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미꾸라지와 메기 (1)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차를 식탁에 내려놓은 주인장은 객잔에 이른바 무림명숙이 찾아왔을 때면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에도 노삼을 향해 수결을 부탁했다.
노삼은 그 부탁에 응하면서 나를 향해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향이 은은한 게 좋기는 하누만, 근데 잘 먹고 갑니다라고 써달라고 그랬나?”
“예. 그렇게 써주시면 됩니다요!”
“흐음. 근데 차가 아무리 좋아 봤자 맹물과 사촌지간인데 물 한잔 받아 마신 걸로 잘 먹었다고 하기는 거지 자존심에 좀 그런데…?”
그런 노삼의 말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차셨다.
- 저. 저. 그지 새끼가 또 은근슬쩍 삐대는구나. 지금 밥까지 먹고 가겠다고 저렇게 몸을 비트는 것 아니더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시각도 딱 저녁때를 맞춰 왔네요.’
지난 입관 시험에서 한 손을 쓰지 않는다고 해놓고 양손을 쓰자마자 그 말을 번복한 전례가 있는 노삼이었다.
그로 인해 사부님 정도는 아니라도 내 마음속에도 거지의 말은 반만 믿자는 엷은 신념이 생긴 차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거지가 거지 짓을 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참 거지 같으시군요? 라고 말하면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또 밥때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되돌려 보내는 것은 이 시대의 예의가 아니었다.
‘노삼이라는 인물 자체도 원작에서도 두고두고 활약하는 인물이니까 마냥 쌀쌀맞게 대할 수는 없기도 하고.’
하여 나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주인장을 향해 입을 열었고.
“주인장. 오늘 저녁은 여기 계신 노삼 교수님과 진경룡 선배님의 몫까지 이인분을 추가해 줄 수 있겠나?”
“헤헤. 안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준비를 하겠습니다요!”
주인장은 사람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노삼이 목을 벅벅 긁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 집은 무엇을 잘하나?!”
“젊은 시절 쟁자수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던지라, 쩌어기 사천 요리부터 항주 요리까지 굵직한 것은 할 줄 압니다요. 오늘은 작풍월개 교수님께서 오신 만큼 거지닭을 해 올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요?”
거지닭은 일종의 통닭이다.
닭을 깔끔하게 손질한 뒤 통째로 연잎에 싸서 진흙을 발라 불구덩이 안에 대충 때려 넣어 구워내는 요리인데 쉽게 생각해서 무협지 속 굽네통닭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전생에 먹었던 구운 닭과는 다르다.
그도 그럴 게 이름부터가 거지닭이다.
이렇다 할 조리 도구나 조미료가 없던 거지새끼들이 훔친 닭을 대충 구워 먹던 것에서 출발한 요리인 것이다.
“거지닭이라. 거 좋지, 한데 내장을 뺄 때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잘못해서 속에 남으면 쓴맛이 남고, 그거 빼낸다고 모양이 뭉개지면 고르게 익지를 않아.”
“명심하겠습니다요!”
그런 요리에다가 저런 섬세한 부분을 요구한다고?
“다 구워지거들랑 목이랑 꼬랑지가 달려 있던 부분은 내 접시에 덜어주는 것 잊지 말고. 아, 곡차도 좀 부탁함세!”
거기다 뭐?
목이랑 꼬랑지 살을 내놓으라고?
나야 다리나 날개가 좋으니 취향이 겹치지는 않아 사실 상관이야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심보가 거지 같았다.
‘따지고 보면 닭에 달려 있는 부위 중 한 개밖에 없는 부위가 목과 꼬랑지 살인데….’
남이 빌린 객잔에 와서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그걸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니….
- 그지 새끼가 아주 염병을 하고 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그지 샊….”
“……?”
“?”
“방금 그지 새끼라고 하지 않았나…?”
음.
사부님과 의견을 교환하려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나는 재빨리 시치미를 떼고 나섰다.
“예? 저는 그지닭이라고 했는데요?”
“…아닌데, 분명히 그지 샊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뱉은 말의 어감 자체가 비슷하기도 했고.
또 이쪽에는 내가 팥으로 춘장을 담근대도 그럴 법하다고 입을 모을 든든한 언 동생들이 있었다.
“언 공자께서는 분명 거지닭이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저도요!”
“다 떠나서 언 소협은 웃어른께 함부로 그런 결례를 범하실 분이 아닙니다.”
세 명이서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데, 이쪽은 무려 네 명이었다.
나는 네 명의 증인을 등에 업고 당당하게 우기고 나섰다.
“제가 아무리 망나니라 이름이 높기로서니, 감히 노삼 교수님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냥 교수님께서 개방의 규칙을 따르시느라 귓밥을 팔 시기를 놓치셔서 잘못 들으신 것 아닐까요?”
“…그, 그런가? 확실히 판 지가 좀 오래되긴 했는데.”
노삼은 결국 쓰흡거리며,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뭐, 아무튼.
그렇게 은근슬쩍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저녁까지 함께하게 된 노삼과 진경룡을 두고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 말을 더해오셨다.
- 한데, 저 노삼이라는 그지 새끼가 이렇게 너를 찾아와도 되는 것이냐?!
‘애들 일에 교수쯤 되는 사람이 나서는 게 학칙에 저촉되지는 않느냐는 말씀이시죠?’
- 오냐.
‘상관없습니다.’
- 상관이 없다고?
‘예. 노삼 교수님은 총장님같이 중립 의무가 있으신 분이 아니시고, 또 청죽관의 사감 교수이시기도 하니 자신의 학관에 오라고 권하러 찾아오는 것이 학칙에 저촉되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 다만?
‘교수님들의 입장에선 모양이 빠지는 일이긴 하죠. 애초에 생도들이랑 노는 물이 다르신 분들이 교수님들이신데 신입생 하나 데려오자고 움직인다는 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다 제가 거절이라도 하면 교수가 나섰다가 거절당했다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겠고요?’
- 흐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구나? 허, 대단하다 해야 할지 미련하다 해야 할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위험을 감수하고 이 자리에 나오다니…? 입관 시험에서 결국 네 녀석의 꼼수에 구슬을 내준 경험이 있으니, 언용운이라는 녀석이 단지 교수가 왔다고 덜컥 입사를 결정하는 인사가 아님을 저 그지 새끼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음. 그렇겠죠?’
- 네 녀석 말마따나 그만큼 절박한 것이고. 또 너를 인정하는 것이겠지, 거 아무튼 뭔 소리를 하나 어디 들어나 보자꾸나.
맞다.
이젠 청죽관의 절박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해올지 들어봐야지.
호로록-
나는 차를 마셔 목을 축인 뒤.
청죽관의 사감 교수 노삼과 자치회장 진경룡을 차례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청죽관은 어떤 제안을 하실 겁니까?”
* * *
내 물음에 처음 답을 한 사람은 진경룡이었다.
“세간의 사람들이 정무학관의 생도들을 묶어서 이르기를 백도 무림의 용봉이라 표현하지. 하지만 나는 작금의 청죽관 생도들에겐 용이나 봉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네.”
“음. 이무기란 말씀이십니까?”
“이무기는 용이 되고자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일세. 우리 청죽관 생도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우리 생도들은… 그래. 좀 굵은 놈은 장어요 가는 놈은 미꾸라지일세.”
“흠. 진 선배님께서는 지금 절대로 청죽관에 오지 말라는 말씀을 돌려 말하고 계신 걸까요?”
“그럴 리가. 그냥 솔직하게 현 상황이 그렇다는 것일세.”
내 질문에 답을 한 진경룡은 자신의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내 고향은 저 남쪽에 있는 광동성의 광신현(廣信縣) 외곽에 있는 작은 마을일세. 그곳에는 논이 참 많은데, 논이 많이 있는 만큼 미꾸라지도 많다네. 그 미꾸라지를 잡아다 먹을 때면 어른들이 꼭 하시는 말씀이 메기를 한 마리 잡아 넣은 웅덩이가 있는 곳에 있던 놈들이 싱싱하다 하셨네.”
아.
메기와 미꾸라지.
메기가 사는 곳에 함께 사는 미꾸라지가 살아남고자 더 펄떡거려 힘이 좋아진다는 그 이야기.
‘이 세계관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근데 그거 그냥 미꾸라지만 다 잡아먹힌다던데…?
솔개의 부리가 새로 나고,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민다는 이야기와 궤를 같이하는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뭐, 지금은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진경룡의 말은 비유였으니까.
‘패배 의식에 깊이 빠져 있는 청죽관이지만, 나 같은 녀석이 하나 들어와 주면 분위기가 바뀔 거라는 이야기겠지.’
하여, 나는 굳이 토를 달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진경룡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청죽관의 생도들은 제대로 된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딛고 일어나 미꾸라지의 모습을 벗어던질 자질이 있는 친구들일세.”
“제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신다는 거죠?”
“그저 보는 게 아니라 확신하고 있네. 정급 무사라는 감점 요인을 가지고 수석 자리를 따낸 것도 그렇고, 그 제갈민 교수님이 자네를 인정한 것도 그렇고, 여기 이렇게 노삼 교수님이 기운을 되찾으신 것만 해도 그렇지.”
“허험. 험.”
“그리고 내가 그렇게 도울걸세, 청죽관이 지원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겠네. 자네 무리 전체를 받아 줄 것이고, 원한다면 자치회장 자리도 주고 싶네만 그건 이 학기 말에 있는 투표를 거쳐야 하기에 불가하니 자치 부회장 자리를 주겠네.”
자치 부회장?!
노삼을 데려올 것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원작을 감안해서 기강을 잡은 권한이 있는 선도부장이나 재정을 담당하는 총무부장 정도를 예상했는데. 자치 부회장 자리를 주겠다고?’
솔직히 말해서 청죽관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고 해봤자, 금력 지원이나 시설 등은 다른 기숙사를 능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자치 부회장 자리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었다.
자치회장이 최종 결정권자라면 자치 부회장은 말 그대로 실세였다.
수족이 될 자치회의 간부 구성부터 기숙사의 운영 전반의 방향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자, 차기 자치회장이 가장 유력한 사람이 맡는 자리였으니까.
“그럼 자네는 최초로 신입생 신분으로 자치 부회장이 되는 역사를 쓰게 되는 걸세!”
진경룡은 명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측면으로 저 제안을 보고 있었다.
‘사실 다른 기숙사에 들어가더라도 차근차근 자치 부회장 자리와 회장 자리를 따낼 자신은 있어.’
하지만 올해 말에 마교가 슬슬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고, 내년에는 발호라고 불러도 될 법한 굵은 사건들이 터져 나오며 내후년엔 말 그대로 천하가 개판이 되기 시작한다.
‘차장, 부장 정도의 지위로는 밀려드는 격류에 객체가 되어 휩쓸릴 수밖에 없겠지.’
근데 지금 바로 자치 부회장이 되어 기숙사 하나를 장악한다면?
‘배로 비유하면 청죽관은 당장에는 여기저기 물이 새는 문제 많은 배긴 하다. 하지만 내가 자치 부회장이라면 몰아치는 격류에서 내가 노를 쥘 수가 있다.’
그건 내가 개입하며 뒤틀린 원작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은하연에게 총무부의 실권을 맡기고. 정현에게 선도부를, 하성이 녀석이랑 소릉이 녀석은… 한 놈은 발이 빠르고 한 놈은 제법 사람 혹하게 떠벌릴 줄 아니 공보부를… 아 그 사람도 있었지?’
언 동생들을 적재적소에 박아넣고, 원작에 나왔던 청죽관 출신 인물들도 끌어들이면 당장의 문제들도 머지않아 고쳐질 것이었다.
‘괜찮은데?’
솔직히 괜찮았다.
하지만, 그전에 몇 가지 선행하여 약속받아야 할 조건이 있었다.
그리고 세상만사 밀고 당기기였다.
이 제안을 이 시점에 덥석 물면 삼류였다.
나는 짐짓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끝입니까? 최고의 대우를 해주신다고 하셨지만, 청죽관이 하는 최고 대우가 윤국관의 최저 대우보다 좋을 것 같진 않고, 애초에 윤국관도 최고의 대우를 해왔습니다.”
“…….”
“그리고. 자치 부회장이라는 것도 말은 좋게 들리지만. 이미 회장 선배님께서 부장들과 차장들을 모두 수배해 놓으신 상황이라면 저는 그저 허수아비가 될 뿐일 텐데요? 더욱이 신입생이 자치 부회장을 맡는다? 아무리 청죽관의 선배님들이 풀이 죽어 계시다고 하시더라도 그걸 참으실지 의문입니다.”
그런 내 말에.
일 초의 고민도 없이 진경룡의 입이 열렸다.
“오해일세. 부·차장들을 부탁할 만한 친구들을 수배해 놓긴 했지만, 단순한 명단만 있을 뿐 아직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네. 만일 자네가 청죽관에 와준다면, 그 명단을 자네에게 줄 것이고 자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자치회를 꾸릴 걸세. 그리고 자네가 하는 우려는 솔직히 말해 진짜로 일어날 수 있을까 싶긴 하네. 그런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은 남아 있다는 반증이이니까.”
“일어난다면요?”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네가 사람만 잡지 않는다는 선에서 여기 계신 노삼 교수님과 내가 전심전력으로 수습을 도울걸세.”
호.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우선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머리를 굴린 게 아니라는 반증이었고.
특히나 ‘사람만 잡지 않는다면 수습을 돕는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
‘누가 죽어 나가지만 않는다면, 기강 잡는 걸 허락하겠다는 거구만.’
하지만 여기서 제안을 덥석 물면 이건 또 이류였다.
그럴 게 단순히 이런 제안을 할 것이면 노삼이 따라올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생각 하에 나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고.
“잘 알겠습니다. 다른 기숙사의 제안과 비교해보고 연락을 드리면 되겠지요?”
일류의 밀당에 복장이 답답했는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대어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청죽관에 오거라. 하면 내 항룡장을 네게 전수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