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16화 (116/444)

제116화. 그거 내가 해주면 어떻겠나? (2)

공손무결이 말을 더듬는 모습이라.

‘이거 귀하네요.’

- …? 갑자기 뭐가 귀하다는 것이냐?

‘그런 게 있습니다.’

아리송해하시는 허리춤의 사부님은 제쳐두고.

공손무결의 당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문에서 쫓겨난 나를 제자로 삼는 거랑 가문에 잘 속해 있는 팽소진을 제자로 삼는 것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지.’

하물며 그 가문이 모용가와 더불어 도의 종가를 자처하는 하북팽가인데 방계도 아니고 직계.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그 팽무혁.

‘게다가 공손무결 본인은 무림맹주.’

위세가 조율자 수준에 불과하다 하나, 어쨌거나 무림맹주는 백도 무림의 얼굴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강호의 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공손무결은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잘 알기에 당황한 것이었고.

“흠.”

그렇기에 저렇게 고심을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공손무결의 입에서 긍정적인 답이 나오기를 기다려볼 만했다.

‘공손무결은 당금 강호의 균형과 질서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후학을 길러내는 것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입학식 직후에 나를 찾아왔던 것만 봐도 그렇고, 백본회의 부회주 남궁욱을 조만간 찍어 내겠다고 다짐한 것만 해도 그랬다.

‘원작에서도 팽소진을 제자로 거두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팽소진 그 친구는 그러겠다 하던가?”

잠시간의 고민 끝에 공손무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실상의 승낙이었다.

“예.”

“하기야 그러겠다 했으니 자네가 내게 이 말을 꺼냈겠지? 윤국관의 생도이자 팽가의 직계인 팽소진 생도가 검을 배우겠다는 것이 어떤 일을 낳을지 모를 리는 없고. 그 친구도 속 좀 끓였겠구만. 흠. 뭐, 알았네.”

“감사합니다 맹주님.”

“아직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일단 자질을 한번 봐보겠다는 이야기지 확답은 아니니까.”

당장은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확답이 될 것이다.

원작에서 공손무결의 별호인 구패검을 이어받아 구패검녀라 불리게 되는 팽소진이니까.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 됐다.

‘팽소진이 원작의 주인공 세대고, 도를 버리고 검을 쥐며 성장하는 인물인 만큼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이야.’

이 건의 칼자루는 오롯이 공손무결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하여 나는 포권을 취하며 공손무결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이쪽으로 기울게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예. 저도 그저 주제넘은 청에 귀를 기울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구패검이라는 명성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잠시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얼마나 고강한 검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맹주님의 제자 자리를 쉬이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본 것과 원작의 독자이던 시절 읽었던 정보들을 적절히 조합해 말을 이었고.

“춘계 기숙사 대항전에서 팽소진 생도와 대련을 하였는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째선지 맹주님의 검이 겹쳐 보이길래, 맹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시는 호의를 믿고 떼를 한번 써봤습니다. 당연히 맹주님의 눈에 차지 않으신다면 그만인 일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공손무결은 맹주실이 떠나가라 파안대소를 터트리더니.

“하하하. 자네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가만 보면 백본회에서 고이고 고인 늙은 너구리들 같단 말이지, 근데 그 영감들과는 달리 밉지가 않아.”

“예?”

“아마 마음이 예쁘기 때문이겠지.”

“…예?”

이런 말을 해왔다.

공손무결의 말에 사부님께서는 그야말로 헛웃음을 터트리셨고.

- ……? 평생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어이가 없는 이야기로다…. 누구의 마음의 뭐가 어쩌고 저째?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사부님.

아무튼 무슨 말씀을 하려고 저렇게 운을 떼시나 가만히 듣고 있으니.

“뭐 진주언가와 하북팽가의 돈독함이야 나도 익히 알고 있네, 또 맹호지체를 타고 나지 못한 팽가의 도객들이 겪는 벽도 잘 알고 있고. 어린 시절 같이 어울려 자란 누님이 겪는 심마가 걱정이 되었겠지. 내 방금 내 입으로 확답은 아니라 했으나, 팽소진 생도가 갖춘 성실함이나 오성에 관한 것은 익히 들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결과 자체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온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렇게 팽소진의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일단락을 지은 공손무결은 새로운 화두를 던져왔다.

“그건 그렇고. 내 자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네.”

“선물 말씀이십니까?”

“그래. 생도 겸 투자자인 은하연생도를 빼면 아직까지 청죽관은 제대로 된 후원 제의가 없다지?”

뭐,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계신 분은 많았다.

하북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학관의 총장이신 경혜사태, 학관생 식당의 주사 고고와 숙수 아재들, 단강제일객잔의 주인 영감.

피해 보상이라는 형태로 실질적인 금전을 제공한 어둠의 후원자들도 있었다.

보준이와 아이들, 양금표, 해금방주, 향란관의 어둠의 자식들.

‘아 좋은 물건들을 헐값에 준 로하 약령시의 그 양반도 쳐야 하나? 이름이 뭐였더라 허혜자였나?’

- 허임생 아니냐?

뭐, 아무튼.

제대로 된 후원자는 아직 없었다.

“예. 당장은 없습니다.”

“청죽관의 춘계 대항전 우승은 천하가 놀랄 일이니, 제안 정도는 있었을 텐데?”

“입지 제고를 노리는 상단과 정무학관과 가까운 입지를 가지고 있는 입시 무관들에서 제안들이 오긴 했습니다만. 몇 푼 안 되는 돈에 청죽관의 이름을 내어 줄 수는 없는 일이라 거절했습니다.”

“그거 내가 해주면 어떻겠나?”

* * *

맹주님의 후원 제안을 받아들인 나는 견본 삼아 가져가라며 내어주신 검 한자루를 들고 견학을 온 생도들에게 제공되는 숙소로 돌아왔다.

한데, 내 방 안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언용운 그 자식이면 진짜 맹주님한테도 뭐 뜯어 올 수도 있어.”

“…에이 설마요.”

“말 자체가 좀 그렇습니다. 뜯는다뇨. 언 소협께서는 제가 본 또래 중에 누구보다 의와 협 그리고 도를 아시는 분입니다.”

“정현 얘랑 말하면 진짜 감저(甘藷) 백 개 먹는 것 같네. 아 비밀로 하기로 해서 말은 못 하는데 내가 당해봐서 잘 안다고. 하성아, 그렇잖아?”

“그런 식으로 그 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용운 형님께 불충이다. 단단아.”

“캬아아악! 불충은 무슨 우리가 군신 관계냐?!”

“나는 근데 옥기 말에 동의. 옥기가 한 말이 입이 좀 험해서 그렇지, 말은 맞지 않나요? 제 생각에도 빈손으로 오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내기하실래요 정현 도장 우 소협?”

사인실이 기본이고 남자 숙소와 여자 숙소가 따로이건만, 어째선지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해가 아직 중천이라 한창 견학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있어야 할 녀석들이 왜 여기서 재잘거리고 있는 것일까?

‘약왕당 이후로는 알아서 하라고 풀어줬더니 벌써 개판을 치는 것인가?’

금부장은 들라를 외치고 싶은데, 내겐 금부장이 따로 없으니 직접 나서야지.

달크닥-

나는 곧바로 문을 열어젖힌 뒤.

언 동생들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냐?”

“엄마야!”

그런 내 행동에 문과 가장 가까이 있던 당옥기는 사천에 계신 모친을 찾았고.

“오셨어요?”

“오셨습니까?!”

나머지 녀석들은 입을 모아 ‘오셨습니까’를 말했다.

“그래 왔다. 니들은 근데 여기서 뭐 하냐? 견학 일정 소화 안 해?”

그런 내 말에 은하연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 했어요.”

“다 했다고? 오늘 맹주님 면담 일정은 차례대로 나랑 남궁윤이랑 곡준평 이렇게 셋 뿐일 텐데? 맹주님 만나는 거 말고 일정이 널럴한 부서가 있었나? 다들 어디를 신청했길래 벌써 끝났소?”

“백본회요.”

어. 백본회면 인정이지.

거기야 대회의실이랑 상원실 하원실 구경하고 다과 좀 주워 먹고 그러면 끝이니까.

근데 백본회가 꿀빠는 곳이라는 걸 얘들이 어떻게 알았….

아. 그러고 보니 소진 누님한테 쉬라면서 백본회 이야기할 때 정현이랑 우소릉이 있었지 참?

‘너냐.’

나는 곳 바로 정현을 응시하며 눈으로 말했다.

“비, 빈도는 아닙니다.”

“그럼 소릉이구나.”

“마, 말하면 안 됐던 건가요?”

“아냐. 어제 다들 고생했기도 하니 하루쯤 여유 있게 가는 것도 괜찮지. 괜찮아. 나 화 안 났어.”

“다행….”

“그저 학관에 돌아가면 더욱더 열심히 살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 뿐.”

“…….”

뭐, 아무튼.

나는 공손무결에게 받아온 검을 소릉이 녀석에게 내밀었다.

“됐고. 이거나 받아.”

내가 건넨 검을 뽑아본 우소릉은 눈동자를 키웠다.

“어. 이건 백령정강(百鍊精鋼)으로 만든 검이네요? 저를 주신다고요. 이거를요?”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백련정강이란 일정 기준의 강도에 이르기까지 단련을 한 최상의 강철.

원작의 설정상 특정 지역에서만 나는 한철과 현철, 운석에서만 구할 수 있는 운철을 제외하면 병장기로 벼려냈을 때 가장 좋은 최고의 재료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한철검 쓰는데 너만 단강구 대장간에서 파는 싸구려 철검 쓰잖아. 우선 네가 받는 게 맞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언 형! 와! 조심조심 사용할게요…! 아. 근데 다른 동기들이나 선배님들도 다 저랑 같은 단강구제 철검 사용할 텐데. 제가 이걸 먼저 받아도 될까요?”

그랬다.

은하연이 총무부장으로 들어앉고 나선 근래 들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다른 기숙사들과 달리 집안 형편도 기숙사의 재정도 썩 좋지 않은 게 청죽관의 실태였고.

단강구의 무기점들은 생도들이 사줄 것을 믿고 배짱 장사를 해서 백련정강을 사용한 검에는 어마어마한 바가지가 붙는지라, 대부분의 청죽관 생도들은 소릉이 녀석과 같은 검을 사용했다.

‘심지어 저 저질 철검도 다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동질의 검보다 세배는 비싸.’

나름대로 지원해줄 계획은 학기 초부터 궁리하고 있었다,

‘근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예산을 잡아먹는 항목이라.’

청죽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재원을 확보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검기를 자유자재로 통제해낼 수 있는 검기성사가 가능해지는 이른바 절정고수 반열에 들기 전까지 무림인들은 부단히도 병장기를 부숴 먹는다.

한데 청죽관의 생도들의 전반적인 무위가 일류에서 고수 정도였다.

나나 정현이나 은씨 남매처럼 한철로 만든 개인 검이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한창 병장기를 잡아먹는 단계였다.

‘우리 기숙사 사람도 아니고 현철도였기에 예가 완벽히 맞지는 않지만 소진 누님처럼 대련 중에 날려 먹기도 하고.’

이가 나가기 일쑤요, 저질 검을 사용하는 경우 기 주입이 과했을 때는 떨어뜨린 도자기처럼 깨져나가는 경우도 왕왕 생기니 마냥 퍼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오늘부로 당분간은 해결이 됐지.’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받아도 된다. 선배님들이랑 다른 동기들 것도 있거든.”

그런 내 말에 언 동생들이 저마다 눈을 키웠다.

“예?”

“네?”

“그, 그러고 보니 언 소협께서 우소협에게 검을 주실 때 우선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언 공자? 그 말씀은 청죽관 정원만큼의 백련검을 얻어 오셨다는 건가요? 무림 맹주님한테서?”

“정원은 아니고.”

“아. 그건 너무 많긴 하죠. 그럼 얼마 정도일까요? 누구한테 먼저 돌아가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지 짬짬히 계산 좀 하고 있으려고요.”

“세 곱절.”

“세 곱절밖에 안 되면 일단 이삼 학년 선배님부터… 잠깐만요. 세?! 세 곱절이요?!!”

“이거 보라니까. 사기 쳤네! 사기 쳤어! 내 말이 맞지?!”

“젠장 믿고 있었습니다! 용운 형님!! 무복 벗고 소리 질러!”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가 된 내 숙소.

나는 우선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거 은 소저 눈 튀어나오겠소.”

“아. 죄송해요. 순간적으로 놀라서.”

“그리고 당옥기 너는 청죽관 생도도 아니면서 도대체 여기 왜 끼어 있는 건데?”

“…….”

“그리고 은하성.”

“닥칠까요.”

“잘 아네.”

그에 주위가 진정이 되었다.

나는 차분하게 공손무결이 청죽관의 후원자가 되어 주기로 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무림맹에서는 훈련용 병장기의 경우 사용 연한을 정해 놓고 사용하고 때가 되면 그걸 민간에 불하를 하거나 녹여서 다시 재료로 돌린다고 하오.”

“맞아요. 그렇게 기간을 정해 놓고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교체를 하죠, 지역 대장간 활성화 및 젊은 장인 육성의 일환으로 하는 일이라 그렇게 한다고 알고 있어요, 아! 맹주님께서 그걸 주시기로 하셨군요?!”

“맞소. 그 병장기들이 만들 때 넉넉하게 발주를 해서 사용 연한이 다 되었음에도 한 번도 안 쓴 것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로 골라서 주시기로 하셨소.”

“맹주님께서 언 공자를 이뻐하시더니 이렇게 큰 선물을 주셨네요. 흐흫.”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후원해 주시기로 하신 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오. 더 큰 게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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