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뜻밖의 초대 (3)
사람 머리가 순식간에 둘이나 깨져 나갔는데, 정작 술병은 멀쩡한 광경을 목격한 억삼이라는 산적은 까딱이는 내 손가락에 홀린 듯이 응했다.
“…….”
근데 표정이 너무 겁에 질린 것 같았다.
“표정이 왜 그러시오? 누가 잡아먹나?”
나는 쭈뼛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온 억삼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어깨에 팔을 걸었다.
“어허 다른 산적들이 보면 오해하겠소. 웃으시오, 웃어.”
“헤, 헤헤.”
한데 이가 좀 많이 누랬다.
“이는 보이지 마시고. 입꼬리만 올립시다.”
“흐흐?”
“옳지. 옳지.”
하여, 그 점을 짚어주고 있는 사이, 동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요, 용운 님?”
“형님?”
“…육갑들을 떨길래 좀 처맞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캬, 저 형님은 후진도 없으시지 그걸 그냥 냅다 갈겨 버리시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빠르게 할 일을 분담했다.
“아까 보니 저쪽이 산적들이 숙소로 쓰는 곳인지 부뚜막으로 가는 녀석들 빼고는 다 저리로 몰려가더라. 장호랑 용명이는 왼쪽 놈을, 소릉이랑 정현은 오른쪽 놈을 수습해서 가져다줘라. 헛소리 찍찍 뱉다 이리됐다는 말과 함께. 제갈소저는 나랑 이 양반이 하는 이야기 좀 같이 듣고.”
거슬리는 녀석들을 치웠고.
억삼이라는 자에게는 말을 걸었다.
“거, 억삼형은 아까 태원에서 옛 친구 만난 이야기나 마저 해봅시다.”
“제,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죄, 죄송합니다. 난리통에 까먹어서.”
“태원에 심부름을 가셨다가 옛 친구분이 갑자기 신수가 좋아져서 무슨 기연이 있었는지 물어봤다는 거까지 하셨소.”
“그, 그 이야기를 귀에 담으셨습니까요? …그랬더니, 저도 자신처럼 될 수 있다면서 궁금하면 자기를 따라오라던 뎁쇼?”
“해서. 따라가셨소?”
“저희 채주가 시킨 일을 기한 안에 못 끝내면 사람을 개 잡듯이 패는지라 저는 따라가지는 못했습죠.”
그런 억삼의 말에.
제갈설지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무공 수준을 올려서 수적으로 이직하겠다는 계획이 성립하지 않는 거 아닌가요?”
그런 제갈설지의 말에 잠시 눈알을 굴리는 억삼.
“…그, 이적 이야기는 좀. 채주나 높은 사람 귀에 들어가면 저 큰일 납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걸쳐놓은 손을 도닥이며 입을 열었다.
“큰일 날 이야기를 본인 입으로 하셔놓고?”
“그건 공자님처럼 존귀하신 분이 저 같은 놈의 말에 귀를 기울이실 줄 몰라가지고.”
“아무튼. 말이 안 맞잖소?”
“그것이 나중에라도 찾아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조만간에 가볼 생각이었습니다요.”
“태원은 작은 동네가 아닌데 어떻게 찾아오라는 거요? 소굴이나 사업장 같은 곳이 있소?”
그런 내 질문에 억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난색을 표해왔다.
“그, 그건 천기(天機)에 가까운 거라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제가 어디 있든 찾아서 죽일 거라고 그래서 말씀을 드리기가 좀….”
나는 그런 억삼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천기라는 녀석이 지금 대충 어디쯤 있겠소?”
“…예?”
“내 주먹은 여기 있소. 혹시 천기가 이거보다 가깝나?”
“…따, 따로 정해진 곳이 있는 것은 아니고. 보름 뒤에 태원 뒷골목에 붙어있는 집들의 벽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했습니다요. 그럼 어떤 문양이….”
여기까지 들은 나는 살수의 몸에서 보았던 흔적을 발로 대충 그린 뒤 입을 열었다.
“그 문양이 혹 이런 문양이오?”
“어? 맞습니다! 근데 이걸 어떻게?”
그때였다.
억삼이라는 자가 물방울 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한 문양을 아는 체를 해온 그때.
파파팟-
파파파팟-
멀찍이서 두 무리의 인원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는데.
“언소협!”
“언형!”
앞에서 달려오는 인원은 좀 적으나 절도가 있는 녀석들은, 쓰러진 산적들을 돌려주러 간 우리 애들이었고.
“병두랑 광남이가 당했다!”
그 뒤를 우르르 따르고 있는 녀석들은 산적 놈들이었다.
그렇게 달려온 녀석들 중.
척! 척!
정현과 우소릉이 적절한 거리를 띄우고 내 앞을 막고 선 것을 시작으로.
두 녀석의 모습을 통해 저번 견학 여정에서 감을 익혔던 채작진을 떠올려 낸 천장호와 언용명이 각각 한 방위씩을 점했고.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있던 제갈설지가 몸을 세워 다섯 번째 방위를 점하니.
처처척!
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는 기초적인 형태의 채작진이 모습을 갖췄는데.
뒤늦게 우르르 도착한 인원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아까 전, 중턱 깨에서 노삼의 입담에 한 방 먹었던 민머리 소두령(小頭領)이 걸어 나와 그간 백도무림에 쌓인 증오를 드러냈다.
“그러면 그렇지. 정파 놈들의 역겨운 본질이 곧바로 드러나는구나. 이쪽의 대접을 원수로 갚아?”
씩씩 거리는 민머리 소두령.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에 걸릴 것 같은 병장기를 퉤! 침을 뱉어가며 고쳐 쥐는 산적들.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에.
나를 중심 삼아 다섯 방위를 점한 동기들이 저마다 검을 뽑거나 권장을 내보이며 기수식을 취했고.
스렁- 스르렁-
나는 낮게 한숨을 내 쉬었다.
“에효. 본질이 드러나는 쪽이 어느 쪽인지. 어지간하면 좋게좋게 넘어가고 싶은데 꼭 이렇게 참교육 강의를 신청들을 해요.”
물론 한숨만 내쉬고 있지는 않았고, 억삼에게 빠르게 말을 걸었다.
“사람이 말이 통해야 사람이고, 좀 맥락도 볼 줄 알고 그래야 사람인데, 우리 녹림도 여러분들은 하여간에 하나같이 성질들이 참 급해요. 엠비티아이를 해서 성질 급한 사람 위주로 받나? 안 그렇소, 억삼형?”
“…어. 암비투아이? 그게 뭡니까요?”
“그런 게 있소. 아무튼 뒤쪽으로 던져 드릴 테니까 꼼짝 말고 있으시오. 아, 함부로 자리를 이탈하면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만은 명심하시고. 참고로 여기서 불상사는 뒈진다는 뜻이요.”
말을 마친 나는 딱따구리처럼 고개를 주억이는 억삼의 멱을 틀어쥔 다음 뒤를 향해 던졌다.
“흐미.”
꽈당탕-!
그렇게 소중한 정보원의 안전을 확보한 이때.
저쪽에서도 민머리 소두령이 입을 열었다.
“저놈들이 먼저 시작했으니 녹림왕께서도 이해를 하실 것이고! 늙은 거지새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뒤 허리에 차고 있던 두 자루 유엽도(柳葉刀)를 휘리릭! 돌려 뽑으며 나를 겨눴다.
“쳐라!”
참교육 수강신청을 향한 열의가 저렇게들 폭주해 버리니.
싸움을 피할 길이 없었다.
먼저 제압을 끝내놓고 자잘한 사실관계 같은 것은 추후에 밝히든 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명을 내렸다.
“정현과 천장호가 왼 날개, 제갈소저와 용명이가 오른 날개, 소릉이는 꼬리를 맡아. 공격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한다. 교수님이랑 녹림왕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모르니, 일단 생명이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살초는 쓰지 않는다.”
내 명에 따라 동기들이 스스슥- 점하고 있던 방위를 바꿨다.
하나 개중에 제갈설지는 한마디 전음을 날려왔다.
[용운 님이라면 이미 파악하고 계시겠지만, 저희 쪽이 인원이 한참 부족한 상황이라 자칫 싸움이 막장으로 치달아 차륜전의 양상을 띠게 되면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체력이 충만할 때 착실히 저쪽의 수를 줄여놔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나도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걱정은 아니었다.
‘제갈설지의 눈에야 이쪽의 인원이 생도 여섯에 노삼까지 딱 일곱으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겠지.’
그 일곱의 인원만 우리 쪽의 전력이라 인식하니.
진성채의 산적들이 우리 힘을 빼는 식으로 나오다가 종국에는 녹림왕과 다른 호위들이 가담하는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설지가 우려하는 막장 상황이 조금이라도 벌어질 조짐이 보이면?’
싸움이 그 정도로 막장까지 가버리면 나도 전생의 방식으로 싸우는 방식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되면 절대다수는 일순간에 이쪽이 될 것이었다.
‘노삼 교수님이나 다른 동기생들이 그 이질적인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긴 한데….’
뭐, 중간고사때 강시학개론에서 만점을 받은 전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내가 진주언가 출신이기도 하고.’
그리고 되도록 살초는 쓰지 말라는 말은.
“옵니다! 우익!”
“보고 있어요. 전면 차단할게요! 소릉 님, 붙으세요!”
채챙!
채채채챙!
“용운 님, 지금 한 명 갑니다!”
무공으로 사람을 해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다른 동기들에게 금제를 걸어두기 위함이었지.
“…엇?! …왜 나만 혼자 남았지?”
나처럼 어디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치면 사람이 죽지 않고 길게 잠을 잘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겁도 없이 채작진의 전면에 섰다가 합격진 안에 홀로 남게 된 산적을 향해 가벼운 인사말을 건넸다.
“어서 오시오. 채작진은 처음이시지?”
그리고 쥐고 있던 술병에 다시금 파천의 내력을 감아 힘껏 휘둘렀다.
빠악!!!!!
“켕!”
제갈설지가 우려했던 진성채의 전력 하나가 주는 순간이었다.
* * *
본디 산적이라는 집단이 그리 끈끈한 집단이 아니다.
채채채챙!!!
녹림왕이 방문하며 사기가 고양된 상태에서, 백도무림에 불신이 깊은 민머리 소두령이 기름을 냅다 부어서 들불처럼 덤벼들었던 진성채의 산적들이었지만.
“용운 님! 또 한 명 갑니다!!!”
- …설지 저것이 살짝 신명이 나 보이는 데 기분 탓인가?
빠악!
“아?!”
아?
근데 이 양반은 철두공이라도 익혔나?
‘엌’이나 ‘컼’이 아니고 왜 아 소리가 나오지?
‘잠시만요, 사부님. 특이체질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어차피 혼잣말이었으니 하던 일이나 마저 하거라.
‘옙.’
빡! 빠악!!
“읔!”
동료 산적들이 하나씩 피를 흘리며 늘어지자.
고양돼있던 사기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며 주춤주춤 걸음을 물리기 시작했다.
‘전문용어로 모랄빵이 나기 시작했네.’
본인들 산채인 데다 녹림왕이 들어앉아 있으니 딱히 도망갈 곳이 없어서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지.
대다수의 산적은 싸울 의지를 잃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진퇴의 기로에 놓인 민머리 소두령에게 선택지를 늘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더 하시겠소? 그냥 덤벼드시는 통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그쪽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관계에 오해가 좀 있소.”
보통 이렇게까지 전황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이쪽에서 이렇게 물으면 저쪽에선 그 오해가 뭐냐 하고 나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민머리 소두령 또한 그러했다.
그는 퇴각의 기회를 포기하고 진격을 택했다.
“닥쳐라!!”
그래도 부하들을 더 갈아 넣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섰다는 점.
채챙!
채채채챙!
“형님!!”
“언형! 전면 엽니다?!”
그리고.
아직 본인들 쪽이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후. 네놈만 따버리면 이 지랄 맞은 합격진도 와해가 되겠구만?”
우리가 펼치고 있는 합격진의 중심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적으로 나와 일대일을 하게 된다는 점을 헤집어 중심에 들어온 것은 적이라도 칭찬해 줄만 했다.
“너 같은 놈들이 깨끗한 연무장에서 허수아비나 치던 때 강호에서 쌍도귀란 이름값을 쌓아 올린 나다. 지켜주던 동무들 없이 홀로 막기에는 조금 거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민머리 소두령은 도사(刀絲)를 감은 쌍도를 살벌하게 교차해가며 득달같이 짓쳐들었다.
쌔애액!
쌔애애액!!!
하나 그는 정작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정파놈이 아니야.’
검수로서의 마음은 쌍도귀와 순수하게 무위를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했지만.
‘적의 사기가 실시간으로 내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장들의 일대일은 압도적으로 끝낼수록 효과가 좋지.’
그리고 자꾸 정파놈 정파놈 하면서 싸잡아서 묶으니까 내심 심술도 났다.
‘이런 정파놈도 있다는 걸 보여주마.’
나는 녀석을 사냥하기로 마음먹고,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비어있는 왼손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세월의 저주가 담긴 부적을 한 장 잡아뽑아 짓쳐드는 쌍도귀에게 던졌다.
후드드득-
그에 펄럭펄럭 날아간 부적을 암기로 인식한 쌍도귀가 쌍욕을 내뱉으며 반사적으로 베어냈는데.
“썅!”
사람을 느리게 만드는 저주와 내 집중력이 합쳐지니.
이 순간.
내 눈에는 쌍도귀가 마치 돌처럼 굳은 것처럼 보였다.
“정퐈아아. 노오오오미. 아아암. 기르으으을?”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비영파천보를 시전해 삽시간에 민머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비어 있는 왼손으로 회한을 잡아뽑았다.
왼 허리에 달린 회한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역수의 형태가 되었는데.
나는 그렇게 뽑아 든 회한을 가위처럼 교차하고 있던 쌍도귀의 유엽도의 중심에다 착의 묘리를 시전하며 겹쳤다.
캉!!!!
그에 두 자루 도와 한 자루 검이 겹쳐진 이때.
나는 지체없이 오른손에 들린 술병으로 쌍도귀의 옆통수를 가격했다.
쌔애액!!
빠악!!!
“억?”
첫 방은 진심을 실어서.
두 번째 방은 내력은 거두고 감정만 실어서.
쌔액!!!
쩌그럭!!!!
그에 술병에 둘러놓은 기운이 사라지며 술병이 깨져 나갔고.
깨져나가는 술병과 함께 쌍도귀가 대자로 뻗었는데.
어느새 내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소릉이 녀석이 한마디를 뱉었다.
“해치운 거죠?”
어.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소릉이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내 미간을 절로 좁힌 이때.
아니나 다를까.
쌍도귀에 앞서 기절시킨 머리가 단단하던 산적 놈이 갑자기 핏줄이 가득 도드라진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눈을 희뜩 까뒤집더니.
“끄엌?! 끄르르럿! 크러러럵?!”
사지를 기괴하게 뒤틀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저거.
원작에 나왔던 마기를 잘못 받아들인 놈이 겪는 부작용 같은데…?