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56화 (56/444)

제56화. 덜 지어진 매듭 (1)

아들 내외의 생명의 은인으로 맺어진 인연이었기에, 시험을 치러 가기 전에도 주인장의 대접이 소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당금수석이고 일행 모두가 합격자이며, 개중에 정현은 무당파의 제자이자 삼석이고.

은하연은 문과의 수위를 차지하여 전체 차석 대접을 입학식에서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주인장의 대접은 그야말로 극진해졌다.

음. 뭐랄까?

딱 보기에도 무리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 첫날에 여아홍을 구해온 것을 시작으로, 보양에 탁월하다 알려진 재료들로 조리된 요리나 안주가 때마다 상에 올라왔는데, 그 면면들이 말 그대로 찬란했다.

‘진짜 요 며칠 든든하게 먹었네.’

- 든든한 게 아니라 과했지! 사슴 힘줄 볶음, 멧돼지 목살구이, 산비둘기 알 요리, 말린 해삼이랑 말린 전복에 송이버섯을 넣어 끓인 건화탕(乾貨湯)까지!

‘아니 어째 잡수시지도 못하신 사부님이 저보다 잘 기억하고 계십니까?’

- 못 잡숴서 기억한다 이놈아! 기껏 먹고서도 내가 맛이 어떠냐 물으면 ‘북경고압이나 궁보계정이 나은 것 같은데요?!’ 소리나 하며 맛 평가도 똑바로 못 해주는 네 녀석 덕에 내가 내적 주화입마가 올 뻔했느니라.

‘참내.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죠. 그리고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 난다고 하듯, 진심으로 궁보계정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한 건데요?’

- …먹을 줄도 모르는 놈. 이건 명백한 사기이니라. 네 녀석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분명 식도락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었다. 이거야 원 그때 했던 말과 영 딴판이 아니냐?!

에이.

그래서 사승 관계 유지 안 하실 건가요?

‘사기라뇨. 그래도 제가 여아홍은 넉넉히 뿌려드렸지 않습니까.’

- 그게 더 열받느니라! 여아홍은 분명 잘 묵혔던데, 그런 여아홍을 구해온 자가 음식을 소홀히 할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런데 그깟 닭튀김에 견주다니.

그깟 닭튀김이라뇨.

치느님의 존엄성을 훼손하려 하시네.

뭐, 사부님께서는 그깟 닭튀김에 맥주 한잔하는 맛을 모르실 테니 내가 이해해야지.

뭐, 아무튼.

어찌나 대접이 극진한지, 빚지는 걸 싫어하는 은하연이 금자를 꺼낼 정도였다.

하지만 주인장은 그 금자를 받지 않았다.

“됐습니다. 넣어 두십시오. 이제야 저희 객잔이 그 이름값을 하게 됐는데요. 그저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 수결 한 장씩만 해주시고, 제가 내년에 수석과 차석을 꿰찬 귀빈들이 묵어갔다 호객을 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를 해주십시오. 나중에 학관 생활 하시면서도 한 번씩 외출하실 때 들려주시면 더 좋고요.”

그 소리를 들은 은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자를 다시 전낭 안으로 집어넣었다.

“수완이 있으시네요. 듣고 보니 아주 손해를 보시는 것은 아니신 것 같네요.”

“예. 예. 그렇습니다요. 그러니 마음 편히 잡수시고 푹 쉬다 가십쇼.”

그러고 보니 객잔에 걸려 있는 낡은 현판이 단강제일객잔(丹江第一客棧)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강제일객잔에서 봄 방학을 보내기 시작했다.

닭이 울면 일어나 각자 수련과 운기조식을 했고.

때때로 학관에서 학생패와 함께 받아온 신입생 강의 계획서와 수강 목록들을 펼쳐놓고 어떤 과목에 수강 신청을 할지에 관한 논의도 했으며.

이따금 사대 기숙사 중 어디를 지망하는가에 관한 대화도 나눴다.

아, 그리고 황보세가, 단목세가, 회계하가의 공자들이 작성한 빚 문서에 관한 이야기도 은하연과 나누었다.

“…그리하여 황보준, 단목원, 하유경 세 공자에게 이런 문서를 얻어내게 되었소.”

“괘씸한 사람들이네요. 음. 세 사람 모두 내로라하는 가문이라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만큼 회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맡겨만 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처리해 드릴게요!”

“그럽시다.”

그러다 보면 대략 해가 서편으로 저무는 시각이 되었다.

그에 저녁상과 함께 반주가 도착하면 하성이 녀석이 은하연을 향해 입관 시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는데.

그런지가 딱 사흘째라, 하성이 녀석의 이야기는 슬슬 조별 과제를 돌파하던 순간에 도달해 있었다.

“여기 있는 소릉 동생을 합격권으로 끌어올리려면 무조건 오 점 배점의 구슬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그러기엔 제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때 용운 형님께서 과제의 핵심을 관통하시는 말씀을 하셨죠.”

나, 정현, 우소릉은 몸으로 겪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나, 매번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은하성의 말을 막고 나름의 답을 찾아보고자 골똘해지는 은하연을 지켜보는 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조를 나누자고?”

“오. 어떻게 바로 아셨습니다, 누님?”

“마지막 관문의 시제와 지나쳐야 하는 지점들 그리고 제한 시간을 고려해 보면 그것 말고는 답이 없잖아.”

“호. 당시 그 핵심을 짚어 낸 사람은 언 소협 말고는 없었습니다. 한데 은 소저는 그 점을 바로 잡아내시는군요. 강남의 상계에 어린 봉황이 있다더니, 그 말이 참이었습니다. 안목이 예리하시기 그지없으십니다.”

“과찬이세요 정현 도장. 저야 시험이라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 여유로운 상황에서 바둑판의 사활 문제를 풀 듯 고민을 하니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한 거죠, 언 공자가 대단하신 거죠. 언 공자도 계시는 자리에서 그런 말씀은 너무 부끄럽네요.”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시간이 말 그대로 삭제가 되듯 흘러 객잔 밖이 어둑해지곤 했는데.

“정현 도장, 그리고 누님! 거, 제 이야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지금부터가 이야기의 중요 대목이라고요. 지방에서 나팔 부는 것은 좀 자제를 해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래. 조용히 할게.”

“…근데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언 형께서 조별 과제 관문의 시간 제한을 조를 나누어 파훼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까지 하셨어요.”

“아, 맞다. 고마워 소릉 동생. 그리하여 저희 조는 총원 네 명의 조를 삼인 일조 하나와 일인조 조 하나 이렇게 둘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일인조의 역할을 제게 맡기시며 그러셨습니다. 하성아 너만 믿는다. 이건 너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너에게 달렸다. 내 동생 하성아, 믿는다.”

“…언 공자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예.”

“…너한테?”

“예!”

“…이건 좀 안 믿기는데? 언 공자. 하성이 쟤가 하는 말이 정말인가요?”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는 한데. 느낌이 좀 달랐던 것 같은데?”

“느낌이 다르시다잖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으시다는 말에 초점을 맞추세요. 누님!”

그렇게 완연한 어둑이 객잔 밖에 깔리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객잔 밖으로 향했다.

“먹고 떠들고들 있어. 나는 소피 좀 보고 올 테니.”

* * *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생리 현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 요즘 매일 비슷한 시각에 이렇게 홀로 객잔 밖으로 나오는 것 같구나? 뒷마당에 그 네 녀석 특유의 주술진까지 그렇게 그려 놓고.

‘사부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죠?’

- 그래. 오늘은 나올 때가 됐다 하는 이야기까지 하고. 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

이 질문은 대답을 하기가 좀 그랬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사건이었으니까.

“덜 지어진 매듭이 있어서요.”

하여, 나는 어물쩍 뭉개는 말을 사부님께 돌려드린 뒤.

원작에서 이맘때에 벌어졌던 사건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당금수석 급습 사건.’

원작의 정현은 나와 달리 정말로 힘겹게 수석 자리를 따낸다.

‘진원진기를 써서 조별 과제를 통과하고 제갈설지와 검까지 겨룬 끝에 그 자리를 얻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수석 자리를 쟁취하고 이제야 잠시 잠깐 쉬어 가는구나 하는 찰나, 살수들의 습격을 받는다.

‘전문적인 살수는 아니었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단강구는 백도 무림의 요람이라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을 잘못 벌였다간?

개인은 무림 공적이 되고, 단체는 역사와 지도에서 사라질 수가 있다.

하여 단강구에서 살수들이 들어오는 일은 딱 세 가지였다.

그저 살수라 불리는 게 아니라 자객이라 불리는 그쪽 업계의 최고수급 인물이 어마어마한 의뢰금을 받아 움직이거나.

마교의 마인들이 개입이 되거나.

‘그도 아니면 내일이 없어 눈에 뵈는 게 없는 저급한 자들이 한탕하고 나를 생각으로 기어들어 오거나.’

예컨대 살인, 강간, 방화 등을 저지른 수배자들이나 그런 동류들이 패를 이루어 먹고 사는 흑도 방파 내에서 사고를 쳐서 쫓기는 이들.

당금수석 습격 사건에 가담한 자들은 개중에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의뢰인들이 입관 시험의 마지막 관문에서 정현의 구슬을 노리다가 탈락한 놈들이었으니까.’

개중에 대단한 가문의 자제들이 끼어 있다곤 하나, 그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정현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정도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개심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서도 응시생 대부분은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다며 겁을 먹어 돌아갔다.

하여, 남은 인원은 딱 한 줌에 불과했다.

그 한 줌의 인원이 십시일반을 해봐야 일절로 분류되는 자객을 섭외할 돈도 그 정도 되는 이를 수배할 연도 없었다.

‘놈들이 선택한 선택지는 하류박(下流泊).’

밑바닥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오물들에게 일거리를 던져주는 흑도 방파.

때문에 살수 개개인의 무위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정현과 다른 조원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객들과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변 양민들에게 제법 큰 피해를 입히게 되고, 그 때문에 이 일은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 후보생 신분과 겹쳐져 정현의 입학을 취소시켜야 하니 마니 하는 사태로까지 번지게 된다.

‘근데, 그건 당사자가 정현이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손속에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는 자들에게 괜시리 죽이지 않겠다는 자비를 가져다 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흐리멍텅한 성정이 아니라서.’

그 귀찮은 사건이 애초에 번지지 못하도록 나름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원작대로라면 하류박에서 살수들을 수배해서 데리고 오는 데 이틀 정도를 썼을 거고.’

일단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의 마지막 관문까지 간 후기지수들이 붙은 이상, 며칠쯤은 내가 혼자 되는 시각이 있는지를 살폈겠지.

‘그럼 딱 지금쯤인데?’

그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한 무리의 인형이 추잡한 살기를 내뿜으며 뒷마당 너머의 수풀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중에 한 명은 내가 확실하게 아는 얼굴이었다.

“보준이 왔니? 네 왼팔이던 단목원이랑 하유경은 안 보이는 거 보니까 정신 차리고 집에 간 것 같은데… 너는 왜 여기에 왔어? 사람 속상하게.”

그런 내 음성에, 눈자위가 시뻘게진 황보준이 이를 빠득 갈며 입을 열었다.

“닥쳐라! 그놈의 주둥이는 여전하구나. 네놈의 더러운 수에 당해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너나 닥쳐라! 지가 지랄하다 그렇게 된 건데 내 핑계 대기는? 그리고 네가 뒤에 끌고 온 양반들이야말로 진짜 갈 곳이 없는 분들 같은데. 저런 분들 앞에서 그런 소리 하다간 등에 칼 맞아 임마!”

황보준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그야말로 어금니가 깎여나가는 듯 까드득- 이를 갈더니, 주변에 늘어선 이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보, 친구들. 듣고만 있을 것이오? 칩시다. 저놈의 입을 찢어 땅에 떨어진 우리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씻읍시다. 박(泊)에서 오신 분들께는 확실한 보상을 추가하겠소. 저놈의 몸에 칼자국을 낸 이들 모두에게 추가로 은원보 한 개씩을 추가로 지급할 것이오. 갑시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를 갈며 짓쳐 드는 전(前) 응시생, 현(現) 실격자 · 자격 정지자들.

그리고 저마다 퉤퉤거리며 손에 침을 묻혀 병장기를 틀어쥐고 뛰어드는 하류박의 잡놈들.

나는 놈들을 응시하며 미리 그려 놓은 저주진을 발동했다.

우웅-

그중 하나는 눈을 멀게 하는 삭월(朔月)의 저주였고.

우우웅-

다른 하나는 말문을 잃게 만드는 발설(拔舌)의 저주였다.

짓쳐 드는 이들 중 대부분이 도가의 심법이나 불가의 심법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기에 내가 건 저주는 제법 골고루 먹혀들었다.

순식간에 눈이 멀고 입이 막혀 버둥거리기 시작한 이들을 응시하며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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