 펼쳐 볼 테니까, 네가 그걸 보고 중턱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면 될 것 같다. 겸사겸사 나도 네 경공을 지켜보면 네가 바라는 조언도 해줄 수 있고 그거 자체로 공부가 될 거고.”

“옙.”

“그래. 하나 둘 셋 하면 뛴다?”

“옙!”

“하낫!!!”

음.

배우는 입장이라 여기서까지 이런 수를 쓸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나만 세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 …내 제자지만 인성 한번.

흠흠.

뭐, 사부님은 무시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중이라 평범한 사람은 입이 떡 벌어질 속도로 계곡을 거슬러 오르니, 계곡 길 좌우로 놓인 나무들이 화살의 그것처럼 스치는데.

샤- 샤샤샤샤샥-

순식간에 바로 옆으로 따라붙은 우소릉이 입을 열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요. 여기도 일단 학관 안쪽인 거죠?”

“어. 무당산의 자락인데 학관의 경내에 포함되는 곳이다.”

확실히 우소릉의 경신술은 대단했다.

‘저게 무영풍(無影風)인가 그랬지?’

그림자 없는 바람이라는 이름 그대로

찰나이긴 하나 녀석이 준비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출발했고, 파천의 심법을 운용하며 박찬 거리도 있는데, 우소릉은 그걸 순식간에 따라잡아 놓고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언 형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십니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까짓 계곡 하나 발견한 게 뭐가 대단하다고.

네 무영풍이 더 대단하다.

“아침마다 구보(驅步)랑 마보(馬步)랑 오금희(五禽戱)라는 기초체력단련은 여기서도 꾸준히 했는데, 마치고 나서 운기조식 할 만한 곳이 없나 찾아 돌아다니다가 알게 됐다.”

“…아. 그렇게 하시니까 전체 석차 이 위 같은 성적을 거두실 수 있는 거군요. 다른 응시생들은 다 몸 사린다고 바쁘던데요.”

뭐랄까?

내가 팍팍 땅을 밟는다는 느낌이면, 녀석은 표표하게 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흙먼지가 긴 꼬리처럼 달라붙고 있는 나와 달리 우소릉의 발에선 먼지조차 나지 않고 있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내달리다 보니 어느덧 목표했던 중턱의 연무장이 나왔다.

나는 끼익- 하고 달리던 걸음을 멈춘 뒤.

가볍게 숨만 고르고 바로 입을 열었다.

“볼 것도 없네. 소릉이 너는 오 점짜리를 응시하면 되겠어. 파훼 관문은 그렇다 치고 무위에서 일 점짜리를 친 걸 보면 내력이 심후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대단한데?”

“…과, 과찬이십니다. 빈말이라도 감사드려요.”

다리가 멈추니까 달릴 때랑 표정부터 다르네.

따지고 보면 내 경공 선생이 되어줄 녀석이 매사에 이래서야 되나.

나는 소릉이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자신감을 가져.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나 빈말 안 한다. 은하성이라고 있는데 나중에 여기서 내려가서 만나게 되면 물어봐 봐. 걔한테는 내가 너한테 하는 말 딱 반대로 하거든?”

“…뭐라고 하시는데요?”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고.”

“…아.”

뭐, 소릉이 놈의 자신감이야 차차 좋아지겠지.

지금 시급한 것은 내 경신술을 끌어올리는 것.

이쯤 하여 나는 본론을 끄집어 냈다.

“아무튼 나는 어때?”

“언 형이야말로 대단하시던데요?”

그런데 우소릉의 입에선 때아닌 말이 나와서 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쓰흡. 배울 시간도 촉박한데 흰소리하지 말고. 진짜 내 맘대로 뛰는 건데 그게 대단하면 제운종이니 백학보니 운룡대팔식이니 하는 게 왜 있어?!”

내가 이렇게 나가면 녀석의 성격상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나와야 정상인데, 전문 분야라 그런지 우소릉은 내 기세에 지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뇨. 흰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형님처럼 그렇게 내력을 펑펑 쏟아내며 달리지 못합니다. 그랬다간 반도 못 와서 쓰러졌을 거예요. 경신술이라는 게 끝에 가면 내력과 그 내력을 운용하는 심법의 중요도가 칠팔 할쯤 되거든요. 약간의 요령만 익히시면 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더 오래 달리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열린 우소릉의 입에선

사부님이 하셨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이어서 구체적인 방법이 나왔다.

“아까 식사를 할 때만 해도 하루 이틀로 될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언 형이 달리는 모습을 보니… 하루 이틀에 될 것도 같으네요?”

그렇게 본격적인 미래의 천하제일쾌가 되는 일타 강사의 경공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료는 고작 궁보계정 다섯 조각.

경신술 수업, 가죽신보다 싸다!

“저희 가문의 경신술은 무영풍이라고 합니다. 바람에 나부낄 것처럼 몸을 가볍게 가누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수법이지요. 근데 저는 이게 결국 저희 가문의 심법이 대단치 않아서 그런 식의 방식을 취해온 것이라 보거든요?”

“근데?”

“아깐 내력을 펑펑 쓴다고 했습니다만… 언 형이 내달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심법의 출력이 남다르시던데요? 그렇게 달리시면서 대화도 하시고 호흡도 안 흐트러지시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을 해보건대, 내력이 다는 양도 얼마 안 되시는 거죠?”

“…어. 그렇긴 한데?”

“그럼 진짜 조금만 손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러니까 소릉이 네 말은 나는 내 식대로 뛰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지?”

“예. 약간의 교정이 필요하겠지만요. 일단 여기 제 발을 한번 봐주세요.”

“보고 있어.”

“언 형께서는 이렇게 밟으십니다. 약간 즈려밟는? 보기에 따라선 짓이기는 느낌이신데, 적을 밟아 죽이시려는 목적이시라면야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평소에는 이걸 이렇게 박차는 정도로만.”

“이렇게?”

그렇게 나는 우소릉을 믿고 녀석의 장단에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 비슷한데 거기서 무릎의 긴장은 발을 차는 동작에서만 줘보세요.”

“요렇게?”

“오! 방금 그 느낌 좋습니다. 거기서 이제 계곡을 내달리실 때 내력을 방출하시던 느낌을 조금만 벼려내 보세요.”

“벼리라고?”

물론, 소릉이 녀석도 누굴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라 이따금 어리바리하게 굴기도 했다.

“…아, 이걸 설명을 어떻게 해드려야 하지. 팡! 하고 차시던데 그걸 퐁?! 하는 느낌으로? …죄, 죄송합니다. 설명이 좀 이상하죠? 제가 누굴 가르쳐 보는 게 처음이라.”

하지만 사부님이 평하신 대로 내 오성도 보통 오성이 아니긴 한 모양인지, 소릉이 녀석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아냐. 잘하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이! 렇게! 하라는 거지?!”

“예! 예!! 이제 거기서 아까 시험 과제가 나무로 된 구름다리를 건너는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것뿐이라면 내려앉을 때만 몸을 가볍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 런 식으로?!”

“잠깐만. 이! 렇게…는 아니고. 이렇게?! 맞지?!”

“……!”

“…아냐?”

“마, 맞습니다! 맞아요!”

“맞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놀랬잖아.”

“제가 이십 년 가까이 수련하며 체득한 걸 되지도 않는 설명이랑 한번 본 것만으로 따라 하시는 언 형이 새삼 대단해서요…. 근데 이건 무영풍이 아닌데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경신술이었다.

- 내 뭐라고 하였느냐?! 파천의 심법에 네 오성이면 요령만 좀 배우면 될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본디 우소릉에게 무영풍의 일부를 배우러 온 자리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나만의 경신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언 형. 그런데 이걸 제가 가르쳐 드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완전히 새로운 경신술인데요?!”

“아냐 확실히 선생이 좋았어. 네 덕이다. 네 덕이니까 이 경신술의 이름은 소릉이 네가 붙여라.”

“저,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음. 너무 구리면 내가 다시 지을 거긴 하니까 부담 없이 한번 말해봐.”

“…음. 하늘마저 박차며 날 듯이 달리니. 비영파천보(飛影破天步). 비영파천보라 하면 어떨까요?”

비영파천보.

거, 이름 한번 마음에 드네.

다음 시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체득해 내야지.

K-벼락치기의 위력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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