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19화 (119/444)

제119화. 이 영감탱이가 (3)

특별 약식 감사는 일반적인 절차를 모조리 건너뛰는 제도인 만큼 마련된 세 개의 태사의에 앉아 있는 무림맹주, 대군사, 백본회주에게 부여된 권위가 강력했다.

‘그러니까 사실 남궁윤은 저렇게 입을 열면 안 되지.’

열거한 세 사람의 권위 앞에선, 남궁윤이 제아무리 천하제일 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적장자이자, 천하제일 후기지수 혹은 비룡검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도, 노삼 교수님이나 천장호의 발톱에 낀 때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녀석이 발언권도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입을 열었으니.

사실 누군가가 크게 경을 치는 게 맞았다.

“이보….”

하여 왼편에 서 있던 밀직원장 국도진이 일순 몸을 움찔했는데.

이 순간.

맹주님의 입이 복화술을 하듯 뻐끔했다.

나서지 말아보라는 것이었다.

‘하긴 여기서는 내버려 두는 게 낫겠지.’

고금의 병법들이 공통되게 이르기를 상대의 약점을 찌르라 했다.

남궁욱의 약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약점으로 그 대상을 한정하면, 늙은 여우의 약점은 누가 뭐라 해도 남궁윤이었다.

그런 남궁윤이 알아서 제 작은할아버지를 들이받고 있는 형국이었으니 공손무결 입장에서는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점을 알아채신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해 오셨다.

- 끌끌끌. 남궁가의 늙은이가 용이라 치면, 제 몸에 붙어 있던 역린이 삐쭉 떨어져 나와 본체의 심부를 찌르는 형국이로구나. 저 너구리 같은 영감탱이의 벌어진 입 좀 보거라! 끌끌끌! 아주 턱이 나가겠구나! 턱이 나가겠어!

대군사 제갈혜도.

보던 중 가장 흥미가 돈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꼬며 태사의에 허리를 기댔다.

‘팝콘 마렵네.’

나는 나대로 튀긴 옥수수를 떠올렸다.

뭐, 그러고 있는 사이.

남궁윤의 말이 계속해 이어졌다.

“맞는 말씀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낙양에 오는 중에 언용운 생도가 지시했던 일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역할 분담이었습니다! 그 일을 두고 가혹하다 하시면 소손이 천학비재(淺學菲才) 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유, 윤아.”

“그러고 보니 소손이 천학비재 한 게 맞긴 하더군요. 남들 다 할 줄 아는 밥 하나 못 짓고, 삽질 하나 제대로 못 해서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니까요. 예, 배움이 부족하고 재주가 모자란 게 맞겠지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니라….”

“그리고… 그 호랑이… 호랑이… 호랑.”

한데 한 대목에서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지 버벅대길래.

내가 조금 거들어 주었다.

“똥.”

그러자 안 그래도 벌겋던 남궁윤의 얼굴이 달군 쇠처럼 벌게지더니.

내가 뱉은 말을 주워 뱉었다.

“…똥에 관한 것은. 순전히 제가 억지를 부린 일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내팽개치고 제 마음대로 대오를 이탈했습니다. 제가 내팽개친 일은 언용운 생도가 했고요.”

“…….”

“소손이 불민하여. 동기 생도들과 언용운 생도에게 사죄의 말을 전한 바가 아직인데, 그를 꾸짖어 주시지는 못할망정 어찌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할아버님께서 이런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윤아 나는 그냥.”

“거기 계신 분이 제가 존경하던 작은할아버님이 맞습니까? 남궁가의 사람은 천하라는 이름을 이고 살아가야 하니, 항시 귀족으로 난 자의 의무와 체면을 잊지 말라시며 심계천하(心系天下)라는 말씀을 해주시던 그 할아버님이 맞습니까?”

“…….”

“아무튼. 이 자리에 벌을 청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저일 것입니다.”

남궁욱을 향한 남궁윤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제 작은할아버지에게 할 말이 끝났는지, 남궁윤은 백본회의 부회주 남궁욱의 좌우로 배석한 공손무결과 제갈혜에게 각각 포권을 취했다.

“감히 엄숙한 자리임을 알면서 장내를 소란스럽게 하였습니다. 감사장에서 소란을 피운 죄와 제 입으로 뱉은 낙양까지의 이동 과정에서 범한 실책, 그리고 허락 없이 이 자리를 벗어나는 무례, 이렇게 세 개의 혐의를 인정하며, 무림 말학 남궁윤은 무림맹의 뇌옥에 가 있겠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감사장을 빠져나갔다.

나가자마자 우측으로 방향을 꺾는 것을 보니 정말로 뇌옥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녀석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헛웃음을 터트리셨다.

- 저놈이 약왕한테 받은 약첩이 총명탕이었나? 갑자기 제 놈의 뻘 짓을 줄줄이 기억해 내더니, 방금 사과 비슷하게 한 거 아니냐?

아.

깜박이 좀 키고 들어오십쇼, 사부님.

웃음 터질 뻔했잖습니까.

- 깜빡이가 뭔데?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원래 대가리는 제법 돌아가는 놈입니다. 진즉부터 뭐가 옳고 그른지 남궁윤 본인도 알고는 있었을 겁니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세웠을 뿐이죠.’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저 행동도 저한테 사과한 것이라기보다는 제 놈 내심의 양심을 이기지 못한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뭐 그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긴 하네요.’

* * *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백본회주 남궁욱은 흙담이 허물어지듯 풀썩하고 자신의 태사의에 허리를 기댔다.

나름대로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하지만 같은 태사의에 앉은 사람 중 우측에 앉은 제갈혜는 그런 남궁욱의 기분을 신경 쓰는 여인이 아니었다.

가문부터가 남궁세가에 꿀리지 않는 역사를 자랑하는 제갈세가였고, 군사부는 출신 성분이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오로지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고 승진을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제갈혜는 퍽 고소하다는 듯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듣던 대로 손주분이 참 똑 부러지시네요. 부회주님?”

얼핏 칭찬으로 들리는 말이었으나, 조금 전에 남궁윤이 남궁욱 더러 소름이 끼친다는 말을 했다.

하니, 남궁윤이 똑 부러지면 자연히 남궁욱은 소름 끼치는 늙은이가 되는 이중으로 돌려 먹이는 말이었다.

“…….”

하나 남궁윤이 때리고 간 뼈가 너무 아픈 모양인지, 혼이 나간 듯한 남궁욱은 제갈혜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흥미가 식은 제갈혜는 몸을 쭉 하고 빼 공손무결에게 말을 걸었다.

“감사를 소집하신 부회주님은 저러고 계시고, 저는 거부권을 행사할 생각이었는데 맹주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셨죠? 그럼 그냥 이쯤 하여 끝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러십시다. 저는 남아서 부회주님이랑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대군사님께서는 바쁘실 텐데 먼저 나가 보십시오.”

“그럼 그럴까요?”

그렇게 태사의에서 몸을 뺀 제갈혜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대뜸 내게 말을 걸었다.

“너. 군사부에 방문 신청 할 거니?”

“예?”

“안 하려고 그랬지?”

귀신이네?

맞다.

사실 안 하려고 그랬다.

‘군사부의 일이라는 게 만날 서류 들여다보는 일일 텐데.’

그런 것은 이미 청죽관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기에 딱히 흥미가 당기지도 않았고.

제갈혜라는 사람이 대군사 자리를 노름으로 딴 것은 아닐 터.

비상한 머리로 망나니 시절의 행적 같은, 나로서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교묘하게 해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여 딱히 갈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갈 곳도 천지니까.’

표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나였지만.

제갈혜는 그간 내가 보여온 행보들을 바탕으로 그럴 수도 있음을 짐작한 것인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잠깐 어떠니? 정식 방문이 아니니까 일정도 아끼고. 음. 곤란한 질문도 안 할게, 바둑이나 한판 두자. 아, 선물도 줄게. 어때?”

- 우리 용운이가 선물은 또 못 참는데? 허, 확실히 대군사 자리를 꽁으로 먹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본 적도 없는 너를 너무 잘 아는구나!

‘?’

- ?

참내.

진짜 제자를 뭐로 보시는 겁니까?

- …인석아. 그런 말을 할 거면 대군사에게 고개는 끄덕이지 말아야지,

‘에이, 무려 대군사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죠.’

- 선물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하던 녀석이 말은 잘하는구나! 말은 잘해!

뭐, 아무튼.

“맹주님. 제가 이 친구도 좀 빌려가도 되겠는지요? 부회주님이랑 말씀하시는 동안 제가 차 한잔 대접하고 있을게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여기 일이 끝나고 나면 제가 기별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제갈혜를 따라 군사부의 대군사실에 방문했다.

그리고 선물을 받았다.

한데 사부님이 더 좋아하셨다.

- 우오오오오! 이건 자개로 만든 바둑판이 아니냐? 호오! 바둑돌은 또 옥이로구나? 돌에도 하나하나 세공이 돼 있고!

똑똑.

저기요?

‘…제자를 아주 속물 취급을 하시더니. 어째 본인이 제일 신나셨네요?’

- 험험. 내가 언제 신이 났다고 그러느냐?!

‘아 그러세요? 사부님 꺼라고 생각해서 간직하려고 했는데, 별로 신이 안 나시면, 제자가 이거 확 팔아먹어도 됩니까?’

- 어허. 대군사에게 받은 선물을 어찌 그리 함부로 취급하려 하느냐? 네 녀석의 전정을 망칠 일이 있느냐?

진짜 어이가 없네.

그렇게 어이가 없는 와중에.

제갈혜가 바둑돌이 든 함을 제 앞에 하나 내 앞에 하나 놓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어디 우리 설지를 물먹였다는 기력을 어디 구경 좀 해볼까?”

* * *

해가 완연히 저물어 여기저기 등불을 비롯한 인위적인 불빛들이 내걸리기 시작한 시각.

나는 공손무결의 명에 따라 나를 데리러 온 밀직원장 국도진을 따라 군사부를 나왔다.

짤그락- 달크닥-

짤그락- 달크닥-

한데, 빈손으로 제갈혜를 따라나섰던 내가 뭘 많이 들고 있는 게 이상했던 모양인지 국도진이 나를 향해 질문을 해왔다.

“한데, 그건 뭔가?”

“아. 바둑판입니다. 대군사님께서 선물로 주시더라고요?”

“손에 든 것 말고 그 허리춤에 새로 달린 못 보던 자루들 말일세.”

아, 이거요?

“처음에 분명 바둑을 한 판만 두시기로 하셨는데. 대군사님께서 한 번만 다시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은 대군사님께서 자네한테 바둑을 졌다는 말인가? 호, 호선으로?”

“예. 완곡히 거절하려고, 그럼 대진료를 내시라고 했더니. 아니 글쎄 정말로 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후. 제가 거절할 말이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진짜 어쩔 수 없이. 계속 두다 보니 어떻게 이만큼이나 쌓였습니다.”

“그, 그랬군. 음. 다왔군 그럼 맹주님과 이야기 나누도록 하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걸으니 어느새 당도한 맹주실에서 나는 공손무결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일은 잘 수습되었습니까?”

그런 내 말에 공손무결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쭉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수습되었다.

사실 수습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 했다.

애초에 배석한 사람이 무림맹주, 부회주, 대군사, 생도들 이렇게가 전부여서 관계인들만 생각을 맞추면 끝나는 일이었다.

나로서도 남궁윤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말이어서 중한 처벌을 당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녀석이 개과천선 중에 개 정도는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 그런 뜻을 전하니, 맹주님은 상당히 뿌듯해하며 역시 너는 협객의 자질이 있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셨다.

뭐, 아무튼.

그렇게 남궁윤의 무림맹 뇌옥 체험은 하루로 끝나게 되었고.

남궁욱은 애초에 맹주님께서 조만간 세가로 돌려보내야겠다고 결심을 하셨던 상태였는데.

이번 일로 남궁욱 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형태로 그날이 당겨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무림맹에서의 둘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셋째 날.

“나, 나한테 검을 알려주실 거라는 분이 무림맹주님이셨어?”

“예.”

“…아니 용운이 너를 아끼시는 거 같기는 하셨지만, 이, 이런 부탁까지 들어주셔도 되는 거야?”

“일전에 맹주님의 검을 견식할 일이 있었는데, 대회에서 대련할 때 누님이랑 그 모습이 겹쳐 보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번 봐달라고 했을 뿐이니, 제자가 되고 말고는 누님에게 온전히 달렸습니다.”

사실 말 일은 없겠지만.

“…아니 그래도.”

“도를 손에서 놓는 일이 쉬운 선택이 아니셨을 텐데 배울 거면 제대로 된 분한테 확실하게 배워야죠. 흔치 않은 기회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세요.”

“어. 그. 음. 이, 일단 알았어!”

이변은 없었다.

내 예상대로 팽소진은 원작에서 그랬듯 무림맹주 공손무결의 제자가 되었다.

둘째 날에 약식 감사 사태라는 초유의 액땜을 해서 그런가?

그처럼 이후로는 이렇다 할 사건 사고 없이 나와 동기들은 견학 일정을 알차게 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궁금했던 부서들도 알차게 견학하고 나니.

내 입에서 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만족스러운 견학이었다.’

목표했던 팽소진의 스승 찾아 주기는 대성공이었다.

원작에서 하북팽가 사람들이 팽소진에게 새 길을 열어준 것에 감사하며 정현에게 주었던 웅패환은 아직 못 받았지만. 그건 시간이 차차 해결해 줄 일이었고.

‘청죽관의 당면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이었던 백련검과 합격진도 해결됐어.’

약왕 어르신께 금침대법도 받았다.

함께 받은 중려환도 섭취하여 단전 안에 모아두었다.

‘운기와 수련을 거르지 않으면 차차 다 내 기운이 되어주겠지.’

이 기회에 좀 굴려 보려 한 남궁윤 쪽도 소정의 성과를 얻었다 할만했다.

거기에 추후에 추진할 사업의 핵심 인물이라 은하연을 시켜 만나 보게 한 예해수 선배도 우리의 사업 개요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으니.

‘남들은 수상록에 쓸 게 없다는데, 나는 숨길 이야기들을 다 숨기더라도 쓸게 넘친다 넘쳐.’

뭐, 아무튼.

그렇게 무림맹 견학 일정이 종료되었고.

나와 동기들의 환송을 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무림맹의 본관 앞에 모인 가운데.

우리는 무림맹을 찾아왔던 그날처럼 하얀 무복에 각자의 행장들을 매고 다시 한번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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