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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30화 (130/444)

제130화. 독공! 독공! 독공! (2)

백독단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곧바로 명태성에게 허락을 구했다.

“각주님. 금일 수련에서 제가 맡을 역할이 없다면 잠시 일 좀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명태성은 오늘 훈련에서 제외하겠다는 말이 완전히 빠지라는 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는지 노파심을 전해왔다.

“보는 것도 공부긴 하지만 자네는 채작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바쁜 일이 있으면 보러 가도 괜찮네. 단지 내가 빠져 있으라 한 말이 아주 빠지란 뜻은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하네. 오늘만 이렇게 해보자는 것이지, 다른 여러 상황에 맞춘 합격도 시도해 볼 거라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일 수련이라고 말한 것이고요.”

하지만 내가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축하의 말을 전해왔다.

“그럼 괜찮네, 얼핏 듣자 하니 연단 연구가 성공했나 보던데? 축하하네. 그리고 대단한 일을 했군.”

“아닙니다.”

“아니기는. 나도 청죽관 출신이네만 우리 때에도 비전 영단은커녕 기숙사 이름을 내세운 고약 같은 것도 없었는데,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것도 없이 대견한 일을 했어.”

한데 이 축하 인사는 나 혼자 받을 것이 아니었다.

혈수만독주를 사주고, 연구실과 기타 장비들과 영초들을 구해주고, 해이해지지 말라고 채근도 하는 등 내 나름대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긴 했다.

하나, 그 지원을 받은 대상이 소천이 형이나 하성이 놈이었으면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옥기니까 결과가 나온 거지.’

하여 나는 명태성의 시선이 내 뒤에 있는 당옥기에게 가도록 살짝 몸을 틈과 동시에 당사자에게 공을 돌렸다.

“저는 그냥 연구실이나 좀 내줬을 뿐 딱히 한 일이 없습니다.”

“그랬나? 일 학년이 연단 연구를 성공시켰던 말은 적어도 나는 들어본 일이 없어서, 자네의 손이 타면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했는데?”

“예. 저는 물질적으로나 좀 도와줬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당옥기 이 친구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약왕 어르신께서 조금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그랬구만. 정말로 대단한 일을 했네 당옥기 생도. 파서독제 당호태 대협의 자녀들이 하나같이 빼어나다는 말이야 내 일찍부터 듣기는 했네만,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을 다 하는군. 진심으로 축하하네.”

그처럼 몰아치는 칭송의 향연에, 얼굴이 벌게진 당옥기는 명태성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어. 음. 연단 연구까지는 아니에요. 기존에 있는 제조법을 토대로 재료를 조금 다르게 하면서 용량만 낮춘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게 대단한 거지, 더 비싼 재료를 사용했을 리는 없을 테니, 이른바 양산법을 고안했다는 것 아닌가.”

“…그. 아, 아무튼 언용운 생도가 저 혼자 했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진경룡 생도나 은하연 생도를 비롯한 우리 청죽관 친구들의 배려와 응원도 있었고, 약왕 어르신께서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런 것들은 사실 저를 믿고 지원해준 언용운 생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기연이고요.”

“하하하. 서로 공을 양보하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구만.”

그런 당옥기의 음성에 명태성은 잠시 껄껄 웃었다.

하나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음? 무림맹에서 만났을 때랑 오는 여정에서는 정무학관의 하얀 예복을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 검은 무복에 그려진 난초는…? 당옥기 생도 자네 향란관 생도였나…?”

* * *

턱을 싸쥐며 ‘향란관 생도가 우리 청죽관?’, ‘아니 그전에 연단 연구를 왜 청죽관에서?’ 하는 소리를 하는 명태성 각주를 뒤로하고.

나와 당옥기는 연구실로 향했다.

한데, 아직 조금 전의 상황에서 덜 빠져나온 모양인지 여전히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당옥기가 툴툴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던 대로 할 것이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명 각주님 앞에서 부끄러워서 혼났잖아!”

“……? 나는 원래 잘한 건 잘했다고 하고, 못한 건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놈이 안 하는 것 같으면 가끔 화를 내긴 하지만.”

“가끔?”

- 가끔?

뭐.

뭐요.

“그럼 내가 하던 대로 했으면 뭐라고 해야 하는데?”

“…모, 몰라!”

“실없기는. 아무튼 소감 잘 들었다. 특히나 청죽관 사람들을 보고 ‘친구’라고 한 부분이 특히나 인상 깊었어. 빨리 실험 결과 확인하고 그사이 수련 끝났으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빨리 이 소식을 전해 주고 싶은데?”

“캬아아악!!”

“하. 그러고 보니 이제 제갈 소저 빼면 친구라 해봐야 나 한 명 아니냐는 말로 놀려먹지도 못하겠네. 친구가 그렇게 많으니까. 아. 아쉬워라.”

“진짜 죽여버려….”

그렇게 당옥기와 투닥이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연구실.

당옥기는 내가 연구실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제법 돈을 들여 짜 맞춰준 적당한 크기의 현철 금고를 열더니, 신줏단지 모시듯 직사각형 모양의 목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받은 목함을 곧바로 열었다.

딸깍-

목함 안에는 내가 꿀꺽한 천독단의 딱 십 분의 일 크기인 자그마한 환단들이 꼼꼼히 깔린 완충재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이 영롱한…’

백독단을 봐.

물론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는 빠르게 개수를 헤아려 보았다.

“둘넷여섯여덟열. 총 열 갠가?”

“만들어진 건 열두 개인데 한 개는 약왕 어르신께서 알려주신 시약에 담가서 확인한다고 못 쓰게 됐고, 하나는 혹시 몰라서 일단 빼놨어.”

명태성 앞에서와 달리 원작에서 백독단 연구가 성공했을 때 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말을 하는 당옥기.

그런 당옥기의 음성에, 내심엔 연구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니었는지, 아미를 좁히며 내게 물음을 던져왔다.

“…근데 이거 애들한테 먹일 생각이지?”

“당연하지.”

“그래도 괜찮을까?”

녀석의 우려도 이해는 됐다.

사천당가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천독단.

그 천독단을 내가 삼킬 때도 부작용을 걱정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녀석이다.

‘천하의 당옥기가 제 입으로 친구들이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청죽관 동기들과 정이 쌓였으니.’

제 손으로 만든 자식 같은 백독단이고, 또 약왕 어르신의 조언이 있긴 했지만 녀석의 성정상 충분히 걱정될 만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옥기의 입에서도 딱 그런 말이 나왔다.

“언용운 니가 천독단 먹을 때도 말했지만, 이게 그냥 먹어서 될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미량의 독을 접한 사람은 솔직히 나 말고 없을 거고. 그럼 독에 중독된 사람에게 약처럼 써서 효험을 보거나….”

나는 그런 당옥기의 말이 끝나기 전에 피식 웃으며 녀석의 말을 가로챘다.

“영약으로 중화를 해야겠지.”

그러자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 보던 당옥기가 짝! 하고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언용운 너 그사이 또 영단 좀 모았지? 약왕 어르신께 받은 중려환이랑 그 춘계 대항전 때 최우수 생도로 선정되면서 받은 홍매단? 저번에 약재 시장 갔을 때 샀던 황보세가의….”

“천왕오행단. 근데 중려환은 무림맹에 있을 때 먹었고, 천왕오행단이랑 홍매단 수중엔 이렇게 두 개가 있는데 이걸 내주마.”

“그, 그걸 내주겠다고? 당호로도 딱 한 개씩밖에 안 사줬던 천하의 언용운이?”

“…그건 진짜로 니들 입맛 떨어질까 봐 그랬던 거라니까?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내 주변 사람들 중에 가장 내 주머니를 많이 털어간 녀석이 당옥기 넌데, 가만 보면 네가 제일 나를 노랑이 취급을 하더라? 진짜 노랑이가 뭔지 보여줘?”

“아니! 안 보여줘도 돼! 그냥 놀라서 말이 잘못 나왔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영단이잖아?! 그 귀한 걸 이렇게 내줘도 괜찮냐는 거지 내 말은!”

뭐, 저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백도 무림 전체가 후원하는 정무학관이니까 영단이나 영약이 이렇게 풀리는 것이다.

단강구를 조금만 벗어나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평생을 찾아 헤매도 만나지 못하고 무명(武名)의 종지부를 찍는 강호인들이 대다수지.’

하여, 부모 자식 간에도 영단이나 기연은 양보 안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당옥기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영단을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약왕 어르신께 받은 중려환을 섭취하면서 몸이 다시 휴약 기간에 들어가서 당장에 내가 먹어봐야 효과도 없고,’

해금방 사태나 이번 살수 습격 사태를 생각해 보면 슬슬 마교 놈들이 원작보다 이른 시기에 고개를 쳐들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정도는 언 동생들이나 다른 주인공 세대들한테 베푸는 게 맞았다.

‘원작에서 활약했던, 그리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성장도 필요해.’

그 청사진을 얼마 전에 확인하기도 했다.

‘자동 사냥 위력 확실하더만?’

게다가 남들은 평생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영약과 기연인지 몰라도 나는 사정이 달랐다.

‘맡겨놓은 웅패단도 있고.’

팽소진의 적성을 찾아준 일에서 비롯될 하북팽가의 웅패환을 비롯해서, 영약이나 기연을 얻을 수 있는 사건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으니까.

그러니 홍매단과 천왕오행단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아꼈다간 그야말로 똥 되는 상황이 장차 올 수가 있겠지.’

하여, 나는 당옥기의 의문을 일축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 떨지 마라.”

그런 내 말에 당옥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더니.

“…하여간 이상한 녀석. 작은 일에선 엄청 아껴대면서 큰일은 또 배포가 크다니까.”

곧바로 백독단을 중화하는 데 들어갈 영약의 양에 대해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음. 천독단을 중화하는 데 삼십 년 내력을 품은 영단 세 개가 들어가는데, 백독단은 십 분의 일 정도의 독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영단 두 개를 용량에 맞게 쪼개면? 음. 근데 천왕오행단은 품은 내력이 이십 년밖에 또 안 되고… 네가 가진 영단 두 개로도 열 명분은 안 나오겠는데?”

“어. 그래서 중독부터 시킬 예정이다.”

“응? 뭐라고?”

* * *

내가 천독단의 섭취했던 방식으로 백독단을 먹이기엔 지금 우리 수중에 있는 영단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독에 중독된 사람에게 약처럼 써서 효험을 보는 용법을 응용하는 거지.’

그러니까 독을 먼저 먹여서 중독 상태로 만들고 백독단을 먹인다.

‘이 과정에서 백독단만으로 효험이 나타난 사람은 그것으로 끝.’

그렇지 못하고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백독단의 기운을 제대로 눌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시점에 쪼개놓은 영단을 먹여 그 기운을 눌러낸다.’

이렇게 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영단의 양을 활용해 최대 효율을 뽑아낼 수 있을 터였다.

“확실히 그게 효율이 좋긴 하겠는데. 그, 그래도 괜찮을까?”

“안전 문제를 말하는 거면, 당옥기 너도 있고 어차피 학관에 신고를 하고 진행을 할 거라 양호처에서 감독 교수님이 나올 거다. 독도 저번에 네가 무림맹에 가는 길에 싸갔던 독탄을 사용할 생각이고.”

“마라호초탄?”

마라호초탄은 매운맛과 향을 내는 열매들에서 채취한 독과 마비 독을 합쳐 만든 독탄이었는데.

‘미래로 치면 훈련용 최루 가스나 CS가스 같은 거지.’

잘못 피우면 이쪽도 당할 수 있어서 지난 여정에선 사용하지 않았을 뿐.

독의 위력 자체가 건장한 무림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은 아니었다.

하여, 중독부터 시키겠다는 내 말에 처음에는 당황을 했던 당옥기도 구체적인 계획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러면서도 한 가지 물음을 던져왔다.

“근데 제일 중요한 건 애들이 하겠다고 해야 하는 거잖아? 애들이 한다고 할까?”

얘는 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지?

“……? 내가 하자고 하면 하는 거지.”

언 동생들이야 도산검림을 가자고 해도 따라오겠다고 제 입으로들 말한 지 한 달이 채 넘지 않았고.

다른 기숙사에 흩어져 있는 주인공 세대들도 제갈설지처럼 소원을 담보가 잡혀 있거나, 이런저런 약점이나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내가 부르면 올 놈들이었다.

하여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이 순간 서로 대화도 통하지 않는 사부님과 당옥기의 마음이 어떻게 딱 맞아떨어졌다.

- …불쌍하구나.

“…불쌍해.”

뭐, 아무튼.

그렇게 백독단 투약 계획이 입안되었다.

나는 입안된 계획을 빠르게 추진했다.

비동 중 하나를 개조해 투약실을 만들었고.

또 언 동생들을 시작으로 제갈설지, 남궁윤, 팽소천, 언용명, 천장호 등에게 참가 동의를 받았으며.

그 동의서와 약왕 어르신의 소견서, 그리고 연구 개요를 묶어 만든 서류를 학관 측에 제출해 신고를 완료했다.

제출한 신고서가 흠잡을 곳이 없었는지 학관의 허락도 빠르게 이루어져서, 감독 교수님과 함께 투약 일자도 딱 정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찾아오게 된 투약일.

투약은 세 명씩 진행하기로 했는데.

처음 투약실에 들어오게 된 녀석들은 우소릉, 정현, 남궁윤이었다.

“…그. 정현 도장, 투약실 문에 그려진 그림 보셨나요?”

“예. 우소협. 노란색으로 칠을 한 바탕에 인골이 그려져 있더군요,”

“무슨 뜻일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 소협께서 어찌 그런 기괴한 문양을 새겨 넣으셨는지, 그 문양 위에 쓰인 화생방(化生放)이라는 문구도 잘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어이 청죽.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언용운은 저 증오스러운 빨간 모자는 왜 또 쓰고 있는 거냐?”

세 사람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중얼거리는 가운데,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갑다 제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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