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2화 (42/444)

제42화. 수치, 쭉정이, 도둑놈 그리고 망나니 (2)

황보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녀석이 뱉은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당의 수치, 은가의 쭉정이, 족보도 없는 도둑놈, 그리고….”

그리고 좌수를 뻗어 황보준이 화상들을 삿대질하는 데 사용한 우수의 검지를 살포시 움켜쥐었다.

이 과정에서 황보준은 딱히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주억이며 일어나니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고.

그에 앞서 내가 자신을 어쩌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떡하지?

둘 다 틀렸는데?

나는 피식 웃어 보이며 녀석의 검지를 내 이마께로 가져온 뒤 재차 입을 열었다.

“망나니.”

그리고.

쥐고 있던 황보준의 손가락을 있는 힘껏 관절의 반대 방향으로 꺾어주었다.

뽀각-

실로 경쾌한 소리였지만, 황보준에게는 그렇게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나 보다.

황보준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나를 떨치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예상한바.

나는 녀석보다 빠르게 손을 놀렸다.

샤샥!

황보세가는 권법으로 유명한 가문이고, 지척의 거리는 권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으나, 불시에 허를 찔린 황보준의 움직임보단 계획하고 지르는 내 행동이 훨씬 빠를 수밖에 없었다.

팍!

나는 그렇게 내력을 실은 지법으로 순식간에 황보준의 아혈을 짚은 뒤. 이어서 견정혈까지 짚어냈다.

파팍!

그러자 황보준이 나무토막처럼 우뚝 굳었고.

그에 녀석 뒤에 서 있던 단목원과 이름 모를 친구가 나서려는 듯 움찔했다.

“?!”

“?!”

그런 녀석들의 움직임에 정현과 은하성 우소릉도 움찔했다.

“!”

“!”

“!”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는 양쪽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워워. 이 이상은 명백한 폭력 행위들이다.”

그런 내 말에 우리 화상들은 얌전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황보준과 아이들도 일단 행동을 멈췄지만, 개중에 단목원이 입을 열었다.

“이미 언 공자가 한 행동이 폭력 행위 아니오?”

그에 내 입이 거침없이 열렸다.

“빚쟁이 주제에 갚아야 할 빚은 안 갚고 뚫린 입으로 잘도 따지네.”

“…….”

“목원아 인마. 나는 정당한 방위지, 여기 있는 보준이가 먼저 언어폭력을 행사했잖아. 이까짓 손가락은 침 바르면 낫지만,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낫지도 않는다?”

그렇게 황보준의 입은 물리적으로, 단목원의 입은 심리적으로 닥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황보준과 아이들에 속한 응시생이 한 명 더 남아 있었다.

“그건 궤변입니다.”

어제 경신 시험을 치렀던 개로쌍봉의 좌봉에서 단목원이 옆에 서서 변죽을 울려대던 녀석이었는데, 아직 이름을 모르는 녀석이라 말을 섞으려면 이름은 알아야겠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이름.”

그러자 상대의 입에서 짐짓 자랑스러운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회계하가의 유경입니다.”

뭐, 회계하가라면 그럴 만하긴 했다.

삼국지연의의 배경으로 유명한 위진남북조 시대에 하제(賀齊)라고 삼국지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아는 걸출한 위인도 있는 가문이고.

휘주에 있을 때 각 지역의 유력 가문들에 대한 정보를 받아 봤었는데 단목세가와 더불어 절강성에서 방귀깨나 뀌는 집안이었다.

“그래 하유경. 내 말이 왜 궤변이지?”

“황보 공자의 사소한 말실수가 어떻게 언 공자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 같다고 하겠습니까?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뭣하면 주최 측에 문의를 해볼까요?”

“해보든지.”

“…해보라면 못할 것 같습니까?”

하! 하고 헛웃음을 지어 보이는 하유경.

나는 녀석에게 비죽임을 돌려주었다.

“아니, 멍청한 게 반드시 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린데?”

“…머, 멍청?”

“그 나이 먹고 시비도 제 놈들이 먼저 걸어놓고 여의치 않으니까 일러바쳐서 해결을 보시겠다는 것도 멍청하지만,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게, 특히나 더 멍청하네. 어디 한번 일러바쳐 봐, 나는 감점당하면 그만이야.”

그래도 합격권이니까.

“…….”

“반면 너희는? 삼 점 이상이 필요해서 나를 영입하려고 온 거 아닌가? 근데 나랑 잘해보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지? 그럼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할 텐데, 여기 황보준은 권사일 거야, 기골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권사일 테지. 근데 이 녀석의 오른 손가락이 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너희 패에 들어오겠다는 응시생이 과연 있을까?”

“……!”

“아, 그리고 멍청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네, 회계하가니, 단목세가니, 황보세가니 다들 자신감들이 대단하던데. 가문에서 쫓겨날 정도로 개판을 쳤던 망나니에게 처맞았습니다. 하고 스스로 소문들을 내보라고.”

반면 녀석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가문들은 일종의 족쇄가 되는 것이었다.

“…….”

이제야 내 말을 이해했는지,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하유경.

나는 킬킬거리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지금 다들 조 짠다고 정신들이 없어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것에 관심을 안 두고 있었는데, 스스로들 소문을 내면 천하 방방곡곡으로 금세 퍼져 나가서 각 댁의 춘부장(椿府丈)들이 들으시고 참 좋아들 하시겠어. 나?! 나는 너희가 뒷담을 할 때 불렀듯이 어차피 망나니야. 더 떨어질 명성도 없어.”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을 맺자, 황보준과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 되어 동시에 부르르 떨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께서는 혀를 차셨다.

- 좀 살살 패거라. 애들 울겠다.

‘이 정도면 살살 팬 거죠.’

누구든 궁보계정 결의를 업신여기면 주옥이 되는 거예요.

아주 엿 되는 거야.

- 참 내. 화상들이니 환장한다느니 할 때는 언제고?!

‘까도 제가 까고 지랄을 해도 제가 지랄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차이를 모르시나요?’

이거는 엄청 큰 차인데요?

뭐. 아무튼.

그쯤 하자.

단목원 쪽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꾸벅 숙이고 나왔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황보 형의 혈도를 풀어 주시면 얌전히 물러가겠습니다.”

이어서 하유경도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숙여왔다.

“…저도 실례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주최 측에 문의를 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한숨들을 쉬는 모습이 제 놈들 딴에는 큰 결심을 한 듯한데, 솔직히 내가 보기엔 같잖기 그지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귀를 파며 입을 열었다.

“혈도 풀어 주고 나면 물러날 수밖에 없고, 문의인지 뭔지도 제 얼굴에 침 뱉기니 해봤자 자기들만 손핸데 당연한 말을 엄청 대단한 듯이 하네? 어이 단목원이.”

“…예?”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빠른 시일 안에 은휘상단을 통해서 약속한 네 몫으로 된 개인 재산 나한테 완납해라. 창휘당으로 보내라고 하면 될 거야. 대답.”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유경이.”

“…예?”

“너도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같은 방식으로 표해라. 내 마음에 난 상처는 오직 금은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니까.”

그런데 이 와중에 황보준에게 잠시 눈이 갔는데, 어째 저 녀석의 눈엔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곧바로 혀를 차며 관두자는 말을 꺼냈다.

“근데 이 와중에 우리 보준이는 눈빛에 쌍심지가 켜진 거 같은 게 의견이 다른가 본데? 에이잉! 관둬! 관둬!”

그러자 단목원과 하유경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알아서 황보준을 다그치고 어르기 시작했다.

“아닐 겁니다! 황보 형! 아니시죠?!”

“…황보 형.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단목 형의 말이 맞습니다. 병법에서 이르길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했습니다.”

그에 황보준의 눈에 붙어 있던 쌍심지가 한풀 꺾이길래, 나는 일단 녀석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황보준이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실례가 많았다… 오.”

호오?

막상 아혈을 풀어주면 침을 뱉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일단 사과의 말이 나오긴 나왔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나는 옆에 앉은 화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한테 사과할 게 아니라 얘들한테 해야지.”

“실례가 많았ㄷ….”

“쓰흡. 사람이 좋게 타이르니까 긴장 풀지?”

“…소이다.”

“어허어.”

“…습니다.”

“옳지. 하지만 세상만사 말로만 사과가 끝나면 무림맹은 왜 있고 관아는 왜 있겠냐? 안 그러냐 보준아? 그런고로 너도 여기 네 동무들처럼 심심한 사과의 표시를 해야 하겠지?”

“……?”

“뭐, 황보세가는 단목세가나 회계하가랑 가문의 규모가 다르니까 네 전 재산의 규모도 친구들이랑 차이가 날 테니, 전 재산을 내라고 하면 억울할 수도 있겠네. 그러면 친구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고 그건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너는 특별히 단목원이가 내는 만큼만 내도록 해.”

크.

제가 이렇게 공명정대합니다, 사부님.

* * *

그렇게 황보준과 아이들을 쫓아 보내고 나니.

“…….”

“…….”

어째 분위기가 좀 멋쩍어져서 나는 그냥 학관생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놈의 화상들이 새끼 오리가 어미 오리를 쫓듯 기어이 따라 나와서 한마디씩 뱉어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무당의 수치라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언 소협이 이렇게까지 분노를 해주시니 뭔가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무당의 수치가 맞나봅니다. 아직 도(道)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강남신협 소리에 들떠가지고 한편에선 저렇게 불리는지도 몰랐네요. 역시 우리 형님. 입으로는 항상 닥치라고 하시지만 누가 저를 업신여긴다 싶으시니, 바로 나서 주시는군요?”

이래저래 열이 받아서 참교육을 했고, 하고 나니 미연의 사태를 방지해야겠다 싶어서 열을 좀 냈는데, 너무들 확대해서 오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점을 정정하고자 나는 내심을 살짝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화가 좀 났긴 했는데, 보니까 털어먹을 건수로 보여서 겸사겸사 한몫 뜯은 거니까 확대 해석들 하지 마.”

“아하 그러셨군요.”

“충성충성.”

뭔데, 이 콩으로 메주를 쒔다는 데도 안 믿어주는 분위기는?

그때였다.

내가 아니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려는 그때.

소릉이 녀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죄송하네요.”

“우 소협이 왜 죄송합니까?”

“그러게. 동생이 왜 죄송하지? 경공 좀 잘하고 고아면 도둑이라고 불려도 되나?”

“…그 언 형께선 그래도 하북에서 이름난 언가 출신이시고, 정현 도장이야 무림의 양 기둥 중 하나인 무당파의 제자이시고, 은 형도 천하에 위명이 자자하신 강남상왕의 자제분이신데… 근데 저는 사실 도둑놈이 맞습니다. 제 아버지는 뇌전편복이라 불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행위를 한 것은 맞고,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지요. 괜히 저 때문에 이런 취급을 당하시는 것 같아서, 사실 정현 도장께서 하시는 그 소협이라는 말도 저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에, 오늘도 소릉이 녀석은 저리 자신감이 없는 녀석이 훗날 마인들의 물건을 훔쳐 달아날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정현과 은하성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우 소협. 그 말은 어폐가 있으십니다. 노자께서 그칠 줄을 알라 하셨고 또. 아홉 층의 누대도 한 줌의 흙에서 시작된다 하셨습니다. 뉘우치는 마음이 있으시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정무학관에 오셨으니 심중에 이미 도(道)가 서셨는데 어찌 소협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정현 도장.”

“…예?”

“그렇게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습니다. 우 동생 내가 쉽게 말해줄게. 그냥 용운 형님만 따라가면 돼.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용운 형님이 나선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 돼버리잖아?!”

“…아! 그런가요?! 그, 그런 뜻은 절대 아니었는데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전해오셨다.

- 나름 훈훈하….

“막말로 형님께 궁보계정을 세 개나 받은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한 개 받은 내가 뭐가 되냐?”

- …려다 마는구나. 말아.

뭐, 아무튼.

그런 모습을 사부님과 함께 보고 있는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정작 제일 중요한 녀석들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았음이 문득 떠올라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난리통에 정작 정식으로 묻지를 않았네. 내일 있을 마지막 관문. 이렇게 넷이서 갈까 하는데, 이의 있는 사람?”

“이미 아까 전에 이렇게 넷이 하기로 된 것 아니었습니까 형님?”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의라뇨. 저야 감사할 뿐인데요.”

거의 자동 반사로 나와버리는 대답들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 나는 오 점짜리 과제에 도전할 생각이니까. 뭐, 현재 총점이 육 점밖에 안 되는 소릉이는 선택지가 없겠지만, 정현 너는 무려 십사 점이잖아, 하성이 너도 팔 점이고. 니들은 좀 더 난도가 낮은 선택지가 분명히 있다.”

“…음. 애초에 그러실 것이라 예상하고 한 대답입니다.”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랬기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라 그럼.”

“예.”

“옙!”

“넵!”

무당의 수치, 은가의 쭉정이, 족보도 없는 도둑놈, 그리고 언가의 망나니라고?

니들이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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