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미꾸라지와 메기 (2)
항룡장을 전수하겠다는 노삼의 말에 주변에선 경악들이 터져 나왔다.
“하, 항룡장이면 항룡십팔장이라고 이름난 개방의 절기를 말하는 거지요?”
“…그, 그런 것 같은데요?”
“가, 간다고 하십쇼! 용운 형님!”
“교수님께서 함께 가시면 언 후배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 하시더니 항룡장을 전수해주실 생각을 하시고 계셨군요?!”
차례대로 우소릉, 은하연, 은하성, 진경룡이었는데, 노삼이 이런 제안을 할 것이라고는 진경룡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정현이 노삼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노 교수님의 말씀은. 그러니까 언 소협을 수제자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정현의 질문에 노삼이 귀를 후비며 답했다.
“나야 그러고 싶은데, 언가 놈이 싫다고 하지 싶구나.”
노삼의 말에 잠시 경악했던 언 동생들은 이내 곧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언 동생들이 왜 고개를 끄덕이는지 모르는 진경룡만 눈을 키웠다.
“노삼 교수님이 수제자가 되는 게 싫다고? 근데 다들 수긍하는 이 분위기는 또 뭐지? 나만 뭔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진경룡의 말에 노삼이 귀에서 꺼낸 새끼손가락을 후 불며 입을 열었다.
“후! 진가야. 뭘 그리 놀라고 그러느냐. 저 언가 놈이 무림맹주가 제자로 삼아주겠다는 것도 깐 놈인데, 늙은 거지의 제자 자리를 탐을 낼 리가 없지.”
“무, 무림맹주?! 구패검 공손무결 대협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말인가…? 에이 설마…. …어. 아닌데? 자네들 분위기를 보니 지, 진짜인가?”
노삼의 말에 진경룡의 눈은 말 그대로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어째선지 언 동생들이 뿌듯해했다.
- …저 녀석들은 왜 제 놈들이 뿌듯해하는 것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뭐, 아무튼.
정정할 것은 해야 했다.
나는 노삼이 귀지를 불 적에 황급히 위를 덮었던 찻잔에서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와전이 될까 두려운 말씀을 하시네요. 노삼 교수님의 말씀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맹주님의 제안을 까지는 않았습니다.”
“안 깠으면 공손가 놈이 여기 붙어 있었겠지. 네놈이 무림맹으로 갔던지. 네놈만 여기 있는데 깐 게 아니라고?”
“제자로 삼겠다는 그런 말씀도 아니었고, 정확히는 헌원검을 배워 볼 생각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든다면 찾아뵙겠다고 결정을 미뤘을 뿐이고요.”
“그게 그거지 이놈아.”
그런 내 말에 노삼은 콧방귀를 뀌었고, 언 동생들은 또다시 제 놈들이 뿌듯해했으며, 진경룡은 ‘이게 다 무슨 소린지.’ 소리만 끈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가운데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한데, 노삼 교수님께서 그런 전후 사정을 아시고 제게 항룡장을 전수해주시겠다는 제안을 하셨다는 것은 제가 제자가 되지 않아도 장법을 전수해주시겠다는 말로 이해가 되는데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습니까?”
“그렇다.”
그런 내 질문에 노삼의 입에서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그에 좌중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
“용운 형님! 들어가겠다고 하십쇼!”
“……!”
“어, 언 공자? 이, 이건 제가 봐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교, 교수님?! 배사지례도 하지 않고 항룡십팔장을 전수해주신다고요?!”
말미에 입을 연 진경룡을 향해 노삼이 입을 열었다.
“왜? 욕심이 나느냐 진가야? 너도 가르쳐 주고 싶다만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질이나 심법의 기질이 비슷해야 가능한 것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 생각은 결단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보법을 다듬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끌끌. 하기야 네 녀석의 심성이 뒤틀린 놈이었으면 내 보법도 다듬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네 녀석의 월도(越刀)법도 열심히 수련하면 어디 가서 꿀리는 무공은 아니니, 앞으로도 함부로 눈을 돌리지는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아, 근데 탐이 나는 게 아니면 어찌 그리 놀라는 것이냐? 네 놈에게 알려준 보법도 따지고 보면 배사지례 없이 가르쳐 줬거늘.”
“아니 그거랑 같습니까? 항룡십팔장은 개방의 진방절기가 아닙니까?!”
뭐, 진경룡의 의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진방절기(鎭幇絶技)란 개방을 이어나갈 후계에게 물려주는 무공인데 세간에는 타구봉법(打狗棒法)과 항룡십팔장 혹은 항룡장이라 불리는 장법이 그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아. 그 말이었구나. 사람들이 타구봉법과 항룡장이 개방의 진방절기라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알고들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개방의 신물인 타구봉을 사용하는 무공이자 혹여 타구봉을 빼앗겼을 시,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타구봉법만이 진방절기다. 항룡장은 그저 개방을 안팎으로 수호하는 호법절기이니라.”
노삼의 말이 정확했다.
하기야 현직 거지인데 정확해야지.
타구봉법을 전수받지 못한 방주는 없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항룡장을 전수받지 못한 방주는 이 소설의 설정상 몇쯤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하여, 심성이 곧고 협객의 풍모가 있으며 자질과 품은 심법의 성질이 일치하면 외부인에게 전수하는 게 방규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거니와 실제로 가르쳐준 선례도 더러 있느니라. 천하가 안전하면 개방은 자연히 안전해지는 것이니. 물론 제자가 아니면 열여덟 초식을 모두 다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 * *
노삼의 음성에 사부님께서 혀를 쯧쯧 차셨다.
- 어쩐지 항룡십팔장이 아니라 항룡장을 가르쳐 주겠다 하더니만. 저런 꼼수를 부려 놓았구나. 가르쳐줄 것이면 시원하게 다 가르쳐줄 일이지 몇 수는 꿍쳐 놓을 구멍을 파놓았도다. 하여간에 그지 새끼들은 항상 저렇게 구질구질하단 말이지.
그런 사부님을 향해 나는 질문을 던졌다.
‘음? 가만히 듣고 있으니 배워도 좋다는 투이십니다 사부님?’
-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느냐? 나를 무슨 쫌생이로 보는구나.
‘맞지 않습니까?’
- ……?
‘?’
- ???
‘흠흠. 뭐, 제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검술도 아니니 그렇긴 하네요?’
- 내 인정할 것은 인정하느니라. 앞으로 네가 학관 생활을 해 나갈 것을 생각하면, 거지들의 장법이 나름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 보십니까?’
- 오냐. 사실 검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딱히 사용할 일이 잘 없기는 하고 또 장법이라는 게 네 녀석이 파천신공을 대성한 뒤라면. 그저 내력을 장심에 담아 쏘아내기만 해도 항룡장인지 미꾸라지장인지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
‘하나?’
- 학관 생활을 하다 보면 검을 내려놓아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고, 참된 교육을 내려야 할 자들도 더러 있을 것 아니냐. 저번에 그 왜 보준이 같은 놈처럼.
‘황보가 성입니다. 조심 좀 해주십시오.’
- …제 놈은 골백번을 그리 불러 놓고는? 아무튼 파천검문의 무학에는 어중간한 것이 잘 없느니라, 다 때려 죽여도 상관없다는 전제가 아니라면 거지들의 장법을 배워두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내 심기 걱정하지 말고, 네 녀석 생각에 필요하다 싶으면 취하거라.
그때였다.
그렇게 얼결에 사부님의 의사를 확인한 이때.
노삼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청죽관에 들어올 것이냐 말 것이냐?”
노삼이 ‘자신의 뜻에 따르겠느냐.’라고 물었으면 ‘그러겠다.’ 하고 답했겠지만.
질문이 청죽관에 들어올 것이냐면 아직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두 가지 정도 남아 있었다.
“앞서 말한 이야기들에 추가로 두 가지 약속을 해주시면 청죽관에 입사하겠습니다.”
“이놈아. 사흘 굶은 거지도 그렇게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약속을 더해 달라고?! 해주고 싶어도 가진 게 없다 이놈아!”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충분히 교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킁. 어디 들어나 보자꾸나.”
첫 번째는 은하연이 검후랑 만날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은하연은 윤국관에 입사해서 우연히 검후의 눈에 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원작의 흐름이 묘하게 뒤틀린 이상 그렇게 우연에 기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원작과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노삼이라는 패를 이용하면 은하연이 검후와 만난다는 사건 자체는 쉽고 확실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첫째는 여기 있는 은 소저. 은하연 생도를 검후께 한번 보여 주십시오.”
그런 내 말에 은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언 공자?”
그리고 노삼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더니, 네 동무를 검후의 제자로 넣어달라는 것이냐? 검후의 마음이 내 소관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제안 자체가 과하지 않느냐? 이래저래 주변에서 수석이라 받들어 주고 나도 이리 와 청하니 교수들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냐?”
“제자로 넣어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부탁은 그저 단순히 은 소저를 검후께 보여만 달라는 거였습니다.”
“단순히 소개만 시켜달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음?! 설마…?”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검후께서 사용하시는 보타문의 독문무공은 체질이 좀 독특해야 배울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극음이어도 안 되고 평범해서도 안 되고. 흐르는 음기의 양이 보통 사람보다 딱 두 배 정도만 많아야 하지. 저 아이가 그렇단 말이냐?”
원작에 그리 나왔으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잘 아는 티를 내선 안 된다.
“견문이 좁은 무림 말학인 제가 어찌 그렇다 아니다 단언하겠습니까. 일전에 은 소저의 맥을 짚어본 일이 있는데, 손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많이 차고, 남들보다 맥이 느리게 뛰었습니다. 한데 이렇다 할 병치레는 한 적이 없다더군요. 하여 한번 봐달라 청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확신은 없다는 투로 말을 했다.
그러자 노삼이 꼬질한 손바닥을 펴 보이며 은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은가는 손목을 이리 내 보거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은하연의 맥을 가늠해 본 노삼은 크흠 하고 숨을 삼키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다. 이 아이는 검후에게 데려다 보이도록 하마. 그래서 남은 한 가지 부탁은 무엇이냐?”
“항룡장부터 가르쳐 주십시오.”
“……?”
“항룡장부터 배우고 그 다음에 청죽관의 입사 신청서를 작성할 것입니다.”
그지 새끼를 어떻게 믿어?!
먹고 튀는 게 업인 양반들인데.
아무튼 그런 내 말에 노삼은 얼척이 없다는 듯 입을 잠시간 벌리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옆에 앉은 진경룡을 응시했다.
“…진가야.”
“예. 교수님.”
“지금 내가 상황이 이해가 안 되서 그러는데, 지금 이 언용운이라는 놈이 지금 내가 항룡장을 가르쳐 주겠다고 꼬신 다음 입사를 결정하고 나면 얼굴을 바꿀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외, 외람되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진경룡이 확인까지 해주자, 노삼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역정을 내려 했다.
“이놈 이거 속고만 살았나?! 이놈 언가야! 내가 그래도 명색이 교수인데 신입생한테 한 입으로 두말하는 그런 짓을 하겠느냐?!”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속고만 살지는 않았는데, 교수님께는 확실히 한 번 속았지요. 입관 시험 때 한 손은 쓰지 않겠다 하셨으면서 양손을 쓰시고도 인정을 해주지 않으시고 이상한 소리를 하시면서 더 싸우자고 억지를 부리셨잖습니까?”
“…아니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느니라.”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지요. 여기서는 그러셨습니까. 안 그러셨습니까. 예, 아니오로만 답해주십시오.”
“…크흠. 그렇게 말하면 내가 그러기는 했지.”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지자 좌중에 모인 사람들의 싸늘한 눈빛이 노삼을 향했다.
“교, 교수님? 언용운 이 친구의 말이 사실입니까?”
“…저는 그때 환자인 척을 하느라 잘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진경룡과 우소릉은 확인을 구했고.
정현은 고개를 주억이며 확인을 해주었다.
“확실히 그러시기는 하셨습니다.”
“허, 그럼 그러고 나서 그 탈락자 놈들의 습격까지 받은 거네요? 그걸 또 뚫어내셨고요? 용운 형님 당신은 도대체?!”
은하성은 호들갑을 떨었으며, 은하연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맥을 가늠하느라 노삼에게 내준 손목을 빼냈다.
객잔의 주인장은 노삼의 수결을 벽면에 붙이려다가 쓰흡- 소리를 내며 붙일지 말지를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등에 업고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항룡장부터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