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언가에서 수석이 나왔답니다 (1)
감독관 막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냉탕에 들어 있는 심정이었던 은하성은 제갈민에게서 일종의 극찬을 받아 막사를 나왔다.
“여윽시 우리 형님이시다! 젠장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갈민의 찬사는 구슬을 가져왔을 때라는 단서가 붙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은하성이 아는 언용운은 한다면 하는 사내였다.
‘용운 형님은 염라대왕에게 구슬을 맡겨놔도 멱을 비틀어 그 구슬을 빼앗아 올 분이시지.’
안 그래도 오는 길에 폭죽이 쏘아 올라가는 것도 보였다.
위치를 가늠해 봤을 때 오 점짜리 구슬을 누군가가 획득했다는 신호가 분명했고, 그 일을 해낸 장본인은 언용운일 것이라 은하성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절차적인 문제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고, 방금 그게 확인된 것이었다.
그에 냉탕에 있던 은하성의 기분이 완전히 온탕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지금까지 용운 형님께서 획득하신 점수가 십사 점이시니까. 새롭게 오 점을 더하면 용운 형님의 점수는…. 무려 십구 점?!’
수석 각.
이건 수석이 가능한 점수였다.
정현도 십구 점이긴 했지만, 같은 점수면 조장을 역임한 사람의 순위가 높다 그랬으니까.
뭐.
아무튼.
은하성이 그렇게 온탕에 들어간 기분 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죽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의원에서 받아온 확인표가 맞군. 요점에서 획득해온 구슬은 이 점짜리인가?”
“예. 그렇습니다!”
“둘 다 이번 기수의 시험을 위해 입관처에서 준비한 것들이 맞군. 삼십이번 조. 통과다.”
“가, 감사합니다!”
비교적 낮은 고도에 위치해 있던 적은 배점의 구슬을 따낸 조들부터 해서, 과제를 완료한 조들이 하나둘 결승선이 그어져 있는 본진으로 돌아오더니.
“감사할 것은 없다. 이번 관문을 완료했다는 거지 그대들이 합격했다는 것은 아니니까. 섣불리 기뻐하지 말도록. 자 여기 확인 도장이 찍힌 응시표다. 중앙에 놓여 있는 단상에 설치된 흑판을 관리하고 있는 조교수에게 가져가 보이면 자네들의 등수를 기입해 줄 것이다. 그 석판 안에서 이름이 밀려나지 않아야 비로소 합격자가 되는 것이다.”
“옙!”
학관생 광장의 단상에 놓여 있는 큼직한 흑판을 응시하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 어떻게 이 지옥 같은 관문들을 다 통과하긴 했는데, 이제 당락이 걱정이군. 딱 십 점인데… 젠장, 이 점수로 턱걸이라도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번 기수 시험이 이렇게 어려울지 누가 알았겠나?! 이 정도면 역대급 불시험이야. 희망을 갖게.”
“그나저나 그 폭죽은 뭐였을까?”
“다른 곳에서는 폭죽이 쏘아진 바가 없으니. 오 점짜리 구슬을 누가 따냈다는 신호 아니겠는가? 위치도 지도상 오 점짜리 구슬이 있던 곳에서 쏘아 올려진 것 같았고, 오 점짜리 구슬은 딱 한 개라고 했으니 대충 앞뒤가 맞지 않나?”
“일리가 있군. 근데 누가 땄으려나….”
“제갈설지 소저 아니겠는가? 내 슬쩍 조의 구성원들을 봤는데, 개방의 젊은 거지 중에 가장 전도유망하다는 천장호, 사천당가의 당옥기, 진주언가의 언용명이 한 조였네. 그 조라면 능히 오 점짜리 구슬을 획득해냈지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근데 이번 기수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응시생은 뭐니 뭐니 해도 언용운 응시생 아니겠나?”
“그렇긴 한데, 이번 과제에서는 힘들지 않겠나? 언가에서 쫓겨난 사람이 제갈가의 홍복이라 불리는 사람을 이길 것 같지는 않군. 또 조원들의 수준도 차이가 나고. 엄연히 조별 과제가 아닌가? 우리도 해봤지만 이거 한 명이 잘났다고 따낼 수 있는 게 아니었지 않나 이 말일세.”
그런 말들을 들으며.
은하성은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되는 대로 지껄여 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씨익 웃었다.
‘조를 나눠 의원을 찾은 사람은 우리 조가 유일했는데 개소리들을 하고 있네.’
용운 형님과 정현 도장이 말하기를 조를 나누지 않으면 오 점짜리 구슬은 시간상 도전할 수가 없다고 그랬으니까.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있었구나. 사 점만 획득해도 용운 형님과 같은 십구 점이 되네.’
그래서 제갈민 교수가 그 수석 결정전인가 뭔가 하는 이야기를 했던 거였다.
‘흥. 용운 형님이라면 제갈설지가 아니라 제갈설지의 할애비가 와도 안 될걸?!’
제갈설지의 할아버지는 전대 무림맹의 대군사였고, 현재는 무림의 원로로 각종 단체의 자문을 맡고 계신 백도 무림의 거두.
말 그대로 경을 칠 생각이었지만, 은하성은 그런 사실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는 그때.
“제, 제갈설지 소저다.”
“이 사람아 목소리가 너무 컸네. 제갈가랑 친분도 없는 사람이!”
양반은 못 되는지 제갈설지의 조가 본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조원 중 한 명이 은하성을 향해 알은체를 해왔다.
“은 소협?!”
“오! 용명 형님?!”
그렇게 마주한 두 언 동생.
서로 간에 피차 물을 말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먼저 입이 열린 쪽은 언용명이었다.
“아, 이쪽은 제 조원들입니다. 조장이신 제갈설지 소저, 그리고 당옥기 소저, 이쪽은 천장호라는 친굽니다.”
예전 같으면 언용명이 자기까지 소개하도록 뻗댔을 은하성이었지만, 언용운에게 예절을 주입받은 덕분일까?
어느새 손이 절로 포권을 취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지만 은하성의 말이 채 끝을 맺기 전에 도도하다 못해 오만해 보이는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요. 하성 님이시죠? 은휘상단의 둘째이시고요?”
“…어. 저를 아십니까?”
“조금요. 그런데 혼자 계신 것을 보니 조를 나누셨나 보네요? 그렇다면 역시 오 점짜리 구슬에 도전한 조는 용운 님의 조였군요?”
그런 제갈설지의 말 덕분에 은하성은 본디 언용명에게 물으려 했던 당신네 조가 오 점짜리 구슬을 획득했냐는 질문을 하지 않고도, 눈앞의 조가 그보다 낮은 배점의 구슬을 택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마른침만 넘어갔다.
“…어.”
“흐음. 일반적인 천라지망보다 성겨 보여도, 욕심에 눈이 돌아가 정도를 넘어버린 사람들은 그야말로 뒤가 없기 마련인데. 기어이 그 길을 가셨구나아.”
근데, 보아하니 대답을 들으려는 물음이 아닌 듯했다.
꼴깍-
그에 다시 한번 은하성의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따금 언용운을 마주하면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느낌을 한 번씩 느낄 때가 있었는데, 눈앞의 여자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언용운이 불로 된 벽이라면.
“재밌게 됐네요.”
이쪽은 얼음으로 된 벽이었다.
그 때문일까?
제갈민의 막사를 나온 뒤로 줄곧 온탕에 있던 은하성의 기분이 다시 냉탕으로 옮겨갔다.
* * *
우리가 딴 오 점짜리 구슬을 노리고 덤벼오는 응시생들은 사실 그리 만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챙!!
그도 그럴 게.
일단 마지막 관문까지 버텨낸 것만 하더라도 한가락 재주는 있다는 이야기였고.
이미 자신들의 구슬을 확보해놓고 어부지리를 노려오는 녀석들인 만큼 제법 날카로운 합격(合擊)을 해올 줄 아는 녀석들이었으며.
채챙!!!
범인이라면 갑자기 폭죽이 왜 쏘아졌을까 하고 넘어갔을 상황에서, 쏘아 올려진 폭죽과 지도상의 요점 배치를 바탕으로 오 점짜리 구슬을 따낸 조가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는 머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간과했다.
그중에 첫째는 내가 그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부원배 같은 놈들이니, 호서배니, 친마파니 하긴 했지만. 입학시험 중에 목은 따면 안 되니까.’
검을 틀어서 날이 아닌 면으로.
‘빈틈!’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검면으로 때렸을 때 가장 파괴력이 큰 곳은?!
쌔애애애애액!!
정답.
정수리.
빠악!!!
“꺽?!”
“화, 황보 형?!!”
“후. 지금 네가 보준이 걱정할 때냐?! 단목… 근데 네 이름이 뭐였지?”
“원. 단목원입니다.”
“그래 목원아. 네가 지금 보준이 걱정할 때냐고.”
“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거 같지?”
“…예. 혹. 지금이라도 저희를 돌려보내 주시겠습니까? 언 소협… 아니 언 대협의 관대함을 딱 한번만 더 보여 주신다면….”
“응.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절대 못 돌아가.”
“…….”
“그러니까 얌전히 머리통 대!!!”
빠악!
“내가! 어?! 기회를 두 번이나 줬는데!!!!”
빠악!!
“아니지! 조금 전에도 길 잘못 들었다고 하면 봐준다고 했잖아?! 세 번이나 줬네?! 이씨 한 대 아니 여섯 대 더 맞아!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바알!!!”
빡! 빡! 빡! 빡!
빠악! 빡!!!
둘째로는 정현의 실력.
챙!
채챙!
채채채챙!!
“무, 무슨 검술이 빈틈이 하나도 없지?! 이보시오 조장! 여기 나 혼자선 안 되겠소!”
“여기는 괜찮은 줄 알아?! 여기는 방금 황보준과 단목원이 떡이 됐다!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 정신 사납게 말시키지 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녀석들이 가장 천대하는 우소릉의 진가.
“황보준의 조는 환자를 업고 있는 하유경이 구슬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깄습니다. 언 형.”
챙! 채채채챙!!!
“음. 바쁘시네요?! 허리춤에 차고 계신 주머니 안에 넣어 놓을게요?!”
“…그런 것도 가능하냐?”
“안 걸리게 넣는 건 좀 어려운 기술에 속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형님 발만 잘 피하면 돼서 쉬운데요? 비영파천보는 만드실 때 옆에서 보기도 했고요.”
챙챙채채챙!
“아무튼 넣어 놓고 다른 것도 가지고 올게요?”
“그래! 그래라아앗! 죽어! 아니 죽이면 안 되지 참!”
빠악!!
그런 우소릉의 모습에 사부님께서도 감탄을 하실 정도.
- 저 정도면 도둑질도 예술의 경지로구나.
뭐, 아무튼.
그렇게 나와 정현이 양쪽 방위를 책임지는 동안 우소릉이 먹이를 물어오는 어미새처럼 내게 허리춤의 주머니에 구슬을 차곡차곡 물어다 넣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잘그락-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슬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해져 어느새 허리춤이 묵직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 본진까지 옮긴 걸음은 몇 걸음 되지 않는데, 저쪽의 인원이 점점 늘어나는구나.
하나는 우리를 막아서는 인원이 계속해서 불어난다는 것.
“이봐. 말총머리!”
“왜 까까머리!”
“힘을 합치자! 저 망나니 놈 밑에 있는 도둑놈이 우리 조가 따낸 원래 구슬을 가져갔다! 너희도 그렇지?”
“염병할 그렇네? 언제 가져갔지?!”
“저 망나니 놈의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만 따내면 골라가질 수 있다! 오 점짜리 구슬을 노리고 온 것이지만 본전도 못 찾게 된 지금에 와서는 원래 구슬을 되찾겠다는 생각뿐이다. 힘을 합치자!”
“일리가 있군. 이번만이다!”
“그래 임시 동맹이다!”
다음은 친마파끼리 서로 견제를 하던 처음의 구도와 달리, 우리 쪽에 구슬이 모이며 저쪽이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
- 저놈들끼리 뭉치기까지 하는구나? 제자야. 이대로 괜찮은 것이냐?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바니까요.’
- 이럴 걸 예상을 했다?
‘음 정확하게는 의도했다는 게 맞겠네요.’
하지만 해볼 만했다.
- 예상 정도가 아니라 의도했다고?
‘저놈들이 저렇게 연계하기 시작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사부님?’
- 글쎄? 뭐, 너희와 자신들의 힘의 차이를 내심 깨달았기 때문 아니겠느냐?
‘옳습니다. 거기다 보험, 아 보험이라고 말하면 모르시려나. 음 믿을 구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구슬들을 털렸기 때문이죠,’
- 그런데?
‘그런데 제가 저놈들 사이에 구슬 몇 알을 던져주면 저놈들이 힘의 차이를 느낀 저희한테 덤빌까요? 아님 제 놈들끼리 싸울까요?’
- 이호경식(二虎競食)! 아니, 이 경우에는 다호경식(多虎競食)이로구나! 먹이를 두고 많은 호랑이들이 다투게 만드는 것이니까?!
생각은 여기까지.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구슬 세 개를 끄집어내 친마파들을 향해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거기 추축국 여러분들!”
“추축국? 그게 뭐냐?!”
“그런 게 있다. 너희 같은 놈들이 편을 먹으면 부르는 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이 구슬 보이냐?!”
“!”
“?!”
“개평이다. 한 조는 정 없고 두 조는 쪼잔해 보이고, 딱. 세 조만 구제해 준다. 대신에 지금부터 덤비는 자식들은 진심으로 초주검을 만들어줄라니까. 하북에서 이름난 망나니 성질 확인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들어와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삼방을 향해 힘차게 구슬을 뿌렸다.
그리고 회한을 고쳐잡으며 정현과 우소릉을 향해 새로운 작전을 하달했다.
“정현! 소릉! 내 뒤에 붙어! 본진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