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독공! 독공! 독공! (3)
처척! 척!
붉은 모자를 눌러쓴 내가 건조한 목소리로 ‘제군들.’을 찾자.
정현과 우소릉 그리고 남궁윤이 자기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한데, 개중에 남궁윤이 꿈틀거렸다.
누구인가?
누가 부동자세에서 꿈틀거렸어?
‘이해는 간다.’
남궁윤의 성정에 몸이 기억하고 있는 빨간 모자와의 기억이 수치스러웠겠지.
나는 기껏 취한 차렷 자세를 의식적으로 풀어 은근슬쩍 팔짱을 끼려고 하는 남궁윤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남궁 올빼미.”
그런 내 음성에 남궁윤은 또다시 몸이 기억하는 외침을 뱉고 말았다.
“…악.”
하지만 재빨리 고개를 털며 자신의 주장을 시작했다.
“…이 아니고. 왜 부르나? 그리고 그 빨간 모자와 고압적인 태도는 뭐고?”
“일단 네 주장을 들어봐는 주마. 계속 떠들어봐라.”
“무, 무림맹에서 돌아오는 여정에서야 언용운 네가 인솔자였기에 순순히 따랐지만, 나는 그 백독단이라는 것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참가한 선의의 참가자다. 오늘은 언용운 네게 올빼미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일견 맞는 말처럼 보였지만.
남궁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짚기 위해 투약실 한편에 준비해둔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귀티 나는 필체로 남궁윤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서류를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남궁 올빼미가 수결한 백독단 체험 동의서가 있다. 이 동의서엔 주최 측의 통제에 따르겠다는 문구가 분명히 적혀 있었지. 설마 남궁가의 장남께서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동의를 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제대로 읽었다. 엄청 작은 세필로 적어 놓은 게 수상해서 집중하고 읽었다. 단지 영단 투약 절차에 왜 빨간 모자가 튀어나온 것인지 이해를 못 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독을 다룰 거다. 투약 계획에도 적어 놨지만 백독단부터가 다른 영단과 달리 독성을 머금고 있고, 백독단을 섭취하기에 앞서 다른 독도 마셔야 한다.”
“…….”
“물론 맹독은 아니다. 흡수되는 양 자체도 미량일 것이고, 생명이 위험하지 않도록 여러 조치도 해두었다. 하나, 독을 다룰 땐 추호의 느슨함도 용납할 수 없다. 하여 그 어느 때보다 기강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기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부득이 빨간 모자를 쓴 것이고. 제군은 또 올빼미가 된 것이다. 대답이 되었나?”
그런 내 말에 남궁윤의 자세가 슬그머니 차렷 자세로 돌아갔고.
나는 서류철을 원래 자리에 다시 돌려놓았다.
한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 가지 물음을 해오셨다.
-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냐? 일전에 궁윤이 저 녀석이 비슷하게 투덜거렸을 때는 연대책임으로다가 허리 단련과 하체 단련을 추가적으로 부여하더니만?
‘아. 오늘은 굳이 그런 거 하지 않아도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게 될 거라서요.’
- ?
옛날 분이시라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마라호초탄이 정확히 어떤 독인지를 모르시는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궁금함이 남으신 모양이었지만.
독탄을 피우자마자 위력을 알게 되실 것이기에 부가적인 설명을 생략했다.
뭐, 아무튼.
나는 앞에선 세 사람과 나 사이에 놓인 마라호초탄과 등신대 형태의 짚 인형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본 교관이 저 독탄의 심지에 불을 당길 것이다. 그리고 제군들에게 중독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백독단을 지급할 것이다. 하나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기회인 만큼. 독탄에 불을 당기고 백독단이 지급되는 그사이에 적당한 훈련을 하나 할 생각이다.”
그런 내 말에.
무언가 큰 것이 올 것을 직감한 우소릉과 정현이 마른침을 삼키며 한마디씩을 중얼거렸고.
“…후, 훈련이라고요?”
“워, 원시천존.”
남궁윤은 조금 전보다 기가 꺾이긴 했지만 나름의 주장을 다시 한번 펼쳐왔다.
“교관…님. 이건 정말로 들은 바가 없습니다. 동의서에도 그런 문구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 훈련이라는 것이 백독단의 투약과 관계가 있는 훈련입니까?”
“남궁 올빼미. 본 교관이 듣기엔 어투가 조금 불손하게 들리는데 기분 탓인가?”
“…순수한 물음입니다.”
“조심하도록.”
사실 추가적으로 진행할 훈련에 관해서는 따로 고지한 바가 없긴 했다.
“어려운 훈련은 아니다.”
하여, 나도 취지는 알려주려 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터무니없는 훈련도 아니고. 예컨대 강호에서 불시에 독공이 들어오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백독단을 섭취하게 될 제군들은 다른 동료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소릉, 말해봐라.”
“…음. 섭취하지 못한 다른 동료들에 비해 독에 대한 저항이 높겠지요?”
“맞다. 그러니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초동 조치와 응급 처치를 제군들이 주도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정현?”
“동료가 회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래. 이 훈련은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를 가정하고 하는 훈련이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훈련의 취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의문을 제기한 남궁윤에게 가불기를 시전했다.
“뭐, 남궁 올빼미는 이런 상황이 두렵거나 혹시라도 작은할아버님께 일러바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안 해도 된다. 수결한 동의서를 돌려주겠다. 억지로 시킬 생각 없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 내 말에 역린이 찔린 남궁윤은 벌게진 얼굴로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 그럴 생각은 없다!”
“쓰흡. 말투. ”
“없…습니다.”
“그래? 뭐, 그럼 아무도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
그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남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지금 곧 내가 이 독탄의 심지에 불을 붙일 것이다. 독탄에서 독연(毒煙)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제군들은 실제 독공이 들어온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사방에 독공이 들어왔음을 알려라. 그리고 동시에 여기 놓여 있는 짚 인형이 동료라고 생각하고 피독주를 물리는 동작을 실시하면 된다. 이해됐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을 보며.
나는 부싯돌을 부닥쳐 마라호초탄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그에 마라호초탄의 매운맛을 마주한 정현, 우소릉, 남궁윤이 동시에 눈물과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컥?!”
“켘!”
“쿠, 쿨럭!”
특히나 내가 천독단을 이미 복용했음을 알지 못하는 남궁윤의 경우는 나를 보며 ‘피독주도 안 문 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컥이 아니다! 독공이 들어왔음을 외쳐야지! 너희가 동의한 훈련이다! 악으로 깡으로 따라 해라! 독공! 독공! 독공!”
“도, 독공! 독공! 독공!”
* * *
당옥기는 마라호초탄의 재료가 되는 마라호초독에 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 독은 체질에 따라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접촉한 순간 눈이 따가워지고 코가 매워지며 눈물과 콧물이 홍수가 나듯 흐르게 되는 독 이었다.
‘무림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험해 질수도 있지.’
물론, 이번 투약 과정에서 사용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농도를 옅게 한 것이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생도들은 모두가 최소한 고수반열에는 든 무림인들이기에 생명이 위험할 일은 어지간해선 없을 것이다.
하나,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고 하여 체통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와 기의 통제력이 극에 달한 이른바 초절정 이상의 경지를 이른 자가 아닌데, 독에 대한 저항력도 없다면?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는 꼴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매를 맞은 남궁윤, 정현, 우소릉 조가 이미 보여줬는데.
상남자로 유명한 팽소천과 점잖기로 유명한 언용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크허헝!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젠장!”
“크읔! 물! 누가 물 좀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마라호초독에 당한 직후의 얼굴은 본판을 잊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이제 마지막 조인가? 은 소저랑 제갈 소저?”
하여 그녀는 친구들의 체통과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언용운?!”
“왜?”
“하연이랑 설지는 내가 맡아도 될까?”
그런 당옥기의 주장을 언용운은 별다른 토씨를 붙이지 않고 받아들여 주었다.
“뭐, 그렇게 해라.”
그리고 쓰고 있던 빨간 모자를 내어주었다.
그에 언용운의 분신(?)과도 같은 빨간 모자를 받아든 당옥기는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만날 구박만 하는 녀석이 꼭 한 번씩 이런다니까.’
구박이라는 생각이 냉큼 스쳤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준 것도 없이 그러면 미웠겠으나, 언용운은 뭘 많이 주면서 그랬기 때문이었다.
‘홍옥이랑 석류도 그렇고, 무림맹까지 데려가 준 것도 그렇고.’
당문에서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연구를 찢어지는 청죽관 살림 속에서 밀어준 사람이 바로 언용운이었다.
제 녀석이 만날 놀려 먹을 때 쓰는 말마따나 청죽관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하여간에 참 이상한 녀석이었다.
뭐, 아무튼.
맡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야 했다.
더욱이 백독단은 당옥기로서도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이었다.
연구가 성공했다는 글귀를 써넣기 위해서는 제갈설지와 은하연까지 완벽하게 훈련 일정과 투약 과정을 소화시켜 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달칵-
투약실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제갈설지와 은하연이 당옥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용운 님이나 다른 언 동생분들 앞에서 못 볼 꼴을 이미 많이 보였지만, 진짜 그 꼴만큼은 보이기 싫었는데 고마워 옥기야.”
“저 말엔 나도 동의. 그 꼴은 진짜…. 인간으로서 수치스러워.”
그런 두 사람을 응시하며 당옥기는 호흡을 골랐다.
죽마고우지만 한 번씩 눈이 돌아가면 사람 흠칫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제갈설지.
언용운 밑에서 같이 들들 볶이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잘 지내고 있지만, 너무 똑 부러져서 친구보다는 언니 같은 은하연.
두 사람 모두 마냥 편하기만 한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당옥기의 손에는 언용운의 빨간 모자가 들려 있었으니까.
당옥기는 언용운이 그랬던 것처럼 빨간 모자를 푹 눌러썼다.
쓰윽-
그러자 놀랍게도 자신감이 상승했다.
“오, 옥기야?”
“옥기야?”
“본 교관은 옥기야가 아닙니다.”
어쩐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당옥기의 말투에.
제갈설지와 은하연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이 순간.
당옥기가 대뜸 독탄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컼! 순서 그거 아니잖? 켘켘!”
“당옼! 너!!!”
“설지 올빼미. 하연 올빼미는 어차피 머리가 비상해서 밖에서 순서 다 외웠지 않습니까! 바로 실전으로 들어갑니다! 목청 높여 본 교관을 따라 합니다. 독공! 독공!”
“독공!”
“도, 돜공!”
“캬악! 다시!”
“독공! 독공! 독공!!!!
* * *
백독단 투약을 겸한 무림식 화생방 훈련은 절찬리에 진행되었다.
동의서를 제출한 주인공 세대들은 내가 정해준 순번에 따라, 순서대로 화생방 훈련–백독단 섭취–운기조식–경과 확인 및 독기를 날리기 위한 체조를 실행됐는데.
“몸에 독을 묻힌 채로 기숙사에 돌아가면 다른 생도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옷에 묻은 독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지난 여정 때 알려드린 팔 벌려 높이 뛰기를 실시하겠습니다.”
은하연과 제갈설지 조는 당옥기가 맡기로 해서 먼저 훈련을 하고 나온 생도들에게 체조를 시키고 있으니.
- …눈물 콧물을 흘릴 것이다는 말이 비유인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였을 줄이야.
‘역시 짐작지 못하셨군요. 애초에 그래서 소릉이 녀석이랑 남궁윤을 제일 먼저 참여시킨 거였습니다.’
- 소릉이 녀석은 너무 겁을 먹을까 봐 그랬겠고? 남궁윤 그놈은 왜…?
‘투약실에서 나오자마자 급히 말라붙은 눈물 자국과 콧물 자국을 지우려고 물을 찾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다른 녀석들 몰골부터 봤으면 아마 안 한다고 내뺐을걸요?’
- …무서운 놈. 처음부터 거기까지 계산했더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내두르셨다.
그리고 감독 교수로 나와 계시던 양호처의 배종도 교수님과 호기심에 참관을 하고 있던 명태성 각주도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허.”
“…하.”
“어. 명 각주님도?”
“배 교수님도?”
“놀라셨군요.”
“안 놀랄 수가요.”
그 두 사람은 서로 간에 야 너두? 어 나두! 를 주고받더니.
“예. ‘독에 저항력을 갖춘 우리가 주도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 허허. 오늘 행사를 서류로 접했을 때는 아무리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았다손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투약 과정을 진행하는 게 과연 맞는가에 관한 의문이 들었는데. 취지와 투약 과정을 직접 보고 나니 감탄이 다 나오는군요.”
“예. 저도 그냥 구경 삼아 나왔다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을 느끼는 중입니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독공에 노출된 상황을 미리 체험해보면 실전에서 훨씬 더 좋은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느 순간 동시에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훈련, 맹에서도 하자고 맹주님께 품의를 좀 올려도 되겠나?”
“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 역시 자네에게 허락을 좀 구할까 하네. 마라호초단이라는 독탄의 농도만 좀 더 낮출 수 있으면 꼭 백독단이 없어도 교육이나 훈련용으로 사용이 가능할 것 같아서, 학관의 공통 과목에 교육 과정으로 넣자는 건의를 올릴까 하는데. 언용운 생도 자네의 방식을 내가 인용을 좀 해도 되겠나?”
안 될 리가.
가까운 미래 무림에 두고두고 물려줄 미풍양속이 생겨난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두 분의 요청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