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33화 (133/444)

제133화. 위원회의 결정 (2)

노삼 교수야 원체 종잡기 힘든 양반이긴 했지만,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일은 없다느니 자신의 몸뚱이를 보태겠다느니 하는 말은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았다.

‘총타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저 말을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그 내용이 쏙 빠져 있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해석이 될 리가 있나.

하여 개봉에서 당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저러나 나름대로 짐작을 해보고 있는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대뜸 한마디를 해오셨다.

- ……? 그지 새끼가 상한 개밥을 잘못 훔쳐 먹었나. 아닌 낮 중에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이냐?

하여 내 의식의 흐름이 조금 엉뚱한 곳으로 흘러 버렸는데.

‘…상한 개밥을 훔쳐먹는 노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성견(成犬)과의 혈투?

어쩐지 노삼 평생 한 번쯤은 있었을 법도 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노삼이 눈에 띄게 멋쩍어하더니, 두툼한 손가락으로 목을 긁으며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흐허험! 이거 나도 모르게 속 간지러운 소리를 했구만!”

아무래도 새어 나온 내 웃음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거기다 대고 ‘이 웃음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교수님이 개밥을 훔쳐먹는 모습을 상상하다 나온 것입니다.’ 하기도 좀 그랬고, 또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총타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오셨습니까?’를 묻기도 그랬다.

‘그랬다간 필연적으로 전(前)용운이 놈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 테니까.’

노삼의 입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돼주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총타에서 나온 내 이야기가 악담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집요하게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하여, 기왕 웃음이 새어 나온 입꼬리나 뒤틀고 있으니.

노삼의 입에서 또 한 번의 헛기침이 나왔다.

“허험! 허허험!”

그리고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빨라진 노삼의 걸음을 쫓다 보니, 우리 걸음은 어느새 학관의 본관에 이르렀는데.

일 층에 위치한 교직원 식당을 지나, 층층을 거쳐 소회의실이라는 명패가 내걸린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왔군요.”

상석에 앉아 계신 경혜사태가 쥐고 계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응시하셨다.

그 말에 앞에 놓인 직사각형 모양의 각탁에 앉아 계시던 교수님들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좌우로는 행정처장님과 학관의 방호를 책임지는 호위부장님.’

그리고 팽재혁, 창량, 제갈민.

각각 운매, 향란, 윤국의 사감 교수님들과 빈자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자리에 노삼이 가서 좌우 인원의 균형을 맞추니.

이른바 정무학관의 운영위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곧바로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생도 언용운. 운영위원회의 부름을 받고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회의의 의장이신 경혜사태께서 고개를 끄덕여 내 인사를 받아 주시며 노삼의 옆에 있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입을 여셨다.

“이런 자리가 생도들에게 어렵고 불편한 자리임을 알면서도, 물을 것과 알려 줄 것이 있어 이렇게 불렀어요. 우선 자리에 앉을까요?”

그에 노삼이 의자를 빼 주는 자리에 가 앉으니.

비색 무복을 입은 대학원생 선배가 들어와 노삼과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고.

또르륵-

그렇게 찻물이 잔을 채우고 대학원생 선배님이 회의실을 나가자, 경혜사태께서 깊은숨을 내쉬며 입을 여셨다.

“…후. 우선 알릴 것부터 이야기할게요. 지난 견학 일정에 일어난 살수들의 배후를 찾지 못했어요. 어른들이 면목이 없네요.”

* * *

사실 나는 결론이 저런 식으로 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노삼 교수님이 대뜸 하북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시길래, 혹시 전(前)용운이 놈한테 진주언가의 비급을 털어간 세력이 마교인 것을 눈치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혹여 개방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결론은 저렇게 났을 것이다.

‘이 세계관 속 마교는 생겨난 지 고작 백 년밖에 안 된 신흥 집단이니까.’

인간 사회에 도시가 들어 서며 생겨난 거지가 모여 형성된 개방과 천년 소림을 필두로 한 불문(佛門)들과 저 옛날 제자백가 시절의 도가의 통을 이어받은 도문(道門)들로 이루어진 구파일방.

수십, 수백 대를 이어 내려오며 황조들의 흥망성쇠와 강호의 대소사에 관여해온 세가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마교는….’

잘 쳐줘야 손맛이 좀 매웠던 애송이.

‘정마대전의 여파로 시험이나 수업 등에서 가상의 적을 설명할 때, 마인이라는 표현을 교수님들이 많이 쓰시긴 하지만.’

그 정마대전도 방심 끝에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백도무림의 승리로 끝났으니까.’

직격을 당한 가문 중에는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자리에서 밀려난 진주언가나 공동파처럼 휘청이거나 아예 멸문지화를 당한 곳도 있었다.

하나, 백도무림 전체를 기준으로 삼는 기적의 셈법 아래에선 큰 피해 없이 백도무림의 승리로 끝난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이후로는 딱히 전쟁이라는 명칭이 붙을 만한 큰 사건을 일으킨 바 없이, 한 번씩 마공이 중원으로 흘러들어와 소란이 일은 정도로만 원작에선 묘사됐었지.’

그러니 마교라는 집단이 사람들의 안중에 없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설령 안중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마교 같은 이름은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추종자를 불어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호의 경제와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어쨌든 간에 일단 지켜보자는 식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마교보다는 제대로 된 실체를 갖추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집단을 의심했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거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면목이 없다는 말을 전해왔던 경혜사태의 말을 이어받아.

나를 향해 각각 무림맹에서 알아 온 이야기와 개봉에서 알아 온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창량과 노삼이 딱 이 시점에 내가 예상한 그 이야기를 뱉어냈다.

“맹의 군사부에서는 당금의 녹림왕(綠林王)은 집안 단속을 하느라 바쁘고, 사도련은 련주를 새로 세운다고 출혈이 커서 갑자기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좀 부족하다고 하시더군요.”

“총타에 계신 방주님께서는 기염곡(旣殮谷)이나 천살막(天殺幕)은 아닐 거라는 말씀과 함께 거지들을 닦달해서 더 알아내 보겠다고 하시더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말을 마치자, 옆에 앉아 있던 사람 중 임태옥이 입을 열었다.

“하여, 이번 당면한 학사일정인 대민지원을 무기한 연기토록 하기로 했소이다. 한데 창량 교수님이 무림맹에 가서 들어오신 말에 의하면 언용운 생도가 맹주님과 무슨 약속 같은 것을 한 모양이외다?”

아.

대민지원 지역을 산서로 신청해서 가서 보고 들은 바를 전해 드리기로 하기야 했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사이.

창량이 소매에서 봉인된 편지를 꺼냈다.

“맹주님께서 써주신 서한이다. 읽어 보거라.”

그리고 무심한 손놀림으로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나를 향해 휙- 하고 밀었다.

그 서한을 탁- 하고 잡아 봉인을 제거하고 내용을 확인을 해보니.

- 뭐라고 쓰여 있느냐?

‘강호가 어수선하니, 무림맹에서 했던 약속은 못 들은 것으로 해도 좋다고 하시네요?’

- 맹주가 너를 아끼긴 아끼는 모양이구나. 한데 네 녀석이 무림맹에서 하연이 그것이랑 세운 사업계획인가 그거 실현하려면, 산서에 있는 네 외가에 가봐야 일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더냐?

‘맞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원작의 정현과 몇몇 주인공 세대들이 겪었던 일이기에 가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암초를 만났다.

‘이거 이런 분위기에서.’

산서로 대민지원을 나가는 일을 허락받을 수 있나?

그때였다.

그 생각을 하느라 잠시 내 미간이 좁혀진 이때.

경혜사태께서 편지의 내용을 물으시더니.

“듣기로는 맹주님께 대민지원을 산서로 신청하기로 약속을 했다던데 맞나요? 편지에는 뭐라 쓰여 있던가요?”

“그런 비슷한 약속을 드렸습니다만, 편지의 내용은 그 약속을 못 들은 것으로 해도 좋다고 되어 있습니다.”

뜻밖에도 칼자루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그래서 언용운 생도는 어떻게 하고 싶나요?”

이건 기회였다.

나는 침착하게 생각을 한번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장님과 여러 교수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저는 가고 싶습니다.”

“혹여 맹주님께서 후원해 주셨다는 백련정강 무기들과 도와주신 명태성 각주님께 빚을 진 것 같아 걸리는 것이라면.”

“…….”

“무기는 학관 차원에서 값을 치르면 되는 것이고, 명태성 각주님의 일은 빈니가 무림맹의 행사에 손을 한번 보태드리는 식으로 충분히 갈음을 해줄 수가 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고 맹주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하북에서 유명한 망나니였습니다. 하여, 하북에서 진 빚이 좀 많습니다. 그 빚들을 아버님께 떠넘기고 집을 나온 사람이 저입니다. 단순히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가고 싶다 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팽재혁을 가리키며 말을 맺었고.

“빚에 관한 제 자세는 저기 계신 팽재혁 교수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팽재혁은 ‘크흠.’ 하는 소리로 내 행적을 증명했다.

망나니 행적이 이럴 때는 참 유용하다니까.

뭐, 아무튼.

그런 내 말에 경혜사태는 재차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면 어째서 언용운 생도는 위험할 수도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가요?”

경혜사태의 말은 어떻게 하고 싶냐는 것이지,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답에 따라 답이 바뀔 수 있는 물음이었다.

하여 나는 진지하게 할 말을 고른 뒤.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요.”

* * *

이곳이 협객을 숭상하는 정무학관이 아니거나, 내가 이웃 나라의 정치인이거나 했다면 정신이 나갔냐는 소리를 듣거나 웃음거리가 될 답.

그러나 이곳은 무림이었다.

‘정현이 녀석이 만날 옆에서 줄줄 도와 협을 외다 보니, 기억에 남은 선현의 말씀 중에 분명 저런 문구가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허.’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그중 제갈민이 홀로 중얼거렸다.

“…태사공 사마천의 말이로군.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킨다. 행동이 반드시 정의에 맞지 않아도 말에는 믿음이 있고, 행동은 과감하며, 위급한 일에 뛰어들 때는 생사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일을 자랑삼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그것이…”

그리고 경혜사태가 크게 한 대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협객이지요. 백도무림의 산실이라 불리는 정무학관의 총장인 빈니가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언용운 생도의 말 덕분에 깨닫네요.”

그렇게 회의장에 묘한 기류가 감도는 와중에 노삼 교수가 내 뜻에 힘을 실어주셨다.

“본 위원회에서 혹 언가 녀석의 뜻을 존중해 주시겠다는 결론을 내신다면, 산서행에 제가 함께하여 호법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허락을 해주자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노삼 교수님이 호법으로는 참 든든하죠.”

“……? 호법으로는? 총장님 말씀에 다른 때는 아니라는 듯한 뼈가 있는 듯한데 기분 탓일까요?”

“기분 탓이십니다. 아무튼 저는 허락을 해주고 싶은데, 다른 교수님들은 어떠신지요?”

원리원칙주의자인 창량 교수는 팔짱만 끼고 있었지만 다른 교수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렇게 산서로 대민 지원을 가는 것 자체는 허락이 떨어졌다.

경혜사태는 이제 인원 구성을 어찌할 것이냐에 관해 물어오셨다.

“학관의 외부일정들이 대개 그렇듯 대민지원도 지난 견학 일정처럼 뜻이 맞는 생도들끼리 조를 이루어 장소를 정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해오도록 했는데, 언용운 생도는 혹 생각해둔 조원이 있나요?”

“정확한 명단은 아직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고민 중이라. 혹시 이번에도 청죽관 생도들 말고 다른 기숙사의 생도들을 참여시킬 생각이었나요?”

뭐, 용명이 녀석은 무조건 데려갈 생각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정무학관의 정신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군요. 참 사람이 알면 알수록 깊어요.”

그러자 저런 말이 돌아왔다.

살짝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았으나, 정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니.

경혜사태의 입이 재차 열렸다.

“허락도 했고, 취지도 좋은데. 시절이 어수선한 만큼 인원이 너무 많으면 안 되지 싶고. 저는 대여섯 명 수준으로 하면 좋겠는데 어떤가요?”

대여섯 명.

누구와 함께 갈지 아직 정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딱 그 정도 인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 저도 그 정도 규모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좋네요. 사흘 정도 말미를 드릴게요. 특별히 허가하는 조인 만큼 생도를 맡긴 문파나 세가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는 절차가 필요하겠네요. 제가 조교 선생님들께 일러 기숙사가 있는 패루 앞에 놓인 흑판에 공고를 붙여 두도록 할게요.”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장님.”

공고는 절차상으로 나붙는 것일 뿐이었다.

조원의 구성권은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내겐 어디든 따라서 오겠다는 언동생들이 있었다.

다른 주인공 세대들도 적당히 구슬리거나, 잡아둔 약점을 흔들거나, 그도 아니면 적절한 물리력을 동원한다면 최선의 인선을 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찾아온 다음 날.

학관생 광장과 사대기숙사의 패루 앞에 공고가 붙었을 때.

“어? 딱 한 조만 대민지원을 내보낸다는데?”

“조장은 이미 정해졌는데? 언용운이 간다네?”

다른 생도들이 그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때만 해도 몰랐으니까.

대민지원 공고로 이렇게 사달이 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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