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78화 (78/444)

제78화. 천독단 내놔 (2)

혈수만독주(血手萬毒蛛).

쉽게 말해 독거민데, 다리가 피를 머금은 듯 빨간 데다 맹독을 지닌 녀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물론 청소를 안 한 창가에 집을 짓곤 하는 그런 소박한 거미는 아니다.

이른바 새잡이거미라 불리며 소동물도 잡아먹는 대형 거미의 일종이다.

‘원작에선 성체의 크기가 성인 남자의 손바닥만 하다고 묘사됐지.’

원작에 의하면 이 혈수만독주의 본래 서식지는 남만의 야수림 중에서도 깊은 곳이라 나오는데 애초에 개체 수가 극히 적은 녀석이라 묘사된다.

‘개체 수가 적은데 맹독을 가진 녀석이라 포획 자체가 힘들고.’

거기다 쓰임새까지 많다.

그 쓰임새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아주아주 고귀하신 분들의 관상용이오. 둘째는 다름 아닌 식용이다.

‘구워 먹으면 맛이 바닷가재 같다나?’

그걸 어떻게 먹어볼 생각을 했지?

아무튼 그렇게 불에 구우면 혈수만독주가 품고 있던 맹독의 대부분이 날아가고 내단이 남는데, 그 내단을 무림인이 섭취하면 십 년 정도의 내력을 얻을 수 있고, 평범한 사람이 섭취하면….

‘강장제.’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효능이 있단다.

‘그러니 남아날 리가 있나.’

뭐, 아무튼.

당옥기는 그 혈수만독주를 이용해서 본인의 연구를 완성시키는데, 본인의 연구가 성공할지 못 할지에 대한 확신은 없어도, 자신의 연구에 혈수만독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확실히 아는 모양인지.

그것을 내가 사주겠다고 하자, 일순 목함을 쥐고 있던 당옥기의 손아귀 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목함을 뽑아냈다.

그리고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딸깍-

묘하게 코끝을 알싸하게 만드는 독향을 옹골차게도 머금은 청자색(靑紫色) 영단.

‘천독단.’

녀석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영롱하군.”

그때였다.

내가 그렇게 천독단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는 그때.

일순 당옥기가 눈썹을 삐딱하게 구기며 입을 열더니.

“자, 잠깐만.”

천독단을 향해 멀건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딜.”

빠르게 목함을 다시 닫은 나는 유려한 동작으로 당옥기의 손을 밀쳐낸 뒤.

오른손을 위로 쭉 뻗어 당옥기의 손이 쉬이 닿지 못하는 곳에 목함을 위치시킨 뒤 인상을 구기며 제대로 입을 열었다.

“어디 남의 물건에 손을 대려고.”

“그게 왜 남의 물건이야?! 원래 내 건데!”

“옥하다 추기야. 줬으면 땡이라는 말도 모르냐?”

그런 내 말에 당옥기가 입술을 잘근 물며 씩씩거렸다.

“추, 추기…?”

골려주려고 마음을 먹으면 진짜 온종일도 골려 줄 수 있었지만, 줬으면 땡이라는 말 그대로 천독단은 이미 내 손안에 들어왔다.

게다가 천독단의 독기를 누를 다른 영단이 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순 없었다.

‘당옥기가 괜히 왕진 가방을 챙겨 온 것이 아니지.’

천독단은 예후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종류의 영단이었다.

괜히 당옥기를 더 자극해서 삐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다 떠나서 당옥기는 이 세계의 끝을 보려면 계속 데리고 가야 하는 녀석이었다.

‘갑자기 저러는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를 묻고자 나는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줬다가 뺏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당옥기의 말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당가의 아해가 드디어 네 녀석의 본질을 알았구나. 쯧쯧. 검 속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나보다 빨리 깨닫긴 했지만, 그조차도 너무 늦었다. 이 녀석의 손에 천독단이 넘어오기 전에 깨달았어야지. 안쓰러운지고.

‘……?’

- 뭐.

흠흠.

사부님의 말씀은 깔끔하게 못 들은 것으로 하고.

나는 당옥기에게 따져 물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그렇잖아. 너는 분명 나한테 뭐가 없어서 연구가 막혔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했어. 아냐?”

“그랬지.”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그거 살 만큼의 돈도 있고 어디서 파는지도 안다고 그랬지. 혈수만독주의 이름도 모르면서 그게 얼마나 하는지는 어떻게 알고 어디서 파는지는 또 어떻게 알아?”

듣고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도 충분히 ‘어라?’ 하는 생각이 들 만한데, 의심암귀가 기본적으로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천당가 사람인 당옥기 입장에선 당연히 저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의심이 들자마자 갸르릉거리며 암기를 내보였던 첫 만남을 상기하면 오히려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

뭐, 아무튼.

저게 이유라면 별것도 아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

그러자 당옥기도 하! 하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더니 오랜만에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거봐. 날 속인 거지? 너 그거 얼마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던져본 거잖아 그치? 괘씸하긴 하지만 그냥 허세 한번 부렸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특별히 한 번은 봐줄게, 뭐, 같이 회과육도 나눠 먹고 마파닭발도 먹고 한 정이 있으니깐.”

“그게 얼마를 하든 살 수 있다.”

“……?”

“이렇게 말을 해야 했는데, 내가 말을 잘못했네.”

“…음? 얼마를 하든 살 수 있다는 말은 그러니까….”

“어. 나 돈 많아.”

* * *

뭐, 얼마를 하든 살 수 있다는 말은 당옥기의 말마따나 허세라면 허세일지도 모른다.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이 형성되면야 사지 못하겠지.

예컨대 일억 냥 이러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와버린다면 못 산다.

그러니까 이건 허세였다.

하지만 필요한 허세였다.

“말도 안 돼! 진짜 엄청 비싸거든?!”

내가 혈수만독주를 어떻게 아는지, 자신이 그걸 딱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를 의심하는 대신 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당옥기의 사고가 좁혀지도록 유도하는 허세였고.

또, 원작에서 혈수만독주가 얼마쯤에 거래가 되는지를 알았기에 할 수 있는 근거 있는 허세였다.

‘살아 있는 혈수만독주 암수 한 쌍의 경매가 금자 육백 냥 정도로 나왔지?’

하여 주인공 세대가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서 육백 냥을 맞춰서 구하러 간다.

그랬다가 실 경매가가 훨씬 높게 형성되는 바람에, 당옥기가 작년에는 육백 냥에 거래됐는데 그것도 비싼 거였다며 당황하던 차에 은하연이 그걸 해결해 주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은하연을 구해주며 받은 금자만 천 냥이었는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동안에 수익이 났다 그랬다.

‘거기다 강남상왕 은세평과 대화료로 챙긴 금전이 천 냥이었고, 이외에 용돈 명목으로 여기저기서 챙긴 돈에 이래저래 받은 현상금 그리고 각종 오물에게서 피해 보상 명목으로 뜯은 돈들을 합치면?’

슥슥 훑기만 하고 은하연에게 믿고 맡겼기에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도 지금 내 개인 재산이 금자 삼천 냥은 족히 넘었다.

‘이 시점에선 혈수만독주를 족히 네 마리는 살 수 있는 돈이지.’

하여, 나는 ‘말도 안 돼!’ 소리를 하고 있는 당옥기를 향해 차분하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얼만데 그거.”

“으으음. 이게 죽은 거랑 살아 있는 거의 가격 차이가 열 배쯤 나거든? 근데 나는 살아 있는 게 필요하고 또 암수가 쌍으로 필요해서.”

“그러니까 얼마냐고.”

“…으음. 금자로 삼백 냥에서 사백 냥 정도? 경쟁이 붙어서 비싸지면 오륙백 냥까지 갈 수도?”

“내 개인 재산만 삼천 냥이야.”

“……? 사, 삼천 냥? 은자 아니고 금자로?”

“금자로.”

“거, 거짓말. 무슨 집에서 쫓겨난 망나니가 그렇게 돈이 많냐?!”

“그러는 너는 무슨 사천당문의 적녀라는 애가 그렇게 돈이 없는데?!”

“캬아아악!”

자세한 설명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왜 돈이 많은지 설명해줄 의무까진 없고, 학관 앞에 있는 전장에 가서 확인하면 바로 들통나는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냐? 뭐, 당옥기 너는 향란관 녀석들이 틈바구니에서 지내니까 매사에 조심하는 그 성격이 이해는 간다만.”

“…….”

“좀 믿어라.”

“…누, 누가 안 믿는대? 어차피 거짓말이면 나도 네가 그랬던 것처럼 따라다니면서 놀리면 돼. 내 거미 내놔 하면서.”

“그러시던지.”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아무튼 이제 천독단 먹을 거니까. 더 이상 토 달지 마라?”

“야!”

“아! 또 뭐?!”

“천독단을 맨 마지막에 먹어야 해! 다른 거부터 씹어서 삼키고 천독단은 씹지 말고 그대로 꿀꺽 삼켜.”

* * *

그것으로 당옥기와의 실랑이는 끝이었다.

녀석은 제대로 된 복용법과 주의할 점에 대해 일러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숙지한 뒤.

장학 제도의 부상으로 받은 영단들을 씹어 삼킨 뒤, 천독단은 그대로 꿀꺽 삼켰다.

“!”

다른 영단에 비해 천독단의 크기가 좀 작긴 했다.

하지만, 목을 넘어가며 화한 독기가 목구멍을 지져 내리니 거봉을 잘못 삼킨 것처럼 일순 목구멍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놈 이거 성질이 보통 고약한 게 아닌데?’

앞에 삼킨 영단들과는 종자가 다른 놈이라는 게 첫 목 넘김에서 벌써 드러났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약과였다.

식도를 지져 내리며 뱃속에 자리를 잡자마자 조금 전의 목 넘김은 본경기가 시작되기 전의 준비 운동이었다는 듯, 사방으로 독기를 뿜어내며 남의 혈맥에서 꼬리에 불이 붙은 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벌써 이 대목에서 까무러쳐도 열두 번은 까무러쳤으리라.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잘 들어 언용운. 이 용법대로 천독단을 섭취는 나도 안 해봐서 짐작만 할 뿐인데, 가문에서 내려오는 의서에 의하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했어.’

고통을 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고, 정신 쪽으로는 아예 면역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여, 몰아치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당옥기의 말을 상기하며 기운을 운용해 낼 수 있었다.

‘그 의서가 이르길 앞서 삼킨 영단의 힘으로 혈맥을 보호하고 독기를 체내에서 소화해 내면 삼십 년가량의 내력과 천독불침의 신체를 얻을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정신을 놓지 않는 것이니, 독기가 날아가더라도 천독불침의 신체는 남으니 버티기 힘들면 독기를 배출해 내면서 내력을 운용하라고 했어. 명심해. 정신을 놓으면 안 돼.’

물론.

허리춤에서 당옥기의 이야기를 함께 들은 사부님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 모양이었지만.

- 저, 저, 저. 욕심하고는. 이 욕심쟁이 제자 놈이 또 시작이구나. 야 이놈아 지금 네 몰골이 어떤 줄 아느냐?

‘…으떤지 졔가 으띃케 암미까…?! 으떤뎨요?’

- 잔뜩 부푼 자주색 두꺼비 같으니라 이놈아! 당가의 아해가 정 힘들면 독기를 배출해가며 하라지 않았느냐!

아, 어쩐지.

아까부터 온몸이 퉁퉁 부은 것 같은 느낌이 좀 들긴 들더라니.

- 좀? 쪼오오옴?!

아무튼 이 아까운 걸 왜 배출합니까 사부님!

이거 하나하나가 다 내력이라는 소린데요!

물건이든 내력이든 제 손에 들어오면 제 것이 돼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큰일이 날 성싶으면, 백회든 어디든 당옥기가 장침 하나 찔러줄 테니까요.

- 이놈 자식 때문에 내가 내 명에 못 죽지! 에이잉!

음.

이미 돌아가시긴 한 상태신데…?

뭐, 굳이 그런 작은 오류를 짚지는 않았다.

사부님의 우려를 일축한 나는 운기를 하는 데 온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파천의 내력과 정도의 영단 천독단이 섞인 기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속해 순환시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혈맥에서 뛰어놀던 독기가 뼈마디 근육 피부에 차례차례 알싸하게 스민다 싶더니 어느 순간 그 알싸함이 걷혔고, 온몸이 퉁퉁 부어 있던 것 같던 감각도 가셨으며, 옹골찬 기운이 단전에 자리를 잡더니 기존의 내력에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그러자 내력에 크게 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내 내 눈이 번쩍 뜨였다.

“!”

그러자마자 꺼억- 하고 트림이 올라왔는데, 혹여 이 트림 속에 섞인 기운이 있을까 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읍.”

- 그 정도는 좀 날려 보내거라! 쫌!!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께선 아주 학을 떼셨고.

당옥기는 눈을 키우며 여러 가지 의문이 함축된 말을 던져왔다.

“괘, 괜찮아?”

그녀의 물음에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그건 확인을 해봐야 할 거 같은데?”

“확인?”

“어. 당옥기 너 평소에 독 발린 침 들고 다니지? 그거 좀 꺼내 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