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77화 (77/444)

제77화. 천독단 내놔 (1)

금자 두 냥의 빚을 천독단으로 대신해도 되겠냐는 당옥기의 말.

그 말은 정말로 천독단으로 빚을 갈음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당가의 영단 혹은 독단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영약이나 영단들과 달리 취급 주의가 붙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예컨대 당장에 누군가가 그것을 훔쳐 암시장 같은 곳에 풀렸다고 치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가 될 것이다.

‘그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에 사천당가의 사람들이 당가타에서 모조리 몰려나와 도둑놈과 장물아비 그리고 구매자를 싸잡아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버릴 테지만.’

고작 금자 두 냥의 빚을 갚자고 내놓기엔 천독단의 가치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니, ‘천독단이 하나 있는데 이거라도 줄까? 주면 받을래?!’ 하는 당옥기의 말은 그녀 나름대로 강짜를 부려본 것일 것이다.

‘자신이 고작 금자 두 냥을 못 갚을 것 같냐는 주장의 연장선인 거지.’

당옥기의 상대가 내가 아니라 평범한 다른 생도 혹은 일반적인 강호인이었다면?

아마 그녀가 내보이는 강짜에 한 걸음을 물렸을 것이다.

‘농담인데 뭔 천독단 소리까지 나오냐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것만 담보로 잡아도 금자 두 냥은 우습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주시라 하는 소리를 했겠지.

하지만 나는 평범한 생도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강호인도 아니었다.

나는 비틀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굳이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어?”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일순 당옥기의 얼굴에 당황이 들어찼다.

일견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였기에 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자고. 좋아. 천독단으로 네 빚 갈음하자.”

그런 내 배려 덕분이었을까?

잠시 어버버하고 있던 당옥기가 빠르게 고개를 털며 정신줄을 잡더니 급히 입을 열었다.

“너, 천독단이 뭔지 잘 모르나 본데?”

“알 만큼 알아. 사천당문의 영단 아냐? 풍문으로 들어서 과장이 좀 들어간 건지 모르겠지만, 흡수만 잘 시키면 삼십 년 내력과 함께 천 가지 독을 불허하는 천독불침의 몸을 만들어주는 영단이라고 들어 알고 있는데 아냐?”

“과장이라니! 당문은 허언을 하지 않아! 그 말은 대략 맞아!”

“그럼 잘 알고 있는 거네.”

“그렇네…? 가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 아! 너는 단순하게 천독단이 값어치가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나 본데, 그거 돈으로 바꾸지도 못해. 내가 너한테 천독단을 줬다 치자, 근데 그게 그렇게 혹시라도 밖으로 나돌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불문곡직. 그러니까 이유 불문하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어.”

다급하게 자신이 뱉은 말을 수습하려 애를 쓰는 당옥기.

그녀의 말과 행동에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를 고민하는 당황이 동시에 묻어났는데, 아무튼 당옥기의 말에는 허점이 있었다.

“너 그럼 돈으로 바꾸지도 못하는 걸 알면서도 그걸로 빚을 갚겠다는 소리를 한 거냐?”

“…….”

“그리고 당문은 은원이 확실하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네게 부당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훔친 것도 억지로 빼앗은 것도 아니고, 당옥기 네가 준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을 뿐인데 그게 죽을죄가 된다고? 내가 알던 당문의 보은 방식이 아닌데?”

한 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나.

내가 그 점을 짚자, 말문이 막힌 당옥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당옥기의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의아해하셨다.

- …흠. 내가 보기엔 저 당가의 아해가 천독단 이야기를 들먹인 것은 빚 갚으라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강짜를 부린 것 같은데.

‘아마 그럴 겁니다.’

- 그럼 그냥 솔직하게 빚 갚으라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러니 좀 물러달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긴 한데, 원래 사천당가 사람들이 자존심이 좀 세지 않습니까.’

금자 두 냥이 없어서 강짜를 부린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거겠죠.

- 하긴. 당씨들이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 나 때도 그러기는 했느니라.

‘게다가 당옥기가 그렇게 나와도 제가 안 받아주고, 안 돼, 돌아가, 약속 지켜. 해버리면 말짱 꽝이고요.’

내가 그래 버리면?

당옥기 본인 입으로 말한 당문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또 걸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가불기였다.

- 그도 그렇구나. 네 녀석의 인성과 지독함을 고려하면 애초에 씨알이 먹힐 리가 없구나. 저 아이도 참 진퇴양난에 빠졌도다, 쯧쯧. 어쩌다 이런 녀석을 사귀게 되어서는.

‘……?’

- ?

흠흠.

뭐 아무튼.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당옥기는 내 예상대로 물러 달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돌파구로 삼았다.

“아무튼 팔아먹을 목적이면 안 돼.”

하지만 저 말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말이었다.

나는 지체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천독단을 왜 팔아?”

“팔아먹을 목적 아니었어?”

“사람을 뭐로 보기에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노, 노랭이나 빚쟁이?”

한데, 당옥기가 이런 소리를 했고, 그 소리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코웃음을 터트리셨다.

- 풉.

“……?”

“…하하.”

아니 옥기야 너는 웃으면 안 되지, 지금 웃음이 나오냐?

“하하?”

“…뭐! 맨날 볼 때마다 당옥기 빚 갚아 한 게 누군데?!”

“에잉,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사천 음식 구해와 같이 먹고 그런 건 싹 까먹고 꼭 저런다니까.”

“아, 안 까먹었어! 그건 나도 고… 고맙ㄱ… 흐. 그래서 내가 천독단을 줬다 쳐. 팔아먹을 게 아니면 어디다 쓸 생각이었는데?!”

“당연히 내가 먹어야지.”

그때였다.

내가 천독단을 먹겠다는 이야기를 뱉은 그때.

“먹는다고? 섭취?”

“그래. 섭취. 삼십 년 내력에 천독불침지체가 되는 약인데 내가 그걸 왜 팔아? 나 먹을 거도 없는데.”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라는 듯이 경직된 표정이 된 당옥기가 입을 열었다.

“세간에는 그저 천독단을 섭취해서 흡수하면 삼십 년 내력에 천독불침의 지체를 얻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거 좀 잘못된 정보야. 천독단은 다른 문파나 가문의 영단같이 아무나 섭취할 수 있는 영단이 아니야.”

원작 소설을 읽은 나였기에 천독단은 취급 주의가 붙는 영단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실도 있을 수 있었고.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사천당가인 특유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우선 가만히 당옥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계속해봐라.”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을 조금씩 섭취하며 내성을 기르는 당가타의 사람에게나 맞는 영단이고, 그게 아니라면 맹독에 중독된 사람 중 중독된 독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에 비상약의 개념으로 썼다가 해독이 되는 과정에서 기연을 얻듯 내력이 증진 효과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평범한 사람이 그냥 천독단만 먹으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거냐?”

“응. 그것도 맹독. 죽을 수도 있고 폐인이 될 수도 있어. 혹 지인 중에 원인 모를 독에 중독이 된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 거면 내어 줄 수도 있지만, 네가 먹으려고 그러는 거면 줄 수 없어.”

“음. 그러니까. 줄 수는 있는데 내가 폐인이 되거나 죽을까 봐 걱정이 된다는 거지?”

“걱정까지는 아니고…! 일종의 보은으로 주는 건데 죽거나 어? 그러면 내가 난처하잖아. 뭐, 걱정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라고 할 수도 있겠네.”

딱 원작대로네.

원작에서 당옥기가 당가타에서 받아 나온 천독단은 방금 그녀가 말한 용법 중 후자의 방식으로 사용된다.

‘중독이 된 정현을 치료하게 쓰였지.’

그 결과 정현의 중독이 해결되었고, 만만여개 천장호가 부러워하자 당옥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딱 저렇게 설명했었다.

한데, 원작의 당옥기가 했던 설명은 저게 끝이 아니었다.

‘독기가 혈맥과 단전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다른 영단이 충분히 있다면 효험을 볼 수가 있다고 그랬다.’

그러자 천장호 그 거지새끼가 다른 영단을 구하려면 시험을 잘 쳐서 장학생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느니 맹독을 한 움큼 집어 먹는 게 낫겠다고 하며 당옥기의 복장을 터트렸었다.

그 장면이 우습기 그지없었기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뭐, 아무튼.

천독단의 용법은 충분한 영단으로 독기를 막는다는 한 가지 방법이 더 남아 있었는데.

그 충분함의 수준이 바로 소환단급 영단 세 개였다.

‘그런데 마침 나한테 그 소환단급 영단 세 개가 있네?’

사대천 장학생에 선정되며 받은 무당의 소청단(小清丹).

성적 우수 장학생에 선정되며 받은 제갈세가의 신산호심단(神算護心丹).

정진 장학생에 선정되며 받은 아미파의 보리심환(菩提心丸),

그러니까 세 개의 장학 제도를 한 몸에 받으며 세 알의 영단을 보유하고 있는 내게 딱 맞는 용법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비틀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참았다.

그리고 짐짓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용법은 그게 끝이야?”

그러자 당옥기가 고래를 가로저으며 솔직하게 답했다.

“한 가지 더 있긴 해.”

“뭔데?”

“음. 정순한 기운이 담긴 영단으로 천독단이 가지고 있는 독기를 순화해서 혈맥과 단전을 보하는 건데, 그러려면 소환단이나 소청단급의 영약이 넉넉잡아 세 개 정도가 필요해.”

“그렇군.”

“그래. 아무리 네가 당금수석이라도 그런 영단이 세 개씩이나 있을 리가 없지, 우리 오라버니도 작년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사대천 장학생이 돼서 한 개를 받았을 뿐이니… …가 아니고. …어. 그, 그러고 보니 너 근데 세 개 부문의 장학생에 선정됐었나?”

“그랬지.”

“어…. 그거 아직 한 알도 안 까먹고 다 가지고 있는 거?”

“응.”

딸국.

가져와라. 당옥기.

* * *

향란관에서 유사시를 대비한 치료 도구가 담긴 자신의 왕진 가방과 조그마한 목함을 가지고 나온 당옥기가 나를 보며 이마를 싸쥐었다.

“내가 미쳤지.”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청죽관에 딸린 개인 연공실을 향해 앞장을 섰고.

연공실에 도착해서는 혹여라도 방해하는 자가 있는지 이곳저곳을 잘 살핀 뒤, 출입문을 닫아걸고 당옥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줘봐.”

그런 내 말에 홀린 듯이 목함을 낸 당옥기였지만, 막상 내가 목함을 움켜쥐자, 갑자기 아니다 싶었는지 본인도 목함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

“응. 있지. 왜?”

“네가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

“왜. 갑자기 아깝냐?”

내 물음에, 당옥기는 일단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는 게 아깝다기보다는….”

“그럼?”

“…갑자기 뒷감당이 걱정돼서? 아버님이나 장로님들이나 오라버니나 아무튼 간에 누가 혹시라도 천독단에 대해 물으면 나는 이제 금자 두 냥에 넘겼다고 해야 하는 거잖아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바보 혹은 호구라고 하겠지.”

그리고 도끼눈을 뜨고 나섰다.

“캬아아악!”

참 내.

“지도 건실한 청년더러 노랭이니 빚쟁이라니 해놓고는?”

“…건실?”

- …양심.

하나 당옥기의 도끼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미간은 이내 걱정이 된다는 듯 좁혀들었다.

“…진짜 아까운 건 아니야. 어른들이 이 말을 믿어 주시기나 하실까 싶어서 그러는 거지. 나와 다르게 우리 집안 사람들이 좀 의심이 많거든.”

지는 아닌 것처럼 말하네.

너도 충분히 많아 임마.

뭐, 그것과는 별개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애초에 당옥기의 천독단을 완전히 날로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탈 나지.’

이야기의 흐름이 뒤틀리기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세계관이 세계관인 만큼 원작에서처럼 천독단이 필요한 일이 생길 수가 있는데, 나 혼자 홀딱 먹고 입을 싹 닦으면 오히려 더 개판이 될 것이었다.

하여 나는 애초에 제값을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독단을 양산하려고 하는 당옥기의 연구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값을 치르려고 했지.’

물론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당장에 천독단을 얻는 것만 해도 만금이 아깝지 않은데, 천독단 양산 연구는 만독단 연구로 가는 발판이기까지 했으니까.

아무튼 생각은 여기까지.

나는 당옥기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제값을 치르면 되겠네.”

“…제값?”

“너 제독학개론 수업 들을 때 교수님이랑 말하는 거 보니까 뭐, 연구하는 거 있더만. 뭐가 없어서 연구가 막혔다고 하지 않았냐? 교수님도 학관에도 재고가 없다고 하셨고?”

“혈수만독주?”

“그래. 그거 내가 사줄게.”

“…그거 비싼데,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거 살 만큼의 돈은 있고, 어디서 파는지도 알아.”

그러니까 이제 천독단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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