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썩어 들어가면 자르려고?
당옥기에게 가지고 다니는 독침을 내 보라는 말은 정말로 내가 천독불침지체가 된 것인지 바로 확인해 보자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그런 내 말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일까?
일순 당옥기가 말을 절었다.
“독침을 꺼내 보라는 말은 그러니까…?”
그런 당옥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실험해 봐야지. 독이 통하나 안 통하나. 독침으로 찔러보면 알 거 아니야.”
“…….”
“왜? 아냐? 더 좋은 방법 있어?”
“아니 그 방법이 가장 빠르긴 한데,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지? 여기 내 손가락 몇 개로 보여?”
“두 개. 나는 멀쩡한데, 오히려 당옥기 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이 쉬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캬아악! 못 알아들은 거 아니거든?!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야,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랑 좀 다르기도 하고.”
“뭐가 네 상식이랑 다르고 어디가 어이가 없는데?”
“아니이…! 음. 그래! 천독단을 흡수하는 과정 고통스럽지 않았어?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도 바로 독침을 찔러보자고 하니까. 얘가 머리가 어떻게 됐나 싶었지. 보통은 다시는 까불지 않겠다고 기겁을 하거나 까무러쳐야 정상이니까.”
“참을 만하던데?”
“참을 만했다고? 너 완전 위험한 순간까지 갔는데?”
“그랬나?”
“그래! 내가 힘들면 독기를 배출하라고 미리 말을 해줬는데도 전혀 독기를 배출하지 않더니! 이만? 아니 과장 좀 보태서 한 이만해졌었다고!”
하기는 사부님께서도 잔뜩 부푼 자주색 두꺼비 같다고 하셨지.
뭐, 아무튼.
나는 열심히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당옥기를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뭐, 좀 붓는 느낌이 나긴 했지. 아무튼 참을 만했다.”
“좀? 억지로 독기를 빼줘야 하나 내가 고민을 열두 번을 더했는데, 그게 참을 만했다니… 무슨 정신력이…. 너 완전 연구 대상이다. 의서에 남겨서 길이길이 참고하게 해야 할 정돈데?”
그런 내 말에 당옥기가 연구 대상이라는 말을 하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콧방귀를 뀌시며 자신의 생각을 전해 오셨다.
- 연구 대상은 무슨. 이놈을 연구 기준으로 삼았다간 그 연구는 바로 망할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런 독종이 더 있을 리가 없으니까.
걱정했다는 본인의 주장을 잔소리의 형태로 툴툴대시는 사부님이셨지만, 말 자체는 맞는 말이긴 했다.
‘나는 말 그대로 별종이다.’
나 같은 별종을 기준으로 삼아 ‘참는 놈도 있더라~’ 하는 기록을 의서에 보탰다간 죄 없는 후인들이 피를 보겠지.
나는 그 점을 짚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글쎄? 나를 기준으로 삼았다간 괜히 피를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런 쪽으로는 도가 튼 당옥기였기에 그녀 또한 내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하긴, 거의 불에 타는 고통이랑 비슷했을 텐데 그걸 참을 만하다고 하는 녀석은 일반적인 연구에는 도움이 안 되긴 하겠다.”
그런 당옥기를 향해 나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고.
“아무튼 독침이나 꺼내 봐.”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왕진 가방을 열더니, 그 안에서 일곱 개의 얇삭한 오죽(烏竹) 대롱을 묶어 만든 시커먼 침통과 비단 천 두 개를 꺼내 들고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제독학개론 수업을 신청한 걸 보면 너도 독에 관심이 있는 거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독에는 크게 일곱 가지 종류가 있어.”
그야 물론이지.
전생에 사령왕 소리를 들은 나였다. 그리고 대저 독이라는 것은 흑마법사들의 오랜 친구 중 하나였다.
그런 나였기에 원작을 읽을 때도 독에 대한 설정이 나올 때는 유심히 봐뒀었다.
그래서 제독학개론 수업도 신청한 거였다.
“어디서 채취하느냐에 따라 갈리지.”
“맞아. 그 일곱 종류의 독을 여러 방식으로 정제해 치명도와 은밀함을 높여 살독(殺毒)을 만들지. 우리 당문에서 말하는 천독불침지체는 정말로 숫자를 세서 천 가지 독이 통하지 않는 몸을 말하는 게 아니야. 우리 당문에서 정제한 그 일곱 가지 살독의 정수가 통하지 않는 몸을 말해.”
“그 일곱 가지 독이 통하지 않으면 그보다 정제가 덜된 독이나 어쭙잖은 실력으로 섞어 만든 독은 당연히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도 맞고.”
혹시나 했는데 원작에 나왔던 설정 그대로였다.
당옥기가 말한 일곱 가지 독과 그 독을 합쳐 만든 독의 한계를 뛰어넘은 독이 이른바 무형지독(無形之毒)이 되는 것이었고, 그 무형지독까지 막아 낼 수 있게 되면 만독불침(萬毒不侵)이 되는 것이었다.
“그 일곱 대롱에 든 게 당문의 칠독이 발린 침인 거지?”
“맞아.”
나라는 존재가 끼어들었다고 이런 기본적인 설정이 뒤틀릴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확인했으니 되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한쪽 소매를 걷어붙인 뒤 입을 열었고.
“시작하자.”
당옥기는 그런 내게 다가와 소매를 걷어붙인 내 팔에 침통과 함께 가져온 비단 천을 묶기 시작했다.
슥슥- 쓰윽-!
팔꿈치께에서 한 번.
슥슥- 쓰으윽-!!
어깻죽지에서 또 한 번.
그렇게 두 개의 비단 천을 모두 사용한 당옥기는 일순 나를 놀려보고 싶은 모양이었는지,
입꼬리를 비죽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거 왜 묶은 줄 알아?”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서 썩어들어가면 자르려고?”
“…어. 아네?”
“알지 그럼. 순서대로 요 썰고. 요 썰면 되겠네.”
“치. 재미없어.”
“재미고 나발이고 다 묶었으면 빨리 침 꺼내서 찌르기나 해. 슬슬 피 안 통하는 거 같으니까. 독침이 아니라 피가 안 통해서 썩겠다.”
“아. 진짜 인간미 없네. 긴장 좀 하고 그러면 안 되냐? 아니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담담하지? 끼니마다 거북이를 삶아 먹었나?”
음.
내 성격이 원래 그렇기도 하고, 또 나를 놀려먹어 보겠다는 당옥기의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서 일부러 더 그랬던 건데 잘못하면 당가의 집안 내력인 의심이 발동할 것 같았다.
하여, 나는 다시 한번 사천당가 추켜세우기에 들어갔다.
“당옥기 네가 준 천독단이 가짜일 리도 없고, 천하제일독문인 당문의 비전 영단을 먹었는데 내가 왜 긴장을 하겠냐?”
“…….”
“심지어 의학과 독학에서는 그 사천당문의 장로들도 한 수 접고 귀를 기울여 준다는 당옥기 너도 있는데.”
대화는 거기까지.
더 이상의 아부는 필요치 않았다.
원작대로 칭찬에 약한 당옥기답게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녀석은 허둥거리며 침통을 열었다.
“뭐, 뭐래!”
아, 물론 허둥거리는 것은 침통을 여는 순간까지만이었다.
천성이 의원이라 이건지, 손에 침을 쥐자마자 표정이 바뀌더니.
“찌른다?! 썩든지 말든지!”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입과는 달리, 침착하고도 신중한 손놀림으로 내 팔뚝에 일곱 개의 장침을 순서대로 찔렀다 뺐다.
그로 인해 불긋한 두드러기가 침을 찌르는 즉시 잠시 침이 꽂힌 부위에 피어오르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개개의 불긋함은 잠시 잠깐 사이에 사라졌고, 마지막엔 일곱 독을 한꺼번에 꽂았지만 이렇다 할 신체 이상은 없었다.
천독단.
약효가 좋군.
삼십 년 내력을 얻을 수 있는 영단 세 개를 썼긴 하지만 어차피 산가지를 더하듯 영단 세 개를 먹는다고 무조건 구십 년 내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서 최고 효율을 내려면 고려해야 하는 휴약기까지 생각하면 영단 세 개를 태워 삼십 년 내력과 천독불침의 지체를 얻는 게 최선이었다.
얻어 낸 최선의 결과에 절로 비틀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굳이 숨기지 않으며 나는 팔을 묶고 있는 비단 천을 풀었다.
그런 나를 향해 당옥기가 축하의 말을 건네 왔다.
“아무 이상 없네. 축하해.”
그에 나도 같은 축하의 말을 돌려주었다.
“너도 축하한다.”
“……?”
“빚 청산 축하한다고.”
“캬아아악!”
* * *
천독단을 흡수하며 얻은 내력은 체내에 잘 녹아들었고, 천독불침지체가 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전혀 없었기에, 더 이상 연공실에서 정양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해도 저물려 하고 있었다.
“당옥기 너 점호 늦겠다.”
“아 맞다.”
“본인이 향란관의 생도라는 자각을 좀 가져라.”
“너 때문이잖아!”
나야 자치 부회장 신분이고 청죽관의 생활 수칙은 빡빡하지 않은 편이지만, 당옥기의 기숙사인 향란관은 빡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와 당옥기는 곧바로 청죽관의 연공실에서 나왔고, 배웅을 해주는 과정에서 당옥기가 나를 향해 답을 듣지 못한 한 가지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혈수만독주는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시점에 살아 있는 혈수만독주 쌍이 어디에서 풀리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원작에서 주인공 세대가 혈수만독주를 구하러 가는 시점은 이학년에 오른 직후였다.
‘그 과정에서 당옥기가 작년 이맘때에도 찾으러 다녔었는데 막상 매물은 찾았는데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고 말했지.’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원작을 상기해보면 결국 이맘때의 당옥기가 가고자 점찍어 놓은 약재 시장에서 팔았다는 결론이니, 기실 당옥기 본인이 답을 알고 있는 형국이었다.
“너는 내일 어느 약재 시장에 가보려고 했는데? 향란관은 휴일이라도 외출이나 외박 같은 거 하려면 목적지랑 이런 거 빡빡하게 외출계나 외박계 작성해야 하는 거 아냐?”
“청죽은 아냐?”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내가 허락하는 사람 중에 하난데?”
“…와. 재수 없어. 아무튼 이번 주에는 로하구(老河口) 다음 주엔 십언(十堰)에서 열리는 곳에 가보려고 했어.”
“그 두 곳 중에 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나도 독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 남만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귀띔을 해주더라.”
뭐, 사실 진짜 출처는 원작 소설이긴 하지만.
“자치 부회장쯤 되면 들리는 소식이 다른가 보네. 그럼 내일 같이 가는 걸로?”
자치회의 임원이라는 내 직위가 당옥기의 의심을 대충 해소해 주었다.
“그래. 내일 아침 진시 초(오전 일곱 시)에 정문에서 보자.”
“알겠….”
“아. 짐꾼으로 삼을 만한 녀석 한 명 정도 데리고 나올 수도 있는데 사람이 두어 명 있다고 해서 괜히 놀라 가지고 의심암귀로 독침 뽑고 그러지 말고.”
“사람을 뭘로 보는 건데?!”
그렇게 당옥기와 헤어진 나는 곧바로 청죽관의 자치회실로 향했는데.
각 부서에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는 가운데, 그 서류의 틈바구니 중에서도 가장 상석에 앉았던 경룡이 형이 빼꼼 얼굴을 내밀어 나를 맞았다.
“우리 부회장님 오셨군. 오늘 하루 종일 얼굴 보기 힘들었던… 음? 용운 동생 자네 기도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그 말에 서류 더미에 숨어 있던 다른 얼굴들도 튀어나왔다.
“음? 정말이네요 언 공자?!”
“감축드립니다 언 형!”
“허. 괄목상대(刮目相待)의 고사가 선비는 사흘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면 눈을 비비고 마주해야 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아는데, 언 소협은 반나절 만에 저희를 그렇게 만드시는군요?!”
“오! 형님 혼자 몰래 뭐 좋은 거 드시고 오신 거 아닙니까?!”
“설명하면 긴데 그냥 장학생 되고 부상으로 받은 영단 흡수했다고 보면 돼. 너희들도 다 먹은 그거. 그리고 하성아.”
“예…? 닥칠까요?”
“아니 오늘은 시킬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은 다 일하는데 너만 서류 더미를 방벽처럼 세워놓은 게, 그래놓고 처자빠져 자거나 몰래 놀았던 것 같은데. 너 할 일 없지?”
“예! 분부 하십쇼!”
“당당하게 예 소리가 잘도 나오네. 아무튼 지금 당장 외박계 하나 써라.”
그런 내 말에 진경룡이 물음을 던져왔다.
“어디 다녀올 곳이 생겼나?”
“예. 내일 아침 전체 수련 끝낸 다음 바로 나갈 건데, 당일 돌아올 수도 있고 어쩌면 하룻밤 정도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내일 하려고 했던 재학생 기량 점검 건은 계획대로 하면 되겠나?”
“예. 어차피 기숙사 대항전 준비에 참고하려고 가볍게 점검하는 취지였으니까, 정현이랑 소릉이 녀석만 있어도 괜찮지 않습니까?”
“충분하지. 자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잘 진행해 보겠네.”
“정현이랑 소릉이는 회장님 잘 받들고.”
“그리하겠습니다.”
“옙!”
“그럼, 잠시 은 소저랑 전음을 좀 나누겠습니다. 제 개인 재산에 관한 이야기라서요.”
“어. 나 신경 쓰지 말고 나누도록 하게.”
그렇게 자치 부회장으로서의 업무를 쳐내고 나자, 은하연 쪽에서 먼저 전음이 날아왔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참, 은하연은 이런 게 좋다.
어디다 쓰시게요. 얼마나 쓰시게요가 아니라 얼마나 필요하신데요라니.
나는 부담 없이 그런 은하연의 물음에 답했다.
[금자로 육백 냥쯤 하는 물건인데, 오차가 생길 수도 있으니 천 냥 정도?]
[금자로 천 냥이면 생각보다 굵은 용처인가 본데요? 하루 안에 갔다 왔다 일까지 볼 수 있는 곳이면 약재 시장에 가시는 것 같은데, 영단이나 영물 때문이신가요?]
[뭐, 비슷하오.]
[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부족하실까 봐 여쭙는 거예요. 보통 그런 거래는 예상을 아득히 초월해서 경쟁이 붙곤 하니까요. 뭔지 모르지만 그거 얼마나 중요한 건데요?]
[무조건 사야 하오.]
[그럼 이렇게 하죠. 일단 만금전장의 전표를 드릴게요.]
만금전장은 천하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전장이자, 자금의 출처도 철저하게 숨겨주는 곳이었다.
하여 만금전장의 전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금전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였다.
하지만 원보도 충분히 있을 텐데 굳이 전표를 들먹이나 싶었는데, 이어진 은하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금자 천 냥짜리 열 장. 총 만 냥을 끊어 드릴게요. 살 거 사시고 남겨오시는 것으로 해요. 본래 시세가 천 냥인 물건이라면 만 냥 안에 해결이 되겠죠? 더 필요할까요?]
아, 만 냥이면 전표로 가져가는 게 훨씬 가볍지, 돈 있는 티도 안 나고.
[만 냥이면 충분하고도 남지.]
[그럼 일 이야기는 끝났네요?]
[그렇지.]
[그럼 올 때 당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