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65화 (65/444)

제65화. 입학식 (4)

소설의 설정상 하북팽가와 진주언가의 관계야 각별하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가 개입되어 원작의 이야기가 조금 틀려 팽무혁이 이렇게 찾아온 것은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공손무결이 이렇게 찾아온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게 공손무결이 헌원검을 전수하는 대상은 따로 있었다.

‘이 객잔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시기도 입학식이 막 치러진 지금보다 뒤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학사 일정상으론 일학기 기말고사가 끝날 때 즈음 일어나는 사건이지.’

하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관해 미간을 좁히려는 이때.

팽무혁이 팔짱을 끼더니 상당히 고까운 듯 공손무결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보게 맹주. 검이 만병지왕이라는 말은 내 참아주기가 힘든데?”

“하하하하, 팽 선배. 오해가 있으십니다. 제 말은 이 공손 모의 헌원검이 오호단문도를 웃돈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강호인들의 인식과 무인 정신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처음에는 뭐 저런 걸로 그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공손무결이 사회생활에 능한 만큼 대충 일단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인정할 수 없네. 검객들이 뒤를 생각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 보통 무엇인가? 검집을 버리는 것이지? 하나 도는 대게 그 집이 없지. 그 말인즉. 도가 물러서지 않는다는 무인의 정신이 오롯이 담고 있는 병장기라는 것일세. 흠. 검이 만병지왕이라면 도는 만병지황쯤 되겠군.”

“하하하. 글쎄요. 물러서지 않는 것만이 무인의 정신이겠습니까? 눈앞에 있는 상대를 능히 벨 수 있음에도 검을 돌려 집에 넣는 것. 자신의 부족함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 그 또한 참된 무인의 정신이라 할 텐데요?”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본디 무림인들이란 어린아이 같은 구석들이 있어서, 이상한 부분에 역린들이 달린 모양이었다.

“허. 어느 정신이 옳은지 어디 길고 짧은 것을 겨루어 볼 텐가?”

“하하. 맹주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객잔 안에 든 만큼 구미가 당기기는 하는 제안입니다. 결과로 인해 팽 선배와 제 사이에 아무런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 전제가 깔린다면, 불초 후배가 오늘 도제께 패를 한번 청해 보겠습니다.”

하북 무림의 거두이자 천하 도객들의 정신적 지주인 양반과 천하 무림의 조율자이자 호인 중의 호인으로 분류되는 공손무결이, 검이 멋지냐 도가 멋지냐를 두고 각각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마에 핏줄이 세울 줄 누가 알았을까?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저 양반들 앞에 두고 도가 낫니 검이 낫니 하는 소리를 할 사람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아까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는 말을 밖으로 꺼냈으면 큰일 났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원작이든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든 일단 저 둘이 유치하게 싸우는 일은 말려야 했다.

‘어느 쪽이 패배하든 개판이 되고. 감정싸움이 생겨도 큰일이 난다.’

살려야 한다.

대선배들 앞에서 무림 말학이 하기에는 조금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으나, 나는 두 사람이 내게 자신의 비전을 가르쳐 주려 하는 호감을 믿고. 헛기침을 해 보였다.

“큼.”

그러자 불꽃을 튀기며 얽히던 팽무혁과 공손무결의 시선이 비로소 풀어졌고, 이때를 맞추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거, 체통들을 좀 지키십시오. 애들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애’가 아니고 ‘애들’?

그런 아버지의 말에 시선을 슬쩍 뒤로 돌려보니, 샤샥- 하고 사라지는 다섯 개의 머리통들이 보였다.

크기가 작은 순서로 줄지어 있었는데 차례대로 은하연, 우소릉, 언용명, 은하성, 정현인 듯했다.

‘저 자식들이 훈련을 제꼈으면 잠이라도 늘어져라 잘 것이지, 구경을 하고 있었네.’

안 되겠다.

진짜 내일부터는 뒤져라 굴려야지.

뭐, 저놈들은 제쳐두고.

그런 아버지의 말에 팽무혁과 공손무결이 나름대로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크흠! 애들이 보고 있으니까 더더욱 그런 거지 이 사람아! 자칫 잘못된 정보를 주워 섬길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야!”

“감사합니다 언 선배. 이 공손 모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추태를 보일 뻔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검객의 자질을 갖춘 기재를 만나 마음이 앞서다 보니 제가 잠시 이성을 조금 잃었던 모양입니다.”

한데, 사실 체통이 없어 보이는 것은 기실 아버지인 언정웅도 마찬가지였다.

내 자질을 보고 이성을 잃은 것 같다는 공손무결의 말에 벌써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셨다.

“백부님께서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한데, 맹주님께서는 갑자기 저한테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아,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내가 그런 말을 했으니 좀 이상하게 들렸겠군. 후배님께서는 명 각주. 명태성 각주를 기억하고 계시는가?”

명태성?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입관 시험에 응하기 전날 밤에 영입 제안을 해왔던 사람이었으니까.

“음. 직속 타격대의 일각주라고 소개하시던데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맹의 지부에 가 문의하라며 주셨던 신분패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 친구가 그랬다네. 자질이야 말할 것도 없고 품은 뜻의 크기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후기지수가 있는 것 같으니, 입학식에 가거든 한번 보아달라고.”

씰룩씰룩.

“…오.”

“그때만 해도 어지간히 맘에 드는 친구를 보았나 보다 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무학관에서 무림맹 장학생 선정을 두고 의논할 게 있다며 나를 찾아왔지.”

푸들푸들

“…아.”

“이번에 신입생이 된 후보생들이 하류박의 귀신들을 잡았는데, 당사자 중 조장 격인 친구가 당금수석이라 제도상 부조장 격인 정현이란 친구에게 장학 제도를 돌려야 한다더군. 그때 자네 이름을 두 번째로 보았네.”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버지의 입꼬리가 푸들거리셔서.

대화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거, 체통이니 어쩌니 하는 말씀을 하시려면 그 팔랑거리는 입꼬리 관리부터 하셔야죠 아버지….’

* * *

“세 번째로 본 것은 알다시피 입학식 장소였다네. 하북에서 그리 큰 사고를 치고도 아버님 되시는 여기 언 선배와 백부님 되는 팽 선배 앞에서 참으로 당당하더군. 모르긴 몰라도 그 뱃속에 품은 게 최소한 이무기는 되는 녀석이구나 했다네.”

공손무결의 음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식이 끝나고 광풍투개 선배가, 아. 요즘은 작풍월개라고 불리시나? 아무튼 노삼 선배께서 삼재검법으로 자신을 놀라게 한 녀석이 있다는 게 아닌가? 그 친구가 누구냐 물었더니 또 자네 이름이 나오더군. 학관의 다른 교수들도 호평이든 혹평이든 자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리고 아버지의 입꼬리도 계속해서 씰룩였다.

- …네 아비 되는 자는 누가 보면 입에 경련이 난 줄 알겠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웃으시려면 편하게 웃으시던지. 왜 저러시는 걸까요?’

뭐, 그건 그렇고.

뱃속에 품은 뜻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걸까?

나는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맹주님. 외람되지만 말씀 중에 약간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특히나 그 제가 품고 있는 뜻에 관한 것은….”

“오해는 무슨 캐묻지 않을 것이니 겸양 떨 것 없네. 우연도 세 번 겹치면 필연이라는데, 세 번 네 번, 아니지. 망나니 시절부터 치면 다섯 여섯, 조금 전에 팽 선배의 도를 막아내는 모습까지 여덟. 후기지수의 이름이 이렇게 내 뇌리에 들어온 적은 처음이니까.”

저렇게 나와버리면 할 말이 없다.

하여 턱이나 긁고 있는데, 아버지와 팽 선배를 한 번씩 거친 공손무결의 시선이 오롯이 나를 향하는가 싶더니.

“이만하면 답이 되었나? 자, 그래서 팽 선배와 나 어느 쪽인가?!”

그 입에서 이제 슬슬 결정을 내리라는 말이 나왔고.

“흠!”

“흐흐. 흐음, 흐.”

팽무혁과 아버지는 물론이고, 객잔 이 층에서 빼꼼 거리고 있는 머리통에 달린 눈들까지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눈치 없이 꿀꺽하고 침을 넘기는 녀석은 하성이 놈이겠지.

도제와 구패검의 구애.

어지간한 무림인도 꿈에서도 받아보지 못했을 제안이었다.

거기다 방금 전에 두 사람이 만병지왕을 놓고 으르렁거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가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명함도 못 내미는 난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답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사부님이 계시니까.’

각법, 퇴법, 장법 또는 암기술 같은 것이라면 구미가 당겼겠지만, 검법이나 도법은 의미가 없었다.

내겐 검마 위철진이 실시간으로 넘겨주고 있는 검결이 있었으니까.

‘작금의 무림인들 눈에는 삼재검법과 비슷해 보이는 모양이지만.’

여기서 문제는 이걸 어떻게 거절하느냐.

특히나 공손무결 쪽에는 여지를 좀 남겨둬야 했다.

‘내 개입으로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일단 수혜자를 나로 해두고 적절할 때 넘겨주든 말든 하면 되겠지.’

그래놓으면 훗날 그 과정에서 소개비도 챙길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과정까지 가기 전까지는 ‘준’ 무림맹주의 제자 자격으로 무림맹의 최심부에 비빌 언덕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내 속내를 적절히 숨기며 의사를 전달하려면 선택을 미루는 수뿐.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지금 답을 해야 합니까?”

* * *

답을 미루겠다는 내 말에 공손무결은 그럼 언제쯤 답이 나오겠냐 물었다.

그에 나는 원작의 시점을 생각하여 대략 여섯 달 정도가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한데 이 답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른들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하하. 직접 부딪혀 보겠다. 이건가? 이러니 내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하하. 좋아. 이것으로 아홉 번을 채웠네, 열 번째 소식은 자네가 직접 배움을 청하기를 기대해 보겠네. 자, 이건 내 이름이 새겨진 동패일세. 학관 안에서야 쓸모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받아뒀다가 필요할 때 쓰도록 하게.”

“흥. 그놈 그거 고집하고는. 이 백부는 이제 하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 일러둘 것이니, 그 전이라도 마음이 바뀌면 학관에서 재혁이 녀석하고 이야기를 하거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입꼬리를 씰룩이시더니.

끝내 웃지는 못하시고, 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자, 차도 한 잔씩 했고, 이제 장강의 앞 물결들은 슬슬 일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예비생도들은 수강 신청도 해야 할 테고 기숙사도 정해야 하고 한창 바쁠 때라는 거 다들 아시잖습니까?”

그 말로 공손무결과 팽재혁의 몸을 일으킨 아버지는 소매 춤에서 전낭을 끌러 내 손에 쥐여주셨다.

“…흠흠. 내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애쓰거라. 짬이 나거들랑 네 어미에게도 서신 한 통 하고.”

그에 나는 거절을 하고자 금나수의 수법을 응용하여 전낭을 아버지께 되돌려 드렸다.

“저 돈 많습니다.”

하나, 내 금나수법은 권사인 아버지 앞에선 그야말로 번데기 앞의 주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다시금 내 소매 속으로 들어온 전낭.

“!”

진정한 소매넣기에 감탄할 새도 없이, 아버지는 팽무혁과 공손무결을 떠밀어 바쁘게 객잔을 나갔고.

나는 나 원 참, 을 중얼거리다.

이 층에 있는 놈 중에 한 놈을 불러 내렸다.

“용명아. 나야 보는 눈이 있다지만 너는 아버님 모셔야지!”

“예! 형님 그럼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학관에서 뵙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부리나케 뛰어 내려온 언용명은 꾸벅 인사를 하고선 객잔을 나갔다.

그러고 나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내게 한마디 말을 전해 오셨다.

- 이래서 머리 검은 녀석은 거둘 필요가 없다더니. 지금 답을 해야 합니까? 파천검문의 제자가 파천검법을 두고 권법도 각법도 장법도 아닌 잡검을 익히겠다는 것이냐?! 에이이잉!!!

‘하. 우리 사부님께서는 또 이 제자를 못 믿으시는군요.’

- 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이놈아!

‘사부님. 제가 탐이 났으면 어떻게든 배움을 지금 바로 청했겠지요. 제자의 성정 모르십니까? 팽씨 아저씨랑 공손씨 아저씨를 곱게 돌려보내려면 그거 말고 방법이 있었습니까?’

- 그, 그런 것이더냐? 여윽시 내가 선택한 제자로다.

‘용운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

- 허험. 허흠. 거, 그러면 그렇다고 진즉에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것 아니냐?!

그렇게 사부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객잔의 이 층에 몸을 숨기고 있던 녀석들이 다 뛰어 내려와 한마디씩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 방금 그분이 정말 무림맹주님이신지요?”

“엥, 우 동생도 입학식 때 단상에서 수위부에서 주는 장학생 했었잖아? 그때 귀빈석에 앉아 계신 것 못 봤어?”

“그때는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기억이 안 나는걸요?”

“맹주님이 맞으셨어요. 그나저나 맹주님과 팽 가주님의 제안을 스스로 헤쳐나가시겠다고 거절하시다니, 역시 언 공자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대저 따로 사문이 없는 검수가 맹주님께 그런 제안을 받으면 당장에 수락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빈도가 또 하나를 배웁니다.”

그런 언 동생들에게 나는 공평하게 네 번의 손 튕김으로 딱밤들을 먹여주었다.

딱! 딱! 딱! 딱!

“아!”

“엌?!”

“앗!”

“어?!”

그에 멍청한 눈을 떠 보이는 언 동생들.

“이것들이 다들 빠져가지고 수련도 재끼지 않나. 이런 자리가 흔한 것도 아닌데, 인사들은 해둬야지. 특히나 은 소저는 상계를 틀어쥐어 보겠다는 사람이.”

딱밤으로 만족을 못 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꾸지람까지 돌려주었다.

“근래 들어 기강이 해이해진 것 같은데 다들 뒷마당으로 따라 나와.”

그렇게 언 동생들을 뒷마당으로 끌고 나와 무너진 기강을 바로 세우며 강제로 주기를 배출하게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슬슬 해가 하늘 중앙에 걸리려 하는 무렵.

객잔의 문이 열리더니, 황색 무복을 입은 세 분의 선배님들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개중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는 윤국관의 자치 부회장 곽우명일세. 입사 제안을 좀 하고자 하는데,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바야흐로 선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자, 어딜 들어가야 잘 들어갔다고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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