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6화 (46/444)

제46화. 광풍투개 (1)

언용운의 조가 막 경신술을 일으켜 무당산 초입에 있을 환자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이때.

시험 시작을 알리는 쇠 북이 울린 이후로 선두를 놓치지 않은 조는 이미 하얀 무복을 입은 환자 역의 도우미를 마주하고 있었다.

“옥기야. 어때?”

그 조는 바로 언용명의 조였다.

“…음. 마비산의 효력은 넉넉잡아 반 시진 정도는 가겠네.”

하지만 이 조 또한 급조된 인연인 만큼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암. 그거 확실한 거요? 당가는 그 뭐시냐 약학보다는 독공 쪽이 전공 아닌감?”

“…어이 거지. 방금 뭐라 그랬지?”

“…? 확실한 거냐고 물었수. 그 독공이라는 게 어떻게 하면 감은 눈을 다시는 뜨지 못 하게 할까 하는 공부 아니오? 언제 눈을 뜨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싶어서 물은 것이오만?”

특히나 개방의 제자인 천장호와 사천당가의 당옥기.

두 사람의 기질이 맞지 않아서, 조금만 방심해도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그지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야! 말 다 했냐?! 아니 덜했어도 상관없어. 내가 오늘 방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왜. 왜 그러시오?! 진짜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데?! 으아아! 제갈 소저 구해주시오!”

“일로 와! 빨리 안 와?!”

“죽인다는 사람한테 너라면 가겠냐?! 히이익! 이보게 용명이 살려주게! 당가가 그지 잡네에!!”

하여 한숨을 내쉬며 언용명은 당옥기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당 소저. 진정하십시오. 여기 이 친구가 기질이 원래 질박하여 말투가 투박해서 그렇지 나쁜 뜻은 없을 겁니다.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요. 언 공자.”

“못 비킵니다. 그러니 고정해 주세요.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언일 뿐 나쁜 뜻은 없었을 겁니다. 진주언가의 명예를 걸고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하나 그리 대단한 효과는 없었다.

“…좋은 말은 방금 했고. 마지막 경고예요. 그지새끼랑 덩달아 녹아 없어지기 싫으면 비켜요.”

하지만 다행히 언용명의 조에는 제갈설지라는 억제기가 있었다.

“그래. 옥기야. 용명 님 말이 일리가 있어. 그쯤 하렴.”

“…끙. 설지 너마저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저런 소리 우리 가문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거. 죽마고우인 너는 이해해 줘야지!”

“충분히 이해해. 근데 화를 내도 일단 합격은 하고 나서 내렴. 개방의 제자와 다투다 입관 시험에서 탈락하고 싶니? 그 소식을 듣게 될 가주님을 생각해봐.”

묘하게 상황을 휘어잡는 능력이 있어, 지켜보는 사람도 차분하게 만드는 제갈설지는 펄펄 날뛰던 당옥기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거지새끼야. 우리 아버님이 같은 소리를 들었으면 너는 뼈도 한 줌 안 남았어.”

“하이고. 그쪽에서 아버님을 뫼시고 나오면 이쪽에서도 방주님을 뫼시고 와야지. 우리 방주님한테 걸리면 너 역시 뼈도 못 추릴걸?”

“캬아악! 설지야. 나 결심했어. 그냥 저 그지새끼 죽이고 지옥 갈래.”

“당옥기. 그만.”

“…씽.”

“장호님도 그쯤 하세요.”

“…넵.”

그리고 이어서 눈치 없이 삐대던 천장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장호 님. 독과 약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뒤집히는 개념입니다. 같은 약재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되고 약이 되는 법이에요. 사천당문은 독이 원체 유명하고 작금의 약왕 어르신이 당문 출신이 아니셔서 그렇지, 역대로 치면 당문 분중에 약왕이라 불리신 분이 사할은 될 것이에요. 당문은 의술 또한 천하 일절입니다. 어떻게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요?”

“…넵.”

“더 하실 말씀도 있으실 것 같으신데요?”

“…그 미안합니다. 당 소저. 정말 몰랐수다. 내가 원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어 놔서. 여튼 이놈의 아가리를 단단히 봉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험험.”

“그러시대 옥기야.”

“흥.”

그렇게 당가의 금지옥엽과 개방의 기대주 사이에 일어난 작은 분란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공유하기 위해 제갈설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수고했어 옥기야. 덕분에 확실한 계산이 섰어.”

제갈설지의 음성에 언용명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건 그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아까. 오 점 자리 배점의 시험을 칠 수 있을지 가늠해 보겠다고 하신 그것 말씀이신가요?”

“예. 용명 님. 저희 조는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계획한 대로 사 점짜리 구슬을 찾으러 가는 걸로 하면 되겠어요. 한 시진 안에 오 점짜리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런 제갈설지의 말에 언용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언용명은 뒤늦게 확인되고 있는 언용운의 진면목을 토대로 언용운의 망나니 짓이 가문을 살리기 위해 뭔가 피치 못할 짐을 지켜진 것으로 보고 있어서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었다.

‘형님은 무조건 오 점을 치신다고 그랬어. 조원들끼리 참으로 돈독해 보이셨는데, 개중에 한 분이 오 점이 꼭 필요하다고 했었지.’

한데 오 점 배점의 구슬은 단 한 개뿐.

속한 조가 다르니 직접적으로 도와줄 순 없어도 같이 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제갈설지의 입에서 오 점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으면 반대 의견을 피력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속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나 언용명의 속이 편해진 순간은 그야말로 잠시.

어느 순간 편안함이 가시고 그 자리를 걱정이 채웠다.

‘…그런데 형님 조가 오 점짜리 구슬을 따내는 게 가능하시긴 한 건가?’

당가의 후기지수가 마비산의 지속 시간을 측정했고, 제갈가의 소무후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온 지속 시간과, 지도상의 거리, 대략적인 조원들의 실력까지 고려하여 안 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형님의 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급속도로 차오르는 우려에 언용명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열렸다.

“제갈 소저. 오 점짜리 구슬은 도저히 따낼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아. 제가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썼군요. 정확히는 어렵겠다는 표현이 좋겠네요.”

“오. 어렵다는 말씀은 방법이 없지는 않다는 거군요?!”

“그렇긴 한데, 어렵다고 한 이유가 세 가지나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 세 가지 이유 들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요. 조를 나누면 될 것도 같긴 한데, 옥기와 장호님의 사이가 개와 원숭이 같은 느낌이라 안 될 것 같네요.”

제갈설지의 말에 언용명은 묘한 희망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눈으로 본 언용운의 조는 단란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요?”

“아까 입관처장님께서 오 점짜리 구슬을 지키고 있는 분이 작풍월개 노삼 교수님이라고 하셨잖아요?”

“음? 그 부분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요? 노삼 교수님이 젊은 시절에는 좀 날리셨어도 정무학관 내에서 학점 잘 주시고 수업 편하기로 유명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나 그 희망 또한 언용명의 뇌리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교수님이 교편을 잡고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이 지나서 요즘의 후기지수들은 그렇게들 알고 있죠. 저도 입관 시험에 응하고자 정무학관의 역사와 교직원들을 낱낱이 조사를 해보기 전에는 그렇게 알았고요.”

“그럼 널리 알려진 이야기 이외의 것이 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성정이죠. 노삼 교수님의 과거 별호는 광풍투개(狂風鬪丐).”

“미친 바람처럼 싸움을 즐기는 거지? 아 그러고보니 들어 본 것같긴 합니다만….”

“예. 그 별호에 걸맞게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대련과 싸움으로 매일매일을 보내신 분이더라고요. 단순히 협행으로 알려진 별호가 아니에요. 싸움 자체를 즐기시는 분이셨어요.”

제갈설지의 입에서 그런 희망을 앗아 가는 말이 나왔고.

“험험. 또 우리 개방의 선배님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봉한 아가리를 풀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제갈 소저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그 모든 싸움에서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셨소. 후학을 기르시겠다고 교편을 잡으셔서 풍월을 읊는 서당개 소리를 듣고 계시지만 사실 방주님께서도 차기 방주로 내심 점찍고 계시는 분이라고나 할까?”

이어서 천장호의 입에서 그 말에 신빙성을 더하는 말이 나왔으니까.

“…허.”

“노삼 교수님이 많이 봐주신다 가정하고, 저희 넷이 일심으로 단결해서 덤벼도 절대로 쉽지 않을 거예요.”

“…….”

“게다가 극과 극의 별호를 가지신 만큼 예측이 안 되는 분이시기도 하고요. 고작 1점을 더하고자 그런 분을 찾아가는 것보단 계산이 서는 쪽으로 가는 게 맞죠.”

* * *

도착한 무당산 초입.

“그럼 아까 이야기한 대로 우리 조를 구슬조와 의원조로 나누겠다.”

“좋습니다.”

“옙.”

“넵.”

마비산을 들이키고 통나무처럼 굳어 있는 어떤 도우미 선배를 앞에 두고 나는 빠르게 작전 하달을 시작했다.

“우선 의원조. 은하성.”

“넵!”

“끝.”

“넵! …이 아니고. 예? 저 혼자 가라고요?”

“어. 다들 예상대로 환자를 업고 무당산에 기어 올라간 것 같다. 아마 네가 처음으로 환자를 업고 가는 응시생이 되겠지. 의원조는 다른 변수는 없을 거야.”

“…넵.”

- 은가 놈 저거 대답은 잘한다만, 표정이 좀 섭섭한 눈친데?

‘그러게요?’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둘씩 조를 나뉘었다면 몰라도, 셋 그리고 하나로 조를 나누고 그쪽은 별일이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 한 명 쪽은 버리는 말 내지 짐짝 취급을 받는다고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었다.

‘좌절감 같은 것이 들 수가 있지.’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하성이의 머릿속에 저런 생각이 드는 것이 나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후한 말의 군웅 중 하나이자 조조의 종제이며 황금 투구로 유명한 조홍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거니까.

‘그게 지금 은하성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고.’

하성이 녀석의 오성은 분명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구슬을 찾으러 가는 조에 포함될 수준의 무위도 갖추지 못했고 경신술은 그 무위만도 못했다.

나는 녀석에게 사명감과 향후까지 이어질 투쟁심을 주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꼽냐?”

“아닙니다. 형님.”

“그것도 중요한 임무야. 그리고 지금 너는 작풍월개 교수님께 구슬을 얻는 대목에서 쓸모가 없다. 무위는 정현만 못하고 걸음은 우소릉보다 느려. 그게 지금의 너다.”

“…중요한 임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형님의 말씀도 맞고요.”

말의 형태를 한 내 채찍질에 대놓고 풀이 죽어 보이는 은하성.

나는 녀석에게 이쯤 하여 당근을 내밀어 주었다.

“그래. 알면 됐고. 혹시라도 꼽다면 학관에 합격하고 나서 죽자고 노력해라.”

“…그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융중산으로 출발해.”

“넵! 형님 좀 이따 뵙겠습니다! 정현 도장 용운 형님을 잘 보좌해 주십쇼! 소릉 동생도 형님 잘 모시고!”

“예. 빈도가 은 소협의 몫까지 언 소협을 잘 보좌해 보겠습니다.”

“걸음만 빼면 은 형이 저보다 훨씬 나은 무인이세요! 은 형의 자리를 제가 메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긴 하지만 저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은하성이 환자 역의 선배를 업고 융중산을 향해 멀어져갔고.

나는 정현과 우소릉을 향해 남은 작전을 하달했다.

“우소릉.”

“예?!”

“조금 전에 걸음만 빼면 하성이가 너보다 낫다고 했지?”

“아. 예!”

“그 말도 맞아. 작풍월개 교수님은 전적으로 나와 정현이 상대한다.”

“어. 그럼 저는 무엇을 하나요?”

“너는 지금 바로 나한테 업혀. 그리고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시전해.”

“귀식대법이요?”

귀식대법.

심장의 박동을 늦추고, 호흡을 늦추고, 체온도 낮추어 마치 시체와 같은 상태에 들어가 기도를 완전히 지워내는 수법.

이 시대의 살수나 도둑이라면 반드시 익혀둬야 하는 수법이다.

“그래. 가능하잖아? 지속 시간은… 음. 일 다경 정도면 되겠네.”

“가능은 한데, 저는 언 형의 진의를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우소릉 너는 우리 조의 숨겨진 패이자 비장의 수다.”

“비, 비장의 수요?”

“그래. 나는 교수님이 우리가 환자를 업고 왔다고 착각하게 할 생각이다. 일 다경 정도로 지속 시간을 맞추면 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아마 교수님과 정신없이 합을 맞추고 있거나 구슬을 따낸 상태일 거야. 만약 전자의 상황이라면 교수님의 허리춤에 감겨 있을 구슬을.”

“…구슬을?”

긴장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우소릉과 정현.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남은 말을 뱉었다.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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