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7화 (47/444)

제47화. 광풍투개 (2)

내가 그렇게 구슬 획득 조의 세부 작전을 털어놓자.

우소릉과 정현이 동시에 눈을 키웠다.

“후, 훔치라고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도 당신의 생각을 전해 오셨다.

- 그래. 백도 무림의 산실이니 어쩌니 하는 곳에서 그런 수를 써도 괜찮은 것이냐?

내 작전에 의문을 표해 오는 이남일혼.

그들을 향해 나도 되물음을 던졌다.

“안 될 이유가 있나?”

그런 내 되물음에 사부님께서는 내가 품은 꿍꿍이를 스스로 고민해 보시는 듯하셨다.

- …흠. 또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꿍꿍이인고.

하지만 정현과 우소릉은 계속해 질문을 해왔다.

“이유야 많지 않습니까? 절도는 애초에 예로부터 국법에서도 금하는 행위입니다. 아, 우 소협…. 그 제 말은 우 소협이나 우 소협의 아버님을 음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행위 자체를 설명하고자 그런 것이니 곡해는 말아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정현 도장. 저도 큰 틀에서는 같은 생각이어서 이렇게 정무학관에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실례를 했습니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런데 언 형. 저도 정현 도장과 같은 의문이 듭니다. 그 작전 진짜 괜찮은 겁니까?”

그런 녀석들을 향해 나도 재차 질문을 던졌다.

“아, 글쎄 안 될 이유가 없다니까. 정현이 국법을 들먹였는데, 국법이 절도를 금하고 백도 무림에서 도둑들을 사도로 규정하는 것은 결국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함이야. 근데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관문이 뭐지?”

그런 내 되물음에 소릉이 녀석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조별 과제 아닌가요?”

“소릉아. 형이 뇌를 쓰는 연습을 하자고 했잖아, 내가 그걸 물으려고 그랬겠어?”

“…어. 음. 아니시겠죠?”

나는 그런 녀석을 가볍게 타박한 뒤, 실마리도 함께 던져 주었다.

“그래. 빨리 다시 생각해봐. 왜 입관처장님이 큼지막한 족자 펼치면서 말씀한 거 있잖아.”

“아! 구제! 활인! 협력?! 그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협력은 지금 하고 있고, 활인은 하성이 녀석이 하러 갔지. 우리가 지금 치르려는 관문은 구제다.”

“그거랑 제가 가문의 은밀한 비전을 사용하는 게 관계가 있나요?”

“물론. 자, 이 구제라는 관문에 정무학관의 입관처는 몇 가지 가정을 부여했다. 니들은 그 가정을 별개로 생각하니까 해도 되냐느니 어쩌니 하는 그런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야. 입관처장이 구슬과 그 구슬을 지키고 있는 교수님들을 뭐라고 가정했지 정현?”

여기까지 말을 하자.

정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아!”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 같은데, 답은 하지 않고 혼자서 들리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리길래 나는 그런 녀석을 타박했다.

“아! 하고 말지 말고 그 양반이 뭐라고 했었냐고. 소릉이 표정 봐라. 너만 이해하면 과제가 끝나냐? 옆 사람도 챙겨야지.”

그러자 정현이 황급히 입을 열어 머릿속의 생각을 끄집어냈는데.

“아! 구슬은 마교의 교주인 천마를 이롭게 할 영약이라 볼 것이고 그걸 지키는 교수님은 마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 말과 시제를 겹쳐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근원을 마인에게서 되찾아 오라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엔….”

그렇게 열린 정현의 입은 이렇게 닫혔다.

“…같은 도둑질이라도 의적 혹은 협이 되는군요?! 도둑질이라 낮추어 이르지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검술 또한 그저 칼질에 불과한 것. 결국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협행(俠行)과 악행(惡行)으로 길이 나뉘고, 의와 불의가 된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음.

나는 그냥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말로 끝을 맺으려 했는데….

“허. 아직 뵌 날이 몇 날 되지 않음에도 언 소협의 생각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연배도 저보다 고작 한 살이 많으실 뿐인데, 세상사를 수십 년은 겪어본 듯한 혜안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숙한 도사가 오늘도 언 소협께 또 한 가지를 배웁니다.”

저렇게까지 말을 해버리면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그럼 그냥 그런 걸로 하지 뭐.

* * *

나는 귀식대법을 시전하여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들어간 우소릉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하며, 제운종을 일으켜 달려 나가는 정현의 뒤를 쫓아 비영파천보를 밟았다.

탓! 탓! 탓! 탓! 탓!

팍! 팍! 팍! 팍! 팍!

그렇게 정현과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당산을 올라 나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정현이 구름을 타는 듯한 걸음을 일순 멈추고 지도의 위치와 주변의 봉우리를 확인하는가 싶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언 소협.”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조금 높이 띄워보니.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넓직한 바위 위에 녹색 무복을 입고 배를 까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중늙은이가 보였다.

- 저 치가 작풍월개인가 하는 별호를 쓰는 거지인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사부님.’

정무학관의 학생들은 각 기숙사를 상징하는 색으로 물들인 무복과 예복을 현대의 교복처럼 입는다.

반면 교직원들은 녹색 계통의 의복을 입는다.

‘공통적으로 그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학관생 쪽은 학년이, 교직원 쪽은 지위가 높고.’

예컨대 먹이 사슬…이라고 그러면 너무한가?

아무튼 직위상 최하위에 위치한 대학원생 신분의 조교 선생님들은 맑은 빛을 띠는 청자색인 비색 무복을 입고, 그 위로 갈수록 점점 진해지는 녹색의 의복을 입는다.

한데, 내 시선에 들어온 중늙은이의 의복은 군데군데 기워 입은 자국이 있어서 그렇지….

‘색은 여기 들어와서 본 교직원 중에 가장 진하다.’

그렇다면 저 기운 자국은 그저 거지라는 정체성을 내보이기 위한 것일 터.

세상 태평하게 배까지 까고 드릉드릉 코를 골고 계신 눈앞의 중늙은이는 작풍월개 노삼이 분명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나는 곧바로 정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등에 업고 있는 비장의 수인 우소릉을 사용했을 때를 대비하여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입을 열었다.

“무당산의 구릉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마교의 교인은 들으라! 그대는 이미 겹겹이 포위되었다! 하나 마도천하가 부질없음을 지금이라도 깨닫고 진심으로 참회하며 교주에게 바칠 예정인 영단을 내놓고 순순히 항복한다면 그 목숨만은 보전해 줄 것이다!!”

그런 내 음성에.

노삼 교수님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입가의 침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쓰훕. 아오. 깜빡 졸았네. 근데 방금 뭐라 그랬지? 마교인? 내가 왜 마교인이냐 이놈아! …가 아니구나? 이 관문의 과제가 참 그런 설정이었지?!”

그리고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잠시 졸아서 꿈인지 생신지 잠시 헷갈렸으니 이해들 하거라. 하암. 입관처장이 한 조쯤 올까 말까 하다고 해서 하기로 한 것이라 응시생이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노삼이다.”

“이백구십팔 번 응시생 정현이라합니다.”

“칠십구 번 응시생 언용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찮은 듯 말을 던지시는 와중에 소가 뒷발로 개구리 잡는 격으로 노삼 교수님은 내 작전의 맥을 짚었다.

“음? 뒤에 업힌 놈은 환자인 것 같고. 근데 왜 두 놈밖에 없는고? 넷이서 한 조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덮어두고 있다가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정현 때문에 기껏 마련해 둔 비장의 수가 들통날 수도 있는 상황.

하여 화제를 돌리고자 내 입술이 달싹이려는데.

“아, 그러고 보니 입관처장이 또 과제를 제대로 이해한 조는 인원이 좀 부족할 것이라고 그랬던 것 같구먼.”

노삼 교수님의 먼저 입을 여시더니, 우둑우둑 어깨 관절과 다리 관절을 푸셨다.

“뭐 아무튼 환영하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내 적당히 봐주도록 하마, 일단 여기 이 오른손은 쓰지 않을 것이다. 두 놈 모두 검수인 것 같은데 어쭙잖게 예의 차리지 말고 검을 뽑아 그리고 오늘 거지 하나 회를 치겠다는 생각으로 진심으로 덤비거라.”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이시며 남은 말을 뱉어내셨다.

“시간들이 촉박할 텐데 어여들 들어오너라.”

* * *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노삼 교수님의 까딱이는 손가락에 나는 우소릉을 한편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자 나를 응시하고 있는 정현이 보였다.

그런 정현을 향해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스르렁-

스릉-

그것을 신호로 나는 회한을 정현은 송문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순식간에 노삼 교수님을 향해 짓쳐 들었다.

쌔애애애액!!!

그에 정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기가 우리 기준으로 동편에서 흩뿌려졌고.

쌔액! 쌔애액! 쌔애애액!!!

회한에서 뻗어나간 묵빛 검기가 서편의 대기를 찢어발겨 나갔다.

하나, 노삼의 무공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대단했다.

순식간에 양편에서 쏟아지는 십여 초의 초식을 오직 한 손으로 받아내는데.

팡!!!!!!

면면부절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무당 특유의 검술을 사용하는 정현의 검기는 강한 장력으로 결대로 밀어 물러나게 했고.

펑! 펑! 펑펑펑!!

톱날같이 쏟아지는 내 검기는 권기로 맞받아쳤다.

정현의 검술은 무당의 것이니 본적이 있을 테니 그렇다 치더라도, 파천검법은 처음 보는 것일 텐데도 저런 움직임이라니.

한 초식이 한 초식이 막힐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기보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와버릴 정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정현의 표정에도 미세하게 감탄과 당혹이 흘렀다.

하나, 우리는 감탄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정현과 나도 이렇게 합공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낭비되는 일보 일보들이 있었으나 초들이 늘어감에 그런 일보 일보들이 줄어나갔고.

검기와 권장들이 어지러이 맞붙던 어느 순간.

‘빈틈!’

내가 노삼 교수님의 뒤를 잡았다.

그에, 나는 지체없이 파천십검의 선삼초 중 찌르기 동장에 해당하는 파천맹진(破天猛進)을 내질렀다.

쌔애애애애액!!!!!!!!!

하나,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자체가 허초였는지, 일순 노삼 교수님의 몸이 급히 뒤를 돌아보는 호랑이의 그것처럼 틀리더니.

꽈르릉!!!

함께 뻗어져 나오는 일장에 실린 장력이 펑!!! 하고 내 머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에, 나는 찔러 들어가던 초식을 틀어 검풍을 일으킴과 동시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발을 차 몸을 뒤로 던졌다.

꽝!!!!!!!

그러자마자 벼락처럼 쏟아져 나온 장력이 노삼 교수님이 누워 있던 넓직한 바위의 절반을 쓸고 지나갔다.

그에, 손에 들린 사부님께서 울화를 토해 내셨다.

- 신룡파미(神龍擺尾). 거지새끼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항룡십팔장 중 후방을 노리는 자를 격살하는 것으로 방어하는 초식이다. 근데 이거 시험 아니냐? 저 미친 거지새끼가 남의 제자 잡을 일 있나! 힘 조절을 못 하는구나! 작풍월개?! 서당개 소리를 듣는 거지인 줄 알았더니 완전히 미친 거지새끼가 아니냐?!

그런데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그러자 사부님의 울화가 내게도 조금 튀었다.

- 웃음이 나오느냐?! 방금 네 머리통이 터질 뻔하였느니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싸움깨나 해본 거지로다.

‘만만해서 웃은 게 아닙니다. 사부님.’

- 그럼?

‘어. 재밌어서요?’

- ……?

‘아니다. 그냥 재밌다고 하면 오해를 하시겠구나, 음. 뭔가 알 것 같아서요? 정현이 녀석이 쓰는 검술을 힐끔힐끔 보다 보니 뭔가가 아리까리했는데, 방금 사지에서 빠져나오면서 순간 길이 보인 것 같았어요.’

- …호오. 그으래?

그렇게 사부님과 이런저런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 동편에서 다시금 흩뿌려지기 시작하는 푸른 검기.

나는 회한을 고쳐잡으며 다시금 사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