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하늘을 달리다 (5)
누구는 참교육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냐?!
이놈 시키들아 지금 시험 중인 거 몰라?!
‘하. 저 화상들을 진짜 어떡하지?!’
- 그리 열을 낼 일이더냐?
‘열을 낼 일이죠. 막말로 개판 오 분, 아니 반 다경 전인데요.’
마도의 인재 선발은 납치 유인 같은 음습하고도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편이고.
관군이 원하는 인재상은 좀 더 틀에 박힌 느낌의 무사들이다.
하니, 천하에서 가장 혈기가 방장한 녀석들이 모이는 곳은 단연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
이런 곳에서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졌다간 눈 깜짝할 사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명문대파의 도련님들은 자존심들이 강한 분들이라 이런 환경에서는 걸어 다니는 화약이나 다름없지.’
예컨대 쪽팔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체면을 지키려고 칼을 뽑을 수 있는 친구들이 바로 저 단목가의 도련님 같은 친구들이었다.
‘다들 시험 조지려고 작정했나. 진짜 환장하겠네.’
- …내가 보기엔 똑 닮았는데?
‘…잘 못 들었슴다?’
…지금 쟤들이랑 저를 한데 묶으신 겁니까 사부님?
- 자고로 유유상종이라 하였느니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화상이라면 스스로를 한번 돌아봐야지.
‘……?’
- 기억을 되새겨 보거라. 네 녀석은 저 정현이라는 녀석을 위해 선배들의 앞까지 막아서지 않았더냐.
아니, 그건 사정이 좀 다른데요?!
저는 앞뒤를 충분히 재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거고요.
‘…쟤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거, 은근히 흐뭇해하지 마십쇼!
회한에서 이상한 진동이 전해져서 기분 나쁩니다.
끙.
뭐, 환장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현과 우소릉 그리고 은하성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긴 해.’
정현은 원래 좀 저런 녀석이었다.
불의가 보이면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녀석.
거기에 사부님의 말마따나 향란관의 선배들과 얽힌 일로 내게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다.
‘소릉이 녀석도 이해가 가지.’
우소릉은 비영파천보를 함께 만들었고 그 성취를 직접 눈으로 본 녀석이다.
그런데 내기 소리가 들려오니 조심스럽게 나섰을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우소릉이 나선 이유는 단목가의 공자가 한 말을 끌어다 낙장불입 같은 단어를 붙인 하성이 녀석에게 있는 거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시선은 자연히 스물댓 보쯤 떨어진 위치에서 중위권 생도들과 섞여 있는 은하성에게로 향했다.
“헤헤.”
그런 내 시선을 인지한 은하성은 자신이 내 면을 지켜 내기라도 했다는 듯, 뿌듯해하며 우수로 코밑을 훔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형님 저 잘했죠?’하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았다.
‘…….’
어휴 화상.
‘진짜 거리만 좀 가까웠어도 바로 등짝에 파천의 내력을 실은 일장을 날려주는 건데.’
뭐, 울화가 치미는 것과는 별개로 하성이 놈이 저러는 이유 역시 이해는 갔다.
일면식도 없는 자들도 나를 보고 군소 방파의 희망이니, 정급 무사의 신화니 같은 소리를 하는데.
내게 참교육을 받은 이래 줄곧 의제(義弟)를 자처해 오고 있는 녀석 입장에서는 열이 받을 만도 하다 싶었다.
‘마음이야 알겠는데. 좀 은밀히 하던가. 에이잉!’
제 누나였다면 좀 더 치밀하고 철저한 판을 짰을 텐데.
시험장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 만들기를….
어.
잠깐만?
‘근데 아직 부스럼 단계는 아닌 거 같은데?’
이곳이 시험장이라는 것은 단목가의 공자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
‘아니지?!’
단목세가는 이른바 오대세가에 낄 급의 세가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절강성에서 방귀깨나 뀌는 집안이었다.
그 말인즉.
망나니 꼬리표가 붙어 있는 나보다 명가의 공자님인 저쪽이 훨씬 더 심리적 제약을 받을 거라는 말씀.
‘게다가 본인 스스로 전 재산을 건다는 말도 했고?’
그렇다면 약간의 조치만으로 판국을 완전히 내 쪽으로 유리하게 돌릴 수가 있었다.
- …네 입꼬리가 그렇게 걸리는 모양을 보아하니, 저 단목가의 공자도 좋은 꼴은 못 보겠구나. 쯧쯧.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지 아둔한지고.
* * *
나는 일단 떨어져 있는 하성이 녀석을 손짓으로 불렀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좀 지나가겠습니다.”
그런 내 손짓에 하성이 녀석이 응시생들의 인파를 가르며 빠르게 내 앞에 당도했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하성이 녀석을 굳이 부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휴대용 필기구 가지고 있지?”
상인들은 어지간하면 구두 약조보다는 약조를 문서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은휘상단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상시 필기구를 휴대하고 다녔다.
일례로 은하연의 경우는 항상 수첩을 휴대하지만 수첩을 휴대할 수 없는 경우엔 소매의 안감 같은 것에 양피가 덧대어져 있었고, 머리에 꽂고 있는 뒤꽂이의 끝을 돌리면 연필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목탄이 나왔었다.
하여 은하성을 부른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성이 녀석도 지니고 있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하성이 녀석은 머리에 감고 있는 하얀 영웅건이 양피지의 대용이고. 그 안에 꽂고 있는 동곳이 연필 대용이었는지.
필기구를 찾는 내 목소리에 영웅건과 동곳을 해제하게 되어 순식간에 봉두난발이 되었다.
“여깄습니다. 형님.”
이 필기구가 바로 하성이 녀석을 부른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은휘상단의 소공자라는 녀석의 신분과 어찌저찌 얻은 강남신협이라는 별호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는데….
“…머리 좀 어떻게 해라.”
진짜 망나니 꼴이네.
저 꼴로는 설득력이 좀 많이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충분한 대체제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나는 정현에게 필기구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모월 모일 무당산의 개로쌍봉의 좌봉에서 이 사람의 사문을 욕보이는 자가 있어 나름의 방식으로 승부를 요청하고자 하니, 대 무당파의 정현 도장께서는 증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그런 내 행동에 정현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예?!”
나는 그런 정현을 향해 귓속말을 건넸다.
“좀 전에 쟤들한테 말씀이 심하다 어쩐다 한 거 아니야?”
“…어. 맞습니다.”
“근데 따지고 보면 내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려고. 너는 증인이나 돼 달라고. 말이 좀 어려웠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현은 흠칫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아둔하여 순간적으로 이해를 못 했습니다. 기꺼이 증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시겠답니다.”
그렇게 증인 섭외를 끝낸 나는 단목가의 공자를 응시하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럼 정현 도장은 내어드린 필기구로 이 순간을 문서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좌측 위에는 파천검문의 언용운이라고 쓰고, 우측 위에는 단목세가의… 거 이름이 뭐요?”
“…나, 나를 말하는 거요?”
“그럼 이 자리에 남의 뒤통수에 대고 험담을 한 단목세가의 사람이 또 있소?”
“허, 험담이라니? 나는 그저 친우와 이번 기수의 입관 시험의 수석이 누가 될지에 관해….”
얼씨구?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내 경신법을 보면 눈이 썩는다 어쩐다. 했소, 안 했소?”
“…….”
그에 단목가의 공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말을 삼켰다.
하지만, 어느샌가 인파를 헤치고 와 내 뒤에 선 우소릉이 소심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했어요.”
그에 힘입어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또 전 재산을 건다 어쩐다. 했소, 안 했소?”
“그 역시 했어요.”
“그렇다잖아! 그러니까. 이름 뭐냐고. 이름! 설마, 대 단목세가의 공자님께서 정급 무사 따위에게 쫄으신 거요? 쫄?!”
“…단목원. 단목원이요.”
그 과정이 끝나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전해오셨다.
- 삼인성호(三人成虎)…구(口).
‘예?’
- 세 사람이 말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를 만든다더니. 너희는 호구를 잡는구나.
* * *
그렇게 단목원이 빼도 박도 못하도록 서류를 꾸미고 있는 사이.
개로쌍봉의 우봉에서 푸른색 깃발이 올랐다.
그러자 석차가 적힌 흑판을 담당하는 도우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전체 석차 일 위를 달리고 있는 제갈설지의 점수 칸에 오 점을 더했다.
그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 나는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부감독관은 조금 더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리게. 일천이백삼십사 번 응시생이 건너가며 훼손된 널빤지가 있다면 수복(修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저쪽에서 도우미 역을 선배가 확인을 하며 건너오고 있을 걸세.”
“아하. 부서진 널빤지가 있으면 도우미를 맡은 선배가 그걸 일일이 고쳐 주시나 보군요?”
“그렇다네. 이쪽에 도착하거들랑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도록 하시게. 그게 예의일세.”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경신 관문의 도우미는 도우미계의 극한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검은 무복을 입은 신형이 휙 휙 구름을 사다리 삼아 달리듯 이쪽으로 치닫는가 싶더니.
- 무당의 말코 놈들이 특기로 삼는 제운종(梯雲縱)이로구나.
일순 제비를 돌며 착! 하고 내려앉았다가, 빠르게 의관을 정비하고 부감독관을 맡은 조교수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상 없습니다. 조교수님.”
그런 도우미 선배를 향해 예를 보이고자 나도 포권을 취했다.
그런데, 어째 도우미 선배의 낯이 많이 익었다.
“…음? 운혁 도장의 사제이자 철성 형씨의 벗 되시는… 그 실례지만 도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건방진 놈. 운진이다.”
“그러시군요. 아무튼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흥. 감사는 내 선물을 확인한 이후에 하도록.”
“……?”
우리가 서로 간에 선물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저게 뭔 소린가 싶었지만.
곧바로 부감독관의 음성이 이어졌기에 생각을 할애할 겨를이 더 주어지지 않았다.
“칠십구 번 응시생 준비됐나?”
“옙.”
“호각을 불 것이다. 그것을 시작 신호로 삼도록.”
“옙.”
이윽고 부감독관의 호각 소리가 들려왔고.
삑-
나는 부감독관의 호각을 신호 삼아 비영파천보를 밟으며 오 점짜리 목재교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쌔애애애애액- !!!
그러자 곧 운진이라는 녀석이 말한 선물이라는 것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
- 허?! 저 운진인가 분진인가 하는 놈. 널빤지가 빠져 있음에도 제대로 신고를 안 했구나?!
‘신고를 안 한 게 아닙니다 사부님.’
- 아니라고?
‘예. 사부님께서도 제갈설지의 백학보를 보셨지 않으셨습니까? 그녀가 부순 게 아닙니다. 저 자식이 일부러 널빤지를 부숴놓은 겁니다.’
운진 일당이 식당에서 쪽을 팔았을 때, 상황을 정리하며 나를 쏘아보는 눈빛이 도끼를 삶아 먹은 듯싶더니만.
내 이름을 기억해 뒀다가 석차에 든 것을 확인하고 이런 수를 쓴 모양이었다.
- 고얀지고! 무림맹에서 나온 그 명태성이라는 자가 개판이라고 하더니 알면 알수록 가관인 놈들이 튀어나오는구나?!
‘그러게요. 정말 고얀 놈입니다.’
담이 작은 자나, 급박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간 경험이 없는 자라면 이 순간 당황을 했을 것이고, 그 당황은 실수로 이어져 추락을 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담이 작은 자도 아니었고, 임기응변에도 능했다.
하여 이런 얕은수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팟-!!!
아니, 그저 뛰어 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발상의 전환까지 꾀했다.
‘이거 근데 도우미가 고친다고 그랬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전반적인 보폭을 좁혔다.
그리고 동시에 널빤지를 딛어 차는 순간에 비영파천보에 쏟는 내력의 양을 최대로 늘렸다.
빡!!!!
그러자, 널빤지들이 밟는 족족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빡!!!
나는 그렇게 널빤지를 밟으며 엿을 먹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다.
빡!!
우리 목원이!
단목원!
이따가 정산할 때 보자아~?!
빡!!!!!
그리고 운진이!
우리 앙큼한 선배님!
있는 데로 다 부숴드릴 테니까, 아슬아슬 매달려서 열심히 널빤지를 하나하나 끼워보시지!
빠악!!!!!!!
“킬킬킬! 다 뒤졌다!!!”
빡! 빡! 빠바바박!!!!!
그렇게 킬킬거리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당도하게 된 개로쌍봉의 우봉!
“응시생이 그 위명이 자자한 공포의 정급 무사인가 보군요? 생전 처음 보는 재미있는 경신술이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그 경신술의 이름을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비영파천보입니다.”
“비영파천이라. 이름 또한 처음 들어보는군요. 하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야말로 하늘을 달리는 듯한 경신술이었습니다. 어디 보자, 오 점을 더하면 이미 점수가 십사 점이니 합격권에는 충분히 들었겠군요? 축하합니다. 후일 수강 과목을 고를 때 내 수업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칠십구 번 응시생 언용운 통과입니다.”
한영도사가 파란 깃발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