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29화 (129/444)

제129화. 독공! 독공! 독공! (1)

“왜 이번에 무림맹을 견학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우리 애들이 살수들에게 습격을 당한 건 있었지 않습니까?”

“…지랄 났다. 장가도 못 가본 놈이 우리 애들 소리가 잘도 나오는구나?”

“못 가다뇨, 안 간 건데요. 제가 오의파(汚衣派)가 편해서 이러고 있어서 그렇지 정의파(淨衣派)로 노선을 틀고 묵은 때 싹 벗겨내면 한 인물 합니다.”

“…그 학관에는 면경이 없나?”

“없을 리가 있습니까?”

“?”

“?”

“아무튼. 한 몇 년만 학관 밥을 더 먹으면 제 놈이 거지라는 것도 잊겠구만. 거, 그지 새끼들도 그렇게 좀 챙겨봐라.”

“천하가 평안해야 그지 새끼들도 마음 편히 동냥질하는 거 아닙니까. 백도 무림을 짊어질 싹들이 무럭무럭 커야 그게 되는 거고요.”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노삼이 근 몇 년간 별호가 작풍월개로 바뀔 정도로 열정을 잃었던 사람인지라, 만복의 입에서 흥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몇 년간 허송세월만 처하던 놈이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손 치더라도 말 자체가 개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천장호 그 자식도 이번 견학 조에 있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개방을 위한 일이기도 하죠. 아시고 있으실 텐데요?”

“그래 장호 그놈은 잘하고 있고?”

“그 새끼야 학관에서도 똑같죠. 성정 자체가 거북이를 삶아 먹은 것 같은 놈 아닙니까.”

“쯧. 강호에서 살아가려면 그 정신머리는 필히 고쳐야 할 것인데.”

“뭐, 그래도 팽재혁 그 친구가 챙기는 것 같습디다. 비슷한 또래들끼리 부대끼는 환경이다 보니 자극도 좀 받는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아무튼.

잠시 옆길로 샜던 두 거지의 이야기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혹시나 다른 이야깃거리가 더 있나 했는데 역시나 그 습격 일로 온 것이었구만?”

“예. 방주님의 성정에 관심을 갖지 않으실 일이 아닌데, 단강구 분타에 물어보니까 아직 총타에서 내려온 말이 없다고 하던데요? 나돌면 안 되는 이야기이겠구나 싶어 이렇게 제가 직접 왔습니다.”

“맞아. 피해를 입은 생도는 없다 하나 정무학관의 생도들이 습격을 당하는 일이 어디 그냥 넘어갈 일인가? 남소현에서 소식이 날아들자마자 전서구랑 그지 새끼들을 풀어서 이미 알아야 봤지.”

그런 만복의 말에 노삼이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누굽니까?”

“몰라.”

“……? 알려주시면 제가 당장에 때려죽이러 가겠다고 설칠까 봐 그러십니까? 저 옛날의 그 노삼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몰라서 모른다고 한 것이다. 그 살수 놈들의 행태를 살펴보니 어그러진 작전에도 목숨을 던질 만큼 광신적(狂信的)인 구석이 있었고, 또 무위도 그렇게 녹록한 놈들이 아니더만? 그런 고수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냐?”

“그야 그렇죠. 백도 무림 출신들이야 명확하게 적을 둔 곳이 있고, 흑도놈들도 검기를 뽑아낼 급이 되는 과정에서 어디서 실력 자랑을 하든 대가리에 현상금이 붙든 하니까. 근데 이놈들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단 말입니까?”

“정확히는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게 맞겠지. 그 몸에 공통된 지진 자국이 있더라는 것도 그냥 불로 자국을 내놓은 거라면서? 그런 거야 연비(燃臂)라고 해서 중, 도사, 방사 가릴 것 없이 허구한 날 찍어대는 것 아니냐.”

그런 만복의 말에 노삼이 미간을 좁히며 질문을 던졌다.

“기염곡(旣殮谷)이나 천살막(天殺幕)의 짓일 가능성은요?”

“그치들은 엉덩이가 무겁잖아. 고작 병아리들을 노리겠다고 강호에 기어 나올 자들이 아니야. 백번 양보해 기어 나왔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피해가 없기는 힘들었을 거고.”

“흠. 그건 또 그렇습니다. 그럼 저 헛걸음한 겁니까?”

엷은 한숨을 내쉬는 노삼의 모습에, 만복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노망난 거지의 망상이라도 좋다면, 내 추측을 들려줄 수는 있다.”

“들려주십쇼.”

“근데 나한테 들은 이야기를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고작 추측으로 나불거려선 안 되는 이야기니까.”

“…흠. 화산의 창량이 놈이랑 찢어져서 그놈은 무림맹에서 저는 개방에서 정보를 모아오기로 했습니다만. 방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무능한 놈이라 욕을 얻어먹더라도 입을 딱 닥치고 있겠습니다.”

“내 생각엔 사도련. 혹은 마교.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암중 세력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라.”

만복의 입에서 나온 말에 노삼은 왜 이 이야기를 함부로 나불거려선 안 되는지를 이해했다.

학관의 교육과정에서 흔히 사마외도를 적으로 두고 설명을 하거나 시험을 내곤 했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교육의 편의를 위한 일이었다.

‘실제로 놈들이 백도무림의 후기지수를 노린 것이라면 이건 일의 규모가 달라진다.’

그리고 만복의 입에서 나온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만으로 강호의 물가나 질서가 개판이 될수 있었다.

거기서 나아가 당금 강호의 질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사마외도를 추종하는 일도 있을 수 있었다.

아무튼.

노삼으로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사도련은 련주를 새로 세운다고 염병을 떨다가 제 살들을 깎아 먹고 잠잠해진 상태였고.

‘…마교 놈들은.’

곤륜산맥 너머로 쫓겨난 지가 육십 년이 넘었다.

물론 이후로 마인들이 중원에 기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몇몇이 기어 나오기도 했고, 마공서가 흘러들어 와 중원의 고수가 마인이 되기도 했다.

노삼은 그런 마인과 싸워보기도 했다.

하나 한 번도 조직적으로 준동을 한 적은 없었다.

백도 무림이 주도하는 질서는 그렇게나 공고했다.

그런데도 만복은 그런 단어들을 언급했다.

‘뭐가 더 있으신가?’

미간을 좁힌 노삼이 입을 열었다.

“근거는요?”

한데, 만복의 입에서 나온 말은 노삼의 맥을 빼놓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없지.”

“에라이!”

개방은 예로부터 새로이 방주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침 세례를 퍼붓는 전통이 있었다.

노삼은 만복이 방주 자리에 오르던 그날처럼 면전에 침을 뱉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고 재차 입을 열었다.

“근거도 없이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까!”

“그러니까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잖냐! 노망난 거지의 망상이라고 하기도 했고!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 몸에 남은 증표 말고는 실마리가 없는데, 그딴 것을 새기면서 고수들을 갖춘 놈들을 본 적이 없어서, 가장 희한하게 돌아가는 집단을 떠올려봤을 뿐이야. 하니 내가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겠지.”

“흠.”

“그런데 그렇게 희한한 일에 딱 초점을 맞추고 보니, 네가 애들이라고 부르는 생도들 중에 한 놈이 툭 불거져 나오더란 말이지?”

“…언용운 말씀입니까?”

“맞아.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노삼 네가 항룡장을 전수해줄 만큼 인물 됨이 있는 녀석이라면 사실 그놈이야 말로 천하에서 제일 희한한 놈이 된다. 그렇지 않느냐? 그만한 인물됨을 갖춘 위인이 하북에서는 왜 그렇게 개차반처럼 살았단 말이냐?”

만복의 질문에 노삼이 자기도 모르게 팔짱을 꼈다.

그사이 만복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단순히 개과천선을 했다고 치기에는 보여준 그릇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냐? 하면 뭔 뜻이 있다는 건데, 쇠고집이 돼 놔서 차라리 족보에서 파일지언정 그 일에 관해 물으면 딱 함구를 한다지?”

“…흠.”

“그리고 녀석이 잃어버린 언가의 비급은 증발하듯 종적이 사라졌고, 같이 노름을 했다는 자들은 실종되거나 시체가 되었으며, 이번에는 본인이 습격을 당했다. 이건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게다가 얼마 전에 태원이가의 선산이 도굴을 당했다. 근데 여기가 또 그 언용운이라는 놈의 외가야.”

“…산서라. 하필이면 정의파의 소굴이 있는 곳이라 그 도굴 사건에 관한 정보도 빈약하겠군요?”

“그래. 정의파를 이끄는 덕근이 그놈은 총타의 말을 똥으로 아는 놈이라 옛날부터 비협조적이었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버리는 통에 이것까지도 노망난 거지의 추측에 속하는 것이니, 과한 억측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 언용운이 그놈은 필시 뭔가를 알고 있어.”

그렇게 말을 맺으려던 만복은 잠시 턱을 매만지더니, 말끝을 바꿨다.

“아니, 이 경우엔 아주 오래전부터 제 놈 혼자 뭔가를 쫓고 있다는 게 정확하려나?”

* * *

중간고사는 끝이 났고.

살수들의 습격을 받았던 사건에 관한 일은 웃어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다음 학사 일정인 대민 지원을 두고 교수님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가는 모양이었지만, 당장에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여 우리는 평범한 학관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환이다. 중간고사 시험 문제에 관해 이의 신청을 한 생도는 없던데, 시험들은 칠 만하였나?”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내 지도가 부족했나 보군. 바로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지. 아. 그전에 중간고사 때 과제를 답안과 함께 제출하라고 했는데, 한 생도가 제출한 과제가 내 눈길을 크게 끌었다. 하여 조교들을 시켜 큰 종이에 옮겨 적게 하였는데, 거기 무길 생도?”

“예! 교수님 모산의 삼대제자 무길입니다!”

“그래. 사사로이는 사손이 되는 자네를 믿고 내 부탁을 좀 함세. 강의실 맨 끝으로 잠시 가주게.”

“예? 아. 예! 이쯤이면 되겠습니까?”

“딱 좋네. 지금 전지를 걸 것인데, 거기서도 잘 보이는지 보고 보이면 제목을 읽어 주게.”

“…어. 예. 강시의 통제력을 무효화시키는 방안에 관한 고찰…. 처, 청죽관. 언용운.”

“잘 보이나 보군. 잘 쓰긴 했는데, 생도 수준의 과제이다 보니 검증과정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던데, 언용운 생도는 앞으로 나와서 왜 이런 과제를 떠올렸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발표를 해보도록.”

각자의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들었고.

또 맡은 바 일들을 열심히 수행했다.

“은 소저?”

“예?”

“이거 방학 때 실시하기로 한 기숙사 개선 사업 말이오.”

“예. 말씀하세요.”

“예산이 좀 과한 것 아니오?”

“토목공사는 한번 손댈 때 제대로 해야죠. 그리고 제갈설지 소저가 저번에 저희 자치회실 보고 자기네 해우소가 더 낫다고 했다면서요? 웃겨 진짜.”

…아니 비슷한 말을 하기야 했지.

근데 그렇게 부정적인 어투는 아니었는데?

“맹주님께서 후원을 해주신 덕분에 아낀 금액도 있고, 무림맹 가서 구상한 소식지 사업이 잘 진행되면 충분히 회수 가능할 것 같아요. 혹 회수가 안 되더라도 제 사비로 처리할 테니까 그냥 결재나 해주세요.”

“…….”

뭐,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니네 기숙사 시설 진짜 구리긴 해. 그나마 제일 멀쩡하다는 이 자치회실도 저기 회장님 자리 뒤쪽에 책장으로 가려놓은 곳 들어내면 곰팡이 슬어 있잖아.”

“…서명했으니 은 소저는 서류 가져가시고. 당옥기 너는 왜 여기 붙어 있냐? 연구하러 안 가?”

“…….”

“그놈의 백독단은 대관절….”

“언제 나오냐고? 나온다고! 나와! 방금까지 하고 왔거든? 만날 시큼한 독 냄새만 맡고 있으면 천독불침지체랑 별개로 얼마나 답답한데! 나도 평범한 공기 좀 마시고 목이랑 허리는 펼 시간은 줘야지 내가 무슨 대학원생이야?!”

“대학원생이다 생각을 해라. 지금 네 배분에 대학원 가면 실험 도구 설거지나 하고 있을 텐데, 복 받은 줄 알아야지. 나였으면 아침마다 내 생활관 쪽으로 절하면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쪽잠을 자면서 하겠다.”

“캬악!!! 진짜 다 됐는데 마지막으로 시약으로 확인만 하면 되는 데 식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기분 전환하러 온 거였는데! 나쁜 놈아! 간다! 가!!”

“그래. 당옥기는 하던 연구 마저 하러 돌아가고, 슬슬 저녁 수련 시간이네. 고 선배, 정현, 우소릉, 은하성 이렇게는 생도들 연무장에 집합시켜 주시고. 경룡이 형은 객관에 가서 명 각주님 모셔와 주십시오.”

또 아침 저녁으로 채작진을 열심히 숙달했다.

“나날이 채작진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들 같으니 오늘부터는 확실하게 목표를 잡고 가도록 하겠네. 그런 의미에서 진경룡 생도?”

“예. 선배님.”

“자네들이 이 채작진을 사용하게 될 가장 빠른 일정이 뭔가?”

“아마도 추계 기숙사 대항전일 것 같습니다.”

“맞네, 별일이 없다면 그렇게 되겠지. 매년 추계 대항전에서 행해지는 합격진은 최대 출전 인원에 제한이 있다네. 삼 학년인 자네는 그것도 알고 있겠지?”

“예. 서른여섯 명입니다.”

“맞네. 최대 서른여섯 명일세, 한데 서른여섯은 채작진과 잘 맞지는 않는 수일세. 채작진의 경우 깔끔하게 펼치려면 한 방위를 일곱 명이 책임지는 식으로 가서 서른다섯 명으로 출전 인원을 정하는 게 좋을 걸세. 그러니 오늘은 서른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기로 하지.”

“예!”

“아, 그리고 언용운 생도는 오늘은 일단 잠시 빠져 있는 것으로 하겠네.”

한데, 명태성의 입에서 나더러 잠시 빠져 있으라는 말이 나왔다.

그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의문을 표해오셨다.

- 추계 대항전을 목표로 진을 운용해 보자고 해놓고 어찌 너더러는 빠지라고 하는 것이냐?

‘춘계 대회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도 한 명당 출전 종목을 두 종류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 않았습니까?’

- 참 그랬지?

‘예. 명 각주님은 청죽의 바둑 대표로는 무조건 제가 나갈 거라고 보시고, 남은 한 곳은 합격진보다는 무위나 격구에 나갈 것이라 보신 모양입니다.’

뭐, 그때 가봐서 상황을 봐서 확정을 하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하여, 나는 군말 없이 물러나 다른 생도들이 채작진을 펼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는데.

“좌익 우익 전면 차단! 꼬리는 돌아서 감으세요!”

“언용운!”

조금 전 씩씩거리며 자치회실에서 헤어졌던 당옥기가 짐짓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오더니.

“안녕하세요!”

명태성에게 형식적으로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나를 향해 바쁘게 입을 열었다.

“약왕 어르신께서 실험이 성공했다면 나올 것이라고 하신 반응이 나왔어!”

“그 말은?”

“응 성공이야! 백독단! 완성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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