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84화 (84/444)

제84화. 상대할 수 있겠냐고? (1)

- 참. 알뜰하게도 발라먹는구나.

‘에헤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제자가 나쁜 놈인 줄 알겠습니다.

물건값 다 제대로 치를 거고, 수수료만 조금 깎았을 뿐인데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장사하다가 언제 한번 잘못 걸리면 크게 혼이 났을 것이니, 사실상 제가 깎은 수수료만큼 예절 교육을 해준 것이죠.

‘게다가 저놈들이 따지고 보면 도둑놈들입니다. 금본 경매니 어쩌니 하면서 중개 무역 수수료까지 금자로 받아 챙기는 놈들입니다 저놈들이!’

- 누가 뭐라고 했느냐?

‘……? 방금 뭐라고 하신 거 아닙니까?’

- 알뜰하다고 칭찬을 한 것인데? 대저 알뜰이라는 것이 너무 과하면 수탈 혹은 진상이 되는 법인데, 네 녀석은 포를 뜨듯 아슬아슬하게 알뜰의 범주에 머무르니, 그놈 참 어디다 던져놔도 잘 살 것이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괜히 제 놈이 찔려서는?!

그러고 보니 어투가 살짝 감탄하시는 투였던 것 같기도?

아니 근데 마냥 칭찬으로 듣기엔 또 요상한데요?

뭐, 아무튼.

그렇게 사부님과 투닥이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내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창고로 뛰어갔던 장내 호위가 한 시커먼 휘장이 씌워진 함 하나를 들고 오더니 꾸벅 허리를 숙였다.

“혈수만독주! 여기 대령했습니다!”

그에 휘장을 직접 젖혀봤더니.

한 면이 유리로 된 목함 안에 정말로 혈수만독주가 있었다.

‘원작의 표현 그리고 당옥기의 말과 똑같네.’

표주박의 모양을 하고 있는 등갑은 매화의 그것처럼 연홍빛이고, 매끄럽게 뻗은 여덟 개의 다리는 진홍색이며, 여덟 개의 눈은 석류석처럼 빛나는 새잡이거미.

‘크기는 좀 작나.’

성체의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함 안에 들어 있는 녀석들은 그보다 작았다.

‘절반 정도인가?’

나쁠 것은 없었다.

혈수만독주의 배를 갈라 내단을 섭취하려는 자들이나, 구워서 강장제로 먹으려는 자들에겐 저 작은 크기가 흠이 될 것이다.

하나, 나와 당옥기가 이걸 사려는 이유는 연구 목적이었다.

‘성체가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의 수명이 더 남았다는 거고.’

그 말인즉, 더 오랫동안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지금 나는 경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명백하게 갑의 위치를 확보한 상황에서 일대일 거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말은 즉.

연구 목적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만 하면 혈수만독주의 크기를 가격을 후려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크기가 좀 작군.”

그런 내 말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하셨다.

- 알뜰하다. 알뜰해.

이어서 허임생도 다시금 납작 엎드려 부복을 하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크, 크기가 좀 작기는 합니다. 소인들도 성체값을 다 받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성체값의 절반인….”

성체값의 절반.

‘반값이면 금자 삼백 냥 정돈가?’

아니다 당옥기가 말하길 시세가 육백 냥 정도라고 했고, 오늘 경매장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백오십 냥쯤이 적절할 것이다.

“이백오십 냥. 딱 이백오십 냥만 주십시오.”

원작에서 이 시점에 거래됐던 혈수만독주 쌍의 가격은 금자 천 냥.

‘심지어 일 년 뒤의 경매에서는 경쟁이 붙어 거기서 두 배가 더 뛰어 이천 냥이 되지.’

근데 그걸 이백오십 냥에 주겠다는 것이니 사실상 거저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수수료도 반값이다.’

하지만 나는 돌다리도 있는 대로 두들기는 사람.

나는 이백오십 냥이라는 값을 덥석 무는 대신 당옥기를 향해 입을 열었고.

“단단아.”

“네. 도련님.”

“네가 한번 살펴보거라. 근데 저렇게 합사를 해 놓아도 되는 것이냐?”

“혈수만독주와 궤가 비슷한 거미들은 단독 생활을 하는 녀석이 많은데, 이 아이들은 독특하게도 협동 생활을 하는 녀석들이에요. 굴도 함께 쓰고, 굶주린 경우가 아니면 동족끼리 잡아먹지 않는 기특한 녀석입니다.”

아이?

기특?

뭐, 아무튼.

단단이로 분한 당옥기가 보여주는 전문가의 모습에 허임생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당옥기는 꼼꼼히 혈수만독주를 살피기 시작했다.

“발색이 진한 녀석이 암컷이고 수컷이 연한 녀석인데, 일단 발색 자체는 두 녀석 모두 양호하네요. 음 근데 두 녀석 모두 등갑 쪽에 생채기가 조금 있네요.”

“그건 저희들의 관리 소홀이 아닙니다. 이놈들이 독이 있다 보니, 대수림에 사는 만이(蠻夷)들이 요롷게 생긴 집게로 잡는 것으로 아는데.”

“저도 알아요. 도련님께 설명하는 과정일 뿐이니 쓸데없는 잡소리 첨언하지 마세요.”

“…이, 이백사십 냥으로.”

그렇게 당옥기가 혈수만독주를 살피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전생에 겪었던 거미 마물들을 떠올려 보았다.

‘참 많이도 죽였는데.’

급이 낮아서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엔 닥치는 대로 잡아다 해체해 마석을 뽑기도 했고, 급이 오르면서는 군단병으로 삼아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도 했으며, 때때로는 독 연구를 하기 위해 다리만 끊어 숨만 붙여 놓기도 했다.

‘니들은 주인 잘 만난 줄 알아라. 나한테 걸렸으면 그냥….’

그때였다.

내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때.

내게서 뿜어져 나온 거미 학살자의 기운이 석류 ‧ 홍옥(진)에게 닿은 것일까?

“!”

“!”

빨빨거리고 있던 녀석들이 일순 굳더니 파들파들 다리를 떨었다.

그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헛웃음을 지으셨고.

- 허. 하다하다. 거미까지.

이어서 당옥기가 입을 열었다.

“…어? 얘들이 왜 이러지? 혈수만독주는 활발한 녀석들인데 좀 이상한데요 도련님?”

당옥기는 이미 이름까지 붙인 한 쌍의 혈수만독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기보다는 기회다 싶었다.

“허가 임생.”

“예?!”

“단단이가 이상하다는데?”

“이, 이백 냥만 받겠습니다.”

- …알뜰하다 알뜰해.

* * *

나는 그렇게 혈수만독주까지 구매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낙찰받은 물품들의 대금까지 합하여 한 번에 치렀다.

“낙찰받으신 물품이 부피들이 큰 것은 아니시라, 혈수만독주만 빼시면 등짐 하나 정도로 포장이 될 듯한데 그렇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공자님?”

“혈수만독주는 단단이 네가 들고 갈 것이지?”

“네!”

“그럼 혈수만독주는 우리가 들고 가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그렇게 포장을 한 뒤. 옆의 천막에서 대기하고 있는 내 호위 무사가 있는데, 을축이라고.”

“예!”

“그 녀석을 불러다 짐을 넘기고 천천히 가고 있을 테니까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라.”

“예!”

“혹여라도 품목 중에 빠지는 게 있으면….”

“아이고!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두 번 세 번 확인하겠습니다.”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거 좋은데, 거기에 빠르게까지 추가해라.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복창해라. 빠르고.”

“빠, 빠르고.”

“정확하게.”

“정확하게.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경매장에서의 볼일을 마무리한 나와 당옥기는 혈수만독주가 들어 있는 목함에 다시금 검은 휘장을 씌우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경매장을 나선 뒤.

저물어가는 해에 맞추어 슬금슬금 폐시(閉市)를 준비하는 로하구의 시장을 가로질렀다.

이 시대의 수공예품들이 내구가 좋기가 힘든데, 특히나 유리는 더더욱 그러하였기에 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 안가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고 있는 그때.

“흐흫.”

값을 치르고 혈수만독주를 인수해서 경매장을 나선 이후 지금까지 내도록 당옥기가 생글거리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지며 입이 열렸다.

“좋냐?”

“완전! 당가타에서는 다들 갈아 넣기 바빠서 절대 살아 있는 혈수만독주를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정무학관에 입관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네 마리 사줬으면 울었겠군.”

“그건 아니고. 당문의 사람은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지.”

“……? 회과육 먹을 때 짰잖아?”

“캬아악! 그건 잊어! 그날은 그냥 내가 좀…! 하. 아무튼! 너 돈 많은 거 봤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쌀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걱정했는데?”

“가격도 엄청 저렴하게 사서 좋아. 네 사기 실력 진짜 최고야.”

“……?”

“당할 때는 진짜 어어 하는 순간 천독단이 네 손으로 넘어가 있더니, 같은 편이니까 진짜 든든하네, 신분 확인하려고 할 때 내심 이거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와. 거기서 감당 가능하냐 소리를 해버리데?”

“???”

“흐흫. 아무튼 너는 당문의 친구다!”

당문의 친구라.

천하제일 독문의 친구가 되면 그만한 배경도 없지.

퍽 듣기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당옥기가 당가의 장중보옥이라도 그건 그녀의 권한 밖이었다.

“가주도 아닌 게 공전표 날리지 마라.”

“허. 내가 도와달라 그러면 아버지는 물론이고 영감들이랑 할멈들이랑 숙부 숙모 언니 오빠 다 팔을 걷어붙여 주거든?”

“그건 네 일일 때 이야기고. 당문의 친구가 그렇게 가벼운 말이 아닐 텐데?”

“…재미없어. 좀 대충 넘어가 주면 안 돼?”

“응. 안 돼. 돌아가. 고맙다는 뜻은 알겠으니 허울뿐인 말은 괜히 하지 마라.”

“그, 그럼 당옥기의 친구다.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팔을 걷어붙여 줄게. 그리고 네가 나를 엄청나게 열받게 해도 최소한 한 번은 봐줄게.”

“열받는 걸 참는 걸로 한 번은 너무 짠 거 아닌가?”

“그, 그럼 두 번?”

“두 번은 정 없고.”

“세 번! 아, 더 이상은 안 돼! 하씨 어어 하는 사이 또 말렸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와 당옥기가 안가로 향해 가는 언덕의 중턱 즈음에 다다랐을 때쯤 등짐을 짊어 멘 하성이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와 입을 열었다.

“도련님! 단단아!”

“그거 이제 그만해도 된다.”

“넵! 그건 그렇고 저만 버려두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웬 놈이 와서 용운 형님이랑 옥기 누님은 먼저 간다고 그래 가지고 놀랬잖습니까!”

“버린 게 아니라 경매장 안의 상황이 좀 재밌게 돌아가게 되는 바람에 잰 체를 좀 해야 해서 그렇게 됐다.”

“그랬습니까?”

“그래. 설명하자면 긴데, 나중에 학관 돌아가서 설명해 주도록 하마, 자치회 식구들도 물어볼 텐데 두 번 말하기 입 아프다. 그래서 물건은 다 챙겼고?”

“제가 누군데요. 여기 적힌 품목이 맞으면 다 챙겨 왔습니다.”

하성이 녀석은 내심 칭찬을 기대했던 모양인데, 어째선지 콧방귀가 먼저 나왔다.

“청죽관의 새는 바가지지 누구긴 누구야.”

근데 목록을 살펴보니 빠진 건 없는 것 같았고, 어떻게 보면 언질 없이 남겨두고 온 것은 또 사실이라.

하성이도 나름대로 제 몫을 다한 게 맞아서. 나는 녀석이 원하는 격려의 말을 돌려주었다.

“수고했다.”

그러자 신이 난 하성이 녀석이, 역할 놀음으로 쌓은 업보를 까먹었는지, 당옥기에게 친한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거기 든 게 홍옥이랑 석류입니까?”

한데, 당옥기도 기분이 좋아서 단단이로 분하며 쌓은 원한을 잊었는지, 생글거리며 그런 하성이 녀석을 받아주었다.

“응! 보여줄까?!”

“오! 좋죠. 석류석 같은 눈 복슬복슬한 털, 진홍색 다리 듣도 보도 못한 영물인데, 만져보는 것도 가능합니까?”

“…음. 아까 나오면서 먹이를 줬으니까 괜찮을지도?”

그렇게 당옥기가 들고 있던 목함의 휘장을 걷었고.

하성이 녀석은 휘주에 계실 제 모친을 찾았다.

“엄마. 깜짝아.”

하성이 녀석이 그러든지 말든지.

당옥기는 혈수만독주의 상태를 가만히 가늠해 보더니.

순수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목함의 먹이 투입구를 열어 하성이 쪽으로 가져다 댔다.

“만져보고 싶다며. 만져봐.”

그때였다.

그렇게, 하성이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흙빛이 되어가는 이때.

언덕 아래에서부터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그에 하성이는 구세주를 만난 듯 말을 돌렸는데.

“누가 오는데요?! 형님 누님?!”

구세주라기엔 칙칙하기 그지없는 다섯 대의 마차가 달려와 줄줄이 서자, 그제야 수상함을 느꼈는지, 허리춤의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 아니고. 뭐 하는 놈들이냐!”

그러자 다섯 대의 마차 중 가운데 있는 가운데 있는 호화스러운 마차의 차창이 드르륵- 열리더니, 웬 돼지 같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백십사 번 입찰자 되시는가?”

“맞다면?”

“이야기 좀 하지. 내 수하 놈에게 듣자 하니 경매에 나오기로 된 혈수만독주를 그쪽이 주최 측을 구워삶았는지 뒷구녕으로 빼갔다던데? 이것도 맞나?”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혹시 해금방주냐?”

“호오. 나를 알고 있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돼지의 말이 끝나자, 남은 네 대의 짐마차에서 시커먼 복장을 한 녀석들이 시퍼런 날붙이를 뽑아 들고 줄줄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돼지 놈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낙찰받은 물건 다 내놔라.”

그런 녀석의 음성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쯧쯧 차셨다.

- 법 없이 살던 놈 같은데, 그동안 밀린 세금을 한목에 다 내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차라리 죽이겠다고 할 것이지 천하의 언용운이에게 물건을 내놓으라니. 쯧쯧. 불쌍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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