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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25화 (125/444)

제125화. 담금질의 때 (2)

내가 득달같이 짓쳐 들자 은하연이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은하성이랑! 고 부장님은 날개로! 우 소협은 꼬리로!”

적에게 어떻게 운영할지 말하고 움직이는 합격진이 세상 어디에 있겠냐만, 은하연의 대처를 두고 감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좋은 대처야.’

합격진이라는 것이 펼쳐지려면 진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개인들이 무위를 보태야 했다.

그리고 그런 무위들의 출발은 보법, 그러니까 걸음을 떼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한데, 방금 청죽관 생도들은 내가 뿜어낸 기도와 뒤따르는 정현과 경룡이 형의 모습에 오금이 굳었는지,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흠칫하고 굳어 있었다.

샤샤샥-

한데, 은하연의 일갈에 은하성과 고완산, 우소릉이 일단 걸음을 뗐다.

이건 작지만 큰 걸음이었다.

사샤샤샤샥-

그도 그럴 게.

지난 열흘간 쫓아다녔던 앞사람의 뒤통수가 움직이자.

다른 생도들도 뼈에 새기듯 닦아내 몸이 기억하는 방위와 움직임을 쫓아 청죽관이 펼치는 채작진이 서툴게나마 날갯짓을 시작했으니까.

하니, 이건 충분히 좋은 대처라 할 만했다.

뭐, 아무튼.

은하연의 빠른 대처에 힘입어 은하성과 고완산의 검이 겹쳐지며 내 일격을 둘이서 받아냈고.

캉!!!!!!!

그 반동에 두 사람이 각각 좌우로 튕겨 나가자마자, 그 빈자리를 날카로운 백련검들이 찌르고 들어왔다.

쌔액! 쌔액!

쌔애액!!

계속해 짓쳐 들었다간 벌집이 될 것 같은 상황이었으나, 사실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들이 확신들이 없네.’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대로 일단 움직이고는 있으나, 내질러오는 검들에 확신들이 없었다.

그러니 이게 전장이고 정말 눈앞의 청죽관 생도들이 내가 베어 넘겨야 할 적이라면?

낼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검을 쳐냄과 동시에 몇 사람의 허벅다리를 회한으로 그어버리면?

‘십중팔구 와해 되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나도 청죽관에도 득이 될 게 없었다.

소릉이 녀석에게는 봐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무작정 짓밟아 주겠다는 뜻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을 뱉은 이유 중 절반은 우선적으로 우리 생도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는 것이었고.

남은 절반은 청죽관이 제대로 된 채작진을 펼쳐낼 준비가 된다면, 그 위력을 검수로서 한번 제대로 견식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빠집시다.”

하여, 나는 청죽관 생도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나아가 제대로 채작진을 펼칠 시간을 주고자, 여기선 잠시 물러나기로 마음을 먹은 뒤.

찔러 들어오는 검들을 가벼이 처냈다.

채챙! 채채채챙!

그리고 땅을 뒤로 박차 청죽관 생도들과 거리를 벌렸다.

팟!

그런 내 행동에.

가장 먼저 하성이 녀석이 제 놈의 검과 내 검을 번갈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용운 형님의 검을 받아냈어…? 나 생각보다 강한 걸지도?”

…허벅지까지는 아니라도 생채기는 내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치는 찰나.

하성이 놈의 근처에 있던 은하연이 알아서 녀석을 옆구리를 꼬집어 주었다.

“앜!”

“정신 차려! 방금은 언 공자가 봐주신 거잖아!”

하성이가 새는 바가지라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 그렇지.

사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녀석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하나, 하성이 놈이 대표로 꼬집힌 덕분에, 비슷하게 정신을 놓았던 사람들도 함께 정신을 차리며 검을 고쳐 쥐니.

샤샤샥-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가 제 걸음에 스스로 놀라 잠시 풀어졌던 청죽관의 채작진에 예기가 돌아왔다.

그 모습이 퍽 대견했던 것이었을까?

- 제자야.

‘예?’

- 네 형님… 또 우는 것 같구나?

경룡이 형의 눈시울이 또 한번 뜨거워졌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경룡이 형에게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또. 그놈의 꽃가루가 들어가셨습니까?]

[…크흠. 그, 그런 것 같네.]

[대충 빼내시고 다시 가시죠. 자고로 쇠는 달궈졌을 때 때려줘야 하는 법 아닙니까?]

그런 내 말에 경룡이 형은 큼! 하고 눈물샘을 걸어 잠그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세!]

[예. 조금 전에 들어간 방향으로 똑같이 들어간 다음에, 방향 전환이 되는지를 보기 위해 곧바로 역방향으로 돌겠습니다.]

경룡이 형에게 어떻게 치고 빠질 것인지를 전달한 나는 정현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전음을 날린 뒤.

회한을 고쳐 잡고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 * *

채작(彩雀)은 공작새를 말한다.

원작을 읽을 때만 해도 뭔 놈의 합격진에 맹금류도 아니고 공작새의 이름이 붙었나 하는 생각을 했고.

내가 직접 진을 구성하고 있을 때도 내심으론 같은 생각을 했다.

챙! 채챙!

그도 그럴 게.

내가 보기에 채작진은 공작새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보다는 투박함이 묻어나는 합격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저 비급을 만든 사람이 공작을 좋아했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공작 같기는 하네.’

막상 적으로 마주하니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화려한 꽁지깃에 새겨진 문양들이 눈이라고 생각하면?’

명태성 각주가 꼬리라 불렀던 예비대의 역할과 딱 맞았다.

양쪽 날개가 적의 전면과 측면을 노리고 차단하는 동안, 호시탐탐 뒤를 노려오며 돌아가는 상황을 핵심 역할을 하는 은하연에게 전달하고 있었으니까.

‘야생의 공작새가 꽁지깃을 펼칠 때 말고 천적을 후려치는 것에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나를 대신해 합격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은하연은 그 꼬리 역할을 맡은 생도들을 잘 활용하여 이쪽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옵니다! 좌측 날개는 중앙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꼬리들은 우측 날개에 붙어주세요!”

예컨대.

이쪽에서 가벼운 탐색 끝에 본격적으로 좌측 날개가 있는 방위를 노리고 들어가면?

샤샤샥-

번개처럼 좌측 날개를 진법의 중심 안으로 접어 넣고.

“돌아요! 돌아!!”

우측 날개에 꼬리를 이어붙여 길쭉한 포위진을 만들어, 딸랑 세 명의 대항군을 싸 먹겠다는 듯 압박을 해오는 식으로.

챙! 채채챙!

은하연은 그처럼 제법 제대로 지휘를 해내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청죽관 생도들도 자신들이 펼치는 진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니.

슬슬 셋이서 상대하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게 맞긴 해.’

본디 합격진이라는 것이 고수들의 손과 발에서 제대로 펼쳐지기 시작하면, 적게는 일당십 많게는 일당백의 위력을 발휘하는 녀석이다.

‘소수로도 다수를 능히 대적할 수 있게 해주는 방책이지.’

한데 우리의 경우엔 대항군 쪽이 애초에 소수이고 또 살초까지 배제하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중과부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에 나는 잠시 숨을 고를 필요성을 느끼고 퇴각 신호를 보냈다.

한데 슬슬 버겁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정현도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후. 무당의 태청검진이나 태극검진도 훌륭한 합격진이지만, 채작진은 섬뜩한 구석이 있어서 상대를 하고 있자니 모골이 절로 송연해짐을 느낍니다. 한데, 이 대항군 역할이란 거 돌아가면서 한 번씩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너만 당할 수는 없어?]

[워, 원시천존. 도사 된 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반응이 재밌어서 그냥 한번 놀려먹어 봤을 뿐.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으니.

경룡이 형도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후. 이제 명태성 각주님께 배운 다섯 방위 중 딱 한 곳을 빼놓고 모두 점검해본 거 아닌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마지막 한 곳까지 점검을 해볼 생각인가?]

그랬다.

채작진을 시전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은 다섯이어서 매번 공격할 수 있는 방위가 총 다섯이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중 딱 한 곳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은하연이 있는 곳.’

은하연의 무위는 이제 막 검에 아지랑이를 피워내기 시작한 수준.

최초에 무력화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진즉에 그렇게 됐을 것이었고, 그랬다면 핵심을 잃은 채작진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우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안팎에서 채작진을 경험해보는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하여, 의도적으로 은하연을 공격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한 수 접어준 거긴 한데.’

나름대로 청죽관의 생도들이 펼쳐내는 채작진이 정말로 그럴싸해진 지금에 와서는 접어주었던 한 수를 펼쳐봐도 될 것 같았다.

[해보죠.]

그런 내 말에 경룡이 형은 대항군이 취할 대형에 관해 물어왔다.

[그럼 추형진으로?]

추형진은 쉽게 말해 쐐기 그러니까 삼각형의 형태로 대형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두텁게 방비하고 있는 진형을 뚫을 때 강점이 있는 대형이었는데.

사람이 딱 셋이어서야 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자 한 면씩 삼면을 동시에 공략하는 것으로 하죠.]

[그게 낫겠나?]

[예. 은 소저라면 제가 고작 셋이서 세 면을 동시에 공략하는 미친 작전은 선택할 리 없다고 볼 겁니다.]

[그도 그렇군.]

[그런 생각 하에 추형진으로 올 것을 대비하고 있을 테니, 여기선 그냥 살수가 되었다는 심정으로 역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의논을 끝낸 나는 구체적으로 경룡이 형에게는 좌측을, 정현에게 우측을 치고 들어갈 것을 지시한 뒤.

나는 정면을 맡기로 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갑시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

하여, 처음에는 위장을 위해 삼각형의 형태로 추형진을 만들어 짓쳐 들었는데.

“또 와요! 추형진입니다! 양쪽 날개는 앞으로! 정면을 두텁게 하세요!”

우리의 모습에 은하연은 내 예상대로 양쪽 날개 역할을 맡은 생도들을 앞세웠다.

“그리고 꼬리는….”

한데, 내 신호에 따라 경룡이 형과 정현이 좌우로 흩어지자.

지시를 내리는 은하연의 목소리에서 일순 당황이 들어찼다.

하나, 너무 늦지 않게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꼬리도 정면으로! 언 공자! 언 공자를 포위하세요!”

은하연의 결단은 제법 발칙했다.

본인의 안위를 포기하고 나를 사로잡아 보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이 판단은 상당히 괜찮은 판단이었다.

직급과 배분은 경룡이 형이 높아도 이쪽의 수장은 누가 뭐라 해도 나라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 아래 총력을 동원해 수장을 먼저 사로잡아 이 상황을 자신들의 승리로 끝내겠다는 판단이었으니까.

‘북록채에서 내가 보여줬던 방식을 나름대로 상황에 맞게 응용을 했는데?’

대견하네.

하지만 그런 생각과 승부는 별개였다.

‘근데 그 대견하고 괜찮은 판단이 잘한 것이 되려면 나를 사로잡아 내셔야지?’

나는 입꼬리를 뒤틀어 올리며 회한에 아지랑이를 감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적당히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생각이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해서는 안 돼.’

연습이라고 하나 진검이 오가는 현장이었다.

이렇게나 둘러싸여 버려서야 한순간의 방심도 머금어선 안 됐다.

그때였다.

그렇게 내가 나름대로 심신의 준비를 마치는 사이 다섯 방위에서 번쩍거리는 백련검들이 일제히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쌔애액!

쌔애애애액!!

멍하니 있다간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하나, 활로가 없지는 않았다.

나는 늘어지기 시작한 시간 속에서 침착하게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회한을 비스듬히 들어 올려 머리 위를 틀어막았다.

그러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검이 회한 위에 차곡차곡 얹히기 시작하니.

차- 차차차창!!!!!

회한을 중심으로 우산살같이 백련검들이 모인 꼴이 되었다.

어지간한 무인이었다면 여럿의 힘과 내력이 실린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이 땅에 처박혔을 것이다.

“큭.”

하나, 그간의 수련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내 다리가 기어이 일순간을 버텨내 주었다.

나는 그렇게 버텨낸 일순간을 발판 삼아 파천의 내력을 회한을 통해 방출하듯 쏟아냈다.

그리고 비스듬히 들고 있던 회한을 완전히 치켜들었다.

캉!!!!!!!!!!

그에 회한에 검을 얹고 있던 청죽관 생도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는데.

백여 명이 넘는 생도들이 나를 에워싸고 합격진을 펼치고 있었던 만큼.

튕겨져 나간 생도들의 빈자리가 순식간에 메워졌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쌔-애- 애애-액-

평소에 검을 펼칠 때 엿가락이 늘어나듯 느려지곤 했던 시간이 오늘은 거의 멈춘 듯이 늘어났으니까.

‘비산하는 먼지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야.’

극도의 집중력이 불러온 현상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천 겹 만 겹 이어질 것 같은 이 검림(劍林)을 빠져나갈 길이 어쩌면 보일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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