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입학식 (1)
나는 입학처의 요청에 따라 신입생 중 가장 뒷줄에 서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어느 순간 앞으로 나오라는 정무학관의 총장 경혜사태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맞추어 절도 있게 몸을 빼 단상을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좌우에서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저 녀석이 이번 기수의 수석인 거지? 그 화제의 정급 무사라던?”
“예. 망나니짓으로 가문에서 쫓겨난 탓에 최초 관문에서 정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입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걸음을 옮기고 있는 융단의 좌우로 각각 팔십 명과 팔십일 명씩 나뉘어 있는 신입생들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입학을 허가받지 못한 신분인지라, 혹여라도 책을 잡힐까 그야말로 석상처럼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 그럼 제갈설지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작년에 수석을 차지한 당가의 차남이 제갈설지를 당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예! 자치회장님. 뭐, 실제로 검을 섞거나 한 것은 아니고 입관처에서 준비한 시험의 성적으로 우열을 가린 것일 테니, 좀 애매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금수석이라는 별호가 저 친구에게 돌아갔으니, 뭐 꺾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일단 교수님들과 수위부의 조장님들 선에서 쉬쉬하라는 명이 내려졌는지라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뭐?”
“며칠 전에 선도부장이 수위부에서 알아 온 정보인데, 하류박의 잡귀들이 단강구에 기어들어 왔다더군요. 그걸 언용운 저 친구가 정현이라는 친구와 해결한 모양입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신입생들이 서 있는 광장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던 재학생들이었다.
- 묵, 금, 홍, 청. 사색의 무복이라, 입관 시험 때 도우미를 했던 자들이로구나?
‘예. 당시에는 교수님과 조교수님들을 돕는 도우미 역할들을 하셨지만, 정확한 신분은 재학생들이죠. 묵색 무복이 향란관, 금색 무복이 윤국관, 홍색 무복이 운매관, 청색 무복이 청죽관입니다.’
- 한데 선배 무림인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저리 떠들어도 되는 것이냐? 나는 좀 더 엄숙한 식을 생각했거늘.
‘저는 이해합니다. 선배들 입장에선 전쟁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뭐, 그래도 본격적으로 식이 시작되면 아마 입들을 다물 겁니다.’
그런 내 말에 사부님께서는 덜 풀린 의문점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던져오셨다.
- 전쟁이라고? 그리고 아까 저 치들이 자치회장이니 어쩌니 하던데 그건 무엇이냐.
‘예. 정확히는 영입 전쟁이요. 정무학관의 학관생이라는 명제에선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이지만, 기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 기숙사가 경쟁을 하는 관계입니다. 자치회장은 그 기숙사의 구성원들이 뽑은 생도 대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 하기야 괜히 무복들의 색이 다른 게 아니겠지…. 흐음. 그럼 더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겠구나?
‘예. 아마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선배들은 선배들대로 상위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후보생에서 신입생으로 신분이 전환된 하얀 무복의 동기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기숙사에 들어가고자 발을 벗고 나설걸요?’
아니나 다를까.
좌우의 선배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결국 영입 전쟁에 관한 쪽으로 흘러갔다.
“당금수석 언용운에 삼석 정현이라. 그 둘이 하류박의 잡귀들까지 막아냈다고? 신고를 한 게 아니라 막았다는 거지?”
“예. 수위부에서 선정한 정진 장학생의 명수가 다섯이라 정확히는 셋이 더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 운매관에 딱 맞는 녀석들이긴 하구만. 흠. 근데, 정현인가 하는 녀석은 그 무당의 수치라 불리는 녀석이지? 제 사숙조를 발고했다는?”
“맞습니다.”
“…흠. 붙은 수식어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좀 그런데. 아무튼 저 언용운이라는 녀석만큼은 반드시 우리 운매관으로 데려와야 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무조건 데려와!”
“그치만 자치회장님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금수석쯤 되면 경쟁이 치열하게 붙는다는 것을요.”
“청죽관은 축에도 못 끼는 버러지들이고, 윤국관은 창관자의 후예이자 제갈가의 홍복이라는 제갈설지한테 초점이 가 있을 거고, 향란관 그놈들은 혈통을 따지는 전통이 있으니 가문에서 쫓겨난 언용운의 애매한 신분을 해석하려면 사감 교수님 선까지 가야 의사 결정이 될 거 아냐? 빨리 움직이기만 하면 사실상 단독 입찰 아닌가! 무조건 데려와야지!”
“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꼭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자치회장님!”
워낙에 괄괄한 성정을 가진 이들이 많은 곳이 운매관이라 가장 목소리가 큰 양반들은 그쪽 같았지만, 다른 세 기숙사도 나와 신입생들을 훑어보며 조곤조곤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다.
걸으면서 슬쩍슬쩍 보니 다른 신입생들은 그런 선배들의 말에 귀가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뭐, 이해는 갔다.
보통 정무학관에 입관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후기지수들은 마음속에 가고 싶다 정해놓은 지망 기숙사가 있기 마련이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그 정원 안에 들지 못할까 노심초사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골라갈 수 있으니까.’
나는 당금수석이었다.
그 말인즉 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다는 이야기.
그저 여유를 갖고 어디가 더 나을지 각 기숙사의 자치회장들이 제시하는 조건과 원작의 흐름을 찬찬히 고려해서 저울질을 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 문제는 좌우에 있는 선배들이 아니라 앞쪽에 위치한 단상 뒤편에 마련된 귀빈석에 앉아 있는 복잡한 표정의 언정웅과 그 옆에 앉아 부서질 듯 의자의 팔걸이를 쥐고 있….
빠각-!
…아니, 이젠 팔걸이를 부숴 먹은 팽재혁 교수를 닮은 사내였다.
물론, 문제라는 생각도 입학식 이후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
당장은 맡기로 한 바가 있었다.
“이 선서문을 낭독하면 되겠소이다.”
나는 입관처장 임태옥이 내미는 비단 두루마리를 받아 도로록 펼쳤다.
그러자, 당장에라도 뛰어들 것 같던 팽가의 가주로 추정되는 양반도 노기를 가라앉혔다. 이래저래 계속해 말소리가 들려오던 좌중도 일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런 가운데 내가 입을 열었다.
“선서!”
그러자 내 뒤에선 백육십일 명의 신입생들이 내가 뱉은 말을 따라 말하며 후창했다.
“선서!!”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메아리가 그칠 때까지 잠시간 숨을 멈춘 뒤.
가만히 두루마리에 쓰인 문구를 눈에 담았다.
신입생 전체를 대표하여 선서의 내용을 낭독하는 자리, 토씨를 하나만 틀려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다.
“하나. 나는 마땅히 학칙을 준수할 것이며 스승과 동기, 선배와 후배를 존경으로 대할 것을 다짐한다.”
“둘. 나는 마도와 사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오직 정도를 걸어 명예와 신의에 반하는 검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셋. 나는 이와 같은 약속을 지키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하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신입생 대표. 언용운!”
하지만 나는 완벽하게 선서문을 외워 낭독했고.
그런 내 목소리 뒤로 다른 신입생들의 음성이 이어졌다.
“동! 정현!”
“동! 은하연!”
“동… 제갈설지.”
* * *
내 신입생 선서를 시작으로.
무림맹주를 필두로 내외빈의 축사가 있었고.
각종 장학생 발표에 이어 마지막으로 총장인 경혜사태의 입학 허가 선언으로 정무학관의 신입생 입학식이 끝났다.
후보생 신분에서 신입생으로 신분이 전환된 백육십두 명의 일학년생들은 이제 기숙사 입사와 수강 신청이라는 학사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정무학관 입관은 당금의 무림인들에겐 유생들이 과거에 급제한 것과 동일시되는 자랑거리인 만큼 먼 곳에서부터 축하해주러 달려온 가족 또는 친지들과 회포를 푸는 것이 당연시되는지라.
“이보시오 동네 사람들! 우리 딸이 정무학관의 생도가 되었소!”
“자네 딸만 되었나?! 우리 아들도 되었다네!”
오늘만큼은 그런 것들을 잊고 단강구 일대가 흥청이고 있었다.
하나, 딱 한 곳 단강제일객잔만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은 우소릉은 집도 절도 없거니와 이렇다 할 친지가 없었다.
정현도 비슷했다.
녀석은 애초에 고아였다. 물론 무당이라는 사문이 있었으나, 그 사문의 대다수가 정현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장문인과 직속 사부가 그런 정현을 감싸는 사람이긴 하여 파문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덕에 무당파에 여전히 적을 두고 있었지만.
장문인은 모든 도우를 챙겨야 하는 존재였기에, 직속 사부는 정현의 죄를 대신 청해 면벽수련을 하고 있기에 이곳에 찾아올 수 없었다.
은하연과 은하성은 저 두 남매는 사정이 좀 다르긴 했다.
강남상왕 은세평은 입학식에 참석은 했으니까.
하지만 자녀들에게 그리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강남상왕에게 시간은 금이었는데, 자신의 자녀들을 만나는 것보다 입학식에 모인 다른 귀빈들을 접하는 게 현재로선 가치 있는 일이었기에 그랬다.
마지막은 언씨 삼부자.
그러니까 나와 언정웅 그리고 언용명 이렇게 셋이었는데.
이쪽은 가족이 오기도 했고 시간도 내고 있긴 했지만.
“…….”
“…….”
“…….”
분위기가 어색했다.
나는 나대로 가족이라는 관계 자체가 처음이라 그러했고, 언씨 부자 입장에서는 나를 아픈 손가락 뭐 그런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호적에서 파인 아들과 그 결정을 내린 아비가 아닌가?
뭐, 아무튼.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이 우중충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했네. 이쪽은 우리 아버지. 진주언가의 가주님 되시는 분이시고. 이쪽은 어쩌다 보니 제가 거둔 거 비슷한 상황이 된 녀석들인데….”
“형님! 거둔 것 비슷한 상황이라뇨?! 얘네들 다 제 동생이다! 왜 말을 못 하십니까?!”
어디 내놔도 부끄러워서 그런다 자식아.
“방금 말한 쟤가. 은하성입니다. 강남상왕의 용혈 중 둘째로 강남신협이라는 별호가 있긴 한데, 보시다시피 이름값은 못 하는 녀석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용운 형님 덕분에 다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리고 궁보계정과 장어 꼬리를 나눠 먹은….”
“짧게 해 짧게. 그리고 궁보계정이랑 장어 꼬리는 왜 나와?”
“은하성입니다.”
“바, 반갑네.”
그렇게 운을 떼고 나니.
분위기가 밝아 오는 게 느껴져서 나는 계속해 소개를 이었다.
“이쪽은 은하연 소저. 방금 소개한 친구의 누이이자, 강남상왕의 첫째이며, 천금매소라는 별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오. 휘주에 훗날 천하상방을 틀어쥘 봉황이 있다더니 소저였구려?”
“부끄럽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북권웅의 이름을 흠모해 왔습니다만, 이렇게 뵈니 언 공자의 호방함이 가주님에게서 왔음을 알겠습니다.”
“허허허. 강남의 금봉이라더니 남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솜씨가 상당하시구만. 아, 아까 보니 문과에서 수위를 차지하여 전체 차석을 했던데? 축하하오.”
“언 공자의 성취에 비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은하연은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진짜 온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닐세 나도 정무학관에서 수학을 했지만, 문과시험도 절대 쉬운 게 아님을 잘 알고 있네, 아 그리고 집을 나가서 용운이가 휘상의 신세를 진 듯하던데 고맙게 생각하네.”
“송구합니다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가주님. 오히려 제가 용운 공자님 덕에 목숨을 구했지요. 저야말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 소저도 그쯤 하시오. 뭔 놈의 상인이 빚진 이야기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한단 말이오?”
하여, 나는 급히 제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소릉이 녀석의 등을 밀었다.
“이쪽은 우소릉입니다. 이래 봬도 경공은 따를 자를 찾기 힘든 친구로, 제 경공도 이 친구가 손봐 줬습니다. 덕분에 제가 수석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언 형?! 아닙니다 가주님! 이거야말로 사실과 달라요. 제가 오히려 언 형의 덕을 보았지요.”
“그, 그렇구만. 반갑네. 우 소협.”
그리고 마지막은 정현이었다.
“이쪽은 정현입니다. 무당의 제자로 태영자께서 거두신 친굽니다.”
“정현입니다. 언 소협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음. 그 도호는 나도 전해 들은 바 있지.”
“…아, 그러셨군요.”
“그런 표정 하지 말게. 남들은 몰라도 나는 자네의 행동 또한 분명한 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언 동생들을 소개시키고 나자 분위기가 제법 훈훈해졌는데, 때를 맞추어 주인장이 여아홍을 가져다주었다.
“여기 언 수석께서 어찌 이렇게 잘나셨나 했더니, 하북권웅 언정웅 대협께서 아버님이셨군요. 이놈이 여아홍을 좀 구해왔으니 즐겨 주십시오.”
뽕-
“호오. 이거 주향이 제대로일세?”
“헤헤헤. 마음에 드신다면 가실 적에 쩌어기 벽면에 붙일 조그마한 수결 하나만 해주시면 됩니다. 잘 먹고 갑니다 하고요.”
그렇게 풀어진 분위기 속에 언 동생과 언혈족(?) 사이에 술잔이 오고 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며 사라진 은하연을 시작으로 언 동생들이 한 놈 두 놈 갈지자로 걸으며 사라지더니.
술자리엔 어느덧 언혈족 셋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무래도 언가의 피엔 말술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언정웅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셋이 모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싶구나.”
“…형님께서 언가장에서 쫓겨나실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용명이 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분위기가 다시금 급격히 숙연해졌다.
“…….”
“…….”
“…….”
하여 나도 그냥 취한 척 자리를 뜰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이때.
언정웅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음.
이거 대답 잘해야 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