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06화 (106/444)

제106화. 무림맹으로 (1)

“무림맹 견학? 청죽관이 우승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따라가? 너희 기숙사 생도들이 가는 거 아냐? 아니 애초에 도보다 검이 어울린다는 그 말은 뭐냐니까?”

팽소진은 한 번에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두 질문 모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신입생들의 무림맹 견학은 지금까지 춘계 기숙사 대항전 우승 기숙사의 전유물이었다.

하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고.

도보다 검이 어울리는 것 같다는 말도 저런 반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하나, 나는 둘 중 한 가지 물음에만 답을 돌려주었다.

“지금까지 무림맹 견학권은 춘계 기숙사 대항전 우승 기숙사 인원들만으로 구성됐습니다만, 저희는 활약한 다른 기숙사 생도들에게도 자리를 마련해줄 생각입니다. 아마 윤국관에선 제갈설지랑 누님이 포함되실 것 같습니다.”

“…뭐? …어, 고맙긴 고마운데. 그거 그래도 되는 거니?”

“제도를 물으시는 거면 이 제도의 원래 취지가 그렇다는 말씀을 드릴게요.”

“아니 내 말은 평판이나 그런 것 말이야. 청죽관 내부의 기대도 있을 텐데? 다른 기숙사에 베푼다고 무조건 고마워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니?”

확실히 하북팽가가 배출한 첫 번째 윤국관 생도답게 시야가 넓긴 하네.

‘팽소천이었으면 우와! 신난다! 하고 끝이었을 텐데.’

뭐, 아무튼.

원작에서도 그랬기에 ‘그렇게 진행하는 게 왕도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나는 적당한 구실을 떠올려 입을 열었다.

“청죽관 내부의 일은 누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남이 어떻게 생각하고 떠드는가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그냥 제가 맞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일 뿐이니까요.”

그런 내 말에 팽소진은 잠시 한 대 맞은 표정을 짓더니, 의식적으로 콧방귀를 뀌고 나섰다.

“대협 나셨네. 그런 녀석이 하북에서는 왜 그렇게 속을 썩였….”

하나, 그런 태도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용운이 얘가 벌인 망나니짓도 다른 의도들이 있었나?’ 같은 소리를 하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휘휘 젓고는 돌려받지 못한 두 번째 질문의 답을 요구해왔다.

“…그,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 두 번째 답을 못 들었어!”

하나 그건 팽소진 스스로 고민을 해야 할 문제였다.

도 대신 검을 드는 일은 당장에 내가 몇 마디 거들어 줘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뇨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누님이 답이라고 여기시지 않으셨을 뿐이죠. 견학에 따라오시면 아시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런 내 말에 팽소진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안 들어도 뻔했다.

‘좀 더 직관적인 그리고 즉각적인 답을 원하는 거겠지,’

하나, 쌀에 물만 붓는다고 밥이 되진 않는다.

팽소진에겐 홀로 속을 끓일 시간이 필요했다.

하여 나는 팽소진의 첨언을 허락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고, 다음으로 손가락을 뻗어 윤국관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누님 기숙사로 돌아가시라는 축객령이었다.

물론 팽소진은 내 축객령을 순순히 받아들이려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내 할 일을 했다.

뽕-

두강주의 뚜껑을 뽑았고 회한에 술을 부었다.

애초에 사부님과 축하주를 나누기 위해 나왔던 걸음이었으니까.

* * *

정무학관 신입생들의 무림맹 견학은 연례 행사로 치러지는 행사였으나, 날짜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뭔 놈의 연례행사가 날이 딱 정해져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는데.

무림맹주가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고.

무림맹도 고생하는 것에 비해 위신이 여타 무협지에 비해 낮아 그렇지 절대로 한가한 조직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강호를 어떻게든 돌아가게끔 하는 사람들이니까.’

물론 본부 건물이야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긴 하지만.

정무학관이 신입 생도들을 굳이 가려 뽑아 학기 중에 무림맹 견학을 시키는 이유는?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 무림인들의 모습을 신입생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고 깨닫는 바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취지에 행해지는 학사 일정이었기에, 저쪽에서는 무림맹주 이하 군사부와 집행부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본부에 있는 때를 맞춰야 했고.

이쪽에서는 견학을 가는 생도의 명단을 추려서 무림맹 쪽에 보내 확인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는 저쪽에서 일이 좀 생겼지.’

일이라 하여 흉사는 아니었고.

내가 은하연을 시켜 익명으로 넣은 투서가 빛을 발해, 관에서는 배와 수군을 빌려주고 무림맹은 타격대를 동원하여 해금방을 토벌한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 뒷수습을 한다고 무림맹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거지.’

그 바람에 무림맹에서 맹주는 돌아오셨고 대군사와 약왕은 아직인데 괜찮냐는 전언이 왔는데.

나는 경룡이 형을 앞세워 그래서야 본연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 결과 일정 자체가 조금 미뤄졌다.

‘팽소진이 속을 끓이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날 뿐.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늘어난다고 나한테 나쁠 건 없지.’

어차피 맹주님이랑 약왕 두 분 모두 계셔야 이번 견학이 의미가 있었다.

‘팽소진을 맹주님께 소개시켜 드리고 받아 챙길 소개비.’

그리고 약왕께 받을 진맥.

‘그 끝에 있을 금침대법과 부속물.’

약왕의 대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놓기에 그 효능이 인물마다 달랐는데, 대체로 강남상왕께 받은 바 있던 담천약수와 비슷한 효과가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단을 먹어 생긴 독을 날려 휴약 기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들이 났었지.’

보준이네 집에서 흘러나와 경매장을 거쳐 손에 들어온 천왕오행단.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 생도로 선정되며 받은 홍매단.

수중에 영단이 두 개나 있어도 먹지를 못하면 오라지는 것이다.

약왕을 만나면 그게 해결될 것이었으니 나로서는 기다림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내가 그렇게 강시학개론 수업 중에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궁시렁거리는 당옥기의 목소리가 상념에서 나를 끄집어냈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에 고개를 들어 강의실의 전면에 있는 흑판을 보니 어느새 판서가 가득했다.

탁- 탁-

쓰윽- 탁탁탁-

“자 여기 흑판의 판서를 보아라. 주술에 문외한인 수강생이라도 한 번쯤은 보았을 부적의 형태일 것이다. 이곳이 바로 부적의 머리라 할 수 있는 부수(符首), 그리고 여기 아래를 묶어 부신(符身)이라 하는데 부신 중에서도 주술의 근간을 담당하는 것이 일 교시 내내 설명했던 부담(符膽), 마지막으로 주술이 발현되는 경로를 구성하는 이곳이 바로 부각(符脚)이다….”

그 양이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었고, 다른 수강 생도들은 열심히 그걸 받아 적고 그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 중에 붓을 놀리지 않고 있는 사람은 나와 당옥기가 유일했다.

“안 받아 적냐?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녀석이 필기도 안 하면 나중에 학과 시험은 어떻게 치려고?”

“그러는 지는? 지도 안 받아 적고 있었으면서. 보니까 아주 혼백이 흩어지시던데 눈 뜨고 잔 거 아니야?”

“나는 다 알겠어서 그런 거고.”

“참나. 허풍은. 지네 교수님 수업이라고 앞줄에 앉은 모산파 출신 애들도 그 부담인지 부장인지 한참 설명할 때는 눈이 흐리멍덩해지던데, 방금까지 졸아 놓고 저걸 다 이해했다고?”

한데 당옥기의 눈이 반원을 그리며 풋 하는 웃음이 입에 걸리는 이때.

이 수업을 담당하는 모산파 출신 영환 교수님이 판서를 마쳤는지, 손을 탁탁 털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 부적의 효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시를 다루는 학문은 결국 이걸 고민하는 학문이다. 자 그럼 내가 여기 흑판에 그려놓은 기본형의 부적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을 올릴 수 있을지 발표해볼 사람? 발표 내용이 좋으면 가산점을 주마.”

결이 좀 달라서 그렇지 내가 속속들이 아는 학문인데 가산점은 못 참지.

나는 번쩍 손을 듦과 동시에 당옥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만약 교수님이 내 발표를 인정하시면 은자 두 냥 이다?”

* * *

“…그런 이유로 부담과 부각을 합하여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술사에 따라 아예 시체에 새기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훌륭하다. 청죽의 언용운 후보생. 진주 언가는 육십여년 전에 강시종의 맥이 끊겼다고 알고 있는데, 홀로 생각한 것인가?”

“교수님의 수업이 워낙 좋아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렀습니다.”

“흠흠. 그, 그랬나? 이것 참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군. 아무튼 출석부의 이름 옆에 가산점을 올려놓도록 하지,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다음 시간에는 직접 부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테니 오늘 배운 것들을 잘 복습해 놓고 준비물들을 잊지 말도록.”

그렇게 강시학개론의 수업이 끝났고.

다음 수업을 위해 서책을 바꾸러 자치회실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당옥기를 향해 손바닥을 내보였다.

“…뭐. 어, 어쩌라고.”

“은자 두 냥. 내놔야지.”

“나는 한다고 한 적 없잖아. 언용운 네가 일방적으로 말한 거지.”

하나, 당옥기는 순순히 은자를 내놓지 않았다.

“거, 은 소저한테 듣자 하니 이번 춘계 기숙사 대항전 바둑 종목에서 나한테 걸어서 제법 땄다면서? 이렇게 쩨쩨하게 나오시겠다?”

“…….”

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비대칭 전력에 속하는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제갈설지 소저가 어느 동에서 무슨 수업을 들으시더라? 죽마고우가 자기가 아니라 나한테 거셨음을 제갈 소저도 아셔야 할 텐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옥기는 겨자를 잔뜩 삼킨 표정으로 전낭을 열었다.

“줄게! 준다고!”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하셨다.

- …진짜 벼룩의 간을 내먹는구나…. 내 제자지만 참.

‘당옥기가 벼룩이면 세상에 벼룩이 한 마리도 없을 겁니다. 연구실 내줘, 연구비 지원해줘, 홍옥이랑 석류도 사줘, 대회에서 부상으로 탄 영초들도 연구하라고 내줘. 세상에 저런 벼룩이 어딨습니까?!’

- 그거랑 같느냐? 그거는 결국 성과가 나면 네가 최대 수혜자 아니더냐?!

‘너라뇨 사부님. 이건 저희 파천검문 전체에 이로운 일이지요.’

- 전체라고 해봐야 제 놈 한 명이면서 말은….

그렇게 잠시 당옥기에게 은자 두 냥을 뜯은 일로 사부님과 투닥이게 되었는데.

정작 당옥기는 막상 은자를 내주고 나니 홀가분한 모양인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근데 진짜 잘 알더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시간 날 때 독선생(獨先生 : 과외 선생) 부탁해도 돼?”

“독선생이면 단둘이 공부를 하자는 건데, 내가 이해한 게 맞냐?”

“어? 어어?”

“흠. 안 될 건 없는데, 요금은 별도다? 혼자 들으려면 가격이 엄청 비쌀 텐데? 아 동아리를 모으면 값이 좀 내려갈 수는 있겠다. 근데 너 이거 같이 듣는 친구는 나밖에 없지않냐?”

“캬악!!”

“그리고 필기나 똑바로 하고 그런 말을 해라. 그럴 거면 대체 뭐 하러 이 수업을 듣는 건데?”

“아, 강시학개론이라 돼 있길래 시독(屍毒)에 관한 공부를 좀 할 수 있을지 알았지! 독강시에 대해서도 배운다고 하고! 그리고 그 주담? 부담? 거기서 갑자기 머리에 쥐가 나서 멈춘 거지 앞에는 제대로 필기했어. 자 여기 보라고!”

음. 하긴 했네.

“다음부터는 머리에 쥐 나도 일단 필기해 놓고. 그다음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라.”

“알았어.”

“근데 너 니네 기숙사로 안 가고 왜 청죽관 쪽으로 와? 강시학개론 있는 날은 만날 오후 수업 없다고 만날 방에 가서 쉬다가 점심 먹을 때나 돼야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는 녀석이?”

“우리 기숙사 요즘 완전 초상집이야. 숨이 막혀서 못 있겠어.”

음. 안 봐도 풍경이 보이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럴 게 향란관이 최초로 한 자릿대 총점을 기록한 가운데, 줄곧 한 자릿대 총점을 기록해오던 청죽관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상황이었다.

‘분위기가 좋으면 되레 이상하지.’

그때였다.

그렇게 보지 않은 향란관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이때.

당옥기가 나를 향해 한 가지 질문을 해왔다.

“아, 근데 그거 진짜야? 그 뭐 견학? 그거 다른 기숙사 출신도 넣어 줄 거라면서? 근데 운매랑 윤국은 두 자리씩 주고 우리 기숙사는 한 자리만 줬다며?”

“그걸로 우리 향란관 생도 여러분들께서 또 다들 입들이 댓 발 나오셔서 씨부렁거리고 다니시나 보지?”

“…어. 그게.”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당옥기는 순간 말을 더듬더니 ‘자기는 그런 생각한 적 없다.’, ‘꼴등 해놓고 아직도 코가 덜 꺾였다.’ 같은 소리를 하며 제 기숙사 욕을 했다.

하나, 어차피 향란관이 저렇게 굴 것이야 일찍이 예상한 바였고, 사실 향란관 친구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하여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향란관도 두 자리야.”

“어? 그래? 한 자리라고 남궁윤을 보내니 마니 그러는 것 같던데? 내가 잘못 들었나?”

“느그 자치회에서 알아서 정해서 제출하라고 내준 자리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

“나?”

“그래 약왕 어르신도 뵐 수 있는데 가고 싶지 않아?”

“근데 나는 기숙사 대항전 때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렇게 치면 남궁윤도 향란관 대련조 조장이면서 예선 탈락에 크게 기여한 거 말고 한 거 없어.”

사실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견학 인원은 스무 명.

지금까지 다른 기숙관들은 그 스무 명을 자기네 생도들로만 채워왔다 하여 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인원에 들어가 왔다.

내가 그 점을 이야기하자, 당옥기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래. 그러니까 가고 싶어도 가고. 가기 싫어도 가.”

무조건 가야지.

가서 이것저것 견문도 좀 넓히고 특히 연구한 자료 들고 가서 약왕어르신께 조언도 좀 듣고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가지 뭐, 흐흥.”

뭐, 그렇게 당옥기가 참가 의사를 확정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기숙사에서도 차례차례 추천 명단을 보내왔다.

윤국이 가장 빨리, 운매가 그다음, 향란이 질질 끌다 제일 마지막에 추천인을 제출해 왔는데.

나는 각 기숙사에서 보내온 추천인에 내가 생각해둔 사람들을 더해 명단을 확정했다.

그렇게 이쪽의 견학자 명단이 확정되는 사이, 무림맹도 굵직한 일들이 끝났는지.

그로부터 며칠 안 있어 정무학관의 행정처와 무림맹의 집행부 간의 일정 조율이 완료되었다.

그리하여 신입생들의 견학 연휴 기간이 결정되었고.

파릇파릇한 싹이 산과 들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어느 날.

우리는 사색 구분 없이 오랜만에 하얀 무복을 동일하게 갖춰 입고 정무학관의 본관 앞에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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