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초대하지 않은 손님. (4)
내심에선 살수들의 습격 사건의 배후가 마교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마교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 시점에서 함부로 입에 올려도 되는 주제가 아니었다.
‘일단 어째서 그런 짐작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해명하는 것 자체가 곤란해.’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 자체가 세계 선이 원작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지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 안의 마교가 이렇게 커졌어요를 외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천하에 내려앉을 것이었다.
‘고작해야 막 절정고수 초입에 들어선 수준에 불과한 나.’
그리고 그런 나와 비슷하거나 한 수에서 반 수 정도 아래인 주인공 세대들.
우리들의 실력으로 그런 혼란 속에 뛰어들었다간 얻는 것보다는 분명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잃는 것 중엔 여기 서 있는 녀석 중 누군가의 목숨도 있을 거고.’
나름대로 정이 든 녀석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도 바라지 않았고, 그로 인해 더욱더 뒤틀릴 사건들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만 알기로 한다.’
가능한 표면적인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당장의 상황과 원작의 흐름을 최대한 유지한다.
그리하여 나와 주인공 세대들의 성장을 꾀한다.
일관된 지론하에 나는 내심에 떠오른 ‘마교’라는 이름을 일단 속에 담아 두기로 정했다.
그 결과.
‘살수들의 정체나 배후는 우리 선에서는 모르겠다.’는 결론이 났다.
결론이 그렇게 난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딱 하나였다.
‘이거 사람 불러야 해.’
관련인들에게 뒤를 맡기고 우리는 빠르고 안전하게 정무학관으로 복귀하는 것뿐.
우리는 뒤에 올 무림맹의 지부와 개방의 사람들이 현장을 발견할 수 있도록 토끼 똥을 태워 봉연을 피우는 등의 조처를 완료한 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무림맹 지부 소재지인 남소현으로 향했다.
도착한 남소현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신고 절차를 통해 무림맹과 정무학관 양쪽으로 우리가 살수들의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했고.
남소현 지부는 그런 우리에게 인력을 딸딸 긁어 호위를 붙여주었다.
뭐, 마교의 공작이 애초부터 한 번의 습격이 끝이었는지, 아니면 호위들이 붙어 우리 일행의 규모가 불어 건드리기 어려워졌는지 모르지만.
이후로는 별다른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 우리는 정무학관의 소재지인 단강구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는데.
- 교수들이 나와 있구나?
‘그러게요?’
그렇게 단강구의 초입에 도착하니.
정무학관의 총장님이신 경혜사태를 필두로 학사 일정에 관여하는 네 분의 사감 교수님과 학관과 일대의 경비를 책임지시는 호위부의 부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작에선 이런 일이 없었는데?’
견학이라는 학사 일정은 생도들의 견학지가 저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기에, 출정식은 해도 복귀식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냥 생도들이 일종의 레포트인 수상록을 제출하면 그것으로 견학이 종료되는 것이다.
하여 원작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뭐, 이해는 갔다.
‘생도들이 살수들의 습격을 당했다니 다들 놀라신 모양이지.’
아무튼 저렇게 학관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분들이 나와 계신 이상 간략하게 인원 보고를 해야 했다.
나는 빠르게 동기들에게 옷매무새를 다듬으라는 지시를 내린 뒤.
녀석들을 이끌고 경혜사태 앞으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견학 연휴 연장을 신청한 윤국관의 팽소진 생도를 제외한 언용운 외 열여덟.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그런 내 말에 경혜사태가 참았던 숨을 폭하고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무사히 복귀를 했다는 말은 사상자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예. 가벼운 부상을 당한 동기생들이 몇 있긴 했으나, 적절한 응급조치와 사건 이후 찾아간 남소현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서 덧난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견학 생도가 살수들의 습격을 받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만큼 우리의 복귀식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네요. 빈니가 십년감수했습니다. 아울러 다들 피곤할 줄은 압니다만, 복귀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겠는데. 다들 괜찮을까요?”
* * *
그렇게 우리는 학관의 본관 일 층에 위치한 교직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동한 자리에서 나는 교수님들과 동기들 그리고 명태성 각주가 배석한 가운데 살수를 맞닥뜨리기 전에 취했던 조치와 만났던 순간, 그리고 이어서 행했던 검시조 편성에 관해 차례차례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랬군요. 그랬어요.”
“예. 살수 중 한 명이라도 살려둘 수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항복을 하는 척하면서 공격을 해올 정도로 지독한 녀석들이었고, 비가 내리는 상황 속에서 추가적인 습격도 고려해야 해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생각하기론 내 행동에 아쉬운 부분도 조금은 있는 것 같았다.
하여 이렇게 말을 했더니.
경혜사태가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언용운 생도. 지금 죄송이라고 했나요?”
“예? 아, 예.”
“그런 말은 마세요.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적절한 조치들이었어요. 언용운 생도를 무림맹 견학의 인솔자로 한다는 서류에 인장을 찍은 일이 금년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그리고 그런 단호한 표정과 딱 어울리는 어조로 내가 청한 과를 일축해 버리셨다.
저렇게까지 잘한 일이라 하시는데, 거기다 대고 아니라고 하기는 뭐해서 나는 그냥 가볍게 포권을 취해 감사를 표했다.
“그런고로 저희 수준에선 배후를 떠올려내지 못했습니다. 하여 후속 조치만을 취한 뒤 무림맹의 남소현 지부에 뒷일은 인계했습니다.”
“잘했어요. 정말이지 신입생이 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조치들이 깔끔하고 신속했어요.”
한데 이때.
명태성 각주가 한마디를 더해왔다.
“타격대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그러했습니다. 꼭 현장을 뛰시던 시절의 맹주님을 뵙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 듣고 있던 창량 교수가 무언가가 탐탁지 않은지 흥 하는 소리를 내왔다.
“명 각주님. 오랜만에 뵙는데 말씀에 딴지를 거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그 맹주님 이야기는 너무 가신 것 아닙니까?”
“아. 창량 교수님이시군요.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음.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교수님께서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느낀 바를 거짓 없이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언용운 생도는 관록께나 쌓은 부각주급 인사나 내릴 수 있는 판단을 척척 내리더군요. 동기들도 그런 판단을 잘들 따라 주었고요. 사대기숙사 생도가 이렇게 뭉치는 모습 자체가 생소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래도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자 평소 창량 교수님과는 앙숙으로 통하는 노삼 교수님께서 귀를 파며 한마디를 더했다.
“명태성이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요즘 창량 저 친구가 속이 뒤틀릴 일이 좀 많아서 심사가 꼬인 것일 뿐이니 너무 마음쓰지 마.”
“아. 노삼 교수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는 교수님께서는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나? 아침마다 면경을 보며 나는 누구? 언가 놈을 청죽관에 데려온 사람! 하면서 웃으니깐 그게 얼굴에 아주 굳은살처럼 박혀 버렸나?! 크헤헤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아주 조금 옆으로 샜는데.
그 덕에 무거웠던 회장의 분위기에 잠시 웃음기가 감돌았다.
하나 그렇게 웃음기가 감돈 시간은 아주 잠시였다.
경혜사태께서 잠시간 머금고 계시던 미소를 지우시고는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하시더니.
“큼큼.”
잠시 옆으로 샌 이야기를 원래의 궤도에 다시금 올려놓았다.
“아무튼. 빈니가 보기엔 뒷짐을 지고 있을 일은 아닌 듯합니다. 작은 일이 아니에요. 다른 분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경혜사태의 음성에 회장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 가운데, 자리한 관계자들의 방책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일단 호위부는 단강구 일대의 경비를 강화하겠습니다.”
“생도들의 외박 외출에 제한을 두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호위부장님의 말씀과 팽 교수님의 의견이 일리가 있으시군요. 다른 교수님들은요?”
다른 교수님의 의견을 묻는 경혜사태의 음성.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윤국관의 사감인 제갈민 교수였다.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는 가운데, 조금 멀리 보면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찾아오는 학사일정이 대민 지원으로 이 또한 외부로 생도들을 내보내는 일정이지 않습니까? 그에 관한 고민도 좀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수들의 배후가 누군지를 쫓는 것에도 관심을 좀 둬야겠지요. 적을 알아야 제대로 방비를 할 테니까요.”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노삼도 입을 열었다.
“그건 나랑 창량이 하지.”
한데, 웬일로 노삼의 입에서 창량의 이름이 나왔다.
물론 두 사람이 미묘하게 나를 두고 신경전인 것이 방금인지라.
창량 교수의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
그에 노삼이 짐짓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잡놈들이 애들을 위협한 상황에서까지 날을 세울 테냐?”
“저는 선배님께 날을 세운 기억이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그리 느끼셨을 뿐이지요.”
“아무튼 너랑 나 사이의 앙금은 젖혀두자. 내가 방주님께 거지새끼들 좀 풀어보라고 할 테니까, 창량 너는 무림맹에 가서 네놈이 자랑하는 그 좀 근본빨 좀 써서 군사부 쪽도 채근을 좀 하고 백본회의 너구리들도 구워삶아서 협조 좀 구해봐.”
“그. 말씀을 좀 가려서 하십시오. 아이들이 듣습니다!”
“아! 그래서 하겠다고 말겠다고?!”
“일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 * *
이번 기수의 무림맹 견학조의 복귀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운매, 향란, 윤국에서 나온 동기님들?”
“말씀하세요 용운 님.”
“그래. 용운아 왜?”
“예. 형님.”
“말씀하십쇼.”
“…….”
본관을 빠져나온 나는 견학조를 해산하기 위해 다른 기숙사의 동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법 다사다난했는데 아무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각자 기숙사로 돌아가셔서 점호 잘 받으시고 수업 시간에 봅시다. 아. 수상록 쓰는 거까지가 견학이니까 잊지들 마시고. 특히 소천이 형.”
“나?”
“예. 까먹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까먹지는 않았다.”
어.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었나?
“애초에 생각 자체를 안 했거든. 금시초문인데, 수상… 뭐? 그거 어떻게 쓰는 거냐?”
그러면 그렇지.
해는 오늘도 동쪽에서 떴구나.
“…용명아.”
“예. 형님.”
“알아서 챙겨라.”
“…예.”
“자, 다른 기숙사 생도들은 그렇게 하시고. 우리 청죽관 생도 중에서 자치회에 적을 두지 않은 사람들도 기숙사로 돌아가서 점호 준비해.”
제법 다사다난했던 이번 기수의 무림맹 견학 조는 그렇게 해산되었다.
나는 청죽관의 간부들을 이끌고 자치회실로 향했다.
정확히는 객식구인 당옥기까지.
“…….”
“왜. 뭐.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석류랑 홍옥이는 보고 갈 거야!”
“누가 뭐래?”
그렇게 자치회실에 도착하니.
경룡이 형과 고완산 선배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왔구만! 큰일이 있었다 들었는데, 다들 다친 곳은 없나?!”
“그래. 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회장님께서는 더하셨는지 어제는 글쎄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
“고, 고 부장! 그런 이야기는 뭐 하려 하나?!”
삼가 경룡이 형의 두발에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으나.
본관에 불려갔다 온다고 씻지도 못한 몸이었고, 낙양에서 가져온 일거리와 고민거리가 태산이었다.
하여, 나는 가장 시급한 일거리를 처리하기 위해 두 사람에게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다른 차장들은 어디 갔습니까?”
그런 내 물음에 경룡이 형이 입을 열었다.
“오늘 봐야 할 서류들은 다 처리했네. 그래서 기숙사로 돌려보냈는데?”
“그 봐야 할 서류라는 게 지금 이 시각 부로 늘었습니다.”
“…응?”
“소릉아. 가서 다른 차장들 좀 불러와라.”
“예! 언 형!”
이 시각 부로 일이 늘었다는 말에, 경룡이 형과 고완산 선배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쉬고 있던 차장들이 돌아오고.
“사실 저희가 이번에 청죽관의 후원인을 구해왔습니다.”
“후원인을? 얄궂은 곳은 안 그래도 없다시피 한 청죽관의 명성을 깎아 먹기만 할 것이라고 다 거절 했으니, 사람이든 단체든 어쭙잖은 곳은 아닐 거고 어디의 누구신가?”
“무림맹의 맹주님이십니다.”
“…아. 무림맹의 맹주님 정도라면 충분히 우리 청죽관에 어울리시는 자격이…. 뭐? 맹주님?!”
“예. 맹주님께서 당장에 청죽관 생도들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백련정강으로 만든 병장기와 합격진을 전수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에 경룡이 형과 고완산 선배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변했는데.
“백련검?!”
“합격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말을 이었다.
“예. 백련검은 선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으나 출발할 때 곧 보내 주시기로 하셨으니, 아마 지금쯤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합격진은 아예 교관이 되어 주실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명태성 각주님이라고 무림맹주 직속 타격대의 제일각주를 맡고 계신 분이십니다.”
“직속 타격대의 명태성 각주면 그 철검무퇴 선배님? 하, 하면 그 합격진 이라는 것이 설마 채작진인가?!”
“예.”
내 말에 경룡이 형은 잠시 얼을 놓는가 싶더니, 대뜸 자치회실 내에서 방위를 가늠해보고는 낙양 방면으로 큰절을 하려고 했다.
“뭐 하십니까?”
“매, 맹주님 계신 곳으로 아침저녁으로 절을 올려야겠네. 한데 오늘 아침은 지나갔으니 지금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때.
그런 경룡이 형을 향해 은하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회장님 그거 아셨어요? 저도 이번에 얼결에 알게 된 사실인데, 글쎄 언 공자가 입관 시험을 준비하실 무렵에 무림맹에서 언 공자를 채가려고 했었다네요?”
그에 경룡이 형이 낙양 방면으로 하려던 절을 멈추고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게 참말인가?”
“뭐, 거절했지만 그런 일이 있긴 했습니다.”
“허면, 이것도 맹주님께서 자네를 데려가려고 이러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러면 받지 않겠네! 그, 그깟 백련검!!!”
조금 전만 해도 공손무결을 숭배하려는 듯했던 경룡이 형의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언동생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왁자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마교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지금까지는 얼추 원작의 흉내를 내게끔 하는 것으로 어찌어찌 사건들이 해결됐지만.’
뒤틀려온 사건들이 어떤 미래로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미래에 굴하지 않으려면 결국 내 성장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성장이 필요했다.
‘다시 시작이다.’
바야흐로 담금질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