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3화 (43/444)

제43화. 수치, 쭉정이, 도둑놈 그리고 망나니 (3)

닭이 울면 날이 밝는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그게 진리는 아니다.

저놈들의 몸에 시계가 들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예민한 녀석들이 동이 터 오를 때 새어 나오는 빛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니까.

꼬- 끼오오오!!!

하여, 저런 녀석처럼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우는 녀석도 있는 것이다.

“이곳의 숙수와 주사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해가 뜨기도 전에 우는 닭은 재수가 없는 놈이라는 상식도 몰라?! 식당에 나오는 닭고기 반찬만 해도 세 개는 되던데! 저놈부터 목을 비틀어야지!! 삼박사일 동안 저 지랄이네!”

뭐, 어쨌거나 궤를 벗어난 녀석이다.

게다가 많은 응시생이 관문에 관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을 테니 저런 미움을 받을 만도 하긴 했다.

하지만 저놈이 울 때 일어나서 기숙사 한 바퀴 하고 운기조식하고 밥 먹으면 시간이 딱 맞아서 내겐 적절한 아침 훈련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고마운 녀석이었다.

“외람된 말이긴 한데. 닭고기 반찬이 세 가지나 있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재수가 없는 놈이 아니라 오히려 재수가 좋은 놈 아닌가?”

“……?”

“어차피 마지막 관문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마음도 말도 곱게 씁시다.”

나는 그 보답으로 이름 모를 닭의 변호를 해준 뒤.

침구를 개켜놓고 언제나와 다름없이 아침 몸풀기를 하고자 나섰다.

“언 형!”

“소협! 나오셨습니까?!”

“오늘은 살짝 늦으셨습니다 형님? 4등이신데요?”

그러자 하룻밤에 한 명 정도씩 불어 어느덧 넷이 셋이 된 녀석들이 나를 반겼다.

“아, 닭의 마음을 대변을 좀 해줄 일이 있었어서.”

“…예?”

“…? 정현 도장은 용운 형님의 방금 저 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음. 닭이라 하면 아침을 알리는 녀석이니, 지금 내리깔린 어둠처럼 당장에 저희 조가 처한 상황은 어두우나… 앞으로는 떠오를 해처럼 밝을 것이다. 뭐 그런 말씀이 아닐런지요?”

“아닌데? 어떤 녀석이 마지막 날이라고 잠을 설쳤는지 닭이 빨리 운다고 발광을 하길래 좋게 타일렀을 뿐인데?”

“…큽. 정현 도장도 뭐든지 아시는 것은 아니셨군요?”

“…….”

“…근데 언 형. 좋게 타이르셨다면 어제 같은 그런 방식이신 건가요?”

근데 우소릉 쟤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날에도 움찔거리고 딸꾹거리고 그랬던 것 같은데.

- 어쩌면 네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이겠지.

‘……?’

- ?

뭐, 아무튼.

우리는 몸풀기를 시작했다.

기숙관과 교정을 달려 땀을 빼고.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무공을 닦고.

운기조식까지 마치고 나자.

꼬끼오오오오!!

울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닭들이 움과 동시에 동이 터올랐다.

“아침 먹으러 가자.”

“좋습니다.”

“예!”

“예! 형님!”

하여, 아침을 먹기 위해 학관생 식당으로 걸음을 옮겨왔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 대기열이 있을 리 없는 식당 앞에 웬 녀석이 하릴없이 서 있는가 싶더니.

“…형님.”

나를 발견한 녀석이 입을 열었고, 그에 하성이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형님. 저 친구가 형님더러 형님이라는데요? 어이 형씨! 우리 형님이 그렇게 아무나 형님 거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성아.”

“예?”

“네가 형님 거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아무나 부르는 거야. 그리고 쟤는 내 동생 맞다. 친동생.”

내 말에 은하성이 이쪽저쪽을 살피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고 보니 좀 닮긴 했네요. 저쪽 분이 인상이 좀 둥근 게 성격이 훨씬 좋아 보이기는 하시지ㅁ… 음. 닥치겠습니다.”

“그래. 닥친 김에 먼저 들어가서 니들끼리 먼저 밥 먹어.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랑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화상들을 학관생 식당 안으로 먼저 들여보낸 나는 잠시 생각을 골랐다.

그런데 이때 사부님께서 언용명을 마주한 소감을 토해내셨다.

- 호오. 네 친동생이라고? 저 녀석도 네 녀석처럼 무골을 타고난 모양이구나. 기골이 단단해 보이고 숨도 고른 것이 정종의 심법과 언가권을 성실하게 익힌 듯 보이고, 주먹의 굳은살을 보아하니 착실히 외공도 쌓아 올린 모양이군. 누구와 달리 인상도 선해 보이는 것이 확실히 저쪽이 내가 알던 언가의 인상이긴 하구나.

‘묘하게 제 인상이 나빠 보인다는 말로 들리는데 기분 탓일까요, 사부님?’

-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

- ?

* * *

뭐, 아무튼.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나는 오랜만에 만난 용명이 녀석을 향해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음.”

그런데 막상 할 말이 마땅치가 않았다.

‘…혈육이라는 걸 처음 가져봐 놓아서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그걸 떠나서 지금 상황도 너무 복잡했다.

‘원래는 더 일찍 마주칠 줄 알았지.’

정무학관이 넓다 하나 응시생의 동선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당연히 마주칠 줄 알았고, 그렇게 만나면 용명이 녀석을 원작에서처럼 정현 옆에 붙이든 할 생각이었는데.

첫날에 식당 앞에서 눈이 마주친 이후로는 이상하게도 용명이 녀석과 내내 엮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 녀석이 나를 일부러 피한 것 같은데?’

왜?

이유야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는 바람에 나는 정현을 시작으로 우소릉, 그리고 어젯밤엔 황보준과 아이들과의 일까지 생기는 바람에 지금 시점에선 용명이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원작에선 언용명이 담당했어야 할 정현의 친구 자리를 내가 꿰차 버렸으니.’

하여, 내가 이런저런 나비 효과들을 어림짐작하느라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언용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래.”

“잘 지내셨습니까?”

“보시다시피 잘 지냈다. 근데 너는 얼굴이 퀭하다? 첫날에 마주쳤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요 며칠 잠을 좀 설쳐서 그래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간 풍문 따라 건너온 형님의 소식을 몇 번 듣긴 했었습니다.”

“내 소식을?”

“예. 그치만 아무래도 풍문은 풍문인지라 걱정이 많았었는데 직접 뵈니 이래저래 좋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형제간에 오가는 대화를 들은 사부님께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셨다.

- 네 걱정을 하다니. 얼마나 할 걱정이 없으면.

이 말씀엔 나도 조금은 동의하는 바였지만, 뭐 ‘유정권’ 언용명이니 그럴 만하다 싶었다.

“내 걱정할 필요 없는데. 아. 하긴 걱정이 되긴 했겠구나. 너는 원체 정이 많은 녀석이니. 아무튼 앞으로는 안 그래도 된다.”

너도 눈이 있으면 여기저기 붙어 있는 흑판에 적힌 석차가 보일 것 아니냐.

뭐, 그런 느낌으로 말한 것이었는데.

그게 언용명이 내게 가지고 있는 어떤 심리적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을까?

“형님. 너무 그렇게 선을 긋지 말아 주십시오.”

“…내가 언제 선을 그었다고.”

안 그래도 퀭해 보이는 언용명의 눈매가 이 순간 한 움큼은 더 기어들어 가더니, 한숨과 함께 녀석의 입이 재차 열렸다.

“그럼 말해주십시오. 왜 여기 계신지, 기록하고 계시는 석차는 뭐며, 왜 진주에서는 망나니짓을 자처하신 건지.”

…어.

그건 어렵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이 녀석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오해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다 떠나서 내가 원작을 읽은 빙의자라는 사실을 빼곤 설명을 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하여. 나는 그냥 대충 뭉개야겠다로 노선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어렵겠다.”

“…거 보십시오. 그럼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혹 가문에 복귀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글쎄.”

“글쎄라고 하시면 생각이 아주 없으신 것은 아니시군요?! 신입생 입학식에 아버님께서 오실 텐데 생각이 있으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내가 말한 글쎄는 당장이 아니다 용명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야.”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조는 아까 그분들과 함께하시는 겁니까?”

“그래. 남들은 뭐 망나니, 수치, 쭉정이, 도둑놈 뭐 그런 식으로들 부르는 모양인데. 알고 보면 괜찮은 녀석들이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그런 망발을!”

사정은 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러고 보니 용명이 녀석은 조가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너쯤 되는 인물을 다른 조의 조장들이 내버려 둘 리는 없고. 너는 조원이 어떻게 되냐?”

“개방의 제자인 천장호라는 친구와 같은 생활관을 쓰게 된 걸 계기로 친해진 와중이라 두 명을 더 구할 생각이었는데 제갈설지 소저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해서 함께하기로 했더니 사천당가의 당옥기 소저가 계시더라고요.”

소무후(小武侯) 제갈설지.

유정권(有情拳) 언용명.

만만여개(慢慢驢丐) 천장호.

독수관음(毒手觀音) 당옥기.

용명이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뭔. 작중에서 내로라하는 괴물들이 다 모였네.’

원작 속에서 주인공 세대라 불리는 인물들은 동기생과 선배들 그리고 뒤에 교환 학생 등으로 합류하게 되는 인물들까지 범주가 다양한 편이었다.

하지만 입관 시험을 치른 동기생으로만 범위를 한정하면 딱 아홉 명이었다.

‘개중에 정현은 나랑 있고.’

은하연은 문과를 쳤다.

그럼 남은 여섯 명 중에 남궁가의 비룡검과 하북팽가의 쌍둥이를 제외한 네 명이 언용명과 언용명의 입에서 나온 세 사람이었다.

‘그 넷이 한 조에 다 기어들어 갔네.’

심지어 균형도 좋았다.

이미 소무후란 별호가 있는 제갈설지는 머리가 좋아 전략 전술에 능한데 경공도 능하고, 제갈가에서 드물게도 무에까지 자질이 있어 이미 어린 시절에 일대종사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불리는 엄친딸이었고.

훗날 독수관음이라는 당옥기 또한 암기와 독공, 의학과 본초학에 능한 데다, 권각술에도 재능이 있어 일찍이 사천 땅에서 제 오라버니들을 제외하면 따를 자가 없는 기재라 불린 인물이었으며.

개방의 방주가 대놓고 예뻐하는 천장호는 약관의 나이에 개방 방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항룡십팔장 중무려 열여섯 장법을 전수받아 터득한 인물이었다.

‘저기다. 진주언가의 미래 용명이 녀석까지 더해졌다…?’

이러다 쟤들 오 점 노리는 거 아냐?

원작의 제갈설지는 마지막 관문에서 사 점을 노려 십구 점으로 시험을 마감한다.

하지만 저 정도로 인재가 모이면 오 점짜리 과제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아직 응시생들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원작을 읽은 나는 마지막 관문의 과제 내용을 알지.’

원작대로 시험 과제가 출제된다는 전제하에 언용명의 조가 오 점을 노리면 그건 큰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작에 나왔던 입관 시험의 마지막 관문은 무당산 곳곳에 위치한 장소를 찾아가 구슬을 확보하는 시험으로, 앞의 관문들과 달리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졌는데, 가장 중요한 오 점짜리 구슬이 딱 한 개밖에 없었다.

그런데 딱 한 개밖에 없는 구슬을 두고 우리 조와 언용명의 조가 경쟁한다면?

‘…어느 한쪽이 구슬을 획득하지 못해서 과락으로 탈락을 하는 결과가 벌어질 수가 있어.’

정현과 나 그리고 제갈설지, 언용명, 당옥기, 천장호.

어느 쪽이 탈락하든 큰일이 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설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문제가 되는 것이었고, 그 말인즉 이 세상이 망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살려야 한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아직 과제가 공개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용명이 녀석을 만났으니까.

지금 시점에서 조장이 ‘야! 까라면 까!’ 하고 나서면 ‘네!’ 하는 조는 솔직히 내 조밖에 없을 것이다.

‘천하의 제갈설지라도 고작 삼박사일 안에 자부심 강한 명문가의 후기지수인 세 사람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중앙 집권을 하지는 못하지.’

그렇다면 조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혹시라도 제갈설지가 오 점에 도전할 생각 없냐는 제안을 하면 용명이 녀석이 거절하게 하면 돼.’

개방 출신에 훗날 얻게 되는 별호도 만만여개(慢慢驢丐) 느긋한 당나귀 같은 거지인 천장호는 태생이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고, 제갈설지보다는 용명이 녀석과 죽이 맞을 테니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네 명 중 두 명이 거절하면 천하의 제갈설지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언용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열심히 하자. 이 우형은 오 점짜리 시험을 쳐보려 한다. 조원 중에 현재 총점이 육 점이라 좀 간당간당한 친구가 있거든.”

“…와. 그럼 형님은 모든 과제를 오 점으로 돌파하게 되시는군요. 아버님 어머님이 아시면 엄청 놀라실 거예요.”

“…그러실까?”

“절대로요! 어머님은 물론이고 아버님도 말씀을 안 하셔서 그렇지 내심으론….”

우선은 정 많은 용명이 녀석이 마음을 써줄 만한 우소릉의 사정과 함께 오 점을 치겠다는 주장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뭐, 아무튼. 학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너도나도 열심히 해서 꼭 같이 합격하자.”

혹시 모르니 쐐기까지 딱.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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