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53화 (53/444)

제53화. 언가에서 수석이 나왔답니다 (3)

학관생 광장에 놓여 있는 감독관 막사.

이 감독관 막사는 상시 설치돼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입관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것이었다.

이런 막사가 마련된 이유는 시험 중에 벌어진 사태 중에 특히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여 학칙을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시험을 설계한 총감독관인 제갈민과 입관처장 임태옥이 간단한 상의를 할 것을 상정하여 마련한 것이었다.

예컨대, 이번 기수에 무과의 신입생을 총 백육십 명을 뽑기로 했는데, 당락권에서 동점자가 발생하여 백육십이 명의 합격 예정 응시생이 발생했을 때.

『합격 예정권에 들어선 입관 시험 응시생의 품행이 단정하고 자질이 충분하여 장차 천하 무림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면, 총감독관과 입관처장은 의논하에 정해진 정원보다 많은 응시생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학칙을 끌어와.

약간 많은 인원을 합격시키거나, 되레 적은 인원만 합격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아무튼.

본디 이 감독관 막사는 그런 이유로 세워놓은 것이었다.

하여, 막사 안에 마련된 책걸상은 총감독관용 한 개 입관처장용 한 개, 그리고 혹시 몰라 마련해놓은 예비용 한 개, 합하여 총 세 개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세 개의 의자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인원수의 교수들이 전례 없이 모이게 되었다.

“내 의자는 아직인가?”

“그, 금방 가져올 겁니다. 교수님!”

“…올 겁니다? 말에 여지가 좀 있어 보이는데 유 조교?”

“…그 도우미들을 보내놨는데 인석들이 좀 늦네요. 하. 하하하.”

“이런. 자네가 직접 가서 챙겼어야지, 도우미들끼리 보내버리면 이래저래 확인 절차가 많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렇게 늦는 게지! 지금 나 말고도 여기 서 계신 교수님들이 몇 명인데, 자네 설마 연구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나?”

“아, 아닙니다! 제가! 제가 지금 직접 가서 일 다경! 아니 반의반 다경 안에 챙겨 오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수가 모이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수석을 정하는 일에 학칙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수석을 노리는 응시생들은 이미 합격이 확실한 자들이니, 당락권에 있는 응시생들을 많이 합격시켜 주느냐 마느냐가 혜택을 받은 응시생은 많겠으나, 사실 더 중요한 쪽은 이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무학관의 수석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현판(懸板)이나 다름없었다.

그 자체로 별호가 되어 당금수석(當今首席)이라 불릴 정도로 영예로운 자리이자 천하의 이목이 쏠리는 자리였으니까.

하여, 수석 선정 절차에 문제가 생기면 정무학관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강호에서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될 수도 있었다.

『입학생 수석은 한 명으로 한다.

수위를 점한 응시생이 두 명 이상일 경우에는 한 명의 수석을 선정하기 위해 수석 결정전을 실시하여야 한다.

단, 수석을 다투는 응시생 중 한 명에게 특히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어, 입학처에 속하게 된 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경우에는 수석 결정전을 실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이번 기수의 입학처에 위원으로 속하게 된 교수들이 이렇게 다 모인 것이었는데.

“인원은 다 왔습니다.”

총감독을 맡은 제갈민이 인원 확인을 끝내자, 의장을 맡은 임태옥이 짝- 하고 박수를 쳐 주위를 환기시킨 뒤.

고개를 잠시 숙였다 들고는 입을 열었다.

“자자, 의자는 부족해도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구려. 이번 기수의 수석 선정 문제가 시급하고도 중하니, 어서 회의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사과를 드릴 테니 서 계신 우리 동료 위원님들께서 너그러이 양해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리오이다.”

“괜찮으니 진행하십시오. 임 선배.”

“감사하오이다. 우선 무당산의 요점에 나가 계시던 분들은 상황 파악이 안 되신 분들도 계실 테니, 현 상황에 대한 간추린 말씀을 여기 총감독관을 맡은 제갈민 교수님께서 드리겠소이다.”

“제갈민입니다. 이번 기수에서 수위를 점한 동점자는 총 셋으로 각각 십구 점씩을 기록했습니다.”

설명을 맡은 제갈민이 입을 열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음성.

“…십구 점? 십구 점이면 역대급 점수 아닙니까? 그 점수를 세 명이나 기록했다고요?!”

“병급 요점에서 삼 점짜리 구슬을 담당해 주셨던 수위부 십일 조의 조학수 조장님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더 정확히는 역대 최고점입니다.”

그 음성 중에 바로잡아야 할 부분을 찾아 바로잡은 제갈민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중에 제갈가의 설지는 최초에 갑급 무사로 분류되었던 응시생으로 입관 · 무위 두 관문을 면제받음과 동시에 합쳐서 오 점을 부여받았고, 이후 파훼에서 오 점, 경신에서 오 점, 조별 과제 관문에선 사 점을 획득하여 총합 십구 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소무후 혹은 제갈가의 홍복이라 불린다는 그 아이지요?”

“을급 요점에서 사 점짜리 구슬 중 하나를 담당해 주셨던 남궁정호 교수님이시군요. 그 아이의 집안 어른으로서 퍽 남사스럽습니다만, 그리들 불러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당파의 정현입니다.”

“…정현? 그 사숙조를 발고하였다는 무당의 제자 녀석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정으로 인해 정현은 최초에 을급 무사로 분류되어 입관 관문에서 이 점을 부여받았으나, 공연히 소란을 일으킨 명목으로 일 점의 감점을 받았고, 이후 무위 관문에서 오 점, 파훼 관문에서 삼 점, 경신 관문과 조별 과제에서 오 점을 기록하며 십구 점을 기록했습니다.”

“…그 공연히 소란을 일으켰다는 명목이면 정확히는 어떤 행위를 한 것입니까?”

“입관 시험의 창구를 맡았던 도우미 중 한 명의 태도가 고압적이라 반발을 했다 합니다. 해당 도우미는 따로 벌점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렇군요.”

“마지막은 용운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 이르러 교수진 중 몇몇이 화색을 보였다.

“허. 용운이면 그 화제의 정급 무사 아닌가?”

“그런 거 같은데? 상위권 생도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었는데, 용명이라는 이름이 갑급이고 용운 쪽이 정급이었네. 한데 자네는 제비를 잘못 뽑았다고 투덜거리지 않았는가? 용케도 응시생 이름을 기억하고 있군.”

“당연히 기억을 하지. 정급에 수석을 노릴 만한 자질 아닌가?! 신입생부터 떡잎이 보이는 놈이면 학관생 신분일 때부터 연구에 참여케 해서 대학원까지 끌어오면 많게는 십 년까지 함께할 수 있는 노ㅁ… 아니, 재원인데.”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용운? 성이 용가인 겁니까?”

“사 점짜리 구슬 중 하나를 담당해 주셨던 창량 교수님이시군요. 성이 용가는 아닙니다. 언가 출신인데 가문에서 퇴출당하여 방금은 이름만 불렀습니다. 본래의 성명은 언용운입니다.”

“아, 그 언가의 망나니?”

* * *

사숙조를 발고한 3대 제자 정현.

언가의 망나니 언용운.

녹색 장포의 소매 끝동에 묵색의 천을 덧대 출신 기숙사를 나타낸 향란관 출신 교수들에 의해 회의장의 기운이 묘하게 제갈설지에게 유리하게 기우는 이때.

한 사내가 귀를 후비며 나섰으니.

다름 아닌 노삼이었다.

“이봐 남궁정호. 그리고 창량이 자네들이 뭔데 응시생을 그렇게 재단하나? 입관 시험에서 불리함들을 감수했으면 됐지, 망나니니 사숙조를 발고했니 그런 이야기를 왜 이 자리에서 거론해? 시험을 주최했으면 시험으로 평가를 해야지. 어? 안 그렇습니까 입관처장?!”

“노 선배의 말씀이 일리가 있소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치면 내가 시험 기간 내내 학관생 식당에서 밥을 빌어먹었는데,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붙잡고 몇 마디 물었더니 언용운, 정현 이 두 놈이 가장 예의가 발랐다던데?! 나머지 놈들은 싸가지가 없으니까 일 점씩 싹 깎아도 되겠네?!”

“송구합니다. 노삼 선배.”

“그냥 그렇다는 혼잣말이 너무 크게 나온 듯합니다. 사과하지요.”

“그래 계속들 미안해하도록 하시고. 아울러 지방에서 나발 부는 놈들도 좀 조용히 하고, 니들이 자꾸 씨부려 대니깐 총감독관이 답해준다고 할 말을 못 하고 있잖아! 총감독관은 계속해 주시오!”

노삼의 일갈로 다시금 균형을 찾은 회의장의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제갈민이 재차 입을 열었다.

“예. 그럼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용운 생도는 최초에 정급 판정을 받아 일 점의 감점을 안고 시작했으나, 무위, 파훼, 경신, 조별 과제 모두 오 점을 기록하여 도합 십구 점을 기록했습니다. 처장님. 우선 상황에 대한 안내는 끝났습니다.”

“고생했소이다. 자, 이제 다들 파악들이 되셨을 테니 이 사람이 회의의 안건을 추리도록 하겠소이다. 사실 삼 위가 누구인지는 이견들이 없을 것이오이다. 언용운 응시생과 제갈설지 응시생은 조장으로 조별 과제를 수행한 데 반해 정현 응시생은 조원으로 수행하였으니 말이오이다. 문제는 언용운과 제갈설지 간의 등위이오이다. 의견들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경신 관문을 담당했던 한영입니다. 두 명이 다 조장이고 점수도 같다면 그냥 수석 결정전을 실시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원론이었다.

하지만 이쯤 하여 제갈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섰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추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용운 생도에게 학칙에 명시된 특히 참작할 만한 사유에 속하는 사유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구슬을 남들보다 많이 획득해 왔습니다.”

“…음? 두 개든 세 개든 가장 높은 배점이 매겨진 구슬 한 개만 인정하는 것으로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 개를 따왔고 그중에 한 개가 오 점짜리 라면 칭찬을 해줄 일이긴 한데, 수석 결정전을 건너뛸 정도의 사유는 아닌 것 같은데요?”

“두세 개가 아니니까 문제입니다. 획득해온 구슬의 개수가 무려 오십 개입니다.”

이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정해졌다.

“오, 오십 개요? 그냥 오 개가 아니라 오십 개요?”

“예. 오십 개입니다.”

“어떻게? 아니 애초에 오 점짜리 구슬을 획득한 조가 공격당하기 좋게 짜놓은 진이긴 했지만. 그걸 뚫고 나오는 것과 구슬까지 앗는 것은 천지 차이인데? 한두 개도 아니고 오십 개면 거의 응시생 중 삼 분의 일 정도 아닙니까?”

은하성이라는 응시생이 확인표를 가져왔을 때만 해도, 언용운과 제갈설지 간에 수석 결정전이 열리리라 예상했던 제갈민이었다.

“예. 머릿수로 치면 이백 명의 응시생을 언용운의 조 하나가 탈락시킨 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용운이라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기에 제갈설지가 임자를 만났구나 하는 감상으로 했던 예상.

언용운이 이번 과제를 말 그대로 압도해 버린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졌다. 설지야.’

* * *

- 뭔 놈의 회의를 저렇게 오래 하는 것이냐? 딱 봐도 네 녀석이 수석이구만?!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뭐. 저는 끈 떨어진 망나니고 제갈설지는 정무학관의 최대 후원자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후기지수 아닙니까?’

- 시험을 쳤으면 성적대로 정하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어른이고 나발이고 개입할 건덕지가 어디 있느냐?! 오 점짜리 하나 빼고 네가 딴 나머지 구슬을 한 개당 이 점씩만 잡아도 백십칠 대 십구 아니냐?!

‘큭큭.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가장 높은 배점의 구슬만 인정하는 시험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구슬이 많아도 동점인 거죠,’

- 아무리 그래도 오십 갠데?! 일 점씩만 잡아도 육십팔 대 십구 이니라!

‘큭큭. 뭔, 저잣거리도 아니고 뭘 자꾸 그렇게 후려치십니까.’

- 참내, 웃음이 잘도 나오는 모양이로구나? 사부는 열불이 나는 구만!

‘잘도 웃음이 나온다기보다는 저 안이 대충 예상이 가서요.’

- 그래? 어쩌고 있을 성싶으냐?

‘아마, 망나니에게 수석은 줄 수 없다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다가 자존심 강한 제갈세가 쪽에서 그걸 안 받고 오히려 수석 결정전을 치르자는 양상으로 전개가 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원작에서 딱 그랬으니.

뭐, 비슷하지 않을까?

- 에이잉! 염병할 놈들!

‘동의합니다. 에이잉! 썩어빠진 놈들!’

그때였다.

그렇게 사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있는 그때.

감독관 막사가 걷히더니, 시험을 주관했던 교수님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개중에 입관처장 임태옥과 총감독관 제갈민 교수가 단상 위에 오르는가 싶더니, 제갈 교수가 석차를 기록하는 흑판 앞으로 가 비어 있는 최상단의 세 칸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슥- 슥- 슥슥슥-

1. 언용운.

2. 제갈설지.

3. 정현.

그에 맞춰 입관처장 임태옥이 입을 열었다.

“금번 시험의 합격 정원과 합격자 준수 사항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수석을 먼저 발표하도록 하겠소이다. 이번 기수의 수석은 언가의 용운. 언용운 응시생으로 결정되었소이다. 언용운 응시생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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