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미꾸라지와 메기 (3)
단강제일객잔의 주인장의 요리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요리가 입에 맞으셨습니까요?”
거지 주제에 입맛이 제법 까다로운 노삼의 마음속에 재방문 의사가 생겼을 정도.
“…나쁘지 않았네. 솜씨가 제법이더구먼.”
하나 주인장이 구워낸 거지닭의 맛과는 별개로 노삼의 입에는 씁쓰름한 패배의 맛이 감돌고 있었다.
노삼의 입에 쓴맛을 감돌게 한 대상은 다름 아닌 언용운이었다.
‘씁. 이거 어째 내가 진 기분인데?’
하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째선지 뜯기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하지만 항룡장은 애초에 가르쳐 놓겠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이었고.
‘쓴맛으로 먹는 음식도 있는 법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언용운 같은 녀석이야말로 청죽관에 딱 필요한 인재였다.
‘이놈은 물건이다.’
진가 녀석이 미꾸라지니 메기니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망나니 소리가 괜히 붙은 게 아닌지 용이라 부르기엔 당장에는 모난 구석이 많긴 하지만, 이놈은 언젠가 반드시 용이 되어 천하를 오시할 놈이다.’
노삼의 생각에 언용운은 용의 자리를 맡아놓은 이무기였다.
‘승천하고자 몸을 비트는 이무기가 있는 못에서는 감히 잡것들이 기를 펴지 못하지.’
그렇게 물이 맑아지고 산세가 푸르러지니, 이무기가 용이 되는 날엔 이따금 함께 승천하는 다른 용이 몇 놈쯤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몇 놈쯤은 승천하는 용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영물로 거듭나기는 하는 것이다.
‘이놈을 청죽관에 풀어놓으면 비슷한 모습이 나오겠지.’
명색이 교수인 자신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찜을 쪄 먹힐 것 같은 녀석이다.
어지간히 심지가 곧은 녀석이 아니라면 언용운이라는 녀석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한데 그 그림이 나쁘지가 않았다.
‘나쁜게 아니라 좋지!’
합격을 했음에도 수석을 따내고자 탈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높은 곳을 응시하고.
가문과 출신을 막론하고 두루 벗을 사귀며.
식당과 청소 일을 하는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깍듯하고.
상대가 누구든 아닌 것은 아니다 입을 연다.
소협, 젊은 후기지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젊은 협객이었다.
‘내가, 아니 청죽관이 길러내고 싶었던 인재의 모습이 아니던가?’
아, 물론 모난 구석을 조금 다듬어 줄 필요는 있어 보였다.
저 성정 그대로 용이 됐다간 영락없는 광룡(狂龍)일 테니까.
복안도 있었다.
‘항룡장을 전수할 때 적용하는 선례들을 적절히 써먹으면 되겠지?’
사실 항룡장을 완전한 타인에게 전수할 땐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그중에 첫째는 비인부전(非人不傳), 그러니까 됨됨이가 바르지 않은 자에게는 전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내심 저울질이 끝났다.
둘째는 열여덟 장법을 모두 알려주지는 않고, 개중에 열다섯 장법만 알려준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하루 동안만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노삼은 바로 그 세 번째 제약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언가 놈의 오성이 뛰어나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제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견식이 부족한 후기지수다.
무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무림 말학인 이상, 배우는 기간을 하루로 제한하면 네 다섯 개의 장법만 배워가도 많이 배워가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항룡장의 손맛을 보고 나면?’
분명 감질이 나서 결국 노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더 가르쳐 달라 청을 해 올 것이다.
‘그럼 그때 가서 개방의 제자로 삼으면 되겠지? 자식이 은근히 깔끔을 떨던데, 저놈의 잘생긴 얼굴에 검댕을 칠할 날이 벌써 기대가 되는구만! 흐흐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자연스레 노삼의 입에서 흐흐-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런 노삼의 웃음에 언용운에게서 바로 반응이 왔다.
“……?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크흠! 내 입으로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느냐?!”
“누가 마음대로 웃는다고 뭐라 하겠습니까. 교수님이 저를 보고 웃으시니까 여쭌 거죠.”
“등이 따시고 배도 부르니 즐거운 생각이 좀 들었느니라!”
“즐거운 생각은 찬찬히 하시고, 뒷마당으로 가셔서 항룡장을 가르쳐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교수님? 제가 청죽관에 입사한다 치면 개인적인 입사 준비 외에도 자치회 구성이나 이런 준비도 해야 할 텐데, 한시가 급한 것 같습니다.”
그런 언용운의 웃음에 노삼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냐. 나도 기다리던 바였느니라, 어디 소화 좀 시켜 보자꾸나.”
하나, 그 함박웃음은 노삼의 얼굴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자, 그럼 제일초인 항룡유회(亢龍有悔)를 알려주마. 우선은 장력을 내지를 손으로 반원을 그리는데, 이때 하체의 회전과 허리의 회전이 그대로 반원에 실려야 한다. 하늘을 유영하는 용 같은 움직임이 생명이다.”
“이렇게요?”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자세가 틀렸습니까?”
“저, 정확해서 그런다. 혹 나 말고 다른 거지 새끼가 항룡장을 알려주기라도 했느냐?”
“아뇨.”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자세를 잘 잡지…? 천장호 그 당나귀 같은 놈도 처음부터 잘 따라 하지는 못했는데?”
“아, 입관 시험 칠 적에 직접 보여주시기는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안력이랑 기억력이 좀 좋습니다.”
순간적으로 노삼의 뇌리에 섬찟함이 스쳤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노삼은 아닐 거야를 되뇌며 지도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항룡유회는 본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높은 하늘에 오른 용이 더 오를 곳이 없어 내려가야 함을 깨달아 후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
“뭐냐. 그 오는?”
“주역까지 꿰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보이는 거랑 다르시네요.”
“…전대 방주님이 알려주신 대로 그냥 그 말만 통째로 외운 것이다.”
“…아하 역시.”
“뭐냐! 그 …아하 역시는?! 아무튼! 항룡유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회다. 알려준 동작대로 전력을 다해 장력을 내지르되 장력이 장심에서 뿜어져 나가는 찰나의 순간. 그 힘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면서 완성되는 장법이다.”
그런 노삼의 말에 언용운이 잠시 턱을 싸쥐더니 골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표정이 조금씩 변하는 것으로 봐선 꼭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도 않았고, 전음 같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니, 노삼으로서는 언용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어려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에, 노삼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노삼이 내신 안도의 숨이 다 흩어지기도 전에 언용운의 입이 열렸다.
“음.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응? 알 것 같다고?”
“예. 제가 익힌 심법과 원리가 은근 비슷하네요. 일단 보여 보겠습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용운이 호흡을 고르더니 그림과 같은 동작으로 항룡유회의 초식을 펼쳤다.
쌔애애애액!!!
그러자 먹에서 태어난 듯한 시커먼 흑룡(黑龍)을 닮은 듯한 기운이 언용운의 손에서부터 장력의 형태로 뿜어져 나왔고.
꽈르릉!!!
그 광경에 노삼의 턱이 빠져라 벌어지는 동안, 우레처럼 허공을 찢으며 쏘아져 나간 흑룡은.
꽝!!!!
근처에 심어져 있던 나무 하나를 개박살을 냈다.
“아, 통나무 같은 걸 가져다 놓고 할 걸 그랬네, 주인장한테 나무값 물어 줘야겠는데요?”
갑자기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도 길어 보이기 시작한 노삼의 등허리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또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
외부인에게 허락되는 항룡십팔장의 초식은 최대 열다섯 개.
얼마나 기억에 남길 수 있을까 고민이었는데, 생각 외로 항룡장의 발현 원리가 파천신공의 기본 원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거기다 사부님의 도움까지 있었기에, 나는 다행히 열다섯 개의 초식 모두를 기억에 새기는 것에 성공했고.
“…무슨 물 빨아들이는 솜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개중 여섯 장법은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기억에 새긴 것들은 차차 파천신공의 수준이 높아져 감에 따라 차차 저절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에 나는 첫날과 다르게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노삼 교수에게 저녁을 권할 수 있었다.
“꼬박 하루가 딱 지났네요. 어떻게, 오늘도 식사 같이하시겠습니까?”
“…입맛이 없구나. 나는 이 길로 교수동에 가서 쉴 것이니, 니들끼리 처먹고 그 진가 놈과 이야기해서 청죽관 입사 절차나 마무리 지어놓거라.”
“예. 뭐,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노삼 교수님은 하루를 꼬박 채워 지도하는 게 피로하셨던 모양인지, 식사 제안을 물리고 터덜터덜 돌아가셨다.
- 그지 새끼가 입맛이 없다고 공짜 밥을 다 마다하는구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그러게요?’
뭐, 아무튼.
그렇게 내가 입사할 기숙사가 청죽관으로 정해졌고.
“고맙네! 언 후배! 아니지 이제 우리 자치 부회장이시니 부회장님이라고 해야지?! 잘 부탁하네! 함께 청죽관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보세!!”
바늘을 따라오겠다는 실들도 앞다투어 입사 지원서를 작성했다.
“저는 처음부터 운매관과 더불어 청죽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현이 니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예. 사해형제(四海兄弟). 사람을 사귀는 예만 갖추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형제라는, 공자님의 말씀 중 가장 도기가 잘 담긴 말씀을 정신으로 삼은 기숙사 아닙니까? 백도 무림이 흑도나 마도에 도전을 받았을 때, 운매관과 더불어 청죽관의 출신인들이 가장 많이 순국하기도 했고요.”
“…저거 또 고리타분한 소리 한다. 그 시간에 거 입사 지원서나 빨리 써. 회장님도 옆방에 계시겠다, 수리만 되면 오늘 중으로 바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고, 고리타분. 크흠. 예. 빨리 쓰겠습니다.”
“근데 언 형.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해서 말인데, 제가 다른 기숙사에서는 안 받아줄 것 같아서 청죽관으로 정하신 것은 아니시죠?”
“…우 동생. 솔직히 그쯤 되면 소심한 게 아니라 역으로 자의식 과잉이야. 용운 형님께서 우리보고 맨날 뇌를 쓰라고 하시는데, 내 생각엔 오히려 비우는 게 맞을 때도 있어. 지금이 바로 그때야.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거기다 이름 석 자나 똑바로 쓰자고.”
“예. 은형.”
그때였다.
그렇게 언 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은하연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은 소저?”
“예?”
“생각해보니 내가 은 소저의 의사는 묻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 같소.”
“네?”
“다른 놈들이 바늘 가는 데 실 간다 어쩐다는 소리를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저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잖소? 아니지, 윤국관에게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원한다면 윤국관을 택해도 되는데?”
“…제게 일부러 이러시는 건가요 언 공자?”
“일부러? 말 그대로 의사 확인을 안 한 것 같아서 묻는 것이오만? 아, 솔직한 생각을 말해주면 되오. 검후께 소개해 드리기로 한 일이나 그런 것은 소저가 윤국관으로 가더라도 그대로 이행될 것이오.”
“…저도 …이에요.”
“……? 그렇게 웅얼거리면 내가 아무리 청력이 좋아도 알아들을 수가 없소.”
“저도 실이라고요!!”
그렇게 언 동생들까지 입사 지원을 마친 뒤.
딱 하루를 더 단강제일객잔에서 묵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꼬박 하루를 항룡장을 배우는 데 할애했던지라 내가 너무 피곤했다.
그렇게 찾아온 이튿날 아침.
“외박이나 외출 나오시면 종종 들려주십시오! 성심을 다해 뫼시겠습니다!”
우리는 제법 다사다난한 날들을 보낸 단강제일객잔을 떠나 청죽관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각자의 짐을 싸 들고 정무학관으로 향했다.
“어. 형님?! 이거 문이 완전히 잠겨 있는데요?”
한데, 입사 첫날부터 청죽관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잘못 온 거 아닐까요 우리?”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보세요, 우 소협. 경축 어서 오세요. 당금수석 언용운의 입사를 환영합니다. 제대로 찾아온 것 맞습니다.”
“어, 그렇네요 정현도장.”
“근데 하성아. 거기 문고리에 매인 거 서신 아니니?”
“아. 맞는 거 같은데요 누님?”
“이리 가져와서 언 공자께 보여봐.”
문고리에 매인 서신을 펼쳐 보니, 면신례(免新禮)를 치를 것이니 동윤관으로 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면신례는 이 세계관의 신입 환영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거참. 입사 첫날 사람 뚜껑을 열어 버리시네.’
해놓은 짓거리를 보아하니 예쁘게 다과를 차려놓고 조촐하게 자기소개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윤관으로 오라는 것도 그렇고.’
동윤관은 청죽관의 설립자인 남개(南丐) 동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체육관으로 무당파의 해검지처럼 무기 소지가 금지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우리 다섯은 넷은 검수요 하나는 문과생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검수에게서 검을 빼앗겠다는 노골적인 주장이었다,
“은 소저는 지금 즉시 이 서신 들고 교수동에 가서 노삼 교수님께 보이시오.”
“예!”
“나머지는 동윤관으로 간다.”
선배님들께서 아주 귀여운 짓거리들을 하시는데, 후배 된 도리로서 어제 익혀 따끈따끈한 개방산 흑염룡 맛 좀 보여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