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당가의 친구 (3)
앉아도 되냐는 내 물음에 당옥기가 검지로 제 얼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말하는 거?”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사대 기숙사의 일학년생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사람이야 많았다.
하지만 당옥기의 주변은 마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처럼 띄어져 있어서, 앞이고 옆이고 빈자리였다.
슬슬 모이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솔솔 퍼지는 회과육의 냄새에 끌린 것인지 그 속을 알 길이야 없지만.
아무튼 당옥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읏차.”
그에 나는 사천식 회과육을 당옥기와 나 사이에 내려놓은 뒤 의자 하나를 빼 앉았다.
그러는 사이 당옥기의 시선은 내가 주사 고고에게 특별히 부탁해 특히 매콤하게 볶아낸 사천식 돼지고기볶음인 회과육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짭.”
자기도 모르게 침까지 꼴깍 삼킨 주제에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시치미를 뚝 떼며 짐짓 새초롬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근데 왜 반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나와 당옥기는 말을 놓기로 한 사이가 아니었지?
원작의 당옥기를 떠올리면서 오다가 운혁이 자식이 앞을 막아서길래 치운다고 열을 좀 냈더니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당옥기는 존댓말을 비롯한 예법이라면 학을 떼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따지고 보면 말을 놓기로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제갈설지가 객잔에 있던 우리에게 납득이 가는 승부를 하자고 찾아왔을 때.’
격양된 상황에서 당옥기가 내게 먼저 반말을 했었다. 그때는 내가 그 점을 짚자 당황한 그녀가 너도 반말하라는 투의 말을 했었다.
‘제갈설지와 정현의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벌어진 작은 사건 속에서 잘잘못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당시의 내가 일부러 선을 그었을 뿐.’
그랬기에 할 말이 있었다.
“객잔에서 네가 먼저 반말하자고 했잖아?”
그런 내 말에.
그러고 보니 그랬음을 깨달은 당옥기의 표정에 일순 금이 갔다.
“그랬… 나…?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같기도가 아니라 확실히 그랬다.”
“…….”
하지만 금세 그 표정을 수습하고 팔짱을 끼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조금 전에 요 앞에서 운혁 선배랑 나누는 이야기가 들리길래 좀 들었는데 향란관의 친구에게 볼일이 있다며? 우리 사이가 친구라 부를 정도는 아닌 거 같지만 내가 먼저 말을 놓자고 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일인데?”
볼일이야 당연히 천독단이지.
‘겸사겸사 앞으로 찾아올 환란을 대비하고자 친분도 쌓아 두는 게 목적이고.’
하지만 바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비유하자면 당옥기는 일종의 상처 입은 맹수였다.
처음부터 천독단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했다간 바로 발톱을 세우고 덤비거나 시커먼 동굴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여, 나는 일단 회과육을 가리키며 일단 말을 돌렸다.
“우리 청죽관을 상징하는 술은 죽엽청준데 네가 이 녀석의 맛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치고, 이게 달달해서 어지간한 안줏거리는 맛을 죽여 버리거든?”
“그런데?”
“그래서 아는 주사님께 맵싹하게 볶은 사천식 회과육을 준비해 달라고 했지.”
“그래서?”
짐짓 툴툴거리면서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당옥기.
그런 당옥기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자, 지금부터 기술 들어갑니다.’
* * *
“너도 알겠지만 사천 요리는 혀가 얼얼한 구석이 있어서 맛을 아는 사람만 즐기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나 하다가, 사천 하니까 당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기술은 바로 사천당가 올려치기.
- 엥? 사천당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청성파(靑城派)나 아미파(峨嵋派)가 아니고?! 청성이야 그렇다 쳐도 정무학관의 총장부터가 아미파의 비구니더만?!
사부님의 말이 맞았다.
당가의 이름 앞에 사천이 붙기에 무협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사천이란 지역에선 당가가 최고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사천에는 유력한 문파가 많았다.
‘구파일방의 축들인 아미파와 청성파의 본거지인 아미산과 청성산이 있고.’
무림학관의 검술천재 설정상으론 제갈세가가 사천의 성도와 호북의 융중에 본가와 분가를 두고 있어서 제갈세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곳을 제치고 사천당가를 추켜세워 주었다.
그것도 무식하게 사천당가라 일컫지 않고 섬세하게 ‘당문’이라는 표현까지 해가며.
이건 이 세계관의 사천당가가 인이라면 기분이 은근히 좋아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씰룩씰룩.
그런 내 말에 당옥기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비실거렸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남은 말을 뱉었다.
“뭐, 내가 아는 당문 사람은 너밖에 없었고.”
하지만 당옥기는 비실거리는 제 입꼬리와는 별개로 톡 쏘는 듯한 말을 뱉어냈다.
“흥. 거짓말 치시네. 분명히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은데?”
소가 뒷걸음을 치다 개구리를 잡은 격으로 진실을 꿰뚫은 당옥기였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고 입을 열었다.
“따로 할 이야기가 더 있긴 한데 일단 먹자. 이거 식으면 맛없는 거 잘 알지? 연회가 한창이라 다시 덥히기도 힘들다?”
“…짭. 확실히 사천 음식은 식으면 맛이 덜해지긴 한데.”
그런 내 말에 당옥기는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주억였으나, 침만 꼴깍 넘길 뿐.
막상 젓가락을 들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쯧하고 차셨다.
- 저 당가의 아해가 저러는 게 지금 음식에 뭐를 탔을까 봐 저러는 것이지?
‘음. 그런 것 같은데요?’
- 저런 고얀 것이 있나! 챙겨 줘도 난리로구나! 에이이잉! 먹지 마 임마!!!
사부님은 역정을 내셨지만, 세계관 속 당가인들의 성정이 대개 저렇게 조심성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였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해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약간의 동정심도 들었다.
‘당가타, 그러니까 사천당가의 본가에서 배운 대로 조심하는 것일 뿐인데, 다른 생도들에게는 미움받기 딱 좋은 행동이지.’
사실 이 경우엔 의심해 볼 정황도 충분하긴 했다.
회과육 자체가 연회 음식을 덜어온 것이 아니라 내가 가져온 특별한 음식이었으니까.
하여 나는 당옥기를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를 했다고 하여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마음의 빚은 확실하게 달아 둬야지.’
그러기 위해 나는 먼저 젓가락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쯧. 저번에 지들이 남의 객잔에 쳐들어왔을 때는 사람을 무슨 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세우면서 독침을 있는 대로 보여주더니, 오늘은 기껏 고향 음식을 준비해서 나눠 먹자고 왔더니만 독 든 거 아니냐고 눈치를 주네, 네 말마따나 당옥기 너와 나는 확실히 친구 사이는 아니긴 한가 보다.”
그런 내 말에 순식간에 익은 홍시처럼 얼굴이 벌게지는 당옥기.
마음의 빚은 확실히 달아진 것 같았다.
나는 젓가락을 뻗어 회과육을 집어먹었다.
“됐냐? 아, 술에도 탔을 수도 있지 참?”
이어서 죽엽청주도 한잔 따라 마셨다.
뭐, 당옥기의 마음에 빚을 달아놓는 것은 여기까지.
나는 회과육이 든 접시를 당옥기 쪽으로 슬쩍 밀며 말했다.
“후회하지 말고 먹어보지? 이거 맛이 일품인데? 뭐, 싫으면 말고. 혼자 다 먹을 수 있으면 나야 좋지.”
그리고 의식적으로 당옥기를 신경에서 끈 뒤 묵묵히 회과육을 내 입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찹.”
원래 상처 입은 짐승들의 행동들이 그렇다.
구해주려고 간식이나 먹이를 내밀어도 꼼짝을 않다가, 한눈을 팔아줘야 그제야 기어 나오는 것이다.
“워, 매워. 이거지. 이게 바로 사천의 맛이지.”
당옥기도 비슷했다.
내가 먼저 음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인 뒤.
저에게서 신경을 끄고 싫으면 마라는 듯이 내 배를 채우자.
그제야 그녀의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짭.”
한입.
“짭짭.”
두 입.
그렇게 당옥기의 젓가락이 움직인 지 얼마나 되었을까?
“흐힝.”
입에서 퍼지는 사천의 맛에 설움이 복받친 것인지, 당옥기의 눈가에 핑하고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 제자야. 쟤 우는데…?
‘어. 그러게요?’
뜻밖이긴 했다.
그도 그럴게, 원작의 당옥기는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었다.
향란관 내에서 겉돌긴 하지만, 니들이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니들을 따돌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꿋꿋이 제 할 일 해 나가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당옥기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점이 지금보다 뒤니까.’
따지고 보면 지금은 한창 힘들 법도 했다.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
당옥기 본연의 자존감과 당가인의 자부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무학관 입관 준비를 하며 당옥기 나름대로 그려봤던 학관 생활도 있었을 것이다.
한데 본가에서 당연시되던 행동이 여기선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그 그림이 망쳐졌겠지.
‘마음과 다르게 뾰족하게 나가는 행동과 말들이 그 오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을 것이고.’
거기다 향란관의 기숙사풍마저 폐쇄적이니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해가 갔기에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여기서 어쭙잖은 위로나 행동을 건네는 것은 분명한 기만이었다.
꼴꼴꼴-
하여 나는 죽엽청주나 홀로 따라 마시며 가만히 있었는데.
훌쩍거리면서도 깨작깨작 회과육을 다 비운 당옥기가 어느 순간 눈과 코는 울어서 입은 매운 것을 먹어서 빨개진 상태로 입을 열었다.
“…크힝. 그래서. 킁. 볼일이란 건 뭔데?”
처음보다 확실히 녹녹해진 분위기였지만, 여기서 천독단 이야기를 꺼냈다간 저 상처 입은 짐승이 다시 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여 나는 천독단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당옥기와 나 사이에 맺어져 있는 작지만 소중한 약속을 증명하는 문서를 소매 춤에서 꺼내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또 뭐고?”
“빚 문서.”
“…빚 문서?”
“제갈설지와 정현이 대결했을 때 내기 했던 거 잊었냐? 제갈설지의 승리에 걸었던 금자 한 냥, 대진료로 지급하기로 한 금자 한 냥, 합해서 금자 두 냥.”
딸국.
“빚 갚아라 당옥기.”
* * *
당옥기는 금자 두 냥의 빚을 갚지 못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지.’
사실 그럴 줄 알았다.
강호에 연을 두지 않는 범부들의 생활비가 일 년에 은자 두 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기실 금자 두 냥 자체는 상당히 큰돈이다.
그러나 당옥기의 가문이 사천당가임을 생각하면 절대로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옥기는 항상 돈이 없지.’
초반부엔 사천당가의 비전 영단인 천독단을 양산할 수 있는 연구를 틈틈이 하고, 후반부엔 천독단을 뛰어넘는 만독단을 연구하는데, 그 연구가 학관이나 기숙사의 지원을 받지는 못해서 들어가는 재료와 비용들을 감당한다고 그녀의 주머니 사정은 늘 어려웠다.
뭐, 어쨌든.
당옥기는 빚을 갚지 못했다.
그리고 정무학관은 개강을 맞았다.
수강 정정 기간을 겸한 개강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누구 하나가 바꿀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장에 내 수강 과목과 당옥기의 수강 과목은 거의 흡사했다.
일학년생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들이 많았는데, 거기다 선택 과목도 좀 겹치게 되어서 그렇게 됐다.
일부러 당옥기를 노리고 그 과목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전생에 업으로 삼았던 기술들과 관련 있는 것을 골라서 학점을 쉽게 따려는 생각에 그리한 것인데 공교롭게도 당옥기도 그 과목들을 들었을 뿐.
뭐, 아무튼.
나와 당옥기는 겹쳐 듣는 과목이 많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방금 알려드린 원리를 적용해서 전음 실습을 할 거예요. 당금수석부터 해봅시다. 앞으로 나와서 은밀히 전할 이야기가 있는 벗에게 전음을 보내보세요.”
[…당옥기.]
“?”
[빚 갚아.]
“수업 중에 그딴 소리 좀 하지 마!”
“……? 당옥기 생도? 언용운 생도가 뭐라고 했기에 그러시는 거죠?”
“죄,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당옥기를 마주칠 때마다 때로는 얼렀고.
또 어떨 때는 달랬다.
“당옥기.”
“뭐? 빚 갚으라고?! 아 갚는다니깐?! 다음 달 용돈만 받으면 바로 갚을게 진짜아!”
“아니.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그럼 왜?”
“밥 같이 먹을 사람 없지?”
“이, 있거든?”
“있어도 오늘은 우리랑 같이 먹자. 오늘 주사 고고한테 부탁해서 닭발을 마파 양념으로 졸여 달라고 했는데 이거 은근 별미다. 저번에 맛보여준 사천식 회과육 저리 가라야.”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 어르고 달래고.
오전 오후로 만날 때마다 한 번씩 도합 열 번.
기간으로는 다섯 날?
“당옥기.”
“캬아아앜!”
“……? 뭔 말도 안 했는데 살쾡이처럼 눈을 뜨냐?”
“빚 갚으라고 할 거잖아!”
“그렇긴 하지.”
“캬악! 심지어 어제는 꿈에도 나왔어 지독한 놈아!!”
“사돈 남 말하네, 나도 너처럼 나한테 진 빚을 이렇게 안 갚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참고로 무림맹의 뇌옥에 들어간 황보준이도 갚았다.”
“…어. 그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어졌다는 말이 도는 애?”
“그래.”
“하 씨. 내가 잘못한 거긴 한데 진짜 돈이 없다고!”
그렇게 딱 다섯 날을 어르고 달래자.
“아니면 당가타를 떠나올 때 받아온 천독단이 하나 있는데 이거라도 줄까? 주면 받을래?!”
당옥기가 제 입으로 천독단을 내놓겠다는 말을 뱉고 말았다.
훗.
계획대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