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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34화 (134/444)

제134화. 원오원(願俉院) (1)

대민지원 공고가 나붙었음을 확인했지만.

당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인선을 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 외에도 다음 수업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강호생활백서.’

이 과목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출석 확인을 칼같이 하는 과목이었는데.

‘풍찬검객(風餐劍客) 정극경.’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이 살짝 괴짜라 그 출석 확인이라는 것이 정규 수업 시간이 아니라 본인이 강의실에 들어온 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강호의 일들은 원래 갑작스레 찾아온다나 뭐라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되도록 빨리 강의실에 가야 했다.

‘좋은 자리도 잡아야 하고.’

정극경 교수는 해남파 출신이었는데.

달리 부를 말이 없어 괴짜라고 표현했지만, 출석을 그렇게 확인하는 연유에서 드러나듯 나름대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책만 보고 문파에서 검만 휘두룬 책상물림이 아니라 진짜의 분위기가 있어.’

풍찬, 그러니까 바람을 밥으로 삼는다는 말이 별호에 붙을 정도로 산전수전에 해전까지 겪으며 강호를 주유한 양반이라서 입담도 좋고 수업 자체도 유익했다.

그래서 수업 자체의 인기가 많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맡을 수가 없지.’

더욱이 나와 언동생들은 다른 기숙사들과 다르게 아침에 합격진 수련을 하는 데다, 쳐내야 할 자치회 업무도 있는 탓에 다른 기숙사 생도들보다 좋은 자리를 잡기가 불리했다.

그래서 순서를 정해 한 명이 먼저 가서 자리를 맡기로 했는데, 내가 오늘 그 당번이었다.

뭐, 그런고로 나는 잠시 산서에 함께 갈 인선에 관한 고민을 접고 바쁘게 강의실로 향했다.

한데, 막상 강의실에 도착하고 보니, 나름대로 서둘러서 왔던 터라 교수님은 아직이셨고.

“학관생 광장에 붙은 공고 봤어?”

“대민지원에 관한 거?”

“어, 그거.”

“근데 붙은 공고가 두 개던데? 하나는 예정돼 있던 대민지원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언용운과 함께 대민지원을 가볼 사람을 구한다는?”

“당연히 후자 이야기지. 어때, 생각 있어?”

“나야 조금 전까지는 별생각 없었지, 생각은 오히려 네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당연히 있지. 언용운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망나니라고 폄하하는 녀석들이 아직도 많지만, 따지고 보면 그 녀석을 쫓아다닌 녀석치고 콩고물 못 주워 먹은 녀석 없잖아?”

먼저 와있던 다른 동기생들이 내가 잠시 미뤄둔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우소릉이라는 놈은 입관 시험 당시 탈락권이었는데 떡 하니 합격을 했고, 무림맹에 따라갔다 왔던 녀석들은 어제 청죽관에서 개발한 무슨 영단 같은 것도 받아서 먹었다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지 않냐?”

“뭐가?”

“아니 시험 기간에 청죽관 애들 몰골 너도 봤잖아? 그 녀석들 진짜 뒈져라 구르는 것 같던데?”

“…아. 하긴 청죽관 녀석들 이야기 들으면 살아 있는 수라 같기는 하더라.”

“그리고 영단 받은 거, 나는 막 개발된 영단을 먹는 것 자체가 불호긴 한데. 뭐, 기연이라고 치더라도….”

“치더라도?”

“아니 내가 양호처 일 돕는 거로 근로장학생 혜택을 받고 있잖냐? 그래서 배종도 교수님이 이야기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내가 듣기로는 그게 그냥 준 게 아닌가 보던데?”

“그래?”

“어. 무슨 화쟁방인가 화생방인가 하는 것을 했데. 그런데 세상에! 자기는 태어났을 때 빼고는 운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팽소천이랑 천하의 남궁윤이 아주 눈물 콧물을 질질 짰다더라!”

아니, 쟤들은 뭔 사람을 수라귀 취급을 하는 걸까요 사부님?

-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

‘……?’

- 아닌 게 아니지. 굴린 것도 맞고, 남궁윤이 놈이랑 소천이 눈물 콧물 흘린 것도 맞고. 틀린 말이 없는데?

뭐! 아무튼!!

그런 동기생들의 말에 각각 일 열의 좌측 끝과 우측 끝에 자리하고 있던 산만 한 덩치의 팽모 생도와 이 교시부터 동백기름을 머리에 처바르고 온 남궁가의 귀공자가 움찔하는 가운데.

대민지원 공고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도란도란 이어졌는데.

그러는 사이 무복을 갈아입은 언동생들이 저희끼리 눈썹을 구겨가며 대화를 나누면서 들어왔다.

“아니 용운 형님이 가시는데 당연히 제가….”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빈도가 뒤를 받치는 것이….”

“그렇긴 뭐가 그래요. 하성이 너 저번에 옥기랑 갔을 때 짐꾼밖에 안 했다며?”

“…그, 싸우지들 마세요.”

녀석들끼리 제법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의견 교환을 하길래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물음을 던지니.

“뭔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데?”

정현과 은하연이 시치미를 뚝 뗐다.

“아, 언소협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예. 언공자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니에요. 그냥 저희끼리 나눌 이야기가 좀 있었어요.”

……?

이 녀석들이 뭘 숨기는 거지?

바른대로 실토하라는 의지를 담아 녀석들을 흘겨봤지만.

나름대로 이골이 났는지, 하나같이 내 눈을 피해 상황을 모면하려는 기색이었다.

뭐,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내게 털어놓지 않을 녀석들이 아니니 나중에라도 이야기하겠지.

그렇게 청죽관의 언동생들이 착석을 마치고서 시간이 약간 지났고.

도착한 풍찬검객 정극경 교수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조금 늦었습니다.”

한데, 아직 당옥기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녀석의 이름이 나올 차례가 되고 말았다.

“노영범.”

“옙!”

“당옥기.”

그에 옆에 앉은 은하연의 표정과 앞에 앉은 제갈설지의 뒤통수에 ‘이거 대신 대답을 해줘야 하나?’ 하는 고민이 서리는 그때.

“당옥기.”

“…….”

“…….”

“당옥기? 당옥기 생도 없습니까?”

드르륵!

당옥기 본인이 강의실 문을 박차다시피 밀어 열고 입을 열었다.

“예!!!”

“호오. 마치 시의 한 구절 같은 등장이군요?”

“…예?”

“왜, 두보의 시 중에 좋은 비는 때를 안다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방금 당옥기 생도의 등장이 마치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당옥기 생도에게 박수를 보내줄까요?”

짝짝짝짝짝짝짝짝-

교수님의 의도는 좋았으나 당옥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관심이었다.

“…다, 다음부터 일찍 도착해 있겠습니다!”

그에 홍옥기가 된 당옥기가 눈을 질끈 감으며 호다닥 빈자리로 뛰어 들어왔다.

“쪽팔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소리 없는 박수를 계속해 보내며 입을 열었다.

“쪽팔릴 게 뭐 있냐. 만날 행사 있을 때마다 지각을 맡아 놓고 하더니, 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다.”

“캭! 애들 밥 주러 갔다가 거기다 교재 놓고 와서 늦은 거거든?”

아무튼.

이어진 출석 확인 끝에 수업이 시작됐다.

“팽소진 생도는 무림맹에서 파견학습을 신청한 친구고 나머지는 다 왔군요? 그럼 바로 수업을 시작하도록 할까요? 아, 오늘은 교재가 필요 없습니다. 수업내용을 좀 바꿨거든요.”

“캬악!!”

“……? 당옥기 생도,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뛰어오느라 목이 타는 모양입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교수님.”

“오. 언용운 생도군요? 안 그래도 오늘 수업내용을 바꾼 이유가 언용운 생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예?”

“저번 견학 일정에서 복귀 중에 살수들을 마주쳤음에도 학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산서로 대민지원을 나가기로 했다지요?”

“아. 예.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말을 듣자마자, 수업내용의 순서를 좀 바꿨습니다. 하여 금일 강호생활백서의 주제는 살수에게서 살아남기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정극경 교수는 강의실 앞에 놓은 흑판에 백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완성되고 보니 남소현 인근의 야산에서 살수를 마주쳤을 때 우리가 취하고 있던 진형이었다.

“이게 얼마 전 살수를 마주쳤던 여러분의 동기들이 취하고 있던 야영지의 형태입니다. 해자, 함정, 물꼬와 차수막, 모닥불들의 배치. 저는 이걸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관군이나 체계가 잘 잡힌 표국에서나 이런 식으로 야영지를 짜거든요?”

“…….”

“그런데 이 진형을 주도한 사람이 타격대의 각주님이 아니라 언용운 생도라면서요? 이쯤 해서 박수를 안 칠 수가 없네요. 모두 언용운 생도를 향해 박수.”

짝짝짝짝짝짝짝짝-

“…야, 이거 쪽팔린 것 맞네. 미안하다 당옥기.”

짝짝짝짝짝-

아.

미안하다고.

짝짝짝-

뭐,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수업은 살수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로 넘어갔다.

“나름대로 준비도 잘 되어 있었고, 기습의 이점도 생도들이 점했고. 그처럼 살수들을 상대로 유리한 환경을 점한 덕분에 별 피해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나, 이건 사실 강호에서 살수를 마주친 상황 중에 상당히 드문 사례입니다. 하면 불시에 기습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팽소천 생도가 한번 답해볼까요?”

“음? 그냥 싸워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정론입니다만, 한 번의 패배에도 목숨을 내놔야 하는 게 살수들과의 싸움입니다. 어떻게가 빠졌네요. 어떻게 싸울 건데요?”

“…어. 음. 열심히?”

“팽소천 생도는 방금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다음 생도로 넘어갈까요? 어디 보자, 우소릉 생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 도망을 치면 안 될까요?”

“몇몇 생도들이 방금 웃던데, 의외로 우소릉 생도의 말은 정답 중에 하나에요. 걸음에 자신이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죠.”

하필이면 수업내용이 저러했기에, 나는 진행되는 수업을 경청하며 한편으로 산서에 데려갈 인선을 어떻게 꾸릴지에 관한 고민에 들어갔다.

‘용명이 녀석은 데려가야 하고.’

원작을 떠올려 보면.

외가, 그러니까 태원이가 쪽 사람들은 딱히 흠잡을 것이 없던 당시의 언용명도 썩 탐탁지 않아 했다.

‘하니 공식적으로 어머님과 아버님의 호적에서 파이기까지 한 나는 입구에서 돌아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지.’

하니 용명이 녀석은 출입증의 개념으로다가 필히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녀석을 제외하면 너무 원작에 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뒤틀려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서 스스로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있거나, 내 판단을 믿고 따라 줄 수 있는 녀석을 우선하면 될 것 같았다.

‘물론, 학관에 남겼을 때와 산서에 데려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성장 같은 것도 고민은 해봐야겠지만.’

그래도 원작의 주인공인 정현은 데려가야겠지?

나, 용명이, 정현.

그럼 남은 자리가 세 자린가?

* * *

대민지원 공고가 붙은 첫날이 지나갔다.

세상 모든 공고가 그렇겠지만, 반응은 ‘싫다!’와 ‘좋다!’ 두 가지였는데.

후자, 그러니까 좋다는 쪽이 어느 순간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언형, 오늘 오랜만에 궁보계정이 나왔던데요? 오? 근데 오늘은 주사고고가 별로 안 챙겨 주시던가요?”

“오늘 내가 제일 먼저 왔더라. 뒤에 가서 모자라면 고고께서 곤란해지시지 않냐, 주시려고 하는 거 내가 거절했다.”

“그럼 여기 제 것 좀 드세요.”

“빈도의 것도 드리겠습니다.”

뭔데 이것들?

“동작 그만. 가만히 있어 봐. 너희 이제 보니 대민지원에 데려가 달라고 이러는 거구나? 안 그래도 어제오늘 틈만 나면 너희끼리 뭔 토론 비슷하게 하는 거 같더니만? 어? 맞지?!”

“…어, 예. 맞아요.”

“꼭! 가고 싶습니다!”

“어이가 이중으로 없네. 그게 뭐라고 숨기냐? 그리고 고작 궁보계정으로 사람을 꾀려고 해? 하여간에 세상 물정을 이렇게나 몰라요.”

그때였다.

그렇게 일단 식판으로 넘어온 궁보계정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훈계를 하고 있는 이때.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하시는가 싶더니.

- 지는 그렇게 해놓고.

‘예?’

- 네 녀석은 소릉이에게 궁보계정을 주면서 신법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그런 말을 할 거면, 거 먹지나 말거라 좀!

멀찍이서 달려온 은씨 남매 중 누님 쪽은 허리에 양손을 얹고, 동생 쪽은 정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와, 이 배신자들! 수업 말미에 어딜 그렇게 빠져나가나 했는데, 다른 수업 듣는 언공자 점심시간을 노렸어요?!”

“저 사람 도사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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